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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 /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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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
본 문 : 시 23:1~6
설 교 : 박세종 목사 (소망감리교회)
 

시23편은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2003년 새해 첫 번째 주일에 이 말씀이 우리모두에게 큰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23편은 겨우 여섯절 밖에 안되는 매우 짧은 것인데도 "나" 또는 "내"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아세요? 자그만치 14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14번씩이나 나, 내를 반복해서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1절을 다같이 읽이시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수 있을까요?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 정도 지식이 있는데
내가 이 정도 세상에서 지위가 있는데
아! 내가 이 만큼 많은 것을 이미 성취한 사람인데
아! 내가 얼마나 얼마나 바쁜데!!
그러나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양을 보세요!
양의 눈은 심한 근시이기 때문에 3m 이상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양은 그저 풀이나 뜯어먹을 수 있는 이빨이지 다른 짐승을 공격할 수 있는 날카로운 이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다리를 보세요 몸체에 비해서 얼마나 짧은지 제대로 뛰거나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또 양을 감싸고 있는 털 속에는 더러운 오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털 속에는 가지가지의 해충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냥 나두면 피부병에 걸려서 다 죽게 됩니다.
그나마 그 털은 자라면 그 끝이 살갗으로 파고 들어가서 마치 송곳처럼 양의 피부를 그냥 팍팍 찌르게 됩니다.
그래서 양이 목자 앞에 나옵니다.
매애애애해→"목자님! 몸이 가려워요"
매애애애해→"목자님! 이 털좀 깍아 주세요"
매애애애해→"목자님!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흰 갈 바를 모르겠사오니 저희를 인도해 주세요!"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여→나는 양처럼 부족합니다
하나님이여→나는 양처럼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나이다.
나는 약합니다. 나는 보잘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으며 오늘 이 시간 이후에도 무슨 일을 만날건지 알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렇질 않죠.
스스로 잘 준비만 하면 절대로 염려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그가 사울이었을 때입니다.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났던 사람입니다.
최고의 대학에서 수학을 하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마치 미국 시민권과 같은 로마의 시민권을 태어날 때부터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의 직업은 사람을 잡아 가둘 수도 있는 막강한 세상의 권력을 소유했던 정말 사람입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를 믿는 사람을 돌멩이로 쳐서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누굴 죽였습니까? 스데반 집사님까지도 처참하게 죽이는 살인자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신을 가리켜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까지 고백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 잘난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나니 아! 주님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섬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하였고 살든지, 죽든지 주 뜻대로 하옵소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베우라!
사람들도 교만한 자를 싫어합니다. 가까이 하지를 않습니다. 심지어 교만한 사람까지도 교만한 사람을 싫어한단 말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억하세요!
신앙이란 주님의 겸손을 베우는 생활입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가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이 약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렇게도 자주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나의 의지만으로는, 나의 각오, 나의 결심으로는 며칠 더 가는 것뿐이옵니다.
벌써 새해가 닷세밖에 지나가지 않았건만 그 큰 각오가 벌써 순두부처럼 흐물거리고 있나이다.
주님! 나를 지켜주시옵소서.
주여 운전을 합니다. 주의 오른 손으로 운전대를 함께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위험한 사고를 만나지 않게 하시고, 또 우리가 실수하여 위험한 사고를 내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나의 자녀가 집을 떠나옵니다. 무슨 일들이 저희들 앞에 놓여 있는지! 우리가 그 뒤를 따라 다닌들 어찌 지킬 수 있사오리이까
주님의 그 크신 날개 아래 감싸주시옵소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셔서 악한 것들이 그림자라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다같이!
주님!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다가 사망의 골짜기 속에서도 함께 하여주시는 돌보심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 지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잊지마세요!
하나님을 목자로 의지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구주 예수 의지하여 구원함을 얻었네 영원무궁 지나도록 함께 계시리로다."
다시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어마어마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의지해야 합니까?
다같이 내가 "부족함이" 뭐하리로다?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목자로 의지하면 부족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빌게이츠, 삼성, 현대의 회장이 아닙니다.
제일 부자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오히려 부족을 느낍니다. 권역을 다 가졌어도, 육신적인 향락과 쾌락을 즐기면서도 그럴수록 더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고, 더 얻으려고 합니다. 옛말도 있잖아요! 노욕이 더 무섭다고 말입니다.

미국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90세가 다 되신 할머니께서 부흥회에 참석하셨습니다.
또 그날따라 설교의 제목도 천국에 대한 말씀이라 강사님이 눈물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니까 할머니께서 손을 번쩍 번쩍 드시면서 아멘 아멘 하였습니다.
다시는 고통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면류관을 쓰고, 철장권세를 잡고 왕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했더니 큰 소리로 아멘!
90세가 다 되신 할머니께서 그렇게 아멘을 크게 하시니까 강사목사님께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강단에서 내려와 물으셨습니다.
할머니! 예!
천국에 가시고 싶으세요? 네!
그럼 오늘밤에라도 천국에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세요? 했더니 아! 할머니께서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네∼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들어보세요.
그런데 목사님! 오늘 말고요 조금만 더 살고 가면 안될까요?
90세를 살아도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20억을 가지고 있는 회사 임원들은 난 겨우 20억밖에 없다고 합니다. 겨우 20억!
그러니 500억을 끌어 모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
만족이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족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가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하나님을 목자로 삼아야만 만족할 수 있을까요?
살전 5: 23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네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요한삼서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권할찌어다"
눅 2: 40절에서도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사람을 그냥 바라보면 이 육신만 보입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면 이 육체 속에는 영혼이 존재합니다.
이 육은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배가 부릅니다. 그러면 만족합니다. 이 육은 운동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건강해 집니다. 근육이 발달합니다. 다 늘어진 뱃가죽이 탱탱하게 임금왕자를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속에 있는 영혼은 밥을 먹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돈을 가져도 지식을 쌓아도 권력을 가지고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건강해도 만족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딤후3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신학의 아버지이며 성자였던 Argurstine이 세상에서 타락하며 살다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후에 "Confession"이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책의 첫머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기에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 만족이 참 평안도 없었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시기에 우리가 만족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으로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는 줄 믿으시면 아멘 하십니다.

4절은 다같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할렐루야!
왜! 왜! 이토록 자상하게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일까요?
철학자 러셀은 “사람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우주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감염만 되어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그런 존재랍니다. 우리가 잘나고 위대해서가 아니라 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아니! 미리 미리 지키시지 왜 골짜기가 있는 곳까지 가게 하나?
웬지 아세요?
양은 일반적으로 해발 300m∼400m 이상 되는 곳에서 키우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 이유는 털이 길어서 평지에서 기르면 더위를 먹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높은 상으로 양들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거기만 올라가면 얼마나 좋아요. 시원한 바람. 깨끗한 풀들 오염되지 않은 흐르는 물. 그런데 거기까지 오르는 동안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높은 산이기에 낭떠러지도 있습니다.
골짜기에는 무서운 짐승들도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아! 불만을 터트립니다.
아이고 왜 이러는 거야! 이거 왜 힘들게 하는거야 아이고 연초부터 소망의 기도니 임원 수련회니, 음악회니 이거 왜 그래 귀찮아 죽겠네 가자니 귀찮고 안가자니 목사님 얼굴 보기 미안하고 에라! 오늘은 가면이라도 쓰고 가야지!
왜 담임목사가 여러분들을 귀찮게 합니까?
왜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따라가면 그 곳엔 시원한 바람 털에 묻은 더러운 것을 탁탁 털어 내면서 아이고 시원해라 아! 살 것 같네 아이고 이 풀 좀 봐. 아이고 이 시냇물 맛 좀 봐!
부족함이 없도록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개그 Concert에서 이런 곳을 표현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아하! 그렇구나 아하 그렇구나!"
옥동자는 뭐라고 했을까요?
옥동자야! 어떻게 하면 너처럼 못생겼는데도 그렇게 인기가 있는거니. 네 인기가 부러워! 어떻게 하면 되니?
우헤헤헤헤! 나처럼 되려면 예수 믿어야지! 라고 대답하였을 것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새해 첫 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사망의 두려움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끄시는대로 아멘 하면서 따라가다가 육신적으로는 강권의 복을 누리고 영혼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복된 성도들. 만족함이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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