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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도하심에 맡기는 믿음 / 창 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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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심에 맡기는 믿음> 창24:1-9
설교 이수영 목사 (새문안교회)


우리는 두 주 전 아브라함의 순종적 믿음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건, 즉 백 살의 나이에 얻은 언약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사건을 통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의 시련이 그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시련이 지나간 후 아브라함의 삶은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가 127세를 살고 죽은 것(창23:1) 외에는 그에게 슬픔이나 고통을 주는 어떤 일도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이 그 평온한 삶을 우리에게 잘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나이가 점점 더 많아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셔서 만사가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이 향년 175세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나기 전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준, 그의 생애에 남아있던 마지막 중요한 일 한 가지를 예외적으로 길게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 이삭에게 배필을 얻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을 위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노종이 행한 맹세와 그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먼 거리 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아브라함은 그의 종을 불러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기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의 종으로 하여금 맹세하게 하면서 매우 특이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종에게 자기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말합니다. 허벅지 밑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사타구니 깊숙한 곳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말한 것은 그 종의 손이 자신의 생식기가 닿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성의 상징이며 생명의 샘이고 종족번식의 기관인 생식기와 연관된 이 동작은 그 동작과 함께 이루어지는 맹세에 엄숙함을 더해주며 그 맹세가 반드시 지켜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하신 백성 모두에게 있어야 할 언약의 표징을 남성의 생식기에 두도록 할례를 명하신 것도 의미 있게 볼 일입니다. 게다가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행하게 할 맹세가 다름 아니라 종족의 번식을 위해 필수적인 혼사에 관한 것이었기에 그 상징적 의미는 더 큰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의 혼인은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는 데에 있어서 두 말 할 것 없이 결정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 위한 첫 단계는 이삭의 출생과 함께 이루어졌지만 그 이삭이 또 혼인해서 자식들을 낳지 않는다면 그 언약의 실현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기를 마친 종은 주인의 옛 고향으로 가서 목적한 바 모든 일을 놀랍게 성사시키고 돌아옵니다. 그가 어떻게 아브라함의 뜻에 딱 맞는 이삭의 배필을 얻어 돌아올 수 있었는지 그 자세한 이야기를 우리는 본문을 뒤따르는 25장 전체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 신뢰와 순종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길 줄 아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오늘 본문이 전하는 성경의 기록상 아브라함의 마지막 발언 속에서 여실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종의 손을 자기의 허벅지 밑에 넣게 한 아브라함은 그 종에게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그가 거주하는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지 말고 그의 고향으로 가서 그의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할 것을 하나님께 맹세하게 합니다(3-4). 그러자 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고향 땅으로 가서 아브라함의 뜻에 딱 맞는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낸다고 할 때 만일 그 여자가 부모를 떠나 이삭이 사는 곳으로 오려고 하지는 않을 경우 이삭이 그 여자가 사는 곳으로 가서 살게 해도 되겠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내 아들을 그 여자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의 땅을 떠나 옛 고향으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합니다(6, 8).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본문 7절을 봅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이 7절에서의 아브라함의 말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한 것입니다.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께서 명하여 오게 하시고 살게 하신 언약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옛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기에 앞서서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6) 명령하고,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도 또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8) 확인명령을 한 것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에 충실하게 순종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한 말입니다. 이 말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이 땅"과 "내 씨앗"에 대한 아브라함의 확신입니다. 분명히 그 자신의 아들 이삭을 통해 그의 자손들이 생겨날 것이며 그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여 오게 하신 그 땅에서 번성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신뢰는 그의 또 다른 확신으로 연결됩니다. 그 또 다른 확신이란 그 언약의 땅에 와서 이삭과 혼인하여 자손을 낳을 여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예비하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 확신을 우리는 "그가(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한 그의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귀한 언약의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는 중차대한 일에 있어서 별다른 조건을 달리 않았습니다. 단지 현재 살고 있는 땅 가나안 족속의 여자가 아니라 고향 땅에 있는 같은 혈통의 족속에 속한 여자이어야 하며 거기를 떠나 이곳으로 와서 살겠다는 여자이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이러이러한 여자이어야 한다는 다른 구체적 지시를 종에게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두 가지 조건만 맞으면 아무 여자이건 상관없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혼사를 친히 준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결국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가 제시한 조건에 딱 맞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착하고 슬기로우며 건강한 며느리 리브가를 얻고 아들의 장래와 자손의 번영에 대한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평안히 살며 175세까지 장수하다가 눈을 감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 아브라함의 믿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실 뿐 아니라 사람의 생각보다 더 크고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셔서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게 하실 것이라" 말하며 믿은 그대로 다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바랬던 것 이상으로 이루어주셨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친족일 뿐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착하고 슬기롭고 건강한 며느리가 그를 찾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응답하시며 이렇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어떻게 베푸셨는지를 우리는 이삭의 혼사를 성사시키는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심 가운데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충직하고 슬기로운 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와 같은 종을 주셨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요 복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서는 그를 가리켜 "아브라함의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오랫동안 아브라함을 섬기며 그의 집 모든 소유를 맡을 만큼 신뢰받는 충직한 종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말하자 그는 주인에게 되묻기를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5)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려 깊고 그의 생각이 치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일의 여러 가지 상황을 미리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뒤따르는 10절에 보면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낙타는 대단히 귀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인의 낙타를 열 필이나 끌고 갔고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아들에게 최고의 배필을 얻기 위해 주인의 부를 과시하고 상대방의 호의를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종은 주인 아브라함의 옛 고향으로 가서 주인의 형제 나홀의 성에 이르러 성 밖 우물 곁에 머물며 저녁 때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성의 모든 여인들을 다 만나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간 것도 그의 지혜로움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가 찾는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12절-14을 보면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신앙심도 엿볼 수 있지만 또한 여인을 고르는 그의 안목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여자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여자로 알겠다고 말했습니까? 14절을 다시 봅니다: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물 한 모금을 청할 때 흔쾌히 허락할 뿐 아니라 낙타들까지도 물을 먹이겠다고 스스로 나설 만큼 마음씨 착하고 아량 있고 상대방의 필요를 미리 헤아릴 줄 아는 사려 깊은 여인을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로 알고 택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참으로 칭찬할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종에게 이 여자 저 여자 비교하고 저울질 해볼 필요도 없게 단번에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며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 리브가를 즉시 그 앞으로 나아오도록 인도해주신 것입니다(15-16).

그 때에 그 종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머리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말하기를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26-27) 했습니다. 그 종은 처녀 리브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서 집안 어른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주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복을 받아 창성하게 된 사람임을 말하기를 잊지 않았으며(35), 특히 그가 온 것이 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된 것이고 리브가를 자기의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신 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48).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과 오라비 라반으로부터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50-51)는 허락을 단번에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그 종의 지혜로움과 신중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아브라함의 종에 의해 낙점된 리브가는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묻는 집안 어른들의 물음에 그 자리에서 "가겠나이다" 답하고는(58) 그 종을 따라 이삭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날 갑자기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고향과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에게 그와 꼭같은 결단을 하고 고향과 집을 떠날 수 있었던 여인을 며느리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언약을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리브가를 통하여 계속하여 이루어가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믿고 순종하는 이에게 반드시 선하게 응답하시고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과 같은 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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