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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열매로 나무를 압니다. / 눅 6: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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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열매로 나무를 압니다.               
성경: 눅6:43-45
설교: 김은호 목사 (오륜교회)


□ 복제 인간 탄생

인간복제를 시도해온 미국 종교단체 `라엘리언'의 비밀조직인 클로네이드 소속 과학자 부아셀리에 박사는 12월 26일 사상 최초로 복제인간이 태어났다고 발표했습니다. 라엘리언은 전 세계에 5만 5천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유사 종교단체로 2만 5천년 전 외계인들이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로 날아와 유전 조작을 통해 최초의 인간을 만들었으며 따라서 지구상의 인간들도 복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라엘리언 무브먼트를 신봉하는 사람이 대략 5천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제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복제인간에게도 과연 영혼은 존재할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모태에서 나를 조성하실 때 나의 영혼이 창조되었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복제인간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의 과정이 없이 곧 바로 완벽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복제하는 체세포 복제를 통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복제인간도 온전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우리와 같이 온전한 영혼이 존재한 인간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해 대부분의 창조과학자들은 복제인간 역시 지금의 우리 인간과 같이 영혼을 가진 온전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제 인간 역시 46개의 염색체가 고스란히 유지돼 완벽한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육체로만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흙으로 으신 다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즉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를 지으실 때에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담의 인체에서 체세포 분열이 가장 왕성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하와는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와는 수정의 과정을 통해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분명히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창조의 섭리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창조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식이 창조의 섭리를 거스리며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복제인간을 출현시킨 단체나 거기에 참여한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또 하나의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복제인간을 탄생시킨 그들은 복제인간의 탄생을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매우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못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불행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벌써부터 많은 과학자들은 복제인간은 선천성 기형과 면역체계의 결함, 빨리 늙는 조로의 현상등 많은 결함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거스리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자초하는 일이며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는 일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일이 우리에게 커다란 혼잡과 저주를 가져다 주었듯이 인간 복제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많은 재앙과 저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주신 지식을 가지고 좋지 못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2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월드컵의 열기 속에 함께 환호하고 뜨거운 열기 속에 대통령 선거를 치루고 나니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당신은 2002년 한 해동안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꽃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해도 얼마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열매는 오래갑니다. 열매는 30배, 60배 100배의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열매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인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나무가 과일을 맺듯이 하나님의 사람도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기도응답의 열매, 화목의 열매,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열매로 사람을 판단하십니다. 열매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좋은 열매만이 아니라 나쁜 열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열매를 맺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참 신자와 거짓 신자는 무엇으로 구별됩니까? 열매로 구별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나무와 열매의 비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나무와 열매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나무와 열매의 이 두 비유를 통하여 제자의 자질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평지수훈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제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제자의 삶에 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39절부터는 제자의 자질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3절)

이 동일한 말씀이 산상수훈에도 나옵니다. 마7:17절에서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행동에 따른 결과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3절의 말씀에는 좋은 나무가 나오고 못된 나무가 나옵니다. 그리고 못된 열매가 나오고 좋은 열매가 나옵니다. 나무에는 어떤 나무이든지 좋은 나무가 있고 못된 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에도 좋은 열매가 있고 못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열매가 있습니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못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 밖에 없습니다. 두 종류의 나무 밖에는 없습니다.


□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그러면 이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못된 나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44절에 보면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를 구별하는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44절)
열매를 보면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통해서 이 나무가 무화과 나무인지, 포도나무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고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 없습니다. 감나무에 포도가 달려 있는 것 본 적이 있습니까? 무화과나무에 사과가 달려 있는 것 본 적 있습니까? 포도는 포도나무에서만 열립니다.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각각 그 열매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나무의 좋고 나쁨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오직 열매를 보고 내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잎이 무성하고 꽃이 아름다워도 독이 있는 열매를 맺으면 독수(毒樹) 독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가지와 잎이 초라하고 향기가 볼품이 없어도 유용한 과실을 맺으면 유익한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로 나무를 아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영적인 법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열매로 심판을 하십니다. 참 신자인지, 거짓신자인지, 충성된 사람인지, 종교적인 사람인지, 건강한 교회인지 허약한 교회인지 그것은 열매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 입술의 열매로 그 사람을 압니다.

나무의 본질이 그 열매로 드러나듯이 사람의 인격과 마음도 반드시 말과 행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와 열매의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 마음과 입술의 말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5절)
사람의 말과 행위는 그 사람의 마음에 쌓인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져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도 도저히 숨기거나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값비싼 장식과 화장, 또는 경건의 모습으로 위장하면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무를 아름답게 치장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 열매로 인해 그 나무의 정체가 드러나듯이 사람 역시 아무리 자신의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미고 치장 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 말과 행위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 계시이며 자기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입술에서 감사와 찬양의 노래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옵니까? 그렇다면 나의 마음에 평강과 구원의 기쁨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노래방가지 않아도 찬양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입에서 누군가를 향하여 저주와 악담이 나옵니까? 그렇다면 내 안에 분노가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면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음탕한 말들이 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면 내 안에 음란한 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말과 속이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옵니까? 그렇다면 내 안에 더러운 영과 속이는 영이 나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내가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린 형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면 내 안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45절의 말씀을 볼까요?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우리는 나의 입술의 열매로 내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상대방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로 상대방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분별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 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물질의 욕심이 가득한 자는 항상 돈에 관한 이야기만 합니다.

이렇게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혀를 조심해야 합니다.  벧전3:10절의 말씀을 다같이 볼까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야고보 기자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고 했습니다. 정말 마음 먹은 대로 잘 안되는 것이 우리의 언어입니다. 혀는 작은 것이지만 배의 키와 같아서 우리의 인생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거목을 쓰러뜨릴 때 특이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나무를 둘러싸고 계속 돌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야아 죽어라, 죽어” 그러면 죽는답니다.
가정 상담학의 권위자인 정태기 박사는  "성공적인 사람은 성공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말을 자신의 전진 고지로 정합니다. 그래서 사단이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릴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용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잘들으라" 의미있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오늘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떤 것인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오늘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내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말이 좀 거칠고 더럽기는 해도 마음은 아주 착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각각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입술의 열매는 지저분한데 그 사람의 마음은 아름답다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러우면 그 사람의 마음이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모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입술의 열매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되게 하십니다. 민14: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열명의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 대성통곡하며 차라리 애굽에서 우리가 죽었으면 좋았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어 가나안 족속에게 죽게 하신다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원망하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너희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되게 하십니다.

또 이사야 57:19절 상반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사57:19)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입으로 선포하면 그 입술의 열매를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가 나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나아가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3년 6개월이 지난 다음 하나님께서 엘리야는 비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다시 한번 아합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빨리 가십시오.  지금 비가 몰려오고 있어서 길이 막힙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해가 넘어가기 전에 큰 비가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입술의 열매대로 축복하셨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안된다' '할 수 없다,' '미치겠다' '죽겠다' '돌아버리겠다'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야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이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신념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신념과 신앙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입술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당신의 입에서 주로 나오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불평입니까? 분노입니까? 더러운 말입니까? 속이는 말입니까? 아니면 격려하고 위로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말입니까? 당신의 마음 밭을 바꾸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주의 성령께서 주장하시게 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이제 몇일 있으면 우리는 2002년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가 2002년 한 해를 마무리 하듯이 우리의 인생도 이 땅에서의 생애를 마무리 해야 할 순간이 다가 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열매만 남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꽃이 아닙니다. 열매입니다. 어떤 인생은 남이 보기에 화려하고 멋진 인생을 산 것 같은데 인생의 황혼에 아무런 열매도 없이 쓸쓸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젊은 귀족이요 천재적인 시인이요 사교계의 총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멋대로 방탕하고 방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결국 36라는 젊은 나이에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년에 자기 인생에 대해 고백하기를 “나의 인생은 말라빠진 낙엽 한 장과 같구나. 나는 벌레처럼 살았다.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오직 슬픔과 고독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고백을 하시겠습니까?
한 해의 시작이 있었기에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오늘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게도 인생을 마무리 해야 할 엄숙한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날에 열매 없는 자가 되어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지 지금 이 땅에서 많은 열매를 맺으십시오.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입술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그 열매로 당신을 압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에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생명이 되신 주
반석이 되신 주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에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소망이 되신 주
능력이 되신 주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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