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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형판매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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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동네에 있는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운영하는 가게로 뛰어가 부모에게 받은 적은 돈을 가지고 손에 꼭 들고 무엇을 구입할 것인지 흥겨워한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그냥 우둑 커니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널리 펼쳐진 갖가지 과자들 가운데 무엇을 사야하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그렇게 많은 종류의 과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가게에 가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돈은 고사리 같은 손바닥에 쥐어들기는 들었지만 무엇을 사야하는지 어리둥절하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눈앞에 펼쳐진 과자들을 우둑커니 쳐다보다가 마침내 사는 것은 자기 주먹크기만한 “왕사탕”이다.

만물상회처럼 가까운 가게 아주머니는 고객들의 이름만 아니라 심지어 친척의 이름까지 안다. 언제든 이웃끼리 현찰이 없으면 외상을 부탁할 수 있을 정도로 동네 가게는 정이 들어 있다. 부모님이 출타중이면 언제든 가게 주인은 손님의 열쇠를 맡아둔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하교하면 열쇠를 전달하는 동시에 풍선껌 하나도 덤으로 준다.

가게에는 언제든 지나가는 행인들이 나무 긴 의자에 걸터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이 들어 있다. 크게 비싸지도 않고 그렇게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질 않아도 어린 아이들만 아니라 많은 동네 사람들은 가게를 중심으로 정들을 나누고 살아간다.

또 재래시장에 가면 여기저기에 앉아서 물건들을 판매하는 진풍경이 있다. 모든 식물들이 신선하다. 가격들을 흥정할 수 있다. 축 널어져 있는 앞치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듯싶다. 원하는 물품들을 구입하다보면 어느 샌가 들기에도 힘든 짐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물건 저 물건들을 구경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주인마다 알아서 “아주머니,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건강하시구요?” “그저 그렇죠?” 이렇게 정다운 인사를 나누며 정답게 구입하는 물품 구입 진경은 재래시장만이 갖는 독특한 풍경이다. 비록 “안녕하십니까~아~”라는 미티스커터를 입은 아가씨의 애교가 없더라도 깊은 정이 넘치는 재래시장이 그립다.

작은 교회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다. 이 건물 저 건물마다 개척교회들이 들어있다. 서울의 밤하늘만 아니라 한국의 어느 도시의 밤하늘을 볼 때 빨간색 네온사인의 교회 십자가를 쉽게 볼 수 있다. 누구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이고, 누구든 환영 받는 곳인 교회당이다.

이와는 달리 대형교회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진다. 특급호텔을 능가하는 첨단 시설을 갖춘 교회당들이 들어선다. 유행을 따라 종탑과 외형들이 주위 환경을 무시한 채로 들어선다. 현대식 음향시설, 현대식 무대, 현대식 가구들, 현대식 조명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들어서?자들마다 그 시설에 기가 죽을 정도로 만든다. 왠지 기도가 잘 되고, 찬송도 잘 나오는 것 같다. 점점 편하게 신앙생활해가는 자신들을 나이 드신 어르신 신앙인들은 걱정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대형판매점들이 들어서면서 동네 구멍가게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화려한 외형, 친절한 미모의 여인, 편리한 구내시설 등은 구매자들을 유혹한다. 남녀부부가 나란히 카터(cater)를 끌고 물품을 구입하는 모습을 참 보기 좋다. 이러한 대형판매점들이 도시마다 들어옴으로 구매자들에게 편리함을 줄지 몰라도 이에 따라 구멍가게식의 재래식 시장은 죽어간다. 대형판매점들의 가격 주도권은 경쟁력이 약한 시장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영세 시장들은 우리 주위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이처럼 대형교회들로 성장하는 것은 목사의 자질이 소형교회들보다 결코 뛰어난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교인수가 성장하면 그 다음부터는 가속도가 붙어서 행정과 경영으로 교인수는 자연적으로 성장한다. 과거처럼 목회자가 뜨겁게 헌신하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설교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부목사들, 부교역자들, 행정인들이 수고하고 애쓰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교회 외의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

신학교들마다 많은 신학생들이 배출되지만 대형교회에 밀려 어려워지는 개척교회를 이끌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소형교회들이 대형교회의 시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도 따라갈 수 있는 한 노력하면서 리모델링을 하며 시설에 투자한다. 차를 운영하면서 성도들을 운송해본다. 하지만 큰 대형버스로 교통체증을 빚는 대형교회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주저앉고 만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뒷받침하여 국가경제를 향상시킨다고 한다. 대형교회들이 여기저기 들어서면 피해보는 것은 중ㆍ소형교회들이다. 정말 힘들다. 굳이 그렇게 교회당을 크게 지어야만 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빚을 가져 강당에서 헌금을 강요하는 설교가 공공연하게 성도들의 귀를 식상케 만든다. 생명력 넘치는 설교가 아니라 교회당 운영을 위한 목소리에 성도들은 식상해 있다.

목사님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알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교회가 그립다. 힘들면 교회당에 가서 울면서 기도하고 싶다. 교회당에 무슨 귀중품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도둑들이 관심을 가질 정도가 되는 형편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밤이든, 새벽이든, 저녁이든, 낮이든 언제든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그립다. 눈물로 기도하던 성도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쇠퇴해가고 있다.

타락한 중세교회에서 주도했던 외형주의를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이름하에 자행된 십자군운동, 종교재판, 이단사냥, 또는 면죄부 등은 한국개신교회에는 없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다. 역사를 통해 왜 현대 대형교회는 배우지 못하는지 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형교회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대기업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생명력 잃어가는 한국대형교회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개척교회, 중소형교회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대형교회의 횡포로 인해 상처를 입는 개척교회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개척교회와 중소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대형교회 목회자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영적으로 모지라지 않다.

보다 경건하고 영적 능력이 많아서 대형교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능력으로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것이다. 마케팅을 통한 경영으로 대형판매점들이 우우죽순처럼 성장하는 것처럼 대형교회는 중소형교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과 고통을 주고 있다. 교회사를 통해 이러한 잘못된 추세의 추악한 결과들을 보면서 현대 한국대형교회들은 배우고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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