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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영상 비가 갠 후에야 무지개가 떠오른다! 조선의 성녀 '쉐핑'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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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후에야 무지개가 떠오른다!

조선의 성녀 '쉐핑' 선교사 ( 한국명: 서서평 )

독일인 출신의 미국인 간호사로 조선에 32세에 파송되어 병들고 버리진 
조선의 고아 14명을 거두고 한센병 환자들과 과부들을 먹이고 돌보다가 
영양 실조로 51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34년 6월 서서평 선교사는 광주에서 만성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로 숨졌습니다. 그녀가 남긴 건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뿐이었습니다. 한 장 남았던 담요는 이미 반으로 찢어 다리 밑 거지들과 나눴습니다.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됐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조선에서 22년간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조선인의 친구’가 아니라 그저 ‘조선인’으로 살았던 사람. 가난하고 병든 이웃, 나환자들을 죽기까지 섬겼던 그 사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서서평(본명 엘리제 셰핑·1880~1934) 선교사 기념사업 경과보고를 하던 양국주(63) 씨가 잠시 울먹였다. 17일 광주광역시 양림동 기독간호대학 안 오웬기념각. ‘서서평 선교사 내한 100주년 기념 예배 및 서서평 평전 출판 기념회’에 모인 1000여명의 사람이 여기저기서 함께 눈가를 훔쳤다.

독일 출신 미국인인 서서평 선교사는 1912년 32살의 나이에 처음 조선에 온 처녀 간호 선교사였다. 당시 조선은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 제 백성 돌볼 엄두도 못 내던 나라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리는 몸으로 광주 제중원 등을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를 끊임없이 순회하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여인들을 가르쳤다.

14명의 양자·양녀, 38명의 과부 거둬

서서평이 바라본 조선 땅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번 순회 진료와 전도 여행을 나서면 한 달 이상 말을 타고 270㎞ 이상 거리를 돌았다. 진흙탕에 말이 쓰러지면 머리에 이고 백릿길을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 넘는 조선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팔려 다닙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1921년 내쉬빌 선교부에 보낸 편지)

서서평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의 전신)를 세워 여성들을 가르쳤다. 조선간호부협회(현 간호협회의 전신)를 세우고 일본과 별도로 세계 간호사협회에 등록하려 애썼던 이도 서서평이다. 한글 말살정책이 진행 중인 일제 치하에서 간호부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은 모두 한글 전용을 고집했다. 조선사람들에겐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독립의 확신을 심어주려 애썼다. 

출애굽 정신 가르치며 한글 사용 고집

1929년 조선간호부협회를 세계협회에 가입시키기 위해 갔던 미국에서, 서서평은 갓 1살 된 자신을 할머니에게 버려두고 떠났던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어머니는 “니 몰골이 내 딸이라 하기에 부끄러우니 썩 꺼지라”고 서서평을 내쳤다.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서서평은 수양딸 13명과 나환자의 아들 1명 등 14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해 기른 ‘조선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냥 데려다 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시집가도록 돕고, 소박이라도 맞으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1933년에는 서서평은 조선인 목회자 등 동역자들과 함께 50여명의 나환자를 이끌고 서울로 행진을 시작했다. 강제 거세 등으로 나환자들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펴고 있던 일제 총독부에 나환자들의 삶터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소식을 들은 전국 각지의 나환자들이 이 행진에 합류했다. 서울의 총독부 앞에 이르렀을 때 동참한 나환자들의 숫자는 530여명에 달했다. 결국 총독부도 두 손을 다 들었다. 소록도 한센병환자 요양시설과 병원은 이렇게 시작됐다.

장례행렬 나환자들 “어머니” 부르며 오열

최초의 광주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땐 수천의 광주 시민과 나환자들이 쫓아 나와 “어머니”를 부르며 오열했다. 당시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백만장자의 귀한 위치에서 하인을 두고 차를 몰고 다니는 선교사들,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 눈감고 오직 개인 향락주의로 매진하는 신여성들이 양심에 자극을 받길 바란다”고 썼다.

그가 한국땅을 밟은 지 100년을 맞은 올해에야 기념사업회가 세워졌다. 양창삼 한양대 명예교수의 ‘조선을 섬긴 행복’, 양국주 씨의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이상 Serving the People 펴냄) 등 평전 2권이 세상에 나왔다. 재미교포인 양국주 씨는 미 재무부 등록 전쟁·재난 구호 NGO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Serving the Nations)’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서서평 선교사는 남자가 아닌 독신여성, 목사가 아닌 평신도, 의사가 아닌 간호사라는 이유로 잊혀 있었다. 유산 놓고 다투는 부잣집 자식들처럼 가진 게 너무 많아 근심뿐인 한국교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분”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기념식 뒤 인근 호남신학대 캠퍼스 언덕 위의 선교사 묘역으로 갔다. 이끼 낀 서서평 선교사의 묘비에 화환이 놓였다. 설교를 맡은 서서평기념사업회 회장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의 목소리는 피를 토하듯 절실하게 느껴졌다.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섬겼던 손양원 목사의 삶, 그리고 서서평 선교사의 삶.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게 원본입니다. 말기암 환자인 91세 박재훈 목사가 손양원 목사를,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리를 쩔뚝이는 양국주 대표가 서서평의 삶을 이 땅에 되살려냈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대응되는 실제가 없는 공허한 단어로만 말해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논리가 아닙니다. 삶이며 생명 그 자체입니다. 믿음은 늘 구체적인 삶의 용솟음입니다. 손양원과 서서평이라는 믿음의 원본을 다시 갖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한국교회는 이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1912년 이 땅은 일제에게 국권을 모두 빼앗긴지 2년이 지났다.

그 때 이 고통의 땅을 치유하고자, 품고자 홀홀 단신으로 코리아 마루(S.S.Korea)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는 배를 타고 온 미국 남장로교의 여자 간호선교사가 있었으니 32살의 독일 태생, 미국인인 서서평(Elizabeth Johanna Shepping,1880.9.26~1934.6.26) 선교사이다.  

그녀는 1912년 3월 중순에 도착하여 목포선교부에 소속되었고, 전라도지역에서 사역을 한다. 1916년 군산선교부에 속했고, 1917년 광주선교부로 소속을 옮긴다. 다시 1918년 군산선교부,1919년부터 광주선교부로 소속된 이후 1934년 6월 26일 소천할때까지 광주의 딸로 소외된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그녀는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의 백성이었으며, 혈통은 독일인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살다, 광주시민의 삶을 살다 쓰러졌다.

 

그녀의 그리스도인으로써의 헌신적인 삶을 여기에 다 적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백춘성 장로님의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후 새로운 1차 자료들이 추가되어 그녀의 숨소리가 들릴 것 만 같은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저자인 양창삼 교수는 1908년 세워진 수피아여고의 5,8,10대 교장을 역임한 유화례(Root, Florence E) 선교사의 養孫으로 양 교수님의 어머니는 서서평선교사가 세운 이일성경학교의 학생이었다.

 

<조선을 섬긴 행복> 양창삼 교수 저, Serving the People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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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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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쾌청 2013.07.24. 12:03

이 땅의 크리스쳔으로 서서평 선교사님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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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광 2013.07.26. 11:57

하나님의 비젼과 꿈을 사람의 비전과 꿈으로 허울 씌우고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변질 된 것을 가르치는 세대에

귀한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본질을 놓친 교회와 성도들에게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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