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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이신 말씀 - 영적 전쟁의 공격무기 / 엡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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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에베소서 6:17
제 목 : 생명이신 말씀 - 영적 전쟁의 공격무기
설교 : 김정석 목사 (창천교회)


( 서 론 )

요즘 우리는 영적인 회복이라는 말과 영성이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합니다. 많이 듣고 사용은 하는데 왜 그런 말들이 나오는지 깊이 묻거나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요, 용사라고 고백은 하는데 전혀 나와는 무관한 관심 밖의 일들로 지나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결코 그래서는 않되는데 그런 모습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내재하면 생명의 역사와 증거가 나타나야 하는데 전혀 그런 흔적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그 도구인 일꾼들이 그 사명을 망각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나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군사요, 주의 백성인데 세상 속에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요,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말입니다. 분명히 세상이 급변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전혀 무방비 상태로 지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왜 성경을 봐야만 하는지, 기도는 하면서도 왜 그리고 어떤 기도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있어야 하는지 전혀 물음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의식도 없고 심각성도 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수가 더해 간다고 해도 전혀 소망이 없기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사고가 변해야 하고,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헌신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변화되기 원하십니다. 그냥 이 상태로 흘러가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룰 백성이, 일꾼이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미 주님께서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마9:37-38) 하셨습니다. 그것이 2000여 년 전이건만 상황은 더 나빠졌지 나아진 것은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역자로 준비가 될 수 있는가? 답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말씀의 무장입니다. 말씀으로의 양육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영적인 사역입니다. 영적인 사역은 영적인 준비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준비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3주 혹은 4주 동안 왜 말씀이 필요하며, 왜 말씀이 새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 본 론 )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으로 깨달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1) 우리는 지금 영적인 전쟁터의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씨름은 전쟁과 같습니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패배하는, 그리고 조그마한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격기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휩쓸려고 하는 악한 세력과의 치열한 전쟁 가운데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현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의식과 심각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쟁하면 영화에서나 구경하는 이야기로만 체험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쟁은 내 생명을 담보로 걸고 치루는 생사의 문제입니다. 조그마한 방심도 허락되지 않고, 철저한 준비가 없이는 내 생명을 잃게되는 절대절명의 문제입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철저한 보안과 경계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전쟁의 경험이 없기에 그 절박함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교련 교관님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월남전의 이야기입니다. 대개 전쟁에 대비한 철저한 훈련을 받고 바로 전방에 배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병들이 오면 전쟁이 무언지 모르고 큰 소리치기도 하는데 실제로 전쟁의 경험을 하게되어야 제대로 군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 배치가 되면 때때로 가장 최전방에서 사명을 맡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수행하면 앞으로의 전쟁에서는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치룬 사람과 새로 배치된 사람은 눈동자부터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온 신병이 배치가 되었는데 베트콩이 나온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생포하든지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임병에게 경계를 맡겼다고 합니다. 다른 것을 할 것 없고 베트콩이 보이기만 하면 자기들을 깨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있게 대답을 해서 다른 사람들은 매복해서 잠이 들었는데 한참을 지난 후에 고참이 무슨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보니 초임병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갖고 아무 말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더랍니다. 순간 눈치를 챈 고참이 모든 부대원을 조용히 깨우고 앞을 쳐다보니 바로 코 앞에 베트콩이 다가오더랍니다. 그래서 신호에 의해서 사격을 가해 그들을 일부는 사살하고 포로로 잡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1분만 늦게 깨었다면 자기 부대원은 전원 몰살했을거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초임병은 그 때까지도 겁에 질려 제대로 얼굴도 못들고 떨고 있더랍니다. 막연하던 군인이 실제로 총을 들고 나타난 실제 상황의 적을 보니 오금이 떨려서 말도 못하고 깨우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상상했던 것이 전혀 아니며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버렸다고 합니다.

전쟁의 경험이 없는 우리가 쉽게 그 군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생사의 길목에 서 있는 모습. 그것도 조그마한 부주의도 곧 죽음을 가져오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 역시 그 군인 같지 않으리라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전쟁이고 전투입니다. 훈련된 군인도 그런 상황인데 그렇지 아니한 일반인이 투입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게 전쟁의 상황인데 과연 우리는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는 군인이 맞습니까? 그런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고 그런 긴장과 경계를 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대답이 아니요라고 나온다면 이미 우리는 영적인 전쟁터에서 패배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크리스챤이 무기력하고 그들이 있음에도 변화되지 않는 세상은 어쩜 당연한 결과입니다.

모두가 자기 일에 분주하고, 세상의 것을 다 누리며 즐기며 살아가고 언제 하나님의 것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간단 말입니까? 저는 언젠가 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심각하게 도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기독학생회원 중에 한 학생이 맹장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회복이 더디자 택시를 대절해서 타고 학교로 왔습니다. 배가 아프고 땡겨서 걸음을 조심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교내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픈데 집에서 조금 더 회복하도록 쉬지 왜 벌써 나왔냐고 하니까 진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더 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과연 교회에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가기 위해 그렇게 시도한 적이 있는가 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학생들이 수술한 부위를 움켜쥐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택시를 대절해서 교회에 온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의 학문을 위해서는 이런 일도 마다하지 않는데 영적인 전쟁 가운데 하나님의 용사들인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것으로 무장하는데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요? 저부터도 부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예배를 시작하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을 제 시간에 드리지 못하는 지체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5분에서 10분. 그것이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자고. 예배에 늦지 않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못하면서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킬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집합 시간에 늦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는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말씀은 전쟁에 있어서 공격무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이 부분을 쉽게 잊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전쟁에 무기가 없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용기가 있어도 그 싸움에서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끔 영화를 보면 무기를 갖고 덤비는 사람을 맨 손으로도 이기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거기서 우리는 착각이나 오해를 합니다. 무기가 없어도 싸움만 잘하면 돼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그런 동네의 싸움이 아니라 최고의 무기들이 동원된 전쟁터에 무기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싸움 자체가 안됩니다. 그러면 그 전쟁에서 살려면 방법이 무엇입니까? 항복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의 무기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에 그냥 따라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결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전쟁에서 싸우려면, 그리고 이기려면 반드시 무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의 무기가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복음의 전신갑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주의깊게 볼 것은 대부분의 것들이 나를 보호하고 감싸는 방어용 무기라면 유일하게 적을 공격하는 무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투구와 허리띠, 그리고 방패, 흉배 등등. 그러나 유일하게 적을 치고 죽이는 공격무기는 하나입니다. 그것이 검이며,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검이 준비되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의 준비로 청년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창천의 청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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