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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상하신 마음 / 삿 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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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상하신 마음
성경> 삿10:6-16
찬송> 461, 357장
설교>이정우 목사 (장산교회)


●들어가면서 - 사사 입다가 등장하기 전

오늘 성경 본문은 ‘입다’라는 사사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말해주는 본문입니다. 이 시대는 구약의 사사들이 통치하는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란 이스라엘에 절대적 권위를 가진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가 지나고 왕들이 세워지기 전에 사사들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던 시대입니다. 연대기적으로는 B.C. 1,400경에서 B.C.1,000년경까지 약 400 정도의 기간입니다.
사사들은 소위 한 시대의 영웅들이었습니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그 시대가 영웅을 필요로 할 정도의 어려운 시대였음을 반증(反證)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영웅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가 평안한 시대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 가면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정치 상황과 제도가 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말은 특별한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나라가 안정되어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김대중대통령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말은 정치가 제대로 안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선거할 때마다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안정적이지 못한 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고비를 넘겨야 하는 위기 상황이 많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입다라는 사사가 등장하는 시대 역시 극히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혼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그 혼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7절 말씀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팔았다”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환란을 주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상태까지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때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쳐야하는 고통을 안으면서까지 그 백성을 환란 속에 두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이 말씀, 한 시대의 또 다른 영웅이 나타나기 전 그 시대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대적이 강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를 괴롭히면 대적들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약해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대적들을 볼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6-9절 말씀을 봅시다.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학대를 당하니…곤고가 심하였더라”

분명 이스라엘의 범죄가 주위의 적들, 즉 블레셋과 암몬의 세력이 강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법칙을 볼 수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1)시소의 원리를 생각해 봅시다. 시소는 무거운 쪽이 가라앉게 됩니다. 저편에는 항상 우리의 대적이 앉아있습니다. 우리가 적보다 약하면 팅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강하면 적이 팅켜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을 보지 않고 상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사는 것이 힘이 들 때, 왜 세상은 이렇게 살기 어려우냐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타락 이후 처음과 동일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길을 항상 막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이 편하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것입니다.

♬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천국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우리의 몸이 병이 드는 것은 병균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병균은 이전에도 항상 있었습니다. 나의 몸이 약해진 것입니다.

2)또 한 가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관심은 그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백성, 그의 자녀들 외에는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아무리 이방백성들이 세력을 얻고 잘되어 나가도 그들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잠시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나에게 있음을 확신하는 자녀들은 결국 믿음으로 회복하고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

2. 역사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 백성이지 않습니까? 너무나 철면피입니다. 그들은 금방 회개했다가 곧 범죄하고 또 회개했다가 범죄하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사사기싸이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사사기의 구조를 일컫는 말인데 사사기는 사사 한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주기로 해서 ‘범죄-징계-회개-구원’ 즉 ‘불순종-이방인의 침략-곤경에서 부르짖음-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반복주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당대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사사가 일어나고 다음 사사가 또 일어날 때까지는 몇 십 년이 지납니다. 그러니 그들 자신의 당대(當代)에서는 범죄, 회개의 연속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당대에 그들이 몇 번이고 그렇게 한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1)지나간 역사 속의 사건에는 당대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꼭 우리 스스로 경험해야만 아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너무나 많은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쓰라린 경험을 하고 난 뒤에야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말하면 머리가 안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 크게 징계 당한 후에 돌아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영적 둔치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이미 나와 있는 많은 사건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왜 책을 읽습니까? 그것은 간접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교훈은 역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 설교 말씀을 통하여,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주위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조금만 영적으로 감각이 있다면 9시 뉴스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전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고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모신희 선교사의 경우는 우리나라의 9시 뉴스를 보고난 뒤에 tv를 끄고 예배를 드리고 잠에 드는데 그 9시 뉴스에 보도된 사건은 그 날의 기도제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tv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없을까요?

단지 우리의 형편없는 영적 수준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 없이 이원론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입니다.

2)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사기싸이클을 사사기 전체에 적용시켜 말씀하지 않고 한 시대의 사람의 일로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주기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즉, 범죄했다가 하나님이 징계하시면 회개하고 형편이 조금 풀리면 당장 해이해지고 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사기싸이클은 사사기 400년간의 싸이클이 아니라 우리 한 개인 70년의 싸이클입니다.
그러면 이 싸이클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안타까움과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우리는
3. 상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징계를 내리실 때의 하나님의 상하신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애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이 말씀대로 하면 이스라엘은 이제 끝장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대로 안하시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저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화가 나서 하는 말 중에, 정성스레 밥을 해 놓았는데 잘 먹지 않을 때
“다시는 내가 밥해주나 봐라”
혹은 일찍 깨워달라고 해서 일찍 깨워주니 일어나지 않을 때,
“다시는 내가 깨워주나 봐라”

그렇게 말해 놓고서는 이제까지 밥 계속 잘 해주고 있고, 또 아이들 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라는 말이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에게 사용할 때는 ‘화가 풀리면 다음에 또 해줄께!’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이라는 말은 “정말 나 속상해”라는 말인 것입니다.

13절의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의 진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답답하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속이 많이 상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여러분, 하나님께 효자와 효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제 철이 좀 들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철이 들기 시작하면 부모를 조금씩 생각할 줄 알게 됩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나 때문에 이렇게 상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철이 든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파합니다.

“하나님, 속 상하셨죠? 하나님 얼마나 안타까우세요”
만약에 여러분의 기도에 이런 기도가 나온다면 여러분은 제법 철이 든 성도입니다.

이전에 섬기던 한 집사님의 가정에 아이가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면 오토바이를 안 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 벌어 사겠다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학교도 안가고요.
아버지가 사줄 능력이 안 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때가 안 되서 안 사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 부모에게 자기 주장만 늘어놓고 안들어주니 집을 나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철이 없는 녀석이지요.
어떤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께 자기 주장만 해 대고는 안 들어 주니까 시큰둥해지더니 나중에는 교회 안나오는 겁니다. 철없이 집나간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에 이런 주님의 탄식을 담아 주님을 위로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날은 언제입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입니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12]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3]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애1:11-13)

예레미야는 주의 심장을 가지고 울었고 탄식하였습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주님의 위로가 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도 위로가 필요한가?
게세마네 동산에게 기도하실 때 - 인성을 가지셨던 주님이 3번이나 와서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4. 그래도 회개하라 그래도 매달리라.
13-14절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말씀합니까? 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그 다음에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16절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그 결과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고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그리고는 11장에 하나님이 사사 입다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다는 것은 때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입니다. 사유하심을 믿고 또 주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점이 이것입니다. “주님, 그래도 주님 밖에 없습니다!”하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 또 한 번 속아보자”하시고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요, 남편을 용서 못해도 자식들은 용서합니다.
요사이 정치 이야기 말고 또 자주 보도되는 것이 개그 우먼 이경실씨의 남편에 의한 폭행 사건입니다. 남편이 정말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이경실씨는 이혼하겠답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남편의 그 말을 믿을 수도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경실씨에게 그의 아이들이 무릎꿇고 용서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경실씨는 병원에 누워서도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분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이 마땅히 할 일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아이들이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용서를 구하고, 당장 자기 할 일을 챙겨 행하면 부모 마음 다 풀리는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도로서의 본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 전도, 봉사, 건전한 교제.

다른 것 말고 이것에 다시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에 참된 소망이 있고 기쁨과 즐거움 행복이 있습니다. -아 멘-(주후200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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