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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 고후 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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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본 문 : 고후 6:1-18절
설 교 : 윤일문 목사 (사도교회)
     

20세기 초 일본에서 갓 안수 받은 나가노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북쪽에 있는 가나사와라는 지역에 가서 텐트를 치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창립예배를 드리고 나서 6개월이 지나도록 교인이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5년 동안이나 교인이 한 명도 없이 가족만이 함께 예배하는 참으로 쓸쓸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 예배 시간에 텐트 교회 안에 한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너무 너무 감격해서 열심히 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려고 하는데 이 청년이 식탁이 앉아서 기침을 하더니 피를 토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많이 갈등했습니다.
그는 폐병 환자였습니다.
전염이 될지도 모르는 이 환자와 함께 식사를 계속 할 것인가 내 보낼 것인가 갈등하다가 나가노 목사는 자기 손으로 토해놓은 핏덩이를 깨끗하게 치우고 새로 음식을 가져다가 식사를 계속했습니다.

이 청년은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에 대한 열등감으로 괴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도중에 폐병이 들어서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신학교에서 자신을 폐병 환자라고 버린 것입니다.

그는 너무도 절망해서 예수님은 없다 다 거짓말이다라고 생각하고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자신을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인으로 대해 주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서 교회마다 찾아갔지만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절망하고 있는 그 청년에게 누군가 이 나가노 목사를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는 만났는데 그 날 저녁밥을 먹다가 피를 쏟았던 것입니다.
그 나가노 목사는 피를 닦아주고 그 청년을 내 쫓지 않고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그 순간 그 목사님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다"

그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그리고 깊이 체험하고 그는 폐병이 나았습니다.
그 청년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그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입니다.

그리고 그는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그는 빈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변비를 치료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후벼팠지만 그래도 대변을 보지 못하자 그 더러운 항문에다 입을 갖다 대고 자신의 입으로 빨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도요히코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도요히코 목사는 "배운대로 합니다.
나의 스승 나가노 목사는 나의 폐병덩이리 피를 손으로 닦아주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의 빈민들에게 똑같은 섬김과 봉사의 손길을 펴면서 복음을 실천했습니다.
장개석 총통과 부인인 송미령 여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도요히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장개석 총통과 송미령 여사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945년 일본이 망하게 되자 중국 땅에 있던 일본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장개석 총통은 포고령 1호를 내렸습니다.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은 중형을 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도요히코 목사의 헌신적인 복음의 실천이 많은 일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일생동안 단 한 명에 불과했지만 그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음을 가르치고 실천한 나가노 목사의 손길이 그 제자 도요히코 목사에게 이어지고 그 손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면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오랜 3김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해방 이후 가장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후배들을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하고 오직 자신들의 지위를 세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땅의 교회가 급속도로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선교 100년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맡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교회가 일꾼을 양육하고 특히 교회 지도자를 세워나가는 일에 있어서 너무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가노 목사와 같은 모델의 멘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나가노 목사를 통해서 도요히코 목사가 예수님을 체험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끼리도 서로를 통해서 예수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모델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경우 교인들은 목회자를 닮아갑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을 느낄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점점 더 많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교회에서 예수님을 가르쳐야 하고 예수님을 경험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거대한 공동체를 자랑삼고, 목회자를 자랑삼고, 자기 소속된 무리들을 자랑삼고 하는 현상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의 손길은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육의 부재가 결국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내를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앞장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자녀 교육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자녀의 의미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있는 여러분들의 자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 그러니까 교회에서 양육 받아야 하는 모든 크리스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
얼마 전에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있던 부모가 9살 된 아이가 뱃속에서 종양 덩어리가 엄청난 크기고 자라나서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부모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수술하지 않고 고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이의 몸 전체의 부피보다 더 큰 종양 덩어리를 안고 사느라 자칫 아이를 죽일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말씀을 접하게 되면 자신도 온전하게 자라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열심히 교회에는 다니고 결국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교회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구원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은 교회의 책임일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양육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점점 더 삭막해지고 서로를 향해서 노여움의 마음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여러분 가정의 자녀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자녀를 키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성숙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 말씀은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식물이 자라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식물이 자랄 때 아무도 모르게 자랍니다.

식구 중에 어느 한 사람이 화분에 꽃씨를 심었습니다.
물을 주기는 엄마가 주었습니다.
그 꽃나무는 언제 자랐는지도 모르게 매일 자라납니다.
물을 주고 화분 안에 거름을 주고 해서 자라는 것이 누구의 손길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자라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햇볕을 주시고 공기를 주셔서 기본적인 기온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하는 것은 간접적인 양육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처음 예수를 믿는 분들이 처음에 전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등록을 하면 낯 설은 여러 가지들에 관해서 배우게 됩니다.

예배드리는 법과 봉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며 찬양과 헌금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또 다른 교역자나 선배 크리스챤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영 자라나지 않습니다.
마치 성장 판이 고장이 나서 키가 자라지 않는 것처럼 신앙 생활한 연도 수는 늘어나지만 계속 젖병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의 양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영혼을 자라나게 하는 것은 성경을 배우고 적용할 때 자라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슴에 담고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구체적으로 역사할 때 우리는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령님의 그림자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무언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주일이 되면 굉장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아직도 영적인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양육하고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교육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화분에 주는 물과 거름과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자라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아주 미 성숙아에 불과합니다.
지식을 쌓아갈 수 있을지 몰라도 전쟁터와 같은 지 세상에서 이길 수 있는 지혜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지식을 지식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자라는 것은 지혜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자라나고 있는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해지면 자식이 근심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식이 학교 다닐 때 공부 때문에 속 한번 썩인 일이 없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좋은 직장에서 버젓이 잘 살고 있어서 자랑거리가 참 많은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 바빠서 교회를 제대로 안 다녔는데 졸업하고 나면 잘 다닐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유해지니까 신앙 생활은 더 멀어졌다고 말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 이제 본격적으로 근심이 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보다 좀 없이 살아도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예수 잘 믿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뒤늦게 알고 후회하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잘 안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을 잘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그 자녀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만이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품고 있는 태신자들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올 해 여러분들이 세울 방주 안에 초청될 사람들도 맡기시기 바랍니다.


2. 자녀들은 그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요즈음 젊은 부모들 가운데는 아이들의 기를 살려준다면서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키우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또한 가족 계획을 꾸준히 한 결과로 한 집에 많아야 둘 아니면 자녀가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아이들이 질서의식과 기본적인 가정 교육이 잘못되어서 아이들이 이기적이고 남을 수용하거나 배려할 줄 모르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 장소에서 기초 질서를 지키는 부분에 있어서도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무조건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신의 욕망은 어느 정도의 범위 안에서는 가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원죄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다스릴 수 있는 적절한 통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부모는 자기의 귀여운 아기가 결코 천사가 아닌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한한 자유를 주어서도 안되며 어떤 경계선 안에 통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사준다든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게 한다든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을 어느 한계 안에 가두는 훈련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사단의 뿌려 놓은 세 가지의 욕망이 항상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까지 한 욕망이 모두에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의 욕망은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말씀으로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잠시만 방심해도 곧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 욕망을 통제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모두가 자신의 방주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방주는 바로 말씀이 우리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통제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이러한 욕망을 통제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 안에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 제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만일 이런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못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부모는 아이들을 노엽게 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이들의 욕망은 어느 선에서 저지를 당해야 하지만 그때 부모의 친절한 설명과 애정 어린 설득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에 분노가 일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게 되는 것은 어떤 경우에 생깁니까?
부모의 가르침이나 징계가 형평성을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자기가 생각을 해도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고 이에 응당한 야단과 매를 맞는다면 분노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부모라고 해서 다 옳고 자녀는 다 틀린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부모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에도 오히려 겸손하게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은 어느 한 쪽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양방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된 삶의 습관을 대물림하거나 자신은 지키지 못하면서 자녀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할 때 자녀는 분노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바담 풍 하지만 어느 바람 풍하라"는 식의 교육은 자녀들을 진노하게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목회자가 많지 않다 보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노여움을 더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도 많이 기도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저를 보지 마시고 제 뒤에 계신 예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전적으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부모도 말씀으로부터 통제를 받고 그 자녀들도 죄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만 있는 대로 이러한 통제가 싫어서 많은 무리 가운데로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데마와 같이 쉬워 보이는 길로 찾아갑니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목회자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성도가 100명 정도입니다.
그 수를 초과하면 제대로 목회를 감당하기 어렵고 인원관리 하기에 급급합니다.

강남에 있는 어떤 큰 교회는 한 사람의 목사님이 1000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현실일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목회자들로부터 말씀으로 온전하게 통제 받기 위해서는 데마와 같이 데살로니가로 갈 것이 아니라 우선은 힘들어 보여도 로마로 갈 때 하나님의 통제의 손길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필요한 것을 채움 받아야 합니다.

본문은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양육한다"는 말의 의미는 필요한 것을 채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양육한다는 것은 남편이 아내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줘야 하고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도 부모로부터 채움 받아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최근에 청소년들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문제의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나는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사랑입니다.
가정으로서의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질 때 그 가정에는 사랑이 넘쳐나게 되고 그 가정이 바로 에덴의 기쁨의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역시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필요입니다.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 "하나님"일은 개념에 대한 이해입니다.

아이들은 그리고 교회 안에 새 신자들은 하나님이 실재로 계시다는 사실을 당장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배우게 될 때 더 당황하게 됩니다.

어떤 아이가 자기 옷을 들추고 "하나님 나와 빨리 나와"하면서 소리지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구분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까?
부모님을 통해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잘 모르지만 부모님들이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고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을 볼 때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부모님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이들도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자꾸 물어볼 것입니다.
어렸을 때 아는 것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아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부모는 어린이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살아 있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십니까?
그 아름다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바로 부모님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야생의 맹수들을 가정 안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죄성을 마구 찌르고 자극합니다.
그 결과 일부 아들들이 자라나서는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고 자기 부모도 몰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분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믿기는 믿지만 무언가 불확실한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래서 자주 의심하고 낙심하고 때로는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집에서 쫓겨났던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습니다.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죄가 다 용서 받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오랫동안 교회 안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구체적으로 만난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분이 도대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모릅니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인 경우도 있고 주변에 분위기에 이끌려서 자신도 경험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코메이언 서세원씨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부인 서정희씨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신은 그저 어려울 때 가서 빌면 도와주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고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편이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교회에는 나갔답니다.
그런데 아내와 작정 새벽 기도회를 21일로 정하고 그 기간에 자신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빌었답니다.

그러나 정한 21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하루만 더 덤으로 나가자고 생각하고 나간 22일 째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진하게 만났답니다.
그 전에 목사님들이나 신앙의 선배들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심했는데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답니다.
가슴 깊은 곳 한 50km 더 내려간 곳에서 기쁨이 올라오는 데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더랍니다.

자신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얽매였던 돈, 명예 같은 세상의 모든 사슬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저 입만 열면 감사가 터져 나와서 이제 부인과 함께 간증을 하러 다닌 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놀라운 은혜의 기쁨을 공급해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이러한 고백이 있어야 올해의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노아가 하나님께 이러한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에 120년 간이나 묵묵히 방주를 세우는 적전인 순종을 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여러분.
우리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서 자라나야 합니다.
또한 그 양식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순종하기 힘든 통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빠른 시간 안에 인격적으로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내일부터 31일까지 특별 새벽기도회 시간으로 정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작정하시고 함께 참여해서 귀한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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