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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 / 요일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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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사랑
본 문 : 요한일서 4:7-11 찬 416장
설 교 :


  미국 사람들이 남녀간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홀어머니나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23%나 된다고 합니다. 이혼율이 50%다. 이렇게 이혼율이 그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남여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족과 형제간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랑도 메우지 못하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의 갈증은 사이다나 콜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생수를 마신다 해도 영혼의 갈증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를 찾는 본능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찾을 때 다른 사람이 맛있는 것을 주거나 장난감을 주거나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줄지라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엄마를 찾는 아이는 엄마로서만 그 소원과 갈증을 풀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 영혼의 갈증인 하나님을 찾는 것을 다른 것으로 대신 채워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받지 않으면 결코 행복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집을 떠난 자녀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그 사랑을 다시 찾기 전에는 진정한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창조자 하나님의 사랑에 안기기 전에는 모든 인간은 끝없는 방황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매달리기보다는 인간에게 매달립니다. 어떤 분은 사랑하는 여자나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어떤 분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매달립니다. 자기의 빈 자리를 채워달라고 호소합니다. “너 없으면 나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마음의 빈 자리를 자기도 못 채우는데 누구의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우리의 빈 마음을 만족하게 채워줄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배부르게 못할 양식 대신에 만족하게 해주는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본문 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이 말은 다른 곳에는 사랑이 없다. 여기에 있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요? 그것은 십자가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십자가만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무조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이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누리게 됩니다.

  또한 십자가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화목제로 바친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 중에 누구를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더욱이 남 대신에 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자기의 아들을 대신 희생시키시고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최고의 희생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만큼 하나님이 보실 때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없는 자기의 아들을 그렇게 죽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 죄를 해결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죽음은 끝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와 고통을 영원히 받는 삶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영생이십니다. 생명이십니다. 평안이고 기쁨이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단절되는 것이 죽음이요 지옥입니다. 하나님 없이 제멋대로 사는 인생들이 치러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치른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죄인인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죄의 해독제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죄에 대해서 잘 모르신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아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해도 죄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가출해서 성공을 했다 해도 부모에게 죄인입니다. 집 나가 산 시간이 다 불효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가장 행복한 삶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 분을 예배하고 따르고 교제하며 살아갈 때 이것이 인생에 최고의 삶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인생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한 성경은 만물 중에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악하고 추합니까? 그런 생각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도 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때 우리에게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인 예수님께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안 사람들은 결코 더러운 죄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이탈리아 어느 소도시에 개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동상 이름은 ‘피도’라고 합니다. 개 이름입니다. 이 개는 물에 빠져 죽을뻔 했는데 어떤 분이 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데려다 길렀습니다. 개는 은혜를 알고 주인을 따랐습니다. 주인이 직장에 갈 때는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서 전송하고, 주인이 퇴근할 때는 먼저 정류장에서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주인을 섬겼는데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주인이 버스를 타고 오다가 그만 버스가 폭탄을 맞아 주인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개는 그 날도 어김없이 정류장에 와서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주인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개는 낮이고 밤이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인을 기다립니다. 장장 13년을 정류장을 떠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다가 그 개한테 먹여 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개는 주인이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리다가 정류장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자리에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자기를 구해준 주인을 잊지 못하는 짐승도 있는데, 저주 받을 자리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예수님을 보면서 그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자들을 짐승보다 못한 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당나귀는 주인을 알고 소는 그 구유를 아는 데 내가 키운 백성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곳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곳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수술시 사용하는 마취제를 처음으로 발견한 제임스 심프슨 경입니다. 이 분의 말년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최대의 발견은 나사렛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야.”

  여러분의 인생에서 최대의 발견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돈보다, 집보다, 생명보다도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하듯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위해 순교도 합니다. 집이나 돈이나 가족보다 더 귀한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보장해 주십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돈이나 집은 잠시만 우리에게 만족을 줍니다. 예수님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여러분을 책임집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가족도 복을 받게 합니다. 돈도 집도 건강도 행복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히 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자신을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그 마음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인도하십니다.

  이제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매년 맞이하면서도 나와 상관없게 생각하셨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이번 성탄절은 나를 위해 오신 예수님이 되고 내 안에 모시는 성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사랑을 받으면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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