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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 / 겔 18:25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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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
에스겔 18장 25-32절
분당사랑의교회 (이한규 목사)


< 평등한 것과 공평한 것의 차이 >

천 명 정도 되는 교회를 담임하는 두 분의 목사님이 있습니다. A 목사님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사례비를 똑같이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다 같은 하나님의 종이니까 똑같이 평등하게 사례를 받는 것이 바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성도들은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은 부교역자와 사례를 똑같이 받아!"라는 말을 단골메뉴로 삼아 교회를 홍보합니다.

반면에 B 목사님은 부교역자보다 2배 정도의 사례비를 받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B 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그렇게 사례비 차이를 두는 것이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즉 수십 년 동안 교회를 개척하고 섬겨온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사례비에 차이를 두는 것이 공평한 것이지 부교역자와 사례비를 똑같이 받는다는 것은 '선전거리'는 될 수 있어도 공평한 처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례비를 똑같이 받는다고 선전하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다른 보통 사람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드는 비겁한 일이고, 또한 평등과 공평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부교역자와 똑같이 사례비를 받는 A 목사님이 부교역자보다 사례비를 2배나 받는 B 목사님보다 훨씬 더 성자 같습니다. 그런데 A 목사님이 받는 수많은 보조 사례비(사택비, 사택관리비, 목회비, 심방비, 도서비, 보험비, 차량비, 교통비, 강사비, 자녀양육비 등)를 생각하면 실제로 두 분 목사님이 받는 사례비는 비슷합니다. 결국 부교역자와 똑같이 받는다는 말은 선전용이라는 오해를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간혹 교회도 마케팅이 필요하고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인 것 같습니다.

B 목사님과 식사를 마치고 교회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통해 성경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평등'이란 말이 성경에 몇 번 나오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 '평등'이란 말은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공평'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공평'이란 말은 무수히 많이 나왔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하나님은 '획일적인 평등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공평을 원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공평하신 하나님 >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기도 많이 한 사람과 기도 적게 한 사람을 똑같이 축복해주시는 평등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기도 많이 한 사람을 더 축복하시고,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더 축복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힘써 헌신한 사람을 더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행복의 기회와 가능성을 주시지만 행복의 열매는 우리가 심은 대로 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은 "저 사람에게 주신 것을 나에게 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불공평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지 않고 자신에게 준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의 기회는 똑같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인정하고, 또한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와 돌보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은 몇 미터 떨어진 용변기에 앉기 위해서도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땀이 범벅이 되고, 용변을 극도의 인내로 참으며 엄청난 사투를 벌인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을 하려면 온 몸 전체의 힘을 목에 싣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야 간신히 띄엄띄엄 그 말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시에서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 삶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 필요한 태도 >

하나님은 나에게는 '이것'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처럼 각 사람마다 다양하게 주셨기 때문에 세상은 더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평등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을 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오해는 대개 평등과 공평의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가끔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이 시간에 4가지만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기 자신의 길을 더욱 살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게 느껴집니까? 평등과 공평을 오해할 때도 그렇게 느끼지만, 대개 자신이 공평하지 않은 길을 갈 때 더욱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공평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과 29절에서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대개 보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불공평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불공평하게 하나님께서 자기편만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게임을 하는데 반칙을 하면서 심판이 봐주지 않는다고 심판에게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면 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반칙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식의 간증을 듣습니다. "지방에 갔다가 예배에 늦어 시속 160km로 달려 왔는데 하나님께서 사고도 막아주시고, 교통경찰의 손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런 간증을 들으면 어떤 주책 맞은 성도들은 "할렐루야!"라고 습관적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할렐루야'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지만 자식의 불의를 무조건 두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하게 게임을 운영하시고, 법 집행은 똑같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룰입니다. 그처럼 게임을 공정히 이끌지만 게임이 끝난 후에는 "자녀에게 수고했다!"고 해 주시고,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불공평한 길을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삶의 태도가 삶의 높이를 결정하고, 말의 태도가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말은 다섯 마디도 많은 것이고, 불평하는 말은 한 마디도 많은 것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내가 지금 공평한 길로 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불평이 있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자신의 길을 살피는 일입니다.

자기가 엉뚱한 길로 가면서 마치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처럼, 또한 삶이 자기를 속이는 것처럼 불평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어떤 분은 "기도가 안된다!"고 하면서 기도가 안되는 것까지 하나님 책임, 목회자 책임으로 돌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한과 욕심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기도가 됩니까? 머리에는 인어 아가씨나 야인시대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기도가 됩니까? 그처럼 자기는 심지 않고 거두려고만 하고, 결국 거둘 것이 없으면 불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려면 자신의 정의부터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평하심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려면 자신의 태도부터 의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하나님을 공평하지 않다고 하니 하나님께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더 이상 하나님을 억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억울하게 하면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찌 하나님의 도움이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현실만 보고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 눈앞의 어려운 현실만 생각하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최종 결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 더 큰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작은 전쟁에서는 실패해도 인생 전체의 큰 전쟁에서는 승리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눈앞에 펼쳐진 실패는 영원한 성공을 위해서 잠시 등장한 엑스트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가끔 너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거짓말도 못하고, 순해 빠져서 당하기만 하고, 편법을 사용하지 못해서 정도만을 걷다가 어렵게 사는 성도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현실만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저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순해 빠진 삶'이 '손해 보는 삶'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주실 날이 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어떤 분은 "왜 다른 사람은 표적이 많이 있는데 왜 나는 표적이 없을까?"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너무 표적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영혼이 타락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우리 목사님은 표적을 잘 일으키시지 못하니까 표적을 일으키시는 목사님을 시기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구나!" 하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표적을 좋아하면 영혼이 타락한다는 것은 저의 말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기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분의 마음을 깊이 들어가 보면 신랑이신 예수님께 마음이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다른 것을 향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주님은 영적 음란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표적만 보고 수평으로 비교해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기적적인 것'을 찾으려는 본능이 강해져서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지는 않고 나는 가만히 있고 환경만 기적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우상에 빠지고 유혹에 빠지고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기적적인 체험을 통해서 귀신 하나 내쫓고 문제 하나 해결한 후에 일곱 귀신이 들어온 분들이 있습니다. 교만해지고, 판단하고, 교회와 교회 리더를 우습게 여기니 차라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그처럼 체험이 많아 높아지신 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순수한 여러분들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수록 표적을 찾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씨앗을 뿌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표적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비로소 진짜 하나님의 표적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기가 어려울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우직하게 내 영혼을 지켜서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고, 마침내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고 기다리십시오. 아무리 다급해도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자매는 치한에게 폭행 당하는 그 다급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현장에서 막아주시지 않았다고 겁쟁이이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 곁을 떠났습니다.

물론 그 자매의 상처가 크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도 '뺨 한 대 맞은 사건'으로 작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반전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상처는 없습니다. 문제는 상처를 영원한 상처로 만드는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과거의 상처를 믿음으로 극복하면 상처 이상의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축복이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3. 다른 사람과 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것에 집중해서 살면 그 인생은 더 어렵게 됩니다. 받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이 의도적으로 내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비교의식에 빠져서 열 받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비교의식은 나를 왜소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나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의 온갖 불행은 비교의식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비교의식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만의 특징을 주셨고, 나만의 장점을 주셨고, 나만의 행복을 조건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공평한지는 우리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줄 때 같은 것을 사 줄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더 기쁨을 주려고 나이와 성향에 맞게 다른 선물을 사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대개 좋아하지만 가끔 한 아이가 자기가 받은 선물이 맘에 안 든다고 삐치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부모의 공평한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도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처럼 마음 아파하시지 않겠습니까?

장애로 태어난 것이나 배고픈 나라에 태어난 것 자체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고픈 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더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은 것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환경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내가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천국에서는 더 칭찬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생 장애자로 살면서도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 온 사람을 하나님은 "수고했다!"고 크게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주어진 현실에 대해 조금 더 감사하며 사십시오. 조금 없으면 어떻습니까? 지금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금 겁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하철 타기가 겁나고, 한강 다리 건널 때마다 겁나고, 백화점 무너질까봐 겁나고, 큰 건물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고, 내가 먹는 소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아닌가 겁나고, 내가 먹는 식품이 유전자 변형 식품이 아닌가 겁나고, 내가 먹는 게가 중국산 납 꽃게가 아닌가 겁나고, 휴대폰 쓰면서 전자파 때문에 치매 걸릴까 겁나고, 자동차 시동을 걸 때 급발진 할까봐 겁납니다. 그런 수많은 겁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너무 없는 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조금 배짱을 가지십시오. "없으면 어때! 내게 이것이 있잖아!"하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어떤 신앙이 좋은 분은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처럼 잘못이 많은 사람을 이렇게 끝까지 품어주시고 사랑해주시니 하나님은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는 공평하지 않으신 하나님 같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내게 없는 것으로 비교하여 불평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부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끔 어떤 분이 힘들어할 때 누군가 위로해줍니다. "집사님! 힘들지요! 저도 마음이 아파요!" 그때 힘든 상황에서도 미소로 "그래도 행복해요!"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부자인지 모릅니다. 사람의 눈에는 우리가 불행하게 보여도 우리 자신은 행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행복은 행복을 추구하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생각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행하게 여겨도 "하나님은 참 공평하셔!"라고 감탄하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할 때 공평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행복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4. 사회의 불공평을 치유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삶이 불공평한 것 같으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고 낙심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어 공평함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탄식만 하지 마시고, 내 것을 나누어주면서 공평한 사회를 향한 꿈을 꾸십시오. 사람은 탄식하면 그만큼 늙어가지만 꿈을 꾸면 그만큼 젊어져갑니다.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 장애로 살아가는 분들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진정 공평한 것을 원한다면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왜 공평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971년에 선포된 유엔 장애인 권리 선언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장애인에게는 우리보다 우선적으로 배려 받을 권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장애인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의무가 있다."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무보다 권리를 앞세우며 살지만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권리보다 의무를 먼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이고, 사회는 더욱 공평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하늘의 만나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다(출 16장)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나눔과 섬김'을 통해 공평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조금만 생활이 어렵다고 하나님의 공평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일이 아니라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최선을 다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백혈병에 걸린 찬수 학생을 힘써 돕자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5명이 헌금을 해주었습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얼마나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인들은 그 일에 더욱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선교위원회에서도 따로 지출을 하겠지만 여러분들도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분수에 맞게 살되,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는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선교와 구제에 들어가는 재정을 조금 줄이고 자체 성전을 빨리 가지고 싶다는 꿈을 가진 분들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쓰기에 부족한데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주제에 저런 식으로 하면 건축은 언제 하나?" 하고 투덜대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빨리 자체 성전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건축이 늦어져도 선교와 구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식으로 미루면 선교와 구제는 언제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건축을 잘 하나?"보다 "선교를 잘 하나?"에 더 관심을 가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민감하기보다 어려운 자의 형편에 더 민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살필 때 공평하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우리의 꿈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힘써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인간의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사랑을 주고 키웁니다. 그처럼 사랑하는 자녀가 자라서 갱단의 멤버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길거리의 창녀가 되어도 부모는 여전히 그 자녀를 누구보다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매일 술을 끊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밤마다 때리고 칼로 위협해도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이 불쌍해서 집을 떠나지 않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마음이 수천 배로 증폭되어 우리에게 향해진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공평하고, 공평하지 않고를 따질 것도 없습니다. 받을 것을 이미 다 받은 사람이 어떻게 공평함을 논하며 불평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께 더 맘에 드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그런 모습이 어찌 바람직한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모든 불평을 멀리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좋아 나보다 힘든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쳐서 의와 공평이 넘치는 사회를 이루는 초석의 역할을 감당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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