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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타적 신앙 / 창 25:23, 마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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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타적 신앙
                      창세기 25:23, 마태복음 5:44
                    서울교회(www.seoulch.or.kr) 배성산 목사


미국에 있는 한국 교포사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미국 학생과 교포 학생이 나눈 대화입니다. 같이 수업을 듣던 미국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나라는 망하고 있어 신혼 부부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한다며?’하고 말하자 미국 친구는 즉각 반문합니다.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지 너희 나라 주부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남편에게 매 맞고 산다고 뉴욕 타임스에 났던데, 맞지? 우리가 이혼율이 높은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여자들의 독립심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지. 미국의 숭고한 가치 중에 하나는 독립이거든 우리는 국가나 개인이나 독립을 침해 받으면 못 참아!’ ‘그렇게 독립을 침해 받는 것을 못 참는 너희가 남의 나라에 독립은 너무도 쉽게 침해하고 있지, 예컨대 말이야, 너희 미국이 우리나라 한국 군대의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는 것도 그런 것 아니야?’ 미국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뭐라고? 우리 미국이 너희 군대의 작전 지휘권을? 금시초문이네, 아니, 너의 한국 국민들은 그런 굴욕을 어떻게 참고 있니 그래?’

5년 전 우리의 대통령선거에서 만약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면, 50년 만의 정권 교체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만큼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 기피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습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지에서는 ‘병역문제에 분노한 주부들이 달력의 12월18일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이회창 떨어뜨릴 날이여, 어서 오라고 벼르고 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자기 자식이 특권층 자식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는 그렇게 분노하는 국민들이 왜 자기 자식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군 작전지휘권이 미국의 손에 있다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을까? 여중생이 전차에 깔려 죽는 모습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도와 같이 일어나 촛불시위를 하는데 미국이 두려워서 오히려 미국을 두둔하고 그들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우리의 작태 또한 IMF 경제 신탁 통치에 대해서는 욱! 하면서도 왜 작전지휘권을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마워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수주의를 좋아 합니다 자유주의나 급진주의를 선호하는 경향도 없지는 않지만, 기대하지 않던 변혁이나 혁명이 가져오는 갑작스러운 혼란에 당황해 하기 보다는 충격이 작은 보수주의를 생리적으로 좋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수주의를 좋아 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이고 자연스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교회도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많은 종파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교파가 있기에 다양한 신학적 입장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신학을 내세우는 교파가 있는 반면에 자유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중도 노선을 걸어가려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대해 보수적 배타주의의 색깔을 지닌 신학을 요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다수의 평신도들과 그들을 지도하고 있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두 보수적 배타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보수주의를 추종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그 이유를 성서에서 찾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서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최종의 기준이 되는데, 바로 그 성서가 보수적 배타주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통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성서의 자구를 근거로 해서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 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본다면 그들이 보수적 배타주의를 견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성서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찾는 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다양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적 배타주의를 견제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우리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선 이슬람을 생각해 봅니다. 이슬람은 세계 영토의 4분의1을 점유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대로는 2025년이 되면 이슬람교도가 기독교 인구를 초과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막강한 교세를 등에 업고 이슬람은 곳곳에서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곳에서는 개종을 거부한 그리스도인 90명을 이슬람교도들이 살해했다는 보도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정도만 약할 뿐이지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도 이슬람 원리주의, 즉 이슬람의 보수적 배타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보수적 배타주의는 문화적으로 볼 때 만인의 경외의 대상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될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텔레비전을 통해보다 적나라하게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아프가니스탄의 스타일 ‘부르카’로 얼굴과 전신을 가리고서 은둔생활하고 있는 이슬람의 여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보수적 배타주의를 보았습니다. 이슬람이 문명적으로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슬람 보수주의와 그것에 근거한 문화적 배타주의가 너무나 편협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이슬람의 보수적인 배타주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우선 기독교가 이슬람식으로 여전히 타 종교에 대해 배타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같은 수준의 종교 집단이라고 낙인찍을 것은 불을 보는 것처럼 뻔한 일입니다. 실제로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주의가 지구 곳곳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것 역시 만인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보수적 배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것을 견지하지 않으면 결코 타종교인들을 상대로 선교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교회가 보수적이지 않으면 부흥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매우 독선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독교의 독선주의가 기독교를 낡고 시대착오적인 종교로 보게 만들며 나아가 타종교인들이나 비종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기독교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폐쇄적이고 아집이 가득한 문화적 낙오자로 비치게 함으로써 사회 내에서 기독교가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습니다. 미국 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심정적으로 대 이라크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분위기상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라크 공격을 통해서 전 세계 테러 국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이슬람권에 대한 기독교 세계의 우의를 과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반전 운동과 함께 서서히 복음주의 기독교권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종교계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시 대통령이 이토록 대 이라크 전쟁에 집착하는 이유를 종교적인 신념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부시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과거 십자군 전쟁과 같은 ‘성전(聖戰)’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전쟁은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간의 대결, 즉 문명 간 충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라크는 전체 인구의 96%가 이슬람 신도인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전체 인구의 0,0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기에 미군의 진격 자체가 역설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쿠웨이트 등 이라크 주변 사막에 주둔 중인 미군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신앙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을 앞두고 병사들이 더욱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는 등 사막의 영적부흥이 이뤄지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인들만큼 애국심이 강한 국민도 보기 힘듭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반전목소리가 드높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미군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일치단결해서 승리를 기도할 것이라고 종교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 보다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 가는 것이 요즘 미국 종교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더구나 복수는 주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북한과 남한의 관계는 날로 긴장이 높아져만 가고 있습니다. 핵 문제가 세상을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3년 한반도의 위기는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부시 정권은 94년에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클린턴 정권이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북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부시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에 대해 조기 핵사찰 등을 포함한 제네바 합의 이행 개선을 요구 하였습니다. 아울러 재래식 병력의 후방배치 문제까지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부시 정권은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선제 핵 공격 대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에 비해 2003년에 닥쳐올 위기를 예견한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를 2003년까지 유예하겠다고 선언하여 대미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안으로는 신의주 경제특구, 금강산 관광 특구, 개성공단 개발 등의 조치를 취하고, 밖으로는 남북간 도로와 철도연결 등을 포함한 다방면으로 남북 교류 협력을 활성화하고 정상 회담을 통한 북일 국교 정상화, 러시아, 중국, EU 등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였습니다. 북한의 주도적 조치로 한반도와 동부 아시아에 화해와 협력 움직임이 급진전되자 미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자국의 지배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에 제동을 걸게 됩니다. 북핵 문제는 바로 그 수단인 셈입니다. 지금의 미국 정부는 대외 정책에서 이라크의 침공을 눈앞에 두고 갖은 수단을 펼치고 있습니다. 유엔도 프랑스도 독일도 러시아도 반전 운동에 뜻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 주간부터는 사순절입니다. 3월 5일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수요일”입니다. 교회의 교회력은 이날에 종려가지를 태운 재로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 성회수요일을 기하여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반전 평화 시위운동을 펼쳤습니다. 이것은 미국에 있어서 매우 드문 시위입니다. 이것은 세계 안전 평화 운동의 새로운 역사가 씌어지고 있음을 알려 주는 사건입니다. 지난 2월 15일 전 세계 100여개 나라 600여개 도시에서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평화의 전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역사적인 시위를 전개하였음을 보았습니다. 반면 전 지구를 뒤덮은 이 도도한 반전 평화의 물결은 전쟁 광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게 되었고 부시의 추종자들은 조롱과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지구를 뒤흔드는 반전 평화의 물결에는 국가와 인종 종교와 나이를 뛰어 넘어, 6대주의 세계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데스몬드 투투, 귄터 그라스는 물론 각국의 현직 장관과 국회의원, 정당 대표들이 나서고 있고, 가수 마돈나, 배우 더스틴 호프만, 리처드 기어, 로저 무어, 감독 스파이크 리 등 유명 연예인들도 속속 반전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에 민주당 김성호 의원 외 3인이 반전, 반핵, 평화 운동인 인간방패에 참여하여 이라크의 정부 관계자와 만날 계획을 가지고 이라크를 출발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안보의 불안과, 미국의 군사 행동에 대한 관계 개선을 위한 그들의 의지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미국이 여전히 중동지역에 빠른 속도로 전력을 증강하고 있음은 무슨 뜻인지 헤아리게 됩니다. 미국은 무려 20만 명 이상의 미군을 걸프 지역에 파병시키고 3월 안에 개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광분하고 있는 부시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겉으로는 이라크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라크의 방대한 석유 자원에 대한 세계 패권 장악에 속내가 있습니다. 무기 사찰과 무장 해제의 차원을 넘어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유엔과 IAEA의 사찰단이 대량 살상 무기에 관한 확증을 제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 사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고, 이라크도 이에 협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입니다. 세계 2위 매장량의 이라크 석유 관할권 문제가 21세기 에너지 절약의 핵심이라고 여기고 있는 부시 정권은 후세인을 축출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에 성서의 본문은 구약의 복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복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비롭고 관대하게 대할 것을 말씀합니다. 원래 율법은 공정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지른 죄의 크기 이상의 대가를 범죄자에게 강요하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보복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손해를 기꺼이 감수 하라는 태도로 율법을 재정립하셨습니다. 복수는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뿌리 깊은 분쟁이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왼편 뺨도 돌려대기” 위해 믿음과 사랑이 요구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해 올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에 따라 생각하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구약의 복수 규례를 초월하는 새로운 사랑의 계명으로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기 위함입니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본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처럼 자녀 된 자들도 그 행하심대로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세계 교회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공동체 속에서 민족만을 국익으로 삼고 강대국의 횡포를 펼치려는 의도에 제동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의 현안에만 급급한 국수주의적 배타주의는 교회가 막아야 합니다. 분열과 갈등의 20세기는 제 1,2차 세계대전으로 족합니다. 새 천년, 21세기는 화해와 협력의 세기입니다. 이데올로기로 주지주의를 넘어 시공간이 하나로 되는 지구촌 공동체는 이제 사랑의 힘만이 시대적 부응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복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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