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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대화를 하자 / 왕상 1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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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화를 하자
왕상12:1-20
한남제일교회 (오창우 목사)


오늘은 `대화`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대화라고 하는 것은 국어 사전에 `마주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
다. 대화, 이야기하는 것이 잘 되는가? 부부간의 대화, 부모자식간의 대화, 이웃간의
대화가 잘 되는가? 서로 잘 통하면 마음이 기쁘고 행복을 느낀다.

대화를 잘해야 한다. 대화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대화를 잘 하려
면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의 마음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
은 높고 낮음의 차별이 아니고 개성의 문제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각 남자끼리
다르고, 여자끼리도 다르다. 식성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그래서 소위 문화
적 차이가 있고 문화적 충돌이 있는 것이다.

고양이와 개가 만나면 싸운다. 그것은 싸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세우고 흔들어대고, 반대로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내린다. 반면에 고양이는 기분이 좋
으면 꼬리를 내리고, 경계할 때 꼬리를 세운다. 대화라고 하는 것은 항상 나와 저 사
람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나와 저 사람이 같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

오늘 성경 본문에 두 사람의 대화가 나오는데,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대화이다.
르호보암이 아버지 솔로몬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어 세겜성에 갔는데,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본래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세겜에 간 것은 이스라엘의
왕 제도는 일반나라의 왕 제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왕은 무소부재한 권력
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그렇지 않다. 최고의 통치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외
국의 왕처럼 무소부재의 권력자는 아니다. 왕이 되려면 적어도 두가지의 절차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아야 한다. 제사장과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
다. 어떻게 보면 제사장과 선지자보다 못한 것이 왕이라 볼 수도 있다. 사울도 기름부
음받았고 다윗도 기름부음 받았고 솔로몬도 기름부음 받았다.

다시 말하면 철저히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정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하
나님이 인정할 때에는 왕이지만 버리면 끝이다. 사울이 하나님께 인정받았을 때에 왕
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버리시자, 왕도 끝난다. 하나님이 선택하실 때 목동소년 다윗
도 왕이 될수 있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왕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열두족장들의 인정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다윗이 사십년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라를 다스렸지만, 처음 7년 6개
월은 다윗지파, 다시 말하면 유다 지파, 부족의 왕이었을 뿐이다. 삼하2장에 나온다.
사울이 죽고 난 후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갔다. 그래서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과 유
다지파 부족의 왕인 다윗이 계속 전쟁을 했다. 전쟁을 오랫동안 하면서, 삼하3장에 다
윗의 집은 강해지고 사울의 집은 약해졌다고 했다. 결국 사울의 집은 망하고 다윗의
집만이 남는다.

그후 삼하5장에 보면 북쪽 열지파 동맹이 다윗을 왕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이때 통일
왕국을 이루고, 다윗이 통일왕국을 다스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다. 그리
고 그곳에 왕궁을 짓고, 하나님의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을 만들어서 영적으로, 육적으
로 완전한 왕의 기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왕국에서 33년을 다스린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백성들의 인정이라고 하
는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왕이 되는 것이다. 그 후 솔로몬이 아버지의 뒤를 이
어 왕이 되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증거인 기름부음을 받는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하
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솔로몬의 말년
은 하나님께 버림받는다. 사울 임금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처럼 그가 하나님을 버
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솔로몬 임금을 버렸다.

왕상11: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
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
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솔로몬이 나이가 많아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여인들이 섬기는 신을 따랐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서 마음이 돌아섰다.

왕상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


하나님이 솔로몬을 버리셨다.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백성
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부인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이다. 천명의 부인을
가졌다. 왕의 부인이면 적어도 왕궁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상당히 전략적
결혼이다. 외국과 동맹을 맺는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미국이 전
쟁을 일으키면 그 전쟁분담금을 내야 한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와 동맹
을 맺은 나라가 전쟁분담금을 내게 되어 있다.

솔로몬은 외국과 동맹을 적어도 1000개 정도 맺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부
인들은 정치적동맹의 관계이기 때문에 전쟁분담금을 내야 하고, 이들의 부인들을 위해
서 왕궁을 지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왕의 부인이기 때문에 왕궁을 지어주어야 한
다. 초막집을 짓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는가?

솔로몬이 나라를 열둘로 나누어서 행정관을 두어서 그 행정관을 통해서 엄청난 세금을
걷어 들인다. 만약 세금을 내지 못하면 몸으로 노역을 시킨다. 자기 농사도 못짓고 노
예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왕을 만드시면서 가장 염려했던 대로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 밑에 살았던 인생들은 너무나 고달팠던 것을 알게 된
다. 북쪽의 열지파는 다윗때도 똘똘 뭉쳐 다윗과 유다지파에 대해서 늘 대항을 했다.

이 솔로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북쪽지파의 대표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대적하게 되
는데, 이것이 실패해서 애굽으로 피난갔었다.

솔로몬왕이 죽자, 북쪽 사람들이 여로보암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이것이 2-3절이다.
12:2-3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잇는 중에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
게 말하여 이르되

그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늘의 대화
는 엄청난 실패를 가져온다. 나라가 둘로 나뉜다. 그러면, 와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다.

12: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
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는 것이 새로운 왕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어려운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고 사랑해달라는 것이다. 왕의 지혜나 왕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아내는 나 남편을 향해 무엇을 기대할 것 같은가? 여러분의 남편은 나 아내
를 향해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여러분의 자녀는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부모는 자식에
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목사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으며, 여러분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당연한 것이다. 나를 알아주었으면, 내 어려운 형편과 처지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를 알아준다. 그 분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서 무거운 짐진 우리
의 형편을 알고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주길 원하셨다. 죄의 짐을 가볍게 해주셨다. 문
제의 짐을 가볍게 해주셨다. 문둥병자가 오면 문둥병을 고쳐주시고, 눈먼자가 오면 눈
을 뜨게 해주셨다.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쫒아주신다. 그들의 어려운 형편을 이해하
고 알아주는 그런 주님이시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믿고 높이게 되어있다. 그리하시
면,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나이다. 내가 왕이 되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이런 마음을 가
지고 내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와 이웃을 대해야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부인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그동안 머리를 길게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
어 머리를 짧게 했다. 그리고 한껏 멋을 내고 기분전환을 하고 왔다. 집에서 남편이
오길 기다렸다. 남편이 들어왔다. "여보, 나 어때?"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의 좋은 대
답을 기대했는데, 남편은 "여보, 내가 긴머리 좋아하는 것 몰라? 왜 잘랐어?" 하며 화
를 내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돌아서는 남편에게 부인도 화가 나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여보, 당신은 허락받고 대머리 되었소?"

사람은 누구나 다 나를 이해해 주길 원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변을 보자.
나는 너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하리라 는 것이 르호보암 왕의 대답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채찍으로 그들을 대했다.
12:13-14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
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
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멍에를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무겁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갈이라고 하는 사
막의 곤충은 뒤쪽의 집게처럼 생긴 것이 있다. 그러니, 전갈채찍이라고 하는 것이 얼
마나 독한 것인가? 일반채찍은 소가죽끈이지만, 전갈채찍에는 그 끝에 가지가 달려있
는데, 그 끝에 삼각형의 쇠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채찍을
맞으셨다. 이 채찍을 휘두르면 일반채찍은 자국만 남지만, 이 채찍은 몸에 박혀서 살
점을 뜯어내는 것이다. 이 전갈채찍이란 말은 너희들의 살점을 뜯어먹고 살겠다는 이
야기다.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다. 대화가 잘못되어도 엄청 잘못되었다.
물론 르호보암은 이 대답을 위해서 삼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삼일동안 자
기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첫째 노인들에게 묻고, 둘째 자기 친구들에게 묻는다.
노인들에게 물었을 때에 그들의 대답은 6-7에 나온다.
12:6-7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
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
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그런데, 그의 어린 친구들은 여기에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한다.
12:10-11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
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
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아버지의 허리가 자기 새끼손가락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버지는 이만큼 먹어도 나는
몇백배로 먹겠다는 것이다. 누구의 자문이 옳은가? 문제는 자문이 없어서가 아니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이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사람들에
게는 물었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은 외면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고, 주의 제사장에
게, 선지자를 통해 물었다. 제사장과 선지자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귀하게 여겼
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는 마땅히 성령님께 물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잘못이 있다. 상대방을 권력투쟁의 상대로만 보았다. 경쟁상대로만 보았다.
내가 이기면 무엇이 잘된다는 것인가? 서로의 필요없이 어떻게 잘된다는 것인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이 세상이 그렇다. 혼자서 다 잘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결과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되었다. 나뉘었다는 것을 성경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예언이 응했다.
15절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11장에 보면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에게 나타나서 자기의 입던 옷을 열두조각으로
찢어서 열조각을 그에게 주며 너는 열지파의 왕이 될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왕이 된다고 하는 것은 왕의 권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11:37-38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계2장에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 가운데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
으니,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신다. 더 이상 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솔로몬의 촛대를 여
로보암에게 옮기셨다. 그럼에도 르호보암에게 기회를 주셨다. 백성들이 와서 우리의
멍에를 가볍게 해 주소서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노인들이 이야기한다. 당신이 섬기면
그들이 영원한 종이 될 것이다.

기회를 주었지만, 내 것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촛대가 옮겨간다. 남과 북의
분단은 분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촛대가 옮기워진 것이다. 두려워 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순종하는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사람믿지 말자.

둘째, 나라가 나뉘어서 르호보암은 유다지파만을 자기의 나라로 다스리게 되었다. 큰
통일의 왕이 작은 나라의 왕, 부족의 왕으로 줄어든 것이다.
12:16-17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
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분깃을 감당안하시면 우리의 분깃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고 작은 것
으로 주신다. 이 사건을 보았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겠는가? 주 안에서 사
랑받고 복받는 대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의 대화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대화는 은사적 사랑이다.
12: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
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저 백성들이 나의 종이 되길 원하면 저들의 종이 되라는 것이다. 남에게 대접받기 원
하면 먼저 대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은사적 사랑이다. 은사적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
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믿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다 은사를 주신다. 하
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주었다는 것이다. 은사적 사랑을 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롬5
내가 죄인되었을 때에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내가 원수
되었을 때에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셨다.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 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 주셨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다. 내가 봉사를 잘해서가 아니다. 내가 선해서가 아니다. 하
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랑받고, 사랑받은 자처럼 사는 것이 은
사적 사랑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큰 사랑 받았는데, 내가 사랑하지 못할 것이 어
디에 있겠는가? 은사적 사랑의 반대는 인간적 사랑이다.

친정어머니가 딸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 딸에게 잘해주는 사위가 그리 이
쁜 것이다. 집에 늦게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이쁘고, 결혼해서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는 것도 이쁜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를 보았는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집안 청소
해 주고,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늦은 시간까지 연애해 준다고 바래다 주는 것이 못마
땅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아무리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
이다. 딸없는 부모는 그 마음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
이다. 사람의 마음엔 누구나 세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부모의 마음이 있고, 자식의
마음이 있고, 성인의 마음이 있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이 부인에게 넥타이 하나를 골라 달라고 한다. 아침에 바쁜 시간
에 아이들 챙기고, 바쁘지만 남편을 챙겨주면 좋을 것이 아닌가? 이때 남편의 마음은
아이처럼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이 아내는 부모의 마음을 갖고 챙겨주어야 하
는 것이다. 이때 남편에게 화를 내고, 성인처럼 취급을 하면 이때 마음이 어그러지는
것이다.

저녁때가 되었다. 남편이 무슨 마음이 들어서인지, 먹을 것과 옷을 사왔다.
부인이 이것에 대해 고맙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살림하기도 힘든데, 이것을 사오
느냐고 한다. 남편은 부모의 마음을 갖고 사왔을 때, 부인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
면 좋겠는데, 이것을 갖고 타박하면 다시는 안 사오는 것이다.

그래도 또 사가는 것이 마음인데, 그 마음을 모른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최고의 마음은 성인대 성인의 마음이다. 상대방이 하는 일을 인정해 주고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의 마음, 아이의 마음, 성인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해도 알 것 같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그리스도인만이 하
는 사랑이다.

은사적 사랑이 우리 사랑의 대화의 기본이다.
대화의 기본 원칙은
①이해한다.
②수용한다.
③내가 무엇을 도와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의 대화의 근본은 은사적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랑의 대화는 언제나 소망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절망적인 것이 아니다. 남에게 상처주
는 말 가운데 하나가 새롭게 살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조그만 일에도 왜 매일
그 모양이냐, 저번에도 그랬지 않느냐고 과거를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진정한 사랑은 지난 것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어느 큰 교회 사모님이 곰보다. 마마자국이 있다. 그런데, 이분은 이것을 자랑한다.
부산때, 천연두가 돌아서 한 울타리 안에 세아이가 있었는데, 두아이는 죽고 이 사모
님만 살았다. 어려서는 몰랐는데, 자라면서 동네아이들이 놀리는 것이다. 엄마에게 와
서 나는 왜 이러냐고 묻자, "애야, 네가 두 살 때 천연두란 유행병이 돌았는데, 한 울
타리 안에 세 아이가 있었다. 그때 전도사님이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너만 살
려주신 것이다. 이 마마자국은 이 얼굴의 흉터는 하나님이 너를 살려주신 표시다. 너
는 그것을 볼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이것에 감사할수 있었다. 비록 모르는 사람은
놀려도 열등감에서 해방되고, 열심히 해서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살아 역사하시는 줄로 믿는
다. 우리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신다. 사랑의 대화, 소망
의 대화를 해야 한다. 사랑의 대화는 은사적 사랑이고, 그 속에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
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말이 그냥 말이 아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줄
로 믿어야 한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오늘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갖는 자가 복이 있다 했다.

350장 찬송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사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아멘

르호보암은 하나님이 세우셨지만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지 않고 살다가 망한다.
하나님의 은사적 사랑, 소망적 말, 교회와 나라 가정을 살리고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믿고 구원받고 좋은 성도로 사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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