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를 비추어 주소서 / 요 9:1-12

  • 잡초 잡초
  • 390
  • 0

첨부 1



제 목 : 나를 비추어 주소서
본 문 : 요 9:1-12
설 교 : 김삼환목사 (명성교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한 주일 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
위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유대 나라 이 작은 땅은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그 아들을 보내어 주신 땅이
어서 온 세계 인류가 모두 사모하는 성지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세계 인류의 약 70%가 예루살렘을 성
지로 삼고 모두 사모하고 그곳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카톨릭도 다 모두 예루살렘을 성지로, 개신교도
예루살렘을 성지로, 또 아랍사람들도 이슬람교도들도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있었던 예루살렘
을 성지로 알고 찾아가고 있습니다. 유대교들도 물론 예루살렘을 성지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땅은
작은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 주신 메시아가 탄생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오셨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이 사람이 되셨
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역사의 기원으로 삼고 AD, 이렇게 역사에 카운트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 분을 중심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는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온 인류를,
우리 사람을, 세계를 비추기 위한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 보면 참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더
라"고 했습니다. 창조자가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빛으로 우리를 비추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은 빛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두
운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가 빛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어디에 빛이 없을까? 누가 나를 비출 곳이 없을까? 사람을 찾고 자연을 찾고 또 지식을
통하여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 우주 어디엔가 인간을 비추는 빛이 어디엔가 소망의 빛이 없을까 하지
만 이 세상에는 빛이 없습니다. 오직 어두운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
망하고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누구도 웃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바로 어두운 가운데 있기 때
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두움을 좋아하고 어두움에 익숙해져서 우리의 문화는 어두움의 문화
로, 우리의 삶은 어두움의 발걸음이고 어두움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어두움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두움의 맛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비록 죄악된 길이요 잘못된 길인 줄 알지만 우
리가 즐기는 것은 다 어두움의 문화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
셨습니다. 그 만이 참 빛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삶을 바로 비추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어떤 철학자도, 공자나 석가도 어떤 지도자도 빛을 찾아 몸부림치고 어디 빛이 없나?
빛을 갈급하게 찾았던 분이지 내가 빛이라고 하신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빛이다, 나만이 어두
움을 몰아낼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내게로 오는 사람은 어두움 가운데 살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주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빛이십니다 그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 아들도 빛이신 것입니다. 하나님
은 빛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온 땅이 창조되기 전에 이 우주가 어떤 상태였던가
를 말해주는데 이 우주의 모습이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혼돈하고 공허하더라 고 말했습니다. 마치
한 여름 밤에 태풍이 몰아치는 밤처럼 공허하고 폭풍과 이 어두움과 무질서와 불안과 긴장이 가득 깔
려 있던 이 땅, 이 우주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첫 음성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처음 활동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야훼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이 야훼의 첫 음성입니다. 처음 말씀이 바로 빛이신 것입니다. 이 빛이 옴으로 이 땅이 어떻게 되었습
니까? 모든 어두움은 물러가고 빛이 질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생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빛은 아
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빛의 색깔은 아름다운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고 여러분이 들으신 대로
이 아름다운 색깔, 빛의 색깔은 어떤 색깔이든지 아름답습니다. 이 찬란한 빛이 이 우주를, 이 세계를
비추게 된 것입니다. 질서가 좋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질서가 어디에서 옵니까? 빛에서 오
는 것입니다. 빛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정의 문제나 우리의 삶의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진 것 같지만 빛이 비추어지면 모든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고 평화가 찾아오
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있는 곳,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곳 혼돈과 공허와 황폐와 무가치함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이 계신 곳이 무엇이 다릅니까? 돈이 더 있습니까? 아닙니다. 집이 더 좋습니까? 지식이 더합니까? 그
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은 빛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우리 인간을 비추
시려고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빛을 잃어버리고 죄악 가운데 헤매는 우리 인류를 어두움의 세력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인류를 건지시기 위하여 2천년 전에 참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빛을 찾아 갈급하게 헤매고 있습니다. 빛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빛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예수님에
게로 데려옵니다. 제자들이 주님에게 묻지요. '선생님 이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에 무슨 죄로 인하여
이렇게 소경이 되었습니까? 본인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
인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소경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모두 다 죄로 보고 비판의 눈으로 보고 눈이 어둡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것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 우리가 다 그런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자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눈이 어두운
자가 어찌 사건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두운 사람은 어두운 자를 통하
여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다 이런 인과 응보의 눈으로 보고 비판하고 저주하고 욕할 뿐
인 것입니다.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여 거지로 멸시 천대를 받으며 길
거리에 앉아 있는 이 소경의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사람을 통하여 그의 삶이 한
없는 감격과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어두운 사람은 어두움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점점 어두워져 가지만 우리 인간
이 인간을 밝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시대보다도 밝은 것 같지만 오늘 이 시대가 심히 어두
워진 시대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겠지요. 그러나 대학이 밝으냐? 그런 건 아닙니다. 지
식이 우리를 밝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학가가 어느 곳보다도 퇴폐하고 정신적으로 도덕적
으로 무너지는 이유는, 지식이 우리를 밝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눈을 떴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
려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내가 눈을 떴다고 하는 사람이 문제이고 나는 눈을 감았다고 하
는 사람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면서 얼마나, 무엇을 보고 내가 떴다는 것을 어디에
서 우리가 위로를 받으며 어떤 면으로 내 눈 뜬 것을 가지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눈뜨고 우리
가 좋은 길로 가고 있습니까? 어젯밤에도 수 십만, 수 백 만이 밤을 새워 어두움으로 찾아가는 것이
다 이 눈으로 가는 것이 겨우 그곳 밖에 없습니까? 오늘 지성인의 눈이 내일을 봅니까 천국을 봅니까
구원을 봅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한 대로 네 자신을 알라 고 하지만 내 지식으로 내 자신을 볼 수 있습
니까? 예수의 빛이 비추어주지 않는 한 우리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둡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비추지 아니하는 한 우리는 참 눈을 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장님들 있는 곳을 한 이십 여 년 전부터 돕기도 하고 가까이 가서 보면 참 감격스러운 것은 두
부부가 장님인데도 아이 기저귀를 다 갈고 연탄 구멍을 다 맞추고 바늘에 실을 꿰어서 다 꿰매기도 하
고 내가 보고 참 놀랬습니다. 그리고 음성만 들으면 금방 알고 발걸음만 듣고도 목사님이죠? 그러고
압니다. 우리 눈떴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알아요? 뭘 가지고 눈떴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
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눈감은 사람을 보고 무엇이라고 뜬 사람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했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을 밝게 하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밝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도소를 아무리 만들어도 사람은 교도가 되지 않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어
두운 사람이 어두운 사람을 만나서 밖에 있을 뿐이지 어두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어
느 시대보다도 지식이 발달했지만 가장 타락한 시대이고 이제 우리 인류는 좀더 나가면 우리가 정말
어두운 곳으로, 우리가 다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심히 불안하게 걱정스럽게 미래를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비추실 때만이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낼 자는 하나님의 빛,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가 들어가
는 곳은 빛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16년 전에 복음이 전해질 때 우리나라는 한 마디로 어
두운 나라입니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
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이 나라
어둡던 나라, 우리의 모든 문화가 어두운 문화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신, 이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
선 장례 문화도 얼마나 어두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백 여 년 전에 우리가 장례를 어떻게 했습니
까? 양반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 년동안 곡을 하고 계속 아침 점심 저녁 곡하고 음식 가져다 놓
고 그리고 양반들은 삼 년 동안 머리를 감으면 안됐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다 헐어 빠지고 온 몸에 이
가 쌀밥같이 온 몸을 덮고 그래도 그걸 잡지를 않았어요. 사 년 동안은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 때 아기를 갖는다면 그건 아주 가문의 큰 부끄러움이었어요. 또 많은 분들은 묘지에서 움막
을 치고 거기서 삼 년, 사 년을 같이 지냈습니다.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되었어
요? 그러나 임금으로부터 모두가 다 점점 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서 죽음 문화에 전부 국민을 끌고
들어갔지 거기서 빠져 나올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아직까지도 기독교가 들어가지 않은 나라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사회들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
리는 모르고 살아온 것입니다. 여기에 누구가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한 사람도 지적할 수가 없었습니
다. 만약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습니
다. 장승을 보세요. 지금 더 만들려고 하는데요. 점을 더 치려고 하는데요. 배웠다고 점을 안 하는 줄
아세요?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한 불안한데 왜 점을 안 하겠어요. 서울 시내에 점쟁이만 15만 명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그리스도의 빛이 없는데 우리가 어디로 갈 것입니까? 점점 늘어나는 것은
퇴폐문화만 늘어나고 오늘 텔레비전이 가져다 주는 모든 문화가 어두움의 문화입니다. 텔레비전보고
인생을 찾고 그 스크린의 빛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어둡기 때문에 빛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만이 우리를 비추어서 우리를 환하게 자유롭게 밝게 할 수가 있습니
다.

  저는 어제 장기려 박사님 7주기 추도일을 맞이해서 서울대학교에서 설교를 해 달라고 해서 갔었습
니다. 저는 장기려 박사님하고 너무 거리가 먼데 여러 나라의 지도자도 오시고 총리 하시는 여러 분들
도 오시고 많은 분들이 계신데 내가 설교를 했어요. 그래서 가면서 장기려 박사님에 대해서 인터넷으
로 자료를 얻으려고 읽다가 얼마나 내가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감동을 받았어요. 이 분은 김일성의 주
치의였어요. 그런데도 북한에 그걸 두고 육 남매 가운데 장가용, 지금 서울 의대 교수 이신데 이 아들
한 분만 데리고 월남을 했어요. 그리고 가족들은 뒤에 오라고 바로 내려오라고,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네가 먼저 내려가라 위험할 정도면 금방 따라 내려 갈 테니까 했는데 그만 막혀 가지고 못 내려오신
거예요. 혼자 계신 거예요. 우리나라에 간 수술을 이 분이 제일 먼저 했고 그리고 북한에 있는 아들들
도 어제 소개하는 것을 보니 전부 핵 물리학자고 북한의 최고 학자들이 이 분 자녀들이에요. 내려오셔
서 그 당시 내과 의사가 몇 명 안될 때 그 수술하는 의사가 몇 명 안 될 때 부산에서 전부 무료진료 해
주고 가난한 사람 전부 치료해 주고 돈을 누구보다도 많이 벌 텐데도 끝까지 병원 위에 있는 방 한 칸
에서만 주무시고 자기 며느리가 가져다주는 이불도 안 덮고 가난한 사람 주면서 평생을 그렇게 사시
다가 천국 가셨어요.
  재혼하라고 유혹이 그렇게 많은데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해서 혼자 산다 그랬어
요. 북한에 두고 온 그 사랑하는 사람 그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결혼하겠느냐면
서... 요사이 남편 두고도 멀쩡하게 두고도 바람 피우는데 온갖 짖 다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요.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렇게 혼자 살아도 행복한 거예요. 왜?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지니까. 얼마
나 어려서부터 신앙이 철저했는지 남북이 관계가 열려져도 북한에 가서 아내를 만나려고 하지를 않았
대요. 왜? 나는 당신 그 30대의 아내를 더 좋아하고 그리면서 늘 행복하게 편지만 주고받으면서 나는
생전에 당신을 보지 못해도 하늘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읽으면서 눈
물이 나는지요.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주니 예수를 믿고 교회의 장로로서 얼마나 아름다
운 삶을 살아갔는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오늘 돈이 점점 더 있다고 행복합니까? 지식이 더 있다고, 권력이 더 있다고 빛이 비추어 주는 것입
니까? 빛이 아니니까 아무리 많이 있어도 불평 불만과 마음의 답답함은 더하는 거예요. 아내가 예뻐
야 행복합니까? 그건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그럽디다. 아내가 좋은 잠옷을 입어야 된다고. 무
슨 소리 에요. 잠옷, 입으나 안 입으나 무슨 옷을 입든지 아내는 천사지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져 봐
요. 미인과 같이 산다고 행복한가요? 남편이 정말 잘 해주면 행복한가요? 인물이 좋아야 행복한가
요? 요사이는 얼마나 성형수술이 발달해 가지고 그전에 여자 분들 연예인들이 하는 건 이해를 합니
다.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벌써 인물 다듬고 유치원 아이도 인물 나쁘면 집에 울고 오고 안 만나려고
하고 세상이 너무 보이는 대로. 빛이 없어 그런 겁니다.

  지금은 남자 성형수술 시대가 열려서 얼마나 고치는지 그래서 옛날에는 남자가 남자다워야 되는데
요사이는 안 그런대요. 남자가 예뻐야 된대요. 그래서 요즘은 남자 화장품, 남성 화장에 대한 기업 그
쪽으로 가야 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여자들, 부인이 화장하고 나올 때를 기다렸는데 앞
으로는 안 그렇대요. 부인이 먼저 와서 빨리 가자 그러면 남자가 조금만 손질 좀 더 하고 하면서 남자
가 안 나온대요. 우리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마음이 밝은 게 아니에요. 이 어두움
의 문화는 아무리 가도 어두워요. 예뻐도 어둡고 가져도, 입어도 답답하고 마찬가지에요. 그리스도께
서 우리를 비출 때만이 우리는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계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빛 내게 비치
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제가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이
인터넷으로 제 설교를 목사님들이 많이 들어요. 온 세계의 목회자들이 수 만 명이 제 설교를 듣는데
제게 그래요. 목사님, 셋째 주전에 찬송을 왜 안 하셨지요? 그런데 이 분이 그래요. 나는 설교를 수
백 명을 듣는데 목사님이 설교하다가 노래하는 분은 별로 없는데 목사님이 노래하니까 참 은혜 됩니
다. 좀 힘들더라도 하세요.
 
  가장 큰 축복은 빛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돈이 빛인 줄 아는데 그렇
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빛이십니다. 지위, 명예가 빛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출 때, 안
을 비출 때만이 우리가 빛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고 많은 이 어두움은 바로 그리스도
의 빛만이 우리를 어두움에서 건져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절망도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소경이요. 거지인데도 어두움이 이 사람을 덮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빛은 이
사람을 어두움에서 건져내었습니다. 성경을 개인적으로나 모든 사건들을 보면 모두가 다 어둡던 분
이 은혜를 받습니다. 나는 밝다고 생각하는 분은 착각이요 그 사람은 주의 빛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룻이라고 하는 여인이 얼마나 어둡습니까? 남편 돌아가셨지요 자녀도 없지요 부모님도 돌아가셨지
요 남의 나라에 와서 이삭을 줍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이 분
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지 않습니까? 위대한 조상이 되지 않습니까? 성경에 여자가 세 분이 등장을 하
는데 한 사람은 이방 여인이요 한 사람은 기생 라합이지 않습니까? 이 불쌍한, 이 어둡던, 나는 이 세
상에 제일 어두운 사람이다라고 하는 곳에 빛이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온갖 죄악 속에 살면서
나 혼자 밝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어두움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빛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어두운데서 하나님의 빛이 그를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
사야 9장 2절에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
치도다" 왜? 이는 한 아기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의 빛이 여러분을 비
출 때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어두움은 마음과 가정과 삶 속에서 물러갈 것입니다.

  이번 주 신문에 여러분 보셨지요? 마흔 세 살 난 남자하고 스무 살 먹은 남자가 둘이 동성연애를 했
습니다. 부부같이 삽니다. 동거하면서 삼 년을 지냈어요. 마흔 세 살은 신랑이고 스무 살짜리 청년은
신부였습니다. 앞으로 이 어두움의 문화는 지금은 뭐 원조교제 그러면서 야단이지요? 곧 이어 십 년
이내에 몰아닥치는 것은 원조교제보다 열 배 더 성황 하는 동성연애가 이 나라를 덮습니다. 파리 시장
도 내가 동성연애자다 라고 정식으로 자기가 공개를 했고 유럽의 시장들이 내가 동성연애자라고 말하
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남자 여자 관계는 시시해서 안해요 이
제는. 동성연애로 드디어 들어가 짐승같이 되다가 거기서 물밀 듯이 번져나가는 이 에이즈 이번에 그
둘도 에이즈에요. 이 두 사람만 망친 것이 아니라 석 달 동안에 삼 십 명과 관계를 동성연애를 하면서
또 다른 사람과 동성연애를 하면서 삼 십 명이 그 에이즈에 또 걸리게 되니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어
두움은 끊임없이 또 어두움을 끌고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어두움을, 또 다른 사람을 어두움
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이 어두움은 더 많은 어두움의 상처를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가져
다주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이제 앞으로 에이즈에 걸렸으니 죽기까지 그 고통스런 이 어두움의 저주
를 받으면서 얼마나 얼마나 어두움을 욕하겠지만 어두움은 그에게 빛을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천하
가 다 어두워도 어두움은 능력이 없습니다. 불행하게 하는 능력은 있어도 우리를 축복하는 능력은 전
혀 없습니다. 반딧불 하나가 작은 것 같아도 그 불빛은 우리에게 10킬로, 20킬로 인공위성에서도 반딧
불은 찍을 수 있지만 어두움은 아무리 많아도 어두움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참 빛만이 우리
를 어두움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빛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나올 수가 없습
니다. 가는 길이 다릅니다. 여기는 빛을 좋아하는 사람이, 햇빛같이 밝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주님 앞
에 나오는 것입니다.

  뉴욕에 릴리안 요맨이라고 하는 여자 의사가 있습니다. 이 분은 의사 생활이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가 많고 고독해서 술을 먹고 나중에 마약에까지 손을 댑니다. 마약 중독자가 되어서 그 집안 식구들
에 의해 구속이 되어서 요양소에 들어갑니다. 그는 정말 절망 가운데 헤맵니다. 어두움을 이길 수 없
는 것이지요. 마약을 못이깁니다. 국가가 못이깁니다. 어두움으로는 어두움을 못이깁니다. 여러분, 아
이들이 잘못했을 때 부모가 이길 수 있습니까? 못이깁니다. 그리스도의 빛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모
든 인간이 갖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은 예수의 빛만이 우리를 건져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어두운 길
로 갈 때 아내가 건질 수 있습니까? 아내가 어두운 길로 갈 때 남편이 건져낼 수 있습니까? 저는 우리
교인들이 뭐 많으니까 상담을 해 보면 남편이 울며 사정해도 안됩니다. 돌아서서 어두운 길로 갈수록
더 안됩니다. 자기가 어두운 길로 가는 걸 알지요. 그러나 그 어두움의 능력이 끌고 가는데 나올 수 있
습니까? 자식이 울며 울며 부르짖어도 다 뿌리치고 탈선의 길로 갑니다. 오늘 이렇게 수많은 가정이
무너지는 이 어두움의 세력에서 누가 건질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빛만이 우리를 건져낼 수 있습니
다. 예수의 빛은 구원의 빛, 생명의 빛, 능력의 빛입니다. 어두움에서 건지는 능력이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이 릴리안 요맨 여사는 그 요양소에서 예수의 빛을 발견하고 나와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병원을
세워서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빛을 심어주므로 이 분의 그 후반부의 짧은 생애가 미 국무
성이 국가 유공자로,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사업가로 온 미국의 매스컴이 이 분을 최고의 위대한 인간
으로 올렸습니다.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어두움에서 벗어나므로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지므로, 지
금 미국 대통령인 부시가 그렇잖아요. 이 어두운 가운데 사십 세까지 온갖 방황을 하고 자기 힘으로
는 절대로 그 어두움을 못나오다가 친구가 어두움에 빠진 이 부시를 교회로 인도했어요. 교회에서 그
리스도를 만나면서 이 탕자가, 사람도 아닌 인간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은 십 사 년만에 이루어
졌어요. 빛의 능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먹을 것이 많고 입을 것이 많고 온갖 이 사회적인
문화가 아름답다고 해서 인간이 아름답게 사는 것 아닙니다. 유럽을 보십시오. 찬란한 문화가 발달할
수록 인간의 마음은 더 어두워져서 내면적인 삶은 온갖 타락의 길을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둡다
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두움을 빨리 인정하고 주님의 참 빛, 구원의 빛, 하늘의 빛을 비추시기를 바
랍니다.

  1837년 2월 5일 메사추세츠 주에 디엘 무디가 바로 그 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벽돌공이었습니
다. 벽돌로 집 짓다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열 식구를 물려받았습니다. 이 무디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서 어쩔 수가 없어서 구둣방에 취직을 합니다. 그런데 구둣방 주인이 교인입니다. 교회로 인도했습니
다. 이 보잘것없는 구두 깁는 직공을 공부도 못한 직공을 빛으로 인도합니다. 교회에 갔습니다. 빛은
자기가 경험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떻게 경험해요? 빛처럼 경험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시는 것
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빛과 같이 경험해서 빛과 같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예요. 나를 비추
어 주시는 주의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과 생활이 빛 가운데
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심을 우리는 빛 가운데서 행복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디
가 거기서 변화가 되지요. 은혜를 받아 가지고 열 여섯 살부터 교회학교 교사를 하면서 하도 배우지
도 못하고 했으니까 교회학교에서 자리를 안 만들어 주지요. 그러니까 무디가 나는 저 신발장에서 아
이들을 가르칠 테니까 자리만 만들어주면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 해서 교회학교 교사로 출발해
서 길거리에 빛을 찾아 빛을 본 사람이 어두움 가운데 있는 흑인들 친구들 인도해서 신발장이 차고 넘
치고 그래서 드디어 19세기에 지금 미국에 20세기에 빌리 그레함이 있다면 미국에 19세기에 미국을
이끌어 온 사람이 디엘 무디 아니에요? 이 놀라운 능력이 어두움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
리는 어두움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면 안돼요. 천재지변으로 어둡든지 누구 죄 값으로 어둡든지 설령
죄 값으로 어두워도 주님의 빛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온 어두움이든 주님은 해결할 수 있는 거
예요. 이 민족의 앞날 위에 하나님의 빛이, 오늘 나오신 여러분의 가는 길에,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스
도의 빛이 이제부터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