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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추수 / 마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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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철 목사 (남서울교회)
▶ 제  목 : 영적 추수
▶ 본  문 : 마 9:35-38
 
또 다시 계절이 바뀌어서 이제는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금년 추수는 얼마 전에 있었던 태풍 루사의 후유증으로 예년보다 못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더군다나 태풍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영동지역에서는 추수는 고사하고 금년 겨울을 나기가 어려운 가정들도 있다고 해서,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분들이 헌금하신 것을 가지고 그들을 돕느라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때는 때입니다.

아무리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갔지만 이 땅에 또 다시 추수의 계절이 찾아 왔습니다.

추수 때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씨를 뿌리는 때도 중요하고 김을 매고 물을 주는 때도 중요하지만, 추수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다른 일을 잘 하였다고 해도 추수를 잘하지 못하면 그 해 농사는  망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추수 때가 가장 바쁩니다.

이 때는 온 식구가 다같이 밭에 나가서 일합니다. 부지런히 땀 흘리면서 일합니다. 온 식구가 하나가 되어서 일하는 때가 이 때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도 이런 추수기가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우리 교회가 새생명 축제를 갖는데, 이것은 바로 영적인 추수를 하는 일입니다.

농부들은 알곡들을 거두어들이지만 우리는 영혼들을 거두어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고에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추수를 앞에 놓고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그것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영적 추수를 하시던 이야기입니다.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영적 추수를 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영적 추수자로서 보여 주신 몇 가지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영적 추수에 임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영적 추수기를 맞아 주님이 가지셨던 눈이 필요합니다.

36절에 보면, 우리 주님은 사람들을 보실 때에 그저 무리로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셨다고 했습니다.

주님께는 그런 영적인 눈이 있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육체나 외모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만 입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주님에게는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농촌에서 땀을 흘리면서 추수를 하는 사람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다른 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힘들지 않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저 낟알들을 보라고, 저 낟알들이 다 돈입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추수꾼들의 눈에는 곡식들이 다 돈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수고를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곡식을 돈으로 보면서 추수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 영적인 추수꾼들은 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존재, 우리 인생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면 멀쩡하고 잘 생겼고 옷도 잘 입었고 돈도 있고 공부도 많이 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어도 그것이 그 사람들의 행복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웃거나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까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의 목자가 필요한데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에게 목자가 없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영적인 추수를 바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보는 눈들이 각각 다릅니다. 장사꾼들은 사람들을 돈으로만 봅니다. 정치꾼들은 사람들을 다 표로만 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영적 추수꾼들에게는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눈을 가지고 영적 추수에 열심히 임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 당시 사람들을 목자 잃은 양과 같이 보시면서 민망히 여기셨다고 36절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민망히 여긴다’는 말은 내부의 창자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동정심, 진정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체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보실 때에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실 때에도 그렇게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사회에서 소외 받는 사람들을 보실 때에도 그렇게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그 당시의 사람들을 보실 때는 창자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연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들의 병든 것과 연약한 것을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영적 추수에 임하는 우리들도 이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목자 잃은 양과 같이 볼 줄 아는 눈을 가짐과 동시에 그런 그들의 어려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절대로 외모로만 보지 마십시오. 외모로 보면 사람들이 다 그럴 듯 하고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목자가 없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다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양이라는 동물은 목자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습니다. 푸른 초장에 갈 수도 없고 물을 마시러 가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방향 감각이 없는 것이 양입니다. 결국은 들을 헤매다가 맹수의 밥이 되거나 굶어 죽고 지쳐서 죽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영혼의 목자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다 그와 같습니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말할 수 없는 고독이 있고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초조가 있습니다. 그들은 방향감각 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이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영적으로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영적 추수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적으로 새 생명이 태어났을 때 저는 서울 변두리의 어느 개척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있으면서 주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그 시간이 좋아서 그 교회에 두 주간이나 머물러 있었습니다. 전도사님 가정에서 밥을 먹고 남은 모든 시간동안 교회에 있으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하면서 장래 구상을 하면서 조용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생애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서울 변두리 교회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는데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거기서 속으로 기도하면서 찬송하면서 하늘의 기쁨을 충만히 가지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그런 근심 걱정, 불안 초조를 그들도 가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제가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어두운 삶을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하고 앉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번 전도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가족들에게 먼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말도 없이 두주간이나 어디 다녀와서 한다는 말이 예수 믿자는 말을 하니까 화가 나셔서 호통을 치셨습니다. 제 동생에게도 얘기 했는데 너무 안됐다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저를 측은히 여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의 친구들에게도 전도했지만 저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그 당시는 제가 전도하는 방법 전혀 몰랐습니다만 제 마음속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전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운 것은 군대 갔다 온 후에 제가 c.c.c.(대학생 선교회)에 가입하면서 전도 훈련도 받고 전도지도 사용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전혀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무식했습니다. 4영리 책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의젓한 목사가 되어서 그 때보다도 말도 잘하고 학문적으로도 공부도 하고 훈련도 받고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까지 하니까 얼마나 전도를 잘하겠습니까?

그러나 곰곰이 제 자신을 돌아볼 때에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늘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전도라는 것은 방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그 마음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늘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사람을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까?

예수 믿지 않는 성도들을 볼 때 목자 없는 양과 같음을 알아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이 추수자의 마음이고 추수자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눈을 보여주시고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 다음에 세 번 째로는, 우리들에게는 주님의 탄식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37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이것은 주님의 탄식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탄식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적다는 탄식입니다.

농촌에서 추수 때처럼 바쁜 때는 없습니다. 추수 때는 온 집안 식구가 다 동원이 됩니다.

누구든지 나가면 일거리가 있습니다. 추수 때에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해보면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이나 병드신 분, 강아지 밖에는 없습니다. 모두 밭에 나가 있을 정도로 일감이 많은 것입니다.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서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애써서 농사지은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썩어버리기 때문에 추수 때에 빨리 가서 거두어야 합니다. 거두지 못하면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기울여서 피곤한 줄 모르고 하나라도 더 거두려고 노력을 하는데 온 식구들을 다 동원해도 못 거둬들입니다. 돈 주고 사람들을 사서라도 추수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추수할 것이 앞에 있는데, 돈이 앞에 보이는데 거둬 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적구나” 탄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 남서울교회에 영적추수를 허락하셨는데 지금 우리 주위는 어떻습니까? 우리 손길을 기다리는 영혼들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한국 국민 가운데 약 4분의 1이 크리스챤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4분의 3은 목자 없는 양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4분의 1조차도 접촉해보면 교회만 왔다갔다하지 예수님을 정말로 자기의 목자로 삼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 앞에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도의 자유가 있습니다. 전도한다고 잡아가거나 뭐라 하지 않습니다. 회교권이나 중국, 불교권에 가보면 전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미국에서도 노방전도는 마음대로 못합니다. 노방전도를 하려면 경찰에 먼저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남의 집에 가서 노크를 하면서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활짝 열려 있고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우리 교회 전도 폭발 훈련을 통해 보면 아직도 적어도 약 6,70%의 결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에는약 8,90%의 결신율이었는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부해져서 전도를 안받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6,70%의 결신율은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비율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땅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복음에 대해서 열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추수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꾼이 없습니다. 교회 나온다고 다 일꾼이 아닙니다. 미국의 어떤 선교학자가 미국교회의 전도하는 일에 관계하는 성도들의 숫자를 여러 교회 조사했는데 어느 교회도 전도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10%도 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전도폭발 훈련을 창시했던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이 시무하는 코랄 리치교회도 전도하는데 참여하는 사람이 10%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영적 추수에 임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우리교회만 하더라도 금년 초부터 새생명축제를 위해 전도대상자를 작정하자고 강조하면서 얘기를 해도 움직이는 사람들이 10분의 1정도 ,많아야 10분의 2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에 의해서 천명, 이천명 정도의 전도 대상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할 것은 많지만 일꾼은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탄식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군이 적다고 안타깝게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탄식 소리가 들리십니까? 이 소리가 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영적 추수를 놓고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도를 오해해서 열심히 이 기도만 드리고 있습니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기도하면서 일꾼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옆을 봅니다. 주님의 탄식이 있는데 또 기도하자하면서 기도만 하지 자신은 일꾼으로 나설 생각은 안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기도를 부탁했던 제자들이 추수할 일꾼과 전도자로 다 나서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진정으로 이 기도를 하게 되면 우리 자신이 일꾼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게 되면 주님의 눈을 가지게 되고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기도를 드리다 보면 주님의 탄식소리를 듣게 되고 이사야 선지자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진정으로 이 기도를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남서울교회의 새생명축제가 다가왔습니다.

영적인 추수의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년 초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한 영혼을 심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도대상자들을 작정하고 마음속에 품고 기도하며 편지도 보내고 사랑으로 관심을 표현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찾아가고 인도해서 새생명잔치에 나오게 할 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의 눈을 가져야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되고 주님의 탄식을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서 이 일에 임해야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해서 나서게 되면 주님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그래서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그 기쁨을 여러분들과 교회에 주시고 이런 한 영혼이 돌아올 때엔 하늘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 새생명축제는 영혼이 돌아오는 하늘의 잔치를 교회에서도 맛보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잔치를 앞에 놓고 우리 모두가 진정한 영적 추수꾼들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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