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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 사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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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성경> 사12:1-6
찬송> 429, 434장
설교> 이정우 목사 (장산교회)

●“그 날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신년의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성도는 주일을 중심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금년 첫 주부터 남은 쉰 한 번의 주일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으시고 예배에 성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한 해를 맞이하면서 대부분 소원을 가집니다. 감사할 일은 우리가 소원을 빌어야하는 분 앞에 나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합니다. 우리의 소원,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합니다.

본문 1, 4절에 ‘그 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그 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궁극적인 구원을 완성하는 날입니다. 이사야서에 나온 예언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말하면 사11:1에서 예언된 이새의 집안에서 한 싹이 나고 뿌리에서 가지가 나와서 결실하는 때이며, 사7:14에서 말하는 임마누엘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즉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날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감사하겠다’(1하) ‘노래하겠다’(2) ‘찬송하겠다’(5) ‘만국에 알리겠다’(5하)고 합니다. 이 날은 회복의 날이요, 이 날은 감격의 날이요, 이 날은 찬송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날은 우리에게 벌써 이루어진 지나간 날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기다려야하는 남아 있는 날입니까?
그 답은 이렇습니다. 이미 지나간 날이기도 하고 아직도 기다려야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 답이 어디있나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예)하나님 나라의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
자기앞수표-손에 있으면 현금이나 다름없지만 수표를 은행에서 바꾸기까지는 현금이 아니다.

●2003년의 그 날?

그러나 저는 이 본문에 나오는 ‘그 날’을 2003년, 금년 한 해의 날들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금년 2003년 어느 한 날에, 그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날이 연초이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2003년이 다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게 되리라한 찬송이 여러분의 찬양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이 ‘그 날에’ 이루게 될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 ‘그 날에’는 하나님의 진노는 쉬고 위로가 넘칠 것이라 말씀합니다.(1)
2003년 금년은 하나님의 진노는 쉬고 위로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하나님의 진노가 쉰다.
1절 말씀에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저는 이 ‘전에’라는 말과 ‘이제’라는 말을 이렇게 적용시키고 싶습니다. ‘전에’는 ‘2003년 이전에’라는 의미로 ‘이제’는 ‘2003년에’라는 의미로 적용시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2003년 이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노하셨더라도 2003년에는 그 노가 그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야 합니다.

‘진노가 쉰다’는 말은 더 이상 우리가 범죄하지 않거나 우리의 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의와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의나 죄를 보고도 못 본 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쉰다는 말에는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고, 하나님을 근심시키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노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줄도 알고 그 뜻에 따라 살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성숙은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그 뿌리에서 난 가지이신 임마누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 곧 구원받은 사람은 그 곳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금년에 이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금년 2003년의 우리 교회의 표어가 무엇입니까? 송구영신예배에 이미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보에 바뀐 표어가 나와 있습니다.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라나자’(엡4:15)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자라나야 하는데 자라지 못한 아이를 미숙아라고 합니다. 성숙되지 않은 아이라는 뜻이지요.
아이들이 자라나면 철들었다는 표시가 어디에서 나타나느냐 하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나타납니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부모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보이면 이제 철이 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4:3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 우리도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하나님 싫어하시는 죄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우리도 철난 표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는 우리의 삶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자라게 됩니다. 성숙하게 됩니다.
우리의 목표와 성장의 모델은 그리스도입니다. 그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2)나를 안위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쉬는 것으로 마치지 않고 또 하나님이 안위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안위는 곧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실 때, 징계를 하셔야만 했을 때의 마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할 수 없이 징계해야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 주셨으니까 아버지(부모)의 심정으로 한 번 이해해 봅니다.
자식을 한 번 징계하고서 스트레스가 싹 가시고 속이 후련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으면 그 아이 제 자식 맞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자식을 벌주고 나면 아이보다 더 마음이 쓰이고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까?

애3:33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 진노하신 세월이 고통스러우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이 이제 그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진노할 필요가 없구나!”
우리의 등을 토닥거리며 주님이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육군 장교인 아버지와 육사 생도 시험을 치고 훈련기간을 보내는 딸. 여자의 몸으로 육사를 지원할 때부터 이미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또 그 훈련이 얼마나 고된지 알고 있어 걱정이셨던 아버지가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딸을 말리지 못하고 육사를 보내고 시험에 합격을 하고 입학 훈련을 끝내고서 부모님 앞에서 “충성”하며 경례하며 눈물을 흘리는 딸을 품에 끌어안으며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할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더 이상 주님의 진노가 여러분의 걱정 근심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미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고 대속의 일을 끝내 주셨습니다.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오직 이 주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으시는 2003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그 날에’는 구원의 찬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2-3)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듣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1하)

1)찬양의 제목
그러면서 우리의 감사의 찬송 내용이 이렇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2-3)
♬찬송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이 찬양 역시 여러분의 찬양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를 의뢰하고 나는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내 삶의 힘이시다. 그는 나의 찬송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감사의 내용이라기보다는 ‘감격’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고 감격적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간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2003년의 삶이 하나님을 감격적으로 찬양하는 순간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2)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라(3)
3절은 이런 자가 실제적으로 누리게 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여기의 우물은 ‘샘’을 말합니다. ‘샘’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어디든지 땅을 파기만 하면 물이 잘 나오는 우리나라에서는 느끼는 어감과 유대인들의 어감은 다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요단강 주변을 제외하고는 물을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샘과 관계된 이야기가 많고, 또 이 샘은 많은 분쟁의 근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샘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어떤 무기보다 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생존과 바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건조한 기후에서 목이 탈 때 샘에서 물을 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한 자가 이제는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의미를 말할 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영혼 구원이요, 둘째는 생활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구원은 생활 구원의 의미로 보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샘’은 우리가 목이 마를 때마다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문제 해결의 샘이라는 말입니다.
예)삼손의 엔학고레
사사기 19장 14-20절에는 삼손이 레히라는 곳에서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입니다. 대단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18절에 보면 대적 일천 명을 나귀 턱뼈 하나로 죽인 사람치고는 너무 연약한 말이 나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그때 19절에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삼손과 같이 능력있게 사역하던 사람도 한 순간에 무너지면서 갈증난 인생의 목을 축여야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도 샘, 엔하고레의 샘을 주셨습니다. 엔학고레의 샘이란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즉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구원을 주신 구원의 샘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3년에 여러분은 모두 ‘구원의 샘’을 간직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인생의 곤고한 문제로 우리의 영혼이 갈할 때, 그때마다 주님께 나와서 에벤에셀과 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으시고 인생의 갈증을 해갈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3. 만민을 향한 구원의 외침.(4-6) - 간증하는 자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게 되면 분명 가만있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좋은 것이 있으면 말하고 싶어집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고 싶어져요. 차고 넘치는 것은 항상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또 우리가 만국에 하나님을 선포하며(4)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5) 이것은 간증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간증입니다.
♬찬204장 후렴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켜주시는 은혜에 감사한 것입니다.
♬ 찬410장-1절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간증하게 되면 그것은 전도입니다.
전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경험한 예수, 그 분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벧전 3:15)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이 삶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더욱 풍요롭고 감사가 넘치며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3년은 간증의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52주가 되도록

성도는 주일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003년의 52주, 매 주일마다 주님 앞에서 감사의 찬미가 여러분의 제물이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그 무엇보다 가장 귀한 제물로 받으실 것입니다.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때 치유하시고 또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도 해야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그때그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의 제목, 찬미의 제목이 되어 그것을 감격적으로 드리는 2003년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 200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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