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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눈과 롯의 눈 / 창 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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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브라함의 눈과 롯의 눈
제 목 : 곽노철 목사
본 문 : 창 13:1-18
   

( 서 론 )

몇 년 전에 어느 가전 제품 선전 문구의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기억나십니까 ?

전자 제품을 하나 사면 10년을 사용해야 되니 선택할 때 잘 선택해서 구입하라는 의미의 광고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순간의 선택이 가전 제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하고 불행해 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택을 받고 선택을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분문에서는 두 사람의 선택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인데 롯은 육의 눈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고 택하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살아갔습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느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눈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오늘 본문처럼 두 가지의 선택이 길이 항상 주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어떤 선택에서 그만 믿음의
눈으로 하지 않고 롯처럼 육의 눈으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눈이 있는데 육의 눈과 지식의 눈과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육의 눈이 어두우면 소경이고 지식의 눈이 어두우면 까막 눈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눈 즉 믿음의 눈이 어두우면 성경에서는 영적 소경이라고 합니다. 눈은 참으로 우리 인체 중에 가장 소중한 지체이듯이 믿음의 눈도 우리 신앙에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눈을 가지고 살기 원하십니까 ?
 
첫 번째 : 아브라함의 눈

(창13:1-4)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아브라함의 눈은 믿음의 눈이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의 삶을 삽니다.
기근을 피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도망갔던 아브라함은 거짓과 인간의 방법과 수단으로 살아보려고 하였던 자신의 죄를 회개 하였습니다.

4절에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한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완전 무결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만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였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잃어버리지 아니했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끓어버리는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
잘못된 길에서 예전의 참 모습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근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내 뜻대로 내 방법과 수단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다는 말씀에 주목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풍부한 재물을 가지고 갈대아 우르나 하란이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른 길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아브라함 같은 경우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
풍부한 물질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왔을까요 ?
오늘날 우리 주위에 아브라함 같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던 자가 어려움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내 수단으로 살아가는 데도 하나님이 축복을 주어서 형편이 나아지고 부자가 되었을 때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있습니까 ?

아브라함처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돌아오는 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세상의 길을 택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롯이 바로 그런 자입니다.
롯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롯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지 아니했습니다.

(사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성도 여러분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살아가지만 육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만 누리기에 급급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받은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반드시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축복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죄를 범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과 사라를 지켜주시고 물질까지 풍부하게 축복하여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곧 믿음의 눈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로는 죄를 범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때로는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인간의 방법과 수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마치 내 노력으로 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서 믿음을 저버리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믿음의 눈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는 아버지가 준 모든 재산을 탕진하였지만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길만이 자신이 살길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는 몸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진실로 회개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돌아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몸만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도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곧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회개의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몸만 가지고 나아가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욜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
진실된 마음과 회개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비록 축복을 받아 가지고 나왔지만 그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고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릴 때 아브라함은 통곡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우리에게 이러한 통곡의 예배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찌할꼬" 하는 애통함이 있는 믿음의 눈들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 롯의 눈

(창13:5-13)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롯의 눈은 육의 눈이었습니다.
믿음의 눈은 회개의 삶을 살게 하지만 육의 눈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 성경 창세기 13장은 단순히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자와 육신을 위해 살아가는 두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롯이 누구입니까 ?
아브라함의 형 하란의 아들이었지만 자식이 없는 늙은 아브라함에게 롯은 말이 조카이지 사실은 아들과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브라함만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롯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에게는 복이 되었지만 롯에게는 오히려 축복이 저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왜 롯의 축복이 저주가 되었습니까 ?

육의 눈으로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저주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브라함과 롯의 가정은 너무나도 가축이 많아서 같은 땅에 함께 기거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두 집안의 종들끼리 이방인들 앞에서 싸우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두 집안의 싸움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아브라함은 롯에게 헤어지기를 제안하였습니다.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13:9)   
 
아브라함의 제안에 롯은 그대로 따르고 자신의 길을 택하게 되는데 이러한 롯의 모습이 곧 믿음의 모습이 아니라 육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룻기서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 둘에게 자신을 떠나가라고 말합니다.
이 때 큰 며느리 오르바는 떠나지만 둘째 며느리는 떠나기를 거부하면서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6) 하였습니다.

롯의 고백이 바로 이런 고백이 나와야 했지만 롯은 자신의 길을 택하고
아브라함과 헤어지는 쪽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롯의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판을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육의 눈으로 본 요단 들판은 너무나도 좋은 땅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너무나도 살기 좋은 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세상은 우리를 하나님을 떠나 살도록 만드는 곳입니다.
롯은 보세요.  요단 들을 택한 롯은 점점 그 장막을 옮겨 소돔에 살게 되었습니다.

13절에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라함은 떠난 롯은 죄악 속에 살아가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12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고 있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랐지만 롯은 세상적인 소유와 쾌락을 추구한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두었으나 롯은 세상 일에 마음을 두고
살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으나 롯은 그의 이름을 아주
욕되게 한 두 딸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후사가 되었으나 롯은 소돔 성이 무너질 때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잃고 인생의 말년을 동굴 속에서 보내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성경은 믿음의 눈으로 살아가는 자와 육의 눈으로 살아가는 자의
마지막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육의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디입니까 ?
롯이 자신의 인생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요단 들을 택하였던 것처럼 저 세상 사람들도 그 끝이 무서운 죄악의 구렁 속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육의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육의 눈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것 보면 그 아름다움에 빠지고 좋은 물건 보면 가지고 싶고 맛있는 것 보면 먹고 싶고 미운 사람 보면 죽이고 싶고 돈을 보면 내 돈으로 만들고 싶고 하는게 우리의 육의 눈입니다.
 
사탄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할 때 육의 눈으로 선악과를 바라보게
함으로 죄를 짖게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우리의 육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미혹합니다.
육의 눈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죄악 속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고 하였습니다.
즉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이 땅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거할 땅이 아닙니다.  이 땅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심판 당했던 것처럼 언제인가는 불로 심판을 당할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서는 육의 눈만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소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42: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창13:14-18)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

육의 눈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첫째. 약속의 땅입니다.
15절에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이 약속의 땅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있기도 합니다.
 
둘째. 약속의 씨입니다.
16절에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이것은 아브라함의 족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많은 자들이 구원받을 것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셋째. 땅을 소유할 권한입니다.
17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약속을 믿고 행하는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18절에 보면 즉시로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을 보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오늘날도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만 축복 받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까지 약속 받는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는
아내 사라도 잃고 이방 왕에게 책망을 듣는 자가 되었지만 애굽에서 돌아온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의 약속을
버렸습니다.
롯 역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하나님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에서와 롯 같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해군 사관학교에 들어오는 장교 후보생 가운데는 배 멀미를 하거나 바다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용기 백배하여 해군에 들어왔지만 막상 배를 타고 갑판 위에 올라가 있으면 그 높이가 10층 건물 이상 되는 높이여서 아찔하다는 것입니다.
넘실대는 파도,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물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고 실제로 그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 일도 있다고합니다. 후보생들에게 바다의 공포감을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관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을 쳐다 보라. 하늘의 별을 쳐다 보라 " 고 한답니다.
파도를 바라보고 물결을 바라보면 두려움과 공포에 포로가 되고 말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두려움이 물러가고 현기증도 사라지고 마음도 안정된다는 것입니다.  바다는 그렇게 정복되어 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돌아온 후에도 고난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고 하시면서 용기를 주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보상은 즉시 이루어지지 아니했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보상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보상이 지금 우리 앞에 이루어지지 아니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늘의 바라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믿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눅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보상이 동일하게 보상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약속의 땅이 보상되어 있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또한 우리는 약속의 씨를 이어받은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행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또한 우리는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권한을 가진 자 들입니다.
(마25:34)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눅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하셨습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살아가는 에서와 롯과 같은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질 것이고 그 약속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잠시 잠간 있다 갈 이 땅의 것들에게 마음 뺏겨서 하나님의 약속된 보상을 놓쳐버리는 비극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세상을 우리 앞에 정복되어 질 것입니다.
 
( 결 론 )

민수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명을 선출해서 보낸 장면이 나옵니다.
12명이 돌아와서 보고할 때 10명은 "우리는 그들 앞에 메뚜기 존재와 같다" 고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눈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왔는데 정반대의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까 ?
10명의 사람은 육의 눈으로만 보았기 때문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정반대의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세상입니다.
우리가 육의 눈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원망과 좌절과 불평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보이실 것이고 그 분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용기 백배하게 될 것입니다.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롯의 비극은 아브라함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와 함께 할 때 (히12:2) 축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만 예수를 떠날 때 우리 인생의 비극은 시작될 것입니다.
롯의 아브라함을 떠나 기름진 요단들을 택하고 화려한 소돔 성을 택할 때 그 선택이 아주 잘한 선택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선택은 심판 받은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롯처럼 육의 눈을 가지고 선택하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인의 외침이 우리 모두의 외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오직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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