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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머무를 때와 떠날 때 / 창 31: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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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철 목사 (남서울교회)
▶ 본  문 : 창 31:1-3, 17-18
▶ 제  목 : 머무를 때와 떠날 때 


사람은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 그 주인이 가기를 원하는데 꾸역꾸역 앉아 있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입니다. 또 그런가 하면 더 있다 가기를 원하는데 박절하게 일어나는 것은 정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한 집을 방문해서 떠나야 할 때와 머물러야 할 때를 잘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 언제 떠나야 될 것인가 또 가족들끼리 모여서 살고 있는데 언제쯤 분가해서 살아야 되는가, 사회적인 위치나 하는 일에서 언제쯤 떠나야 되는가, 교회의 목회자들도 언제쯤 떠나야 되며 머물러야 되는가 , 성도들도 교회를 섬기면서 한 부서에 언제까지 머무르고 떠나야 하는지 등의 이런 일들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히 많습니다.


떠날 때와 머무를 때를 잘 분별하여 사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고 이것을 잘 분별하는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형통한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정말 이때가 떠나야 할 때인지 머물러야 될 때인지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잘못된 부분도 많고 실수하고 실패한 적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밧단 아람을 떠나야 겠다는 그의 결정은 정말로 잘한 결정이었고 바로  그 결정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 밧단 아람에서 산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7년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겠지만 그 다음은 억지로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에게 속아서 레아 때문에 7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 다음 6년 동안은 자신의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살았기에 20년이 되었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은  그곳에서 자리가 잡힌 것입니다. 자기 홑몸이 아니고 가족들이 많고 재산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곳을 떠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확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가 그때에 떠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이름 없이 죽은 라반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라반은 그곳에서 계속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또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헤어진 이후에 그의 이름은 한번도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고 그런 삶을 산 것이지요. 야곱도 이때에 떠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때에 떠났습니다. 떠날 때 떠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은 그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어떻게 그 때를 잘 분별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야곱의 마음 속에는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소원이 늘 있었으며 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는 집을 떠날 때부터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립니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세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 28:21-22)
이것은 야곱의 서원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서원을 가지고 밧단 아람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20년을 살면서 늘 그 서원을 기억했습니다. 자기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기도하지 않았겠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가 떠나야 되지 않느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과감하게 떠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빌 2:13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거룩한 소원들 , 그 소원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기도를 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뜻 없이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갖게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의 소원이 때로는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할 때도 내 욕심대로 구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 4장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대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집요하게 잘못된 소원을 가지고 잘못된 기도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는 절대로 우리의 고집대로 해나가면 안됩니다.
그런데 야곱의 소원은 선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바른 기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과 기도를 귀하게 여기시고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의 마음속에 요즘에 선한 소원이 생기십니까?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가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잘못되지 않았고 여러분의 정욕대로 쓸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 방향으로 하나님이 인도해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비젼이라고 합니다. 용어가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소원을 품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환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기 1절과 2절에 보니까, (1)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2)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했습니다.
환경이 전과 달라진 것입니다. 자기의 처남들이었던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이제는 거칠어집니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서 아주 적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달라진 것입니다. 또 자기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도 자기를 대하는 안색도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이제는 내가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발걸음도 환경을 통해서 섭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언제나 환경을 따라서만 움직이면 크게 낭패할 수가 있습니다.
잠언에 보면 풍향을 살피는 자는 파종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바람 부는 것만 쳐다보고 바람이 어디로 불까만을 따지다가는 씨를 제대로 심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언제나 우리가 하려는 일에 환경이 우리를 밀어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환경이 우리를 거스를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거스르는 그곳을 뚫고 나가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바람을 거스르면서라도 그것을 뚫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항상 이 환경을 거스르며 산다고만 하면은 그것은 큰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환경을 주장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환경과 여건이 우리를 도와줄 때 하나님께서 이쪽으로 가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환경이 우리를 막고 있을 때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로 이것을 거스르고 가야 하는 것인지 이모든 환경과 여건이 나로 하여금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있어서는 환경과 여건이 그곳을 떠나라고 하는 싸인으로 그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다음 3절에 보면, 보다 더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3)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늘 마음속에 소원을 품고 그것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져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 그곳을 떠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두 아내와 열한 명이나 되는 아들들과 수많은 짐승 떼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 거느리고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가는 길에 무슨 일을 당할는지 , 또 자기가 가는 길에는 형 에서가 버젓이 이를 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쉽게 결정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분명하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지금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를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 말씀을 붙잡고 과감하게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으로 역사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선한 소원과 기도의 제목을 갖게도 하시고 환경을 통해서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이때의 야곱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발달된 시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꿈으로 ,혹은 음성이나 환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동안에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또 성경에 우리가 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 방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갖게 될 때에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들이 어떤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살아가면 필요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 한 귀절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결정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떠날 때와 머무를 때를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설교를 듣는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어떤 중요한 결정에 말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2부 예배를 마친 후 어떤 분이 찾아와서 자신이 다음 주에 울산으로 발령을 받아서 내려가는데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주저함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결정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런 말씀을 주시려고 설교도 주시고 매일 읽을 수 있는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의 자세인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여름철은 무덥고 지루하기 쉬우니까 오늘도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내년이면 목회를 한지 30년이 됩니다. 73년 1월부터 전도사로 섬기기 시작했는데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30년 목회가운데 중요한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요한 때 가운데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가 하면 어떤 한 교회를 섬기다가 그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인가 머물러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매번 결정을 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둔해서 제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특별히 제가 남서울교회를 섬기다가 미국에 갈 때에 저를 믿음으로 키워 줬던 은사님이 저를 그 교회의 후임으로 삼으려고 저를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까 모든 사정이 제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제가 그 교회를 맡게 될는지도 분명하지 않았고 목사님과 일하는 가운데 서로 의견도 잘 안 맞아서 여기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공부할 여건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목사님과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동부의 어떤 교회에서 오라는 얘기가 있어서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가고싶으면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그 교회에 가겠노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목사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내가 그 때는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 정말 가려는 것이냐 우리 당회에서는 못 가게 결정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못 가게 붙잡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뿌리치고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마지막에는 성도들이 울면서 매달렸지만 매정하게 다 뿌리치고 그곳을 도망치듯이 떠났습니다.
공부도 할 수 있고 혼자서 독립해서 사역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갔습니다. L.A.를 떠나서 몇 시간 차도 없는 넓은 대륙횡단의 길에 올랐을 때입니다. 제가 가는 길에 제 차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반대편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제 근처에 오더니 바퀴 하나가 빠져 굴러가더니 이 차가 중앙 분리 지역을 건너서 제 차 있는 곳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이 차가 제 앞을 지나쳐서 오른 쪽 풀밭에 가서 박혔는데 사람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 하필이면 그 넓은 땅에서 제 차 앞을 지나갈 게 뭡니까? 제가 이분의 일초만 빨리 갔어도 그 차와 정면 충돌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아찔한 순간을 당하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 하나님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라면 있고 가라면 가고 떠나라 하실 때까지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즉각적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노스 캐롤라이나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고 전화만 받고 그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서 간 것입니다. 거기에는 성도들이 나이도 많으시고 미국생활도 2~30년씩 하셨으며 전부 박사학위를 갖고 자리가 잡히신 분들이셨습니다. 인공위성을 통해서 세계의 유명한 분들 설교는 다 들으시는 분들이신데 미국에 간지도 일년도 채 안되고 공부도 제대로 다 못하고 인생의 경륜도 많지 않은 34살인 제가 목회를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거기에다가 full time으로 공부하면서 목회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홍정길 목사님이 첫 번째 안식년을 맞아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저와 같이 있으면서 저를 위로해주시더니 기회만 있으면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한국 사람 만나려면 두시간씩 운전해야 만날 수 있는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고 넓은 데 가서 사역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떠나라고 해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3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3년이 지나니까 이제는 그곳 생활에 익숙하게 되고 공부도 웬만큼 수준에 올라와서 조금만 더하면 박사학위도 할 수 있겠고 성도들도 저를 이해하고 교회도 자리가 잡혀서 잘 지낼 만큼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으로부터 떠나서 뉴욕으로 가라고 그러시는데 저는 뉴욕은 쳐다보기도 싫은 곳이었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는 미국에서도 살기 좋은 몇 대 도시중에 들어가지만 뉴욕은 복잡하고 더럽고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홍정길 목사님께서 뉴욕에 다녀가시더니 제가 그 교회에 가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가기 싫었고  집안 식구들도 전부 가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제 식구들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뉴욕에 있던 제 동생과 어머님도 올라오지 말라는 것이었으면 저의 동료 목사들도 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가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마음 속에 넓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소원이 있었고 그 교회의 여건과 환경이 제가 떠나게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또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홍정길 목사님을 통해서 감동을 주셔서 제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떠날 때에도 그 교회에서는 저를 많이 만류했지만 저의 비젼과 가야하는 이유를 잘 이해시키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뉴욕에 가서도 새로운 고생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떠날 때 떠났고 올 때를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자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나서 제 목회에 복을 주셔서 교회가 부흥되고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까 교회가 왕성해지고 한참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갑자기 남서울교회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랬을 때 제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과연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인가 머물러야 할 것인가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제 마음속에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는데 이제는 사역을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나의 남은 기간을 좀 더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집사람에게도 똑같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뉴욕도 한국사람이 좀 있긴 있습니다만 제한되어 있고 한국사람들이 제일 많이 있는 데가 한국 아닙니까? 한국에서도 서울 아닙니까? 서울에서도 이 강남이 아닙니까?
저는 언제나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을 받았으니 어부는 경치 좋고 물 맑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고기가 많다면 구정물에라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뉴욕까지 왔는데 그것으로써 다 안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가라는 겁니다. 이러한 소원이 있었고 뉴욕의 여건들이 앞으로 20년 동안 더 일할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나와 다른 사람이 있길 원해도 떠나야 한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남서울교회에서 부름을 받았을 그 때에 제일 두려웠던 것이 있었는데 홍정길 목사님이라고 하는 거인이었습니다. 홍목사님은 체구도 크고 서울에서 이름 있는 분이셨고 얼마나 설교도 잘 하셨습니까? 홍목사님이 계시던 곳에 가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 잘 해야 본전이지 별로 내가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걱정과 두려움이 제일 컸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여호수아서 1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을 통해서 홍정길 목사님 하실 일은 다 했고 이제는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데 네가 바로 그 여호수아다라는 확신을 저에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수 1:5)"는 약속의 말씀을 읽을 때 `옳지 그렇다. 홍목사님이 모세와 같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여호수아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냐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되어지는 일들을 살피고 남서울교회에 와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첫 번째 설교를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대로 떠나야 할 것인가 ,머물러야 할 것인가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에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야곱은 이렇게 자기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했으며 환경의 변화에 예민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야곱이 자기의 아내들을 불러놓고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아내들이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떠나라는 것이며 우리도 따라가겠다고 아내들이 말합니다. 17-18절에 보면 야곱이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 모든 결정을 할 때에 나 혼자 결정하면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공동체, 한 배에 탄 우리 가족들끼리는 의논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목사는 그 교회의 지도자들과 의논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시 한 번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도 또 한가지 어려웠던 것은 그곳의 성도들이 제가 떠나는 것을 이해를 못하고 놓아주지를 않은 것입니다. 엄포를 놓는 분도 있었는데 제가 아무리 기도를 해보아도 떠나라는 것이기에 성도들에게 되어진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을 하니까 성도들이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면서 저를 환송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에는 이러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아내와 의논도 하지 아니하고 ,교회에서 어떤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데
지도자들과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밀고 나가는 것은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때에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하지만 다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순종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똑같은 결론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문제들이 있을 때 이런 원리들을 잊지 마시고  또 다시 야곱이 밧단 아람을 떠났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보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야곱처럼 함께 하시는 인생 ,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만사가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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