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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배재철 <8> 8시간 대수술 끝에 오른쪽 성대 절단… 목소리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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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갑상샘암 수술을 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수술은 가능하지만 목소리가 상할 수 있어요. 성대에 이상이 오면 재활치료 프로그램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 목소리가 상할 수 있다는 건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독일 마인츠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자르브뤼켄 시립극장에는 병가를 냈다. 세 번째 공연에서 ‘돈 카를로’ 역은 결국 객원가수로 교체됐다.

극장 측과 매니저 에리키 알스테에겐 갑상샘암 수술을 알리지 않았다. ‘돈 카를로’ 외에 ‘노르마’ ‘라 보엠’도 출연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외국인에다 낯선 동양인, 혹여 계약 파기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갑상샘암은 암 중에서도 착하다고 하지 않나. 목소리가 상할 수 있다는 건 최악을 염두에 둔 것이니 애써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간단한 수술로 여겼다.

2005년 10월 수술을 받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혹 크기가 7㎝여서 의료진도 놀랐다고 한다. 림프까지 전이돼 림프를 다 걷어냈고, 그 과정에서 오른쪽 성대와 횡경막의 신경을 절단했다. 3시간이면 끝날 거라던 수술은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초조하게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아내에게 의사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 남편의 생명이 중요합니까, 목소리가 중요합니까.” 아내의 답은 당연히 내 생명이었다.

수술하고 정신을 차린 순간 내가 처음 했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보! 여보!” 아내를 불렀는데, 소리는 안 나고 입만 벙긋거렸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음을 감지했다.

돌이켜보면 어쩜 내 병은 예견된 것일지 모른다. 유학 시절 나는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으로 먹고살았다. 2000년까지 그렇게 지냈다. 콩쿠르에서 상을 못 받으면 우리 가족은 집세도 못 내고 거리로 쫓겨나야 할 판이었다. 지금 서울 성동구 독서당로의 내 연습실엔 그때 콩쿠르에서 받은 상장들이 걸려 있다. 가끔은 씁쓸하게 그 상장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때만큼 노래가 절실했던 적이 없었다. 한 번의 실수도 허락지 않았다. 강박증 같은 게 있었다. 그 결과 노래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님에도 우격다짐으로 몸을 돌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이러니 피곤한 거야. 내가 강철도 아닌데,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조금씩 병을 키운 거다. 몸을 돌볼 새 없이, 아플 새도 주지 않고 여유 없이 병을 키운 것이다. 분명 내 몸은 신호를 보냈다.

2003년 스웨덴에서 ‘리골레토’를 공연하기 일주일 전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래’라며 약을 먹고 노래했다. 그때 나를 좀 돌볼 것을…. 목소리를 잃고 침묵의 시간을 보내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많이 울었다. 아내는 더 아파하며 울었다. 나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며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을 일으키셨느냐”고 따지며 울었다. 우린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런데 울면서 뭔가 해소됨을 느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내가 내 능력을 잘못 사용해서 이렇게 된 것을’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머리를 숙여 나직이 고백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정리=노희경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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