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의 연합과 일치 (엡 4:1~6)

  • 잡초 잡초
  • 880
  • 0

첨부 1




 
교회의 연합과 일치

  에베소서 4장 1~6절
"교회의 연합과 일치"(엡4:1~6)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한국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도구로 이제까지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를 위하여 사랑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께서 쉼 없이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연합과 일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닙니다. 교회의 일치는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된 것과 같이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한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요17장)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서신에도 교회의 하나됨에 대해서 여러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모두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간절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의 기독교 역사는 분열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동· 서방 교회로의 분열과 신·구교의 분리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교단과 교파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모습은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교회의 일치 문제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교회가 씨름하고 해결해야 할 보편적 문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결코 교회의 분열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몸의 지체가 각각 나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또한 결코 나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분열되어 있으니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 성도들은 모두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각 교단과 교회 역시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일을 위해 기도하고 연합과 일치의 운동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저는 새천년을 준비하는 1999년 1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반드시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어 교회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가야할 것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교회 연합체를 하나로 이루는 일이 시작되었고 그 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상당한 진척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한국 교회의 공신력 있는 교단장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연합과 일치의 실질적인 열매를 기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한국교회 연합의 새 장을 열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몇몇 교계 지도자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 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 연합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 한국 교회 연합과 일치의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겸손과 온유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께서 시몬의 배를 빌려 타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은 그 어디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모여든 사람이 너무 많아 배를 타고 육지에서 좀 떨어져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배를 빌려 타게 되었는데 그 배의 주인이 바로 시몬이었습니다. 전날 시몬은 온 밤을 지새우며 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단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몹시도 피곤하고 허탈했을텐데 그는 예수께 배를 선뜻 빌려줄 수 있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가르치신 후에 배를 빌려 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시몬이 목수 예수의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게다가 고기가 거의 없는 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은 상식에 어긋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밤새도록 단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했는데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 때 시몬은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주님이시며 자신은 죄인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 시몬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난생 처음 보는 예수에게 밤새껏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괴로웠을텐데도 너그럽게 배를 빌려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남들에게 선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의롭고 합리적이고 꽤 쓸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난 후에 그는 예수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겸손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인해 시몬은 후에 베드로가 되었고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또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은 하늘의 은총을 받습니다. 또한 하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겸손하게 됩니다. 겸손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평화와 일치가 있지만 교만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되는데도 먼저는 각 교단과 교회들이 "나는 죄인이다"라는 겸손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에서부터 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신앙만을 최고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게 되면 결코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엡4:2)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온유는 외적인 겸손으로 나타나기에 "온유와 겸손"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온유와 겸손"을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온유와 겸손"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가 죄인인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유와 겸손"의 성품을 갖게 됩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과 교회들과 각 교단들이 "온유와 겸손"을 회복하게 될 때 한국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이루어 질 것입니다.

2.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교회는 라이온스 클럽이나 YMCA, YWCA 클럽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이라는 사회학적인 의미는 같지만 그 목적이나 구성원의 차이는 뚜렷합니다. 사회봉사단체는 거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친교를 나누며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모이는 기관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들로 모여 있습니다. 사회적 신분 계층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고학력자가 있는가 하면 무학자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충실하게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이 혼재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교회는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의 모임일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할 뿐입니다.
게다가 교회는 국가나 기업체처럼 구성원을 통제할 수 있는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도 헌법이 있고 정치기구가 있지만 국가나 기업체의 강제력에 비견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적입니다.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사회계층적 동질감이나 법적 강제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랑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이 놀라운 사랑과 희생이 사라진다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위에 서있기 때문에 교회의 성도들은 당연히 서로 사랑하고 용납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러한 차이를 넘어서는 위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만일에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금새 분쟁에 휘말리고 분열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어느 주일 이른 아침 설교 원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남루한 차림의 소년 셋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파괴된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이전에 교회에 와 본 적이 없다며 교회를 구경하고 싶다고 목사님께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은 바쁜 시간이었지만 그 소년들을 데리고 교회의 이곳 저곳을 안내했습니다.
교회를 모두 구경한 후에 그들은 예배가 언제 시작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소년이 "양말짝이 서로 달라도 예배당에 들어갈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예배당이 마루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 소년은 또 다시 물었습니다. "만약에 양말을 신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요?" 목사님은 여전히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소년은 그제야 아주 안심된다는 표정으로 "왜냐하면 제 양말은 짝이 틀리고, 제 동생은 아예 양말이 없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 아침 강단에 올라선 목사님의 양말짝은 서로 달랐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목사님의 모습을 본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예배에 처음 참석한 소년들의 양말짝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는 조용히 서로의 양말을 한짝씩 바꿔 신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 모두가 남루한 모습을 가진 소년들을 사랑으로 용납하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따뜻한 교회의 사랑을 체험한 소년들은 후에 성도들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되었고 하나님의 큰 일꾼들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이와 같이 서로 사랑으로 용납할 때 아름다운 연합과 일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이미 성령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성령은 교회를 창설하셨고 교회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이미 교회는 본질상 하나의 공동체로 지음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그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 인간이 교회를 언제나 분쟁과 분열로 끌고 갈 요소가 있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힘쓰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회는 분쟁과 분열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교회에 모인 성도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언제나 교회는 하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성령의 감화에 불순종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분쟁과 분열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됨의 역사요 분쟁과 분열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지와 고집과 아집을 내세우면 안됩니다. 성령보다 자기의 지혜와 능력을 앞세워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에 순종하며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평안의 매는 줄로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지난 6월 월드컵 16강 진출을 꿈꾸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되는 힘은 16강이 아니라 월드컵 4강이라는 믿기 어려운 기적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온 나라가 태극기 물결이었고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됨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지만 월드컵 이 후 연말 대선을 앞에 두고 다시 국론이 분열되고 계층별, 지역별 위화감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로, 동과 서로, 강남과 강북으로, 신세대와 구세대로 나뉘고 분열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러한 분열의 시대에 교회는 반드시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찢기고 나뉘어진 이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온 교회는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께서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로 부족한 저를 통하여 한국 교회가 하나되는 일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더욱 기도해 주시고 아울러 우리 교회도 겸손과 사랑으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