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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 행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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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행 17:1-9)
설교: 이한규목사([email protected]) - 분당사랑의교회

     
<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

바울 일행은 선교지에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6절). 엄청난 영향력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 사람의 25%가 믿는 사람입니다. 4명 중의 한 사람이 믿는 사람이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환경을 변화시키기는커녕 환경에 동화된다는 안타까운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 천하를 어지럽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3년에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천하를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집중력과 좋은 규례를 가진 삶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이 구절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라는 말은 원어의 의미로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쳐서'라는 말입니다.

본문 바로 앞 16장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빌립보를 떠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들리지 않고 바로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말입니다. 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그냥 지나칩니까? 그곳에도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데살로니가를 그들의 타깃으로 삼고 그곳으로 직행했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 들려 혼자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집중력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나태함도 문제이지만, 모든 것을 다 하려고 나서는 방만함도 문제입니다.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집중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눈을 돌리면 원망과 불평이 많아지고, 하는 일에 금방 싫증을 내게 됩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다수는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소수는 비전을 가지고 삽니다. 원망과 불평은 역사를 바꾸지 못합니다. 비전이 역사를 바꿉니다. 천하를 움직이는 창조적 소수가 되려면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비전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집중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 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는 "한다!"면 하는 반듯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자마자 3주간 계속해서 말씀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규례였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만은 지켰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복음 전파하는 삶을 규례로 삼아 반듯하게 살았습니다. 이처럼 "한다!"고 하면 꾸준히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적은 숫자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민족이 된 제일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안식일을 지키는 삶'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주었다!" 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얻지만 안식일을 힘써 지키는 반듯한 삶 자체가 좋은 습관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좋은 규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삶을 살찌우는지 모릅니다.

왜 유대민족들은 그들의 목숨을 다해서 안식일을 지키려 하고,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주일을 지킵니까? 복의 근원은 주님이시지만, 우리의 복을 받는 가장 근원적인 행동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일 잘 지키는 것은 축복 받는 최고의 길입니다. 사실상 주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주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반면에 주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에 예배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 사람을 이 땅에서 축복하시고 천국에서 크게 높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 지키는 것을 규례로 삼고 최선을 다해 지키십시오. "나는 주일은 꼭 지킨다!"고 하고 흔들리지 않고 지키면 지킬 수 있는 믿음과 여건도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소중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진정 복된 삶을 원하면 이 주일 지키는 삶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성도의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삶은 주일을 지키는 삶입니다. 주일 예배는 성도가 축복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점이 많아도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주일이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주일을 힘써 지키는 모습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주일을 지키는 삶은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사람들도 인정하고, 무의식 속에서 자기도 자기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한 인정들을 통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주일에 가장 교회 나오기 싫은 때가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나와야 합니다. 옆에 남편이 보고 있는데 찬송을 하면 마치 위선자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좋은 규례를 철저히 지키려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서도 예배에 나오는 그 '한다면 하는 믿음'을 보시고 그의 삶이 영향력 있는 삶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배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예배가 살아야 모든 것이 삽니다. 그러므로 회의 때문에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안되고, 접대를 위해서도 예배를 소홀해 하면 안됩니다. 복된 예배는 말씀을 듣는 것이 반을 좌우하고, 예배하는 사람의 태도가 반을 좌우합니다. 예배를 중시하는 태도는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시한다는 표시입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일을 규례로 삼아 최선을 다해 지켜보십시오. 그처럼 좋은 규례를 가지고 우리가 가진 비전에 집중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복된 존재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가는 곳마다 말씀 강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씀을 강론하면서 어떤 말씀을 합니까?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은 성경 강론을 하면서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예수님을 높이면, 예수님도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거자가 되려면 먼저 내가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변했다는 간증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간증이 무엇입니까? '간(干)'자는 한자로 범할 '간(干)'자입니다. 즉 간증은 내가 범한 잘못을 말하고, 예수님 만난 후에 어떻게 그 삶이 변하게 되었는지는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간증이 아직 없다면 이런 간증이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증거자가 된 것은 그 간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변화된 후 그는 예수님만 자랑하고, 자신은 만물의 찌끼같이 여겼습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만 더 높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을 만났느냐 못 만났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운명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삶이 달라졌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꿀맛처럼 들리고, 말씀 듣는 것이 기다려지고, 예배가 기다려집니까? 취미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었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변화된 얘기들이 많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자랑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식이나 돈이나 재능이나 학력이나 도덕성을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과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큰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의 성질에 따라서 어떤 꿈은 거룩한 비전이 될 수 있고, 어떤 꿈은 인간적인 야망이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비전과 인간적인 야망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 꿈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비전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도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각오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합니까? 고양이는 열 번 잘해 주다가 한 번 서운하게 하면 그것만 기억하고 주인의 눈치를 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는 열 번 서운하게 해도 한번 잘해주면 그것을 기억하고 주인을 최고로 여기고 따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는 개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제까지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주님의 증거자의 비전을 변함없이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반드시 높이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문제가 있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영원한 목적은 예수님의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비전은 평생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비전입니다. 어려워도 증거자의 삶을 살고, 축복을 받아도 증거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려울 때 증거자의 삶을 사는 것이 더 파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영향력 있는 삶을 살려면 어려운 순간에도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영혼의 밥입니다. 그 밥을 잘 먹으면 우리의 영혼은 살찐 영혼이 됩니다.

여러분! 증거자의 비전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절대적인 신앙으로 살아가십시오. 내가 증거자의 삶을 산다면 주님은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손길을 한번도 철회한 적이 없습니다.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우리 뒤에 주님은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뒤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비전을 가지고 중단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이 땅에서 천하는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죽은 후에는 천국에서 주님을 기쁘게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3. 선을 위해 자기의 안락함을 희생하는 삶

바울의 강론을 통해 데살로니가에도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하게 되었고, 바울 일행을 잡겠다고 성 전체를 돌아다니며 난리를 쳤습니다(4-5절). 그런 상황이 우리들에게도 닥쳐올 것입니다. 그때 의연함을 잃지 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 일행을 살펴주었던 야손 가족에게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야손은 기쁘게 그 어려움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을 위해, 그리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나의 안락함을 희생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는 싫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얼마나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보람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 기쁨과 보람의 크기는 우리가 희생한 안락함보다 훨씬 큽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와 구제를 강조합니다. 돈이 나에게 한푼이라도 더 있으면 내가 조금 더 안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때를 준비하기 위해, 하늘 나라를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우리가 우리의 과감히 호주머니를 비우면 안락함은 덜 누릴지라도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보람은 훨씬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 미치는 영적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입니다.

돈 버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잘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잘 쓰는 사람이 돈을 벌려고 애쓰는 모습은 소중한 삶의 자세입니다. 선교에도 잘 쓰고, 구제에도 잘 쓰는 분이 돈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돈을 벌려고 애쓰는 모습은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그 삶의 결말도 꼭 비극이 됩니다. 톨스토이는 돈을 잘못 쓰면 그 돈이 교수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돈의 주인이 되어 돈을 잘 쓰면 그 영혼이 건강해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준비됩니다. 그러나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을 잘 못쓰면 그 영혼은 허무하게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지만 돈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선한 일이 눈앞에 보이면 돈을 무자비하게 시집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돈은 내 품에 있다가 반드시 내 영혼과 내 가정과 내 자녀와 내 비전에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며칠 전이 저의 결혼 10주년이었습니다. 결혼할 때 바로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7만원 짜리 금반지 한 돈 해준 것이 전부였고, 신혼여행도 설악산에 갔다 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10주년에는 한번 다시 신혼여행 가는 심정으로 1월 6일부터 10일까지 태국에 갔다 오려고 예산을 세워두었습니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 예약을 하려고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여행 시즌이 되어서 평소 예산의 2배 이상의 여행비용이 드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고민하다가 외국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홍천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상당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는 비용을 선교와 구제에 쓰도록 헌금했습니다. 그러자 비록 근사한 여행은 취소되었지만 마음의 기쁨과 만족감이 더 커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뜻 깊은 일을 위해 나의 재미를 희생하고, 나의 안락함을 희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희생한 것 이상의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큰 비전을 가지십시오. 뚜렷하게 가지십시오. 비전이 뚜렷하지 않으면 이번 한 주간에 기도한 후에 뚜렷한 비전을 세우십시오. 2003년은 더욱 비전을 위해 힘써 달려가는 한해로 삼으십시오. 그런데 그 비전을 이루려는 목적도 뚜렷해야 합니다. 비전을 이루려는 목적은 나의 안락함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비전을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나의 안락함을 희생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공부해서 남 주냐? 다 너 잘되라고 공부하라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가르칠 때 "공부해서 남 주냐?"라고 말하지 말고,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한다"고 해야 합니다. "남을 돕기 위해서 힘써 공부해야 한다"고 할 때 자녀들은 더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을 무조건 배타하는 허무한 도덕군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돈을 다 가져가고, 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성도의 직무유기입니다. 돈도 추구하고, 권력도 추구하십시오. 그러나 목적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위해 쓰려고 돈을 벌어야 하고, 남을 위해 활용하려고 권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축복해 주세요. 저의 가정과 자녀와 사업을 축복해주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그 축복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문제도 항상 염두에 두며 기도하고 최선의 땀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자녀들이 위대한 국제 정치가가 되게 해주소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위대한 정치가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말에 캄보디아에서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너무 많이 죽어서 캄보디아의 산과 들은 곳곳마다 수천 명씩 죽은 사람들로 가득 찬 킬링필드가 되었습니다. 그때 힘없는 백성들은 하늘을 원망하며 죽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때 위대한 정치가 한 사람이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그 상황을 제지했다면 수백만 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정치가가 이런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이런 기도도 드리십시오. "하나님! 우리 자녀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비울 수 있는 큰손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 자녀가 고시에 패스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법조인이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돕게 하소서!" 출세하고 결혼 잘 하고 자기 잘 살기 위해서 거부가 되고 법조인이 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비전을 목적을 분명히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도 그런 비전을 가지고 달려야 합니다. 나의 능력과 권세를 이용해서 나를 높이는 삶이 아니라 나의 능력과 권세를 활용해서 남을 높여주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성공하고, 최선을 다해서 비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을 위해 언제든지 우리 자신의 안락함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안락함을 희생하지 않고는 어떤 인물도 위대한 인물이 되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변화는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변화를 잘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오히려 기회가 됩니다. 그 기회를 잘 살리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나의 안락함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변화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변화할 수도 없고,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기는커녕 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는 왜소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교회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비전을 위해 대가를 치름으로 하나님의 쓰임 받는 분들이 되십시오. 예배를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일을 위해서 쓸 시간은 최대한 빼놓고, 나머지 시간은 있는 힘을 다해 비전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교회를 위해 몸으로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서 그분들이 걱정 없이 교회 일에 전념하도록 일터에 있는 분들은 열심히 벌어서 팍팍 밀어주십시오. 몸으로 봉사할 분은 몸으로 봉사하고, 물질로 봉사할 분은 물질로 봉사하고, 기도로 봉사할 분은 기도로 봉사하면서 서로 존중해주면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영향력이 있는 분들이 되십시오. 천하를 호령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런 꿈을 가지고 2003년에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 후원을 위한 안내 말씀 >

금주 이한규 목사님 말씀에 은혜 받으셨습니까?
저희 요삼일육선교회에서는 이한규 목사님 말씀을 중심으로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고,
여러 선교단체 및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또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본 사이트 오른쪽 위 부분 '선교후원'난에 들어가 선교후원 회원으로 많이 가입해 주세요.
지금 10여명의 봉사자가 이 사이트 운영을 돕는데 이 일에도 참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세한 안내가 필요한 분은 연락주세요(031-715-4347, 4348 또는 017-705-4347)

< 다음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자세한 기도제목은 가끔 게시하겠습니다 >
C&MA 한인선교사 1 - 김사무엘(영숙) 목사, 한국 온누리교회(하용조목사님)와 선교협력
C&MA 한인선교사 2 - 임준호(정자) 목사, 몽고 교회개척, 신학교 사역
C&MA 한인선교사 3 - 김성수(경선) 목사, 일본인 교회개척 시무
C&MA 한인선교사 4 - 김진영(은경) 목사, 터키 투르크민족 교회개척, 신학교 사역
C&MA 한인선교사 5 - 황수(한나) 목사, 대만 원주민 교회개척 사역
C&MA 한인선교사 6 - 김재호(연희) 목사, 몽고 교회개척, 신학교 사역
C&MA 한인선교사 7 - 임병철(명희) 목사, 몽고 신학교 교수 사역(내년에 선교지로 떠남)

< 협력선교사님들 >
강영철(한국 혼혈아선교회), 권순구(인천 외국인교회), 김영칠(중국),
김정숙(월드 크리스챤 네트웍), 김학철(한동대,태국), 손영삼(그리스), 유재춘(중국),
이동구(중국), 이바울(중국), 정길진(월드 크리스챤 네트웍), 탁수연(이집트)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선교 후원회원으로도 많이 가입해주세요 )

< 선교사의 꿈을 가진 분들을 위한 안내말씀 >

미국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기독교선교연합회, 약칭 C&MA)에 의해 설립된 미국 최초의 신학대학(Bible College)으로 시카고에 있는 휘튼(Wheaton) 대학과 함께 미국 복음주의의 양대산맥으로 여겨지는 나약대학(Nyack Bible College)과 그 대학교의 신학대학원인 얼라이언스신학대학원(Alliance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공부해보세요.

C&MAhttp://www.cmalliance.org)는 미국 내에 2천 개의 산하교회와 20만 명의 성도, 전 세계에 3만 5천 개의 선교지 교회와 300만 명의 선교지 성도가 소속된 '세계선교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어 사역하는 교단'으로, 현재 미국에서만 전 세계로 12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교단입니다. 세계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이곳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저희들에게 전화를 주시면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한규목사 핸드폰(017-705-4347)
요삼일육선교회 사무실(031-715-4347)
한국 연락사무소(Nyack College Korean Liaison Office)
(Director 정길진목사(031-448-4686) e-mail address: [email protected])
C&MA 한국파견 공식선교사 김사무엘목사님
(한국인 1호선교사, 온누리교회(하용조목사님) 선교훈련원장, BEE 한국대표, 011-741-0250)

< 웹사이트 주소 >
C&MAhttp://www.cmalliance.org)
나약대학http://www.nyackcollege.edu)
얼라이언스신학대학원http://www.alliancesem.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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