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라 / 벧후 3:8-13

  • 잡초 잡초
  • 432
  • 0

첨부 1



제 목 :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라 (12/15)
본 문 : 벧후 3:8-13
설 교 :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초대교회 교인들은 희망에 산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예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예수를 따르며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희망의 도래

  실제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희망을 찾아서 예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집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를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가 승천하신 뒤에도 전혀 저들의 희망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워진 뒤에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 아예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에서 초대교회 교인들의 희망을 하나님 나라라는 신약에 나오는 용어로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막 1:15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예고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 말씀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에 실망하고 절망까지 맛보았던 저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눅 11:20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그 동안 사탄의 지배에 억눌려있던 사람들이 풀려나는 모습을 보았고, 자신들의 심령 속에서도 영적인 자유를 확인하게 되면서 그 희망은 점점 현실 속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눅 21:30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장차 주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고 기다리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몰트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시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하나님의 미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펼쳐 가실 이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 속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바로 하나님의 미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의 미래에게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출마한 분들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갖가지 선심성 공약을 내 놓습니다. 자기가 집권하면 이렇게 바꾸겠다고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그들이 제시하는 공약에 희망을 갖지 않습니다. 정말 그들이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내놓은 공약인지 의심이 갈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할 능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이 장기 집권하던 때 대학을 다녔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요원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드디어 이 땅에도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겠구나 하는 새로운 희망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러나 광주를 탱크로 짓밟으면서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다시금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루어 가는 미래에는 희망을 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희망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미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요 설교자인 무디의 과거는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교회학교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도 제대로 찾지 못했고, 교회학교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려고 찾은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교육이 미흡하고 학교생활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받았습니다. “너처럼 희망이 없는 사람이 또 어디있을까? 네가 우리의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무디는 늘 고독했습니다. 그는 그 고독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겸손하게 늘 기도하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무디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를 들어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희망의 재료였습니다. 그는 19세기 미국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미래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펼쳐 가시는 미래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인생을 살았고,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별처럼 빛나는 희망의 닻을 놓았습니다.

  찬송 539장을 보면 에드워드 모트 목사님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 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사람의 미래에는 우리의 희망을 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미래에 여러분의 희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위기>

  오늘 본문을 보면 당시 초대교회에 심각한 위기가 생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그들의 희망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1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가 당시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의 상황을 확인해 보니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차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는데 그 후에 다시 확인해 보니까 더 심각한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편지를 보낸 것이 이 베드로 후서입니다.

  그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던 성도들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걸고 있던 희망이 사라져버릴 위기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위기가 생기게 되었을까요?

<직접적인 원인>

  이런 위기가 생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3-4절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있다 하니”

  여기서 기롱하는 자라는 말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의 기롱으로 치부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소아시아 교인들이 철저히 믿고 있던 주님의 재림을 비웃으며 논리적으로 공격하는 이단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우선 거짓말로 교인들을 공격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약속은 원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실제로 주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여전히 무덤 속에 잠자고 있다거나 창조 이후 우주 만물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내용으로 교인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단들이 이렇게 성경적으로 상식적으로 교인들을 공격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들의 말에 현혹되어 희망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주님의 재림은 구약에서부터 이미 예언되었습니다.(단 7:13) 물론 주님께서 여러 차례 친히 약속하셨습니다.(마24:34, 막 8:38, 9:1, 13:26, 요 14:3 등)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도 다시 확인했습니다.(행 1:11) 그뿐 아니라 사도들도 이 사실을 굳게 믿고 널리 전했습니다.(고전 15:51, 약 5:7, 벧전 4:7 등) 저들의 주장은 물론 거짓말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적 근거를 대면서 주님의 재림을 부인합니다. 아니 이미 주님은 재림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과학 상식을 근거로 대면서 주님의 재림을 부인합니다. 일견 그럴 듯합니다. 이들의 말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희망이 흔들리게 됩니다. 사람들의 그럴듯한 주의 주장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희망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야 하겠습니다.

<상황적인 원인>

  당시 소아시아 교인들이 이단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이유는 그들의 상황이 참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가운데 극심한 박해가 생겼습니다.

  주후 64년경에 네로 황제가 로마 시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화 혐의를 씌워서 대대적인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어 곳곳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심각한 박해가 가해졌습니다. 당시 각 지방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요동치는 사회의 혼란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씌운 채 극심한 박해를 가해왔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두려운 마음에 배교를 했습니다. 아직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큰 동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인생의 위기가 올 때 희망을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올 때 영적으로 위기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1800년대 초 세관에서 일하던 30대의 한 청년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면서 자기는 인생의 실패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피아라는 이름의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에게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원하셨던 그 일,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셔야 할 때입니다ꡓ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격려와 기도에 힘입어 열심으로 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10년 간의 칩거 끝에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걸작, 주홍글씨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타니엘 호손의 이야기입니다. 실패, 즉 인생의 위기가 오히려 그의 인생에 새로운 축복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위기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을 한 차원 더 높게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의 회복>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희망의 위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당시 소아시아 교인들에게 몇 가지 희망을 굳건히 할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 90:4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이다” 주님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분께 우리의 시간을 들어서 주의 재림이 있다 없다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날이 우리에게는 견디기 힘들게 지연되고 미루어지는 것 같아도 주님께는 정말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희망은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달걀이 이 세상에 나온 뒤에 병아리가 되려면 21일 간의 긴 기다림의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희망이 생긴 뒤에 그 희망이 실현되기까지는 긴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기다림을 잘 이겨내야 아름다운 결과를 봅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날을 기다리던 기억이 납니다. 일주일 전부터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2, 3일 전부터 하루가 얼마나 긴지 정말 지루했습니다. 그래도 어렵지 않게 기다림을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기다림의 지루함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마음이 소풍날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기다림 자체가 행복이었고 즐거움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주님의 재림을 여러 차례,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약속하셨을까요? 그 하나님 나라가 너무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미래를 마음 속으로 미리 즐기면서 기다림의 지루함을 이겨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재림의 그날 모든 일이 다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1-12절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3절에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주의 재림 때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희망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지난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카드 섹션으로 펼쳐 보인 후 유명해 진 구호가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꿈은 아무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꿈은 깨집니다.” 꿈이 이루어지는지 깨지는지는 당사자가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래는 준비된 사람에게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저주가 될 것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가 있었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에 신랑이 올 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처녀는 기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랑이 올 때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기름을 준비했던 처녀들에게는 그들의 희망처럼 신랑이 온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에게 신랑이 온 것은 저주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미래를 희망으로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러면 준비하십시오.


셋째,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주님 재림하셔서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을 내다보며 한숨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을 내다보며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을 내다보며 한숨짓는 사람은 그 인생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며 미소를 짓는 사람은 그 인생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가 앞을 내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어제의 한숨을 날려버릴 수 있고, 오늘의 눈물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어제의 한숨과 오늘의 눈물은 더욱 우리를 거세게 짓눌러옵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9일(한국시간) 랜스 암스트롱을 '올해의 선수'로 선정했다. 그는 고환암으로 생존자체가 불투명했으나 이것을 극복하고 올해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 도로일주 사이클대회)에서 또다시 우승,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자전거, 그 이상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1%의 희망만 주어져도 나는 그 희망을 위해 달린다”...

  그렇습니다. 희망이 암도 정복하게 합니다. 희망이 죽음도 이기게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미래를 희망 가운데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인생의 위기가 와서 우리의 희망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합니다.


# 기도/

      우리 앞에 하나님의 미래가 펼쳐있음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희망을 더욱 굳건히 잡게 하옵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