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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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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 목사가 가정으로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

- 강선영 목사 (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 가정 상담 연구원 원장)

최근에 참으로 아름다운 부부를 만났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 상대방을 높이고 섬기는 모습이 천사의 모습과 같았다. 남편은 늘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고, 그런 남편을 아내는 존경하고 사랑했다.

“여보, 당신은 내가 아니었으면 더 훌륭한 남편을 만났을 거야. 당신이 있어서 내가 행복해. 나는 복 받은 사람이야.”

“고마워요, 여보. 그렇게 말해줘서.... 나같이 부족한 아내를 그렇게 항상 칭찬만 해주고... 나는 당신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요....”

이 부부가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결혼 이후 수없이 속앓이를 했고 무뚝뚝한 남편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아내는 단 한번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단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남편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남편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던 남편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고, 아내의 긍정적인 말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가득 일렁이는 고마움들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부부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름답고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

세상에 이런 부부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가정이 깨어지는 비극은 없을텐데... 부모의 이혼 때문에 가슴 찢으며 우는 자녀들이 없을텐데...

지난 주에 ‘나의 왜곡된 이마고’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었다. 왜곡된 이마고는 대부분 어린시절의 상처와 채우지 못한 사랑과 돌봄, 버림받음과 거절의 아픈 감정 등이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어린시절이 행복했던 사람들보다는 불행한 기억이나 상처받은 기억으로 점철된 사람이 훨씬 많았다.

특히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어린시절이 행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의 세대가 어렵고 혼란하고 가난한 세대였기 때문이었고, 그 부모님들도 여전히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분노를 고스란히 지닌 채 왜곡된 이마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자녀들에게 투사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모님들을 원망할 수도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의 세대부터 회복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 많은 상처와 그릇된 이마고와 슬픔과 분노가 무의식에 가득하다 보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때때로 ‘옛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며 분노와 원망과 염려가 나도 모르게 입술로 또는 온몸으로 새어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절규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7: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로마서 7:19-”

사도 바울의 외침이 곧 나의 외침이 아닌가! 나는 성경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나, 원하지 않는 분노와 원망과 불평만이 가득하고 때로 나도 모르게 그것들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고 회개하고 내면을 비워보지만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연약한 모습들이 영적인 절규가 되기도 한다.

형편없는 자아상, 왜곡된 자신의 이미지, 부정적인 정서로 얼룩진 옛 모습, 상처로 찢긴 마음을 숨기며 가면을 쓴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어느 순간 어떤 모습으로든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치유를 위해서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치유의 가장 강력한 자원으로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을 주셨다. 말씀과 기도의 치유 도구도 있다. 거기에 또 하나의 부드럽고도 강력한 치유 자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이며 ‘부부’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어린 시절에 채우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를 통해서 채우게 하셨다.

그러나 결혼을 결정할 때, 혹은 결혼 초기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배우자가 나의 필요를 모두 채워주리라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 내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보다는 내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안에 빈 공간과 외로움과 빈 사랑의 그릇이 너무나 오랫동안 덩그렇게 놓여 있다보니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배우자에게로 향한 엄청난 기대감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부부 간의 문제와 갈등의 해결은 이 사실을 깨닫고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이기심을 직면하라. 그러면 상대방이 보일 것이다. 내가 나의 모습을 직면하기를 싫어하고 자신의 텅 빈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면 치유는 계속 미루어지고 갈등도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의 필요와 부족함을 세심하게 보살피며 채워주어야 한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은 두 사람은 자신의 욕구만을 내세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고 둘은 결혼 전보다 더욱 더 외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필요보다 배우자의 필요와 빈공간을 보살피게 되면 배우자가 치유되면서 자신도 함께 치유를 받게 된다. 이것이 부부관계의 놀라운 비밀이다!

우리의 상처는 연필로 꼭꼭 눌러 휘갈겨 쓴 글씨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생채기를 내며 휘갈겨 써진 글씨를 지우기 위해서는 특수한 지우개가 필요하다. 이 상처의 근본적인 치유는 보혈과 성령의 능력이다. 그 이후에 눌러쓴 자국은 상호 돌봄과 섬김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지워진다. 특히 부부 상호간의 지속적인 돌봄과 섬김과 헌신의 태도가 상처의 흔적까지 말끔하게 지워지게 한다. 연필로 쓴 글씨를 지워도 자국이 남는 것처럼 그 상처의 자국 위에 새로운 희망과 기쁨과 사랑의 글씨를 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독한 자’에게 ‘가정’을 주셨다(시편 68장 6절). 이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이다. 부부가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보살펴 주면서 치유되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은 자녀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초석이 된다. 부부가 불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내면화된 분노의 모습으로 사춘기 시절에 폭발하기도 하고 가출을 하게 하거나 심지어 범죄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

부부가 행복한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안정감을 누리며 건강하게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의 평화의 기초가 부부에서 시작된다. 부부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관계임이 틀림없다. 불행한 부부 밑에 불행한 자녀가 만들어지고, 그 불행한 자녀가 한 시대의 평화를 깨는 독재자요 전쟁광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히틀러가 아닌가. 또한 불행한 가정의 끔찍한 결실로서 유영철같은 살인마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관계, 부부,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은 행복해져야하고, 치유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하고, 서로 돌보고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름다운 부부의 사례처럼 부부는 노력 여하에 따라 지상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이후에, 모든 저주의 세월이 끝나고 에덴으로 옮겨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에덴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우매함과 불신앙 때문이다. 지혜로운 부부가 되어 에덴을 누리고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축복된 관계인 ‘부부’의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강선영 목사와 이메일상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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