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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녀의 고통에 귀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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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영 목사 (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저는 부모님의 기대에 짓눌려 숨을 쉴 수도 없을 것 같아요…….”
“때때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날리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생각하곤 해요”
“우리 엄마는 새벽 세 시까지 제가 공부하나 안 하나 지켜보고 있어요. 정말 피곤하고 짜증나요.”
“이번에 평균 5점이나 떨어졌어요. 우리 엄마는 지구에 종말이 온 것처럼 난리예요. 어휴~”
“내신에다 수능 공부에다…….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요.”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지옥 같아요....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가 되고, 기말고사 때 장난이 아니었어요. 시험 끝나자마자 통곡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우리가 뭐, 시험치는 기곈가요?”

요즘 상담실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하소연이다. 그저 단순히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한 푸념 정도가 아니다. 부모의 과잉기대와 과열되는 입시경쟁에 지쳐서 죽고 싶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들을 수만은 없다. 때때로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안증에 시달리거나 아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희망을 품지 않은 어두운 얼굴들을 늘 만나게 된다.

요즘 청소년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거의 없다. 그들에게는 옆 자리 친구들과의 치열한 경쟁과 입시를 위한 투쟁만이 있다. 공교육은 무너지고 학원에서 올빼미처럼 충혈된 눈으로 공부하다 돌아오면 새벽 두 시가 넘는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졸다가 피곤한 몸으로 또다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어깨엔 그네들이 지기엔 너무 버거워 보이는 인생의 짐이 놓여있다.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도 모른 채 그저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중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고생들은 부모의 과잉기대에 허덕이고 있다. 부모는 젊은 날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들의 어깨에 얹어 놓고 채찍질하기도 한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숨쉬기도 힘들어 한다.

이 세상 문화와 요구에 편승해서 자녀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지는 않은가. 꿈과 희망 속에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할 십대들에게 부모의 과잉기대는 오히려 미래의 꿈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지도 모른다. 내신성적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교에서는 변별력을 위하여 아이들에게 과도한 과제물을 요구하게 되고, 아이들에겐 예전에 우리가 누렸던 고교시절의 추억이나 친구관계는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삼중고를 겪으며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힘겹게 지나고 있는 것이다.

잠언 22장 6절을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마땅히 행할 길’이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조차도 ‘마땅히 행할 길’보다는 수능이나 입시를 위해서, 현실의 요구를 위한 행할 길을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오히려 중압감만 더 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압감에 못 이겨 끝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버리고 추락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는 미래의 꿈으로 부풀어 있어야 할 청소년들을 암울한 현실의 쥐구멍으로 몰고 있다.

어린 자녀들의 영혼도 아파하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는 그 또래답지 않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찾아 왔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가 뭐가 그리 우울하냐고 반문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의 우울과 어두운 얼굴은 부모와 가정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물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의 희생자인 경우도 왕왕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나 우울한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덩달아 우울증에 걸리는 아이들이 더 많다.

우리는 어른처럼 자신의 내면을 보다 명확하게 다 표현하지 못하는 자녀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미래를 이끌고 나갈 것이고, 미래의 사회와 교회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 이 소중한 아이들에게 부모의 고통을 대물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부모를 주셨다. 부모는 하나님의 그림자이며 표본이 된다. 부모의 이미지가 부정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 또한 부정적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자녀는 하나님 이미지 또한 폭력적으로 그리며, 무능한 아버지를 둔 자녀는 하나님의 이미지도 무능하게 새겨지게 된다.

부모는 자녀를 선물로 받았다. 이 선물은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인형으로서가 아니라 존귀한 인격체로서 하나님 대신 양육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부모의 품으로 내려온 것이다. 자신의 부모에게 잘못 받은 교육과 태도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녀에게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나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화풀이 대용으로 생각한다면 이 고통의 대물림은 끝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자녀의 영혼의 고통에 귀 기울이면 그들의 소리가 진정으로 들릴 것이다. 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무게와 부모의 과잉기대로 숨막히게 힘든 짐을 지고 허덕거리는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한숨과 더불어 어둡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소리에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진정으로 들어준다면 그들의 아픔은 조금씩 나을 것이며 그들의 짐은 점점 가벼워질 것이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이사야 54:13)”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교훈을 받는 자녀는 큰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이고 형통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평강과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부모는 항상 이 세상의 관습을 좇아 무거운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고통스러운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강선영 목사와 이메일상담 [email protected]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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