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베드로의 일생 ① : 장차 게바라 할 사람 / 요1:35~42

  • 잡초 잡초
  • 849
  • 0

첨부 1


< 제 목 > 베드로의 일생 ① : 장차 게바라 할 사람
< 본 문 > 요1:35~42
< 설 교 > 홍문수 목사 : 신반포교회


금주부터 교회력으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넉 사(四), 열흘 순(旬) 자 사순절로 부활절 이전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3월 5일부터 4월 19일까지입니다. 특별히 사순절이 시작되는 3월 5일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부릅니다. 이것은 과거 교회 역사 가운데 사순절을 시작하며 머리에 재를 끼얹음으로 회개를 상징하는 의식을 거행하던 데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 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고, 기도와 말씀 묵상, 절제와 구제 등 경건한 삶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금번 사순절 기간 중에는 베드로의 일생에 관한 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의 일생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생애와 고난을 묵상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아주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성경 인물들 중에 가장 평범한 사람 중 대표자인 동신에 가장 위대한 사람 중 대표자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함은 베드로 자신의 고유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어진 위대함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성경 인물을 연구할 때 유의할 핵심 사항(key point)입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외없이 연약한 죄인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예수님만 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인물들의 위대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으로부터 온 위대함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는 조련사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인물에 관한 말씀을 살펴볼 때 겉에 보이는 인생 스토리만 건성으로 보면 안되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봐야 합니다. 베드로의 일생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위인전 읽는 것만도 못할지 모릅니다. 베드로 속에서 나 자신을 오버랩 시켜 보시고, 베드로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나 자신에게 이 말씀이 큰 위로와 소망이 되고,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 베드로를 그토록 위대하게 변화시킨 예수님이라면 내 인생 가운데도 그런 비슷한 일을 나에게도 허락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사순절 기간 중에 베드로의 일생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런 변화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 보니까 시몬(베드로의 본명)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납니까? 동생인 안드레의 전도를 받습니다. 안드레는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그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는 예수님과 하루 동안 지내면서 그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맨처음에는 그저 훌륭한 선생 정도로 생각하고 ‘랍비’(=나의 큰 자)라고 불렀는데(38절), 이제 예수님을 만나보고 메시야인 줄 깨달았습니다. ‘메시야’는 본래 히브리어로 헬라어의 ‘그리스도’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메시야와 그리스도라는 말
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는 세 가지 직분자에게 기름 부어 직분을 맡겼습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
03/03/02 주일낮예배(0310) 2

다. 여기서 기름은 물론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직분을 다 갖고 있습니다. 왕으로 인류 역사를 다스립니다. 제사장으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선지자로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 메시야는 구세주란 뜻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이 메시야인 줄 알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자기 형인 시몬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전도를 한 것이죠. 이렇게 해서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첫 만남에서 예수님은 한눈에 시몬을 파악하시고, 그의 미래까지 예언해 주십니다. 42절.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은 분명히 그날 처음 시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알아보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시고’라는 단어가 특이합니다. 이 단어는 ‘(관심을 가지고) 응시하다’ ‘주목하다’ ‘유심히 보다’ 등의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신적인 통찰력을 갖고 계심을 나타내 줍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십니다. 게바! 이 말은 아람어로 ‘반석’이란 뜻입니다. 이 말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뜻입니까? ‘시몬’의 미래는 ‘베드로’가 될 것이란 뜻입니다. 이를 가리켜 ‘예언적 개명’(改名)이라 합니다.
예> 아브람(큰 아비) →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인류의 아비)
사래(공주) → 사라(왕후, 왕들의 어머니, 열국의 어미=인류의 어미)
야곱(발뒤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 →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가 무엇입니까?

[1] 시몬을 통해 본 ‘나’

예수님이 본 시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시몬’은 듣는다는 말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아마 이런 저런 소리를 듣고 흔들리고 변덕스럽게 반응을 보이는 그의 성품을 암시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실제로 복음서를 보면 시몬의 성격이 아주 특이합니다.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고, 늘 행동이 앞서고, 실수와 약점 투성이입니다. 더구나 인간 조건을 보면 더 형편없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입니다. 배우지도 못한 불학무식자입니다. 한 마디로 ‘밑바닥 인생’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그렇고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육신을 위해 먹고사는 데 급급하다가 끝날 인생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많은 인생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습니까? 물론 겉 보기에는 시몬보다 인간 조건이 조금 나을지 모릅니다. 돈도 좀 더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좀더 높고, 공부도 좀더 많이 했고 ...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의 차이일 뿐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살다가 가버리는 인생들이 아니냐 말입니다. 마치 다람쥐 쳇 바퀴 돌 듯이 ... 시몬이 그랬던 것처럼 매사에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흔들리고 좌충우돌하다 결국은 허무하게 인생을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
03/03/02 주일낮예배(0310) 3

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pass away) ... ”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전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이렇게 마칠 수는 없습니다. 나도 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시몬처럼 살다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변화입니다. 변화가 필요합니다. 시몬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 변화를 주시는 분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2] 베드로를 통해 본 ‘나’

예수님은 시몬을 보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고 무시한다든지, 정죄한다든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속에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손으로 시몬을 붙들고 새롭게 변화시킬 뜻과 계획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아주 간단하게 게바 곧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특성과 인격을 나타내죠. 예수님이 그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는 것은 그의 인격과 삶을 바꾸어 주시겠다는 의도입니다.

‘베드로’는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반석’이죠.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바위 ‘반석’입니다. 견고한 신앙의 소유자, 하나님이 맡겨주실 사명에 목숨 걸고 충성을 다할 사람, 그래서 주 안에서 영광을 얻을 사람을 의미합니다.

정말 베드로는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시몬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흔들리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길에 붙잡혀 3년 동안 훈련을 받고,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체험한 후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정말 사명을 위해 목숨 바쳐 순교한 사람입니다.
예> '쿼바디스‘(생캐비치 作) - 네로 황제의 박해 시 성도들이 베드로를 아껴 로마 시내에서 내보냅니다. 한참 가서 시내를 막 빠져 나오는데 반대편에서 어떤 사람이 황급히 로마 시내를 향해 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네가 버리고 가는 로마로 간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크게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합니다.“ 그후 베드로는 인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사람의 하나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이 붙은 교회당이 무수히 많고, 그를 연구하는 논문이 무수히 많고, 얼마나 유명한고 하면 성지를 방문하면 베드로의 인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잡히는 고기 중 ‘베드로 고기’라고 이름이 붙여진 고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맛도 별로 좋지 않고 생긴 것도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잡어(雜魚) 정도에 불과한데도, 순례자들은 너도나도 그 고기를 먹어봅니다. 그만큼 베드로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평범한, 아니 천하기까지 한 시몬이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인물베드로가 될 수 있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변화시켜주신 것입니다.

① 영생을 주심 :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인생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새 생명이 된 것입니다.

②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심 :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죄로 물든 성품은 다 제거하시고 예수님을 닮은 아름다운 성품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예> 예수님은 용광로 - 양은 그릇 찌그러지고 땜질한 것을 녹여서 새 그릇으로 만들 듯이 인간성을 완전히 새롭게 만듭니다.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③ 사명자로 변화시키심 : 막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고기 잡다 죽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하루에 3천명, 5천명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비단 시몬 베드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미 부분적으로 체험한 바 있고, 교회 역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체험을 했는지 모릅니다.
예> 김익두 목사 ‘한국의 무디’ - 일제 시대 황해도에서 악명 높은 깡패 ... 매일 시장에 가서 행패 ... 행인들에게 폭력 행사 ... 주화판 엎어버리고 ... 주막에 가서 공짜 술 먹고 주정하고 ... 사람들이 그 꼴 보기 싫어서 시장에 가지 않을 정도 ... 서양 선교사가 전해준 전도지 보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놀랍게 변화 ...
공산당에게 순교 당할 때까지 50년 동안 복음 전도 ... 수많은 기적 행하고 ... 사람들이 기적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칭송하면 ... “정말 큰 기적은 이 김익두가 이렇게 변화된 것입니다.”
예> 거친 바위 돌이 조각가의 손에 들어가면 ... 정으로 쪼으며 다듬으면 멋진 작품이 되듯이 우리 인생도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면 어떤 인생 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분을 믿고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아직도 많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시몬도 단번에 베드로가 된 게 아닙니다. 시시때때로 예수 사람 시몬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
시고 사랑하시고 인내하심으로 결국은 위대한 베드로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용납하고 인내함으로 더 큰 변화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자녀들, 가족, 이웃들 가운데 어떤 변화의 역사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잔들이 혹시 엉터리 같고 말썽꾸러기 같을지라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변화됩니다. 놀랍게 변화됩니다. 안드레가 시몬을 베드로로 변화시키는 데 출발점을 제공했듯이 우리도 우리 자녀들이나 이웃에게
03/03/02 주일낮예배(0310) 5

그런 출발점을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예> 독일의 어느 학교 교장 선생님 - 매일 아침 교실에 가서 아이들에게 모자를 벗고 깎듯이 인사 ... 왜 그런가 질문했더니 ... 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인물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 그 중에 역사를 바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 전도는 이렇게 위대한 일입니다. 안드레보다 베드로가 더 위대한 인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안드레 없이는 베드로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드레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입니까?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베드로만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안드레 역시 못지 않게 훌륭한 인물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믿음의 부모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시고, 더 나아가 우라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는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변화 받고,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이 세상이 변화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