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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 십자가 / 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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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 십자가
설 교 :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 구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아! 십자가』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를 아름다운 데코레이션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탑 위에, 교회당 강단의 뒷벽 그리고 몸의 장신구로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아름다운 낭만이 깃든 형상이 아닙니다. 옛날 로마 시절 죄수를 가장 극형에 처할 때 십자가에 메달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면 3일에서 7일간 피를 흘리면서 극도의 고통속에 서서히 죽어 갔습니다. 얼마나 잔인한 형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구원의 은혜의 표상이 된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십자가는 사형틀임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만 할것입니다.


1. 십자가 각기 있으니, 내게도 있도다

첫째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십자가는 예수님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도 십자가가 있고 내게도 짊어지고 가야될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 복무할 때 군종장교가 예배 시간에 간증한 간증을 들은 것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고 잊어지지 않습니다.
그 군종장교가 살던 시골에 조그마한 마을인데 열렬히 예수를 믿는 젊은 여성이 시집을 왔습니다. 그런데 대대로 심한 유교집안이라 예수를 믿는 것이 절대로 금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 부인은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일하나 주일이 되면은 한사코 그 무시무시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호령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몸을 단장하고 성경을 집어 읍내에 있는 교회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문이 온 동네에 꽉 퍼졌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이를 갈았습니다. 남편도 나중에는 그 부인을 때리고 설득을 하고 해도 일주일 내내 순종 잘하고 열심히 일하다가도 주일날이면 아에 죽을 각오하고 교회를 갑니다. 그래서 한번은 이 부인이 교회 갔다오는데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이 합작을 해서 끌고 집방 부엌에 있는 장판을 뜯어내고 거기에 집어 넣어서 덮어 놓고 부엌에서 불을 땠습니다. 그러니까 뭐 삽시간에 머리가 다 타고 얼굴이 화상입었습니다. 거의 가사상태에 되었을 때 끌어 냈는데 끌려 나오자 마자 꿇어 엎드려서 "하나님!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 우리 남편이 알지 못하여 저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갑자기 시아버지가 나죽는다고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 남편 할것없이 그냥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인이 온몸이 화상입은데도 불구하고 그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고 안수하매 고통에서 헤어나고 그들이 다 회개하고 그 동리교회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부인에게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시집살이가 그 십자가였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매달린 결과로 부활의 역사가 온 가정에 일어나서 가족 전체가 구원을 받게 된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제게 편지를 썼어요. 자기 아내가 너무나 못되게 굴기 때문에 이혼을 하고 싶은데 자기는 크리스챤이라 이혼을 해도 좋습니까? 안좋습니까?하는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부인을 당신에게 십자가로 주셨다. 십자가는 매달려 죽으라고 준것이지 십자가에 매달려 살라고 준 것은 아니다. 십자가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안매달릴려고 하니까 고통스럽지 않느냐? 그 부인의 십자가에 매달려라. 그리고 당신이 죽으라. 그러면 부활의 역사가 당신 부인과 가정에 일어날 것이다" 그런 편지의 답장을 해주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는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싸우지 말고 아내를 십자가로 짊어지고 매달리면 그 아내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에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역시 한가지입니다. 남편이 십자가가 되면은 반발하고 싸우지 말고 십자가에 매달려야 돼요. 그리고 순복하면 그 고난을 통해서 변화의 역사가 남편에게 나타나고 가정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아들이 십자가가 된 노모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옷도 잘입고 젊잔하게 생긴 할머님이 그 추운 겨울날 집에 돌아가지 않고 교회당에서 밤을 새우며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아침이 되면은 잘 옷을 입고 잘생긴 며느리가 따끈한 차를 끓여서 어머니를 모시러 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에 와서 담요 하나 덮어쓰고 추운 겨울에 지내냐"고 하니까 그 며느리가 "목사님 좀 말좀 해주십시오. 우리 어머니 주책입니다. 큰 아들도 있고 우리는 중간이고 작은 아들네도 있는데 큰 아들 집에도 좋은 안방이 있고 저희 집에도 어머니 모실 준비를 다했는데 한사코 교회에 와서 이렇게 담요를 덮어 쓰고 떨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안타까워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 내말 들으십시오. 큰 아들 잘살아서 좋습니다. 둘째 아들 잘살고 며느리들이 효성스러우니 좋습니다. 그러나 막내가 집을 나가서 도박을 하고 가족을 돌보지 않고 방종 생활을 하니 내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로다 할수 없습니다. 내 막내가 내게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 내게 있는 이상은 큰 아들 집에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작은 아들집에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교회와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 오히려 내마음이 편안합니다. 내가 이 십자가에 매달려 이 고통 당하므로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내 아들에게 변화를 갖다 줄줄로 나는 믿습니다"

시편 103편 13절에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라고 했는데 부모는 자식을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식이 방종하고 잘못되면 그 자식이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안매달릴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져야 그 위에 부활도 있고 면류관도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남편이 십자가 일수도 있고 아내가 십자가 일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십자가 일수도 있고 부모가 십자가 일수도 있고 이웃과 친척이 십자가 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크고 작은 십자가 있기 때문에 내 몫에 대한 십자가를 내가 짊어져야지 그를 피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 고통스럽고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둘째로,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창조주이십니다.
이사야 9장 6절로 보세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2천년 전에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범한 육신의 어린 아기가 아니라 성경에는 그는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피덩어리 어린 아기로 태어났고 결국에 33세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인류가 바로 예수님이 지으신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 인류는 예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고 마귀와 짝을 지어 나가니까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십자가가 된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식들인 인류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간 그 자체가 하나님에게는 고통을 가져오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을 주님께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러 오신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는 인간들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1절에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아들이 바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우리를 하나님께 화목시킬려고 한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을 보라고 한것입니다. 죄짓고 원수된 우리를 사랑하여 자원한 십자가를 주님께서 짊어지고 희생의 재물이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여러분 갈보리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인류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십자가가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짊어지고 주님이 매달린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이 세상에 윤리나 도덕이나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야웨께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로 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흘려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용서와 의와 영광을 얻고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주님이 대신 죽어 주신 재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입니다. 육체로 태어난 인생들이 영으로 거듭나게 된것입니다. 육체에 속한자가 신령한 자로 새로 태어난 다는 이 위대한 은총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 안에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6백여년 전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분명하게 우리에게 예언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8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 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마땅히 우리는 형벌을 받아야 됩니다. 왜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죄의 값은 사망이니 마땅히 형벌 받은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형벌을 받아 산땅에서 끊어지는 고통을 체험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류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고난과 상처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셨기에 당신의 만드신 자식들이 마귀를 따라 세속을 따라 지옥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졌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의 세속과 마귀, 질병, 저주, 죽음을 다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러므로 편안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고통스러웠습니까? 군중과 제자들에게 버림받은 절대 고독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보십시오. 제자들이 다 버리고 도망치지요. 그가 돌보고 사랑하고 먹여주고 치료한 군중들이 원수로 돌아서서 은혜를 원수로 갚습니다.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못박으소서"
마가복음 15장 29절로 30절에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은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조롱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1절로 32절에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한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당할 것을 시편기자는 벌써 예수님 오기 천여년전에 예언을 했습니다. 시편 22편 6절에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은 보통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창세 이후로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4절에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주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의 절정에서는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정신적인 고통뿐 아니라 육체적인 격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매달려 있었습니다. 오늘날 의사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고 난 다음 로마군인들이 창으로 그를 찌르니까 심장에서 물과 피가 흘렀다는 것입니다. 원래 심장에 찔리면 피만 흐르지 물이 왜 나옵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중에 그 심장이 파열되어서 심장의 피가 심낭에 고여 있으므로 혈청과 피가 분리되어서 그래서 창으로 찌를 때 물이 흐르고 피가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럴정도로 예수님은 격심한 고통을 당해서 심장이 파열될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지 않습니까? 심히 고통을 당하면 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심장이 우리 때문에 파열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로 35절에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그냥 피만 나온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른 것은 심장이 미리 터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오늘날 의사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14절로 16절에 다윗은 예수님 탄생하기 천년전에 십자가 고난을 예언해서 말하기를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 고통은 우리가 로맨틱하게 이야기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극한의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인간으로써 당할수 있는 가장 무시무시한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은즉 우리는 너무나 큰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될것이요, 우주 가운데 먼지와 티끌보다 못한 우리가 고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너무나 큰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값주고 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귀한 존재가 된것입니다.


3. 내 몫의 십자가를 어떻게 할까?

셋째로, 오늘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내 몫에 대한 십자가를 우리가 어떻게 질것이냐.
예수님 십자가 짊어지시고 구원하셨는데 우리 몫의 태인 각각 십자가를 우리가 어떻게 짊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고 이웃을 은혜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십자가를 통하여 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졌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하여 넘쳐난 것입니다. 무슨 교훈이나 교육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큰 은혜가 부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구원받은 우리 자신이 십자가를 짊어질 때 그를 통하여 은혜가 넘쳐나서 이웃이 변화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이웃, 상사등 너무나 큰 절망과 고통의 무거운 짐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짐을 끌어 앉고 참고 견디면 그를 통해서 변화가 상대방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짊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변화가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이 오늘날 복음이 전파되어 1200만이 구원을 받았지만은 그전에 한국에 복음을 증거하러 온 선교사들과 우리의 먼저 믿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고통을 당하고 순교를 당했지 않습니까? 그런 고통과 순교를 통해서 은혜가 이 강산에 임하여 오늘날 천2백만명이 예수를 믿고 이 땅에 5만여 교회가 설수 있게 된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십자가는 죽으라고 주신 형틀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여 달리지 않으려고 할 때 견딜수 없는 심신의 갈등과 고통이 옵니다. 십자가는 죽으라고 준 형틀입니다. 남편이 십자가입니까? 남편의 형틀에 매달려야 돼요. 아내가 십자가입니까? 끌어 않고 그 십자가에 매달려야 돼요. 자식이 십자가면 자식의 십자가를 끌어 앉고 매달려야 돼요. 피하려고 하고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기 위해서 버둥거리고 싸우면 더 큰 상처와 고통과 갈등과 괴로움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한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은혜가 임하여 열매가 맺어지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면 안돼요. 내가 살아 있으면 절대로 화해와 동정과 사랑이 오지 않습니다. 자아가 죽어 십자가에 매달려 버리면 그를 통하여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면 감사하므로 우리 매달려야 됩니다. 운명적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불평한다고 사라집니까? 왜 이런 아버지가 있느냐, 왜 나는 이런 형제가 있느냐, 어찌 하다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남편을 만났느냐, 어찌 하다가 이렇게 여우같은 아내를 만났느냐. 불평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 운명에 처해서 내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불평하면 할수록 더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선생님이 제자 두사람에게 십자가 하나씩을 메고 어떠한 거리를 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제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기쁘고 감사하게 그냥 땀을 흘리지만 열심히 끌고가서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하루만에 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제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으며 이틀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선생에게 말하기를 "쟤는 가벼운 십자가를 주어서 하루만에 왔지만 선생님이 내게는 무거운 십자가를 주어서 고통을 당하고 이틀만에 왔다"고 하니까 "아니야. 십자가의 무게는 똑같았어. 그러나 처음 학생은 감사하고 찬미하며 왔기 때문에 십자가가 가벼웠지만은 네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불평하고 원망할때마다 더 무거워졌다. 불평과 원망은 십자가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네 십자가는 더 무거워지고 네가 오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가 오면 우리가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면 십자가가 가벼워지고 그 결과로 변화도 다가오지 만은 십자가를 우리가 짊어지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고 내 팔자로 울부짖으면 십자가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더 괴로워지고 목적달성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로 16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 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우리가 짊어지고 감사하고 나가면 영광의 영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부활의 역사가 그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나는 매일같이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선생은 매일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내가 죽고 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활의 은혜와 영광이 나타나게 한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디모데후서 2장 11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사는 것은 죽고 난 다음에 사는 것이지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십자가는 우리가 매달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내가 매일 죽으므로 매일 부활의 역사와 생명이 넘쳐난다"고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내 몫의 지워진 십자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고 피하고자 하면 더욱 고통스러워 지고 불행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속시원하게 십자가를 받아 들이고 기꺼이 매달려 죽으면 부활의 생명이 내 마음에도 이웃에도 은혜의 단비가 되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1절로 12절에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남편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망이 그안에 역사하면 생명이 그 아내와 자식들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부인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으면 생명의 역사가 남편하고 가정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그 고난을 참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가 죽으면 놀라운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이웃을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위하여 갈보리 십자가를 짊어지시므로 말미암아 그는 죽었지만은 그를 통해서 생명의 역사가 온천하 만국에 미쳤습니다. 부활의 역사가 온 만민에게 미치고 은혜가 온세계 넘쳐나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교훈이나 진리나 철학이나 종교나 가르켰다면 우리가 변화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게 된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 큰 십자가도 있고 작은 십자가도 있습니다. 십자가 가까이 있으니 내게도 있다고 찬송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거역하지 마십시오. 받아 들이십시오. 그리고 크고 작은 십자가에 내가 매달려 죽어 하나님께 기도하면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는 여러분에게도 나타나고 여러분 이웃에게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십자가를 짊어 지십시오. 아내의 십자가를 짊어 지십시오. 자식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죽으십시오. 내가 죽고 내가 깨어지고 울부짖어 기도하면 그를 통해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인류가 하나님 앞에는 십자가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지으신고로 인생이 범죄하며 하나님의 가슴속에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인생을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으심으로 용서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받은 우리들도 우리의 몫의 태인 십자가를 짊어지게 도와 주시옵시고 십자가를 벗으려고 애쓰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죽으면 자연적으로 십자가는 벗어지고 부활이 다가옵니다.
죽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버둥대고 있지 죽으면 십자가를 벗게 되고
부활이 오게 되고 변화가 오게 되오니 아버지 하나님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므로
하나님의 부활의 역사가 우리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넘쳐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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