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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Ⅲ / 행 13:4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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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두교회 / 조석연 목사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 Ⅲ(사도행전 13:4 - 14)

하나님께서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는 이방 세계에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의 전진 기지요 중심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서 이방 선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 할 것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 교회에 부흥을 주셨습니다. 11:21절에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엄청난 부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행 11:24절에도 보면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큰 부흥뿐만 아니라 13:1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훌륭한 일꾼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시고 큰 부흥을 주시고 또 많은 일꾼을 세우신 이유는 결국 복음 전파를 이방 땅에 선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주목하여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교회를 부흥케 하신 이유가 좋은 일꾼을 많이 세우신 뜻이 바로 선교였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즉 왜 하나님께서 선두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 전파입니다. 선교입니다.그러면 안디옥 교회의 선교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1. 성령께서 주관 하셨습니다.

13:2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선교 명령과 선교사를 세우는 일을 성령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 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선교사들의 걸음을 친히 주관 하셨음을 말씀하고 잇습니다. 또 본문 9절에 보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 라고 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의 사역을 성령께서 친히 감독하시고 이끌어 가셨음을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선교는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일 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하나님 사역>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믿으시기 바라랍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들이 한 분 있었는데 그 아들은 선교사 였다> 예수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예수님은 선교사였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선교사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복음 전파에 전념하시다가 마침내 순교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선교 할 때 교회이며, 교회가 선교중심 일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시며, 교회가 선교에 전념 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 사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였으며, 하나님은 그교회의 선교 사역을 친히 주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성령사역 즉 하나님 자신의 사역입니다. 그렇다면 선교는 반드시 되고야 마는 일 입니다. 안될 수가 없는 일 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퍼져 나가는 교회)


2. 긴급성을 띠고 진행되었습니다.

본문 4절~ 6절 말씀을 보면 마치 위급 환자를 구원하러 달려가는 구급차를 연상케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그리고 거기서 구브로 섬을 다스리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를무당의 손에서 구원해 냅니다.

성도 여러분,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을 무당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달려가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무엇을 연상 할 수 있습니까?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달려가는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선교의 특성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보여준 선교의 패턴입니다. 선교는 긴급성을 띠고 진행되는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은 거짓 선지자요 무당인 바 예수란 자에게 넘어갈 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마치 죽어 가는 사람을 구원하러 달려가는 의사처럼 화급성을 띠고 진행되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는 다음으로 미루거나 훗날로 연기해서는 결코 안 되는 생명사역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어찌 죽어 가는 환자를 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 환자 치료를 연기하거나 미룰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바로 가야 합니다. 즉시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의사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런 의사는 돌팔이거나 악덕 의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선교도 이런 화급성을 띠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를 연기하거나 뒤로 미룬다면 그 교회는 참교회가 아닙니다. 엉터리 교회이거나 이름뿐인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교회 건축을 하면서 선교를 멈추거나 건축 후에 하기로 결정합니다.

성도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건축된 교회를 하나님은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죽어 가는 환자가 있는데 병원 가는 것을 미루고 집수리를 한다면 그것이 맞는 일 입니까? 우선 순위가 바뀌면 모든 것이 잘못 됩니다.

258 < 너 빨리 생명을 던지어라 형제여 너 어찌 지체하나
      보아라 저 형제 빠져간다 이 구조선 타고서 속히 가라
      너 어서 생명 줄 던지어라 저 형제 지쳐서 허덕인다
      시험과 근심의 거센 풍파 저 형제를 휩쓸어 몰아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사랑하는 선두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함께 지금 선교회원이 됩시다. 나의 기도 때문에 내가 드린 헌금 때문에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들 때문에 오늘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주께 돌아온다면 이 보다 더 귀한 일이 있습니까?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가고 있을진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 전도는 긴급성을 띠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루라도 더 빨리 복음을 전해 주지 않으면 그 만큼의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긴급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3. 전투적 성격을 띠고 진행되었습니다.

본문 7절부터 12절까지는 피나는 전투 장면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총독 성기오 바울이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니까 박수 엘루마는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는 내용이 7절과 8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 바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서기오 바울을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바 예수라는 무당은 서기오 바울을 놓지 않으려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겠지만 옛날 장비가 발달하지 못할 때는 수중에서 작업하는 어부들이나 바다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중에 들어갔다가 거대한 낙지에게 잡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낙지는 사람을 끌고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그 사람과 연결된 줄을 잡은 배 위의 사람들은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낙지의 힘이 세면 그 사람은 낙지의 밥이 되는 것이고 밧줄을 댕기는 사람들의 힘이 세면 그는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럴 때의 싸움은 처절하다는 것입니까 살려 내느냐 죽이느냐를 결정짓는 이 투쟁은 정말 생명을 건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는 전투적 성격을 띠고 진행되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지면 끝장입니다. 전투에서는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힘이 듭니다. 희생이 따릅니다. 때로는 피를 흘려야 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래야 죽어 가는 자를 건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 증거 하는 선교에 희생 제물이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 대문에 우리가 복음을 받아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복음전파를 위하여, 선교를 위하여 전장으로 나아가는 병사들 같이 싸우러 가야 합니다. 내가 못 가면 보내기라도 해야 합니다. 유명한 "윌리망 보든"선교사. 그는 명문 예일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수많은 재산과 명예를 뒤로하고 선교지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나의 생애를 조금도 남김 없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조금도 후회 없이 바치겠노라>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복음은 온 세상 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는 전투적 성격을 띠고 진행됩니다. 사느냔 죽느냐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결정짓는 한판 승부의 전투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는 환난이 잇습니다. 고난이 있고 희생이 있습니다. 사탄의 무서운 공격이 있고 그 가는 길은 거친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복음 증거 자는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주께서 당신의 일을 수행하는 종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되 주의 종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사방으로 우김을 당하여도 또는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절대로 패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교 즉 복음증거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4. 은혜와 기적의 사역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란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이하에 보니 성령 충만한 바울이 박수무당 즉 총도 서기오 바울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를 향하여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이의 원수이며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떨어 인도할사람을 두루 구하는 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본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침을 기이히 여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총독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이긴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 <무당의 눈이 갈림으로 총독의 눈이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전파 즉 선교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래서 기적을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전도하는 이를 축복합니다. 선교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하소연과 불평이 섞인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한참을 흐느끼며 기도를 하는데 문득 자기 앞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예수님께서 종처럼 무릎을 꿇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밤새도록 회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잇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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