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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약의 마지막 별 사도 요한` / 요 2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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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20)  "신약의 마지막 별 사도 요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20)  "신약의 마지막 별 사도 요한"  2002.12.8
요20:30,31

오늘은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20번 째 설교를 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19 번 설교를 했습니다. 수가성 여인과 포로로 잡혀갔던 작은 계집 아이를 비롯해서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에 대해서 설교를 했고 최근에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신약에 나타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랜 동안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서 제일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서 제일 오래 까지 살면서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명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그가 요한 1,2,3서를 기록한 목적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라”(요일1:2). 그가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목적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 요한은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더니”(계1:9). 이제 신약의 마지막 별인 사도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요한은 예수님에게 제일 먼저 온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오려면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좋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나중에 오면 그 만큼 손해를 봅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나중에 예수님에게로 온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저녁 예배 한번 나오는 것이 힘이 들고 새벽기도회에 한번 나오는 것은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힘이 듭니다.

요한은 열 두 제자들 중에서 제일 먼저 예수님에게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튿날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요1:36,37). 요한은 종교성이 있었고 마음이 열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들을 귀가 있었고 볼 눈이 있었습니다. 스승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고 스승이 보라고 하는 어린양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발이 있었습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발로 좇았습니다. 귀와 눈과 발로 주님에게로 온 사람, 귀와 눈과 손과 발과 온 몸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요한은 예수님에게로 와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요1:39).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그 후부터 요한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요한이 있었습니다. 열한 제자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일도 있었고 도마가 예수님을 의심하고 잠시 떠난 일도 있었지만 요한은 언제나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고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14:50).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20:24). 그러나 요한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도, 사마리아 수가성에도, 베데스다 연못에도, 변화산에도, 나사로의 무덤에도, 겟세마네 동산에도, 십자가 아래도, 예수님의 무덤에도,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곳에도,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어디나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밧모섬에 갇혀 있었지만 요한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항상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보니”(1:17, 4:1, 5:1, 6:1, 7:1, 8:2, 9:1, 10:1, 13:1, 14:1, 15:1, 18:1, 20:1, 21:1). “내가 들으니”(1:10, 16:1, 19:1). 요한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참으로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제일 먼저 온 사람이었고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자기를 가리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이 주관적인 판단이었는지 객관적인 판단이었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요한은 자기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제자라고 확신했습니다. 다른 복음서는 요한을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지만 요한복음은 요한을 가리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요19:26).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요21: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요21:20). 요한이 왕자 병에 걸려 있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특별하게 사랑하신다고 느끼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을 수도 없고 사랑을 느낄 수도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요다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굳은 사람, 마음이 닫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고, 베다니 마리아도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고, 눅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도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눕기까지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예수님에게 어리광까지 부렸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다른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을 쳤지만 요한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고 골고다 언덕까지 따라갔습니다. 요한만이 십자가 아래서 마지막까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의 사랑을 믿고 자기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예수님은 요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디베랴 바다가에서 주님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을 세 번씩이나 다짐했지만 요한에게는 아무런 다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주님이 그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요한은 예수님을 가장 분명히 증거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장 분명히 가장 포괄적으로 가장 잘 증거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요한이 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느끼지 못한 것을 요한이 느꼈습니다. 그 중 세 가지만을 지적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요한은 예수님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알파요 오메가이심을 증거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태초란 말을 생각하지도 못했고 알파와 오메가란 말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분이 바로 우주의 시작과 끝이심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시간의 시작과 끝이심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그를 가리켜 말씀 곧 로고스라고 지칭하므로 그분은 유대종교의 완성일 뿐 아니라 헬라 철학의 완성이심을 증거하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또한 그 당시의 역사가 로마 황제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1:17,18). 세계역사의 전개를 기록한 일곱 인의 책을 여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일곱 인의] 책을 취하시니라”(계5:7). 


2) 요한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예수님이 사랑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아마 성경 중에 사랑이란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성경이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일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거듭거듭 증거했습니다. 그 말씀 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이 요한복음 3:16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한경직 목사님이 어렸을 때 동내 어느 집 대문에 요3:16 말씀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부터 한평생 요3:16을 사랑하게 되었고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요3:16 말씀을 증거하며 전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요한 서신에서도 입을 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는 말을 거듭해서 증거했습니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이 사랑이심을 거듭해서 증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증거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세상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었다고 증거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수가성 여인과 간음한 여인과 같은 버림 받은 여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분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는 사랑의 목자라고 증거했습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자기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분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분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


3) 요한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인들이 구원 얻는다는 진리를 증거했습니다.

아마 성경에 믿음이란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성경이 요한복음일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의식의 종교도 공로의 종교도 행위의 종교도 아니고 믿음의 종교입니다. 그것을 나중에 사도 바울이 신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전에 사도 요한이 먼저 증거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종교입니다. 이것을 요한이 증거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요6:4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6).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9:35).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요일5:1).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니라”(요일5:4,5). “믿으면 하겠네”(343장 4절). “믿음이 이기네”(397장 후렴)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저는 요한이 갇혀 있던 밧모섬 계시동굴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요한은 주후 96년경 96세 경이었을 때 그가 사역하던 에베소에서 정치범으로 붙잡혀 에베소에서 50km 떨어져 있는 밧모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요한은 그곳 산 중턱 동굴에 2년 동안 갇혀 있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누어 있었던 곳, 일어나 앉아서 엎드려 기도하던 곳, 그리고 계시 받았던 곳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에게, 역사의 진행과 재림에 관한 마지막 계시를 맡기신 것이었습니다. 구름 타고 다시 오실 주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하늘 보좌에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는 어린양 자신의 모습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은 끝까지 주님을 충성스럽게 증거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며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요한의 마지막 증거의 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의 증거를 통해서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모습과 음성을 생생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우리도 주님을 증거하는 21세기 서울 하늘의 작은 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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