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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구촌의 한 공동체 / 창 1:26~28, 마음 6:9, 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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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의 한 공동체
                창세기 1:26~28, 마태복음 6:9, 12:46~50
                    서울교회(www.seoulch.or.kr)
                    배성산 목사([email protected])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걸프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은 안방에서 방송들이 경쟁적으로 생중계해주는 전쟁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크리스천들은 점차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적은 수지만 성령의 강한 임재를 느끼는 집회도 열렸었다. 레바논의 성서공회는 요르단과 다른 기관의 협조로 지난 2년동안 6,400권의 신구약 성경과 9,300권의 신약성경을 이라크에 전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발발한 이번 전쟁은 이라크의 크리스천들에게 당장 엄청난 환란으로 작용하고 앞으로의 선교 방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미국내 기독교 지도자들은 전쟁 발발 이후 전쟁 조기 종식과 이라크 크리스천들을 포함한 이라크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공간의 세계적, 지구적 확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경제의 무국경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문화의 다차원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개성, 자유, 개방의 세계적 보편화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개인이건, 사회공동체건, 민족이건, 다가치, 다문화를 공유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다언어, 다민족, 연합까지도 필요하다면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다핵도시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유지하며 생존해 가는 길이다.

주기도문 중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는 공통된 호칭, 특히 하나님의 거룩한 권위 곧 사랑과 당신의 부성(fatherhood)을 강조해 줌, 즉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부성(신32:6), 선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로서의 부성(렘3:4), 구속의 은혜란 관점에서의 부성(사63:16) 등이 있다. 성도는 이 한마디로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인격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기원에는 ‘기도의 대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사실 분명한 대상 없이 드리는 기도는 독백이요 중얼거림일 뿐 기도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그 대상은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 ‘하늘’이란 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알 수 있다.

‘우리’라는 말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 모든 이의 아버지요,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라는 신앙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기도는 그저 나의 필요성만을 채우는 이기적 심산으로 드릴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와 동시에 신앙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서 드려야 함을 알 수 있다. 시간과 지역과 계급을 초월한 만민의 기도이다.
세계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녀를 지으시고 악인이나 의인을 공평하게 사랑하셔서 햇빛과 비를 골고루 주시며 인류 전체가 구원 받기를 원하시니 세계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랑의 대상자임을 알아야 한다.

세계 인류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니 인류는 모두 형제요 세계는 한 집안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주장은 세계는 한 가정이요 인류는 한형제임을 제시하고 계신다. 옛 식민치하에서 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다른 민족을 원수시 하고 침략하는 우매함을 가져서는 안되며, 우리나라 일본치하에서 독립은 우방국가의 힘으로 되어졌음도 함께 깃들여 생각할 공생공존의 삶의 자세로 세계화의 의미를 새겨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는 개인주의가 존중되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또 세계주의가 실현되어 세계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 민족이 없는 세계화는 옳지 못하며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없는 개인주의도 옳지 못하다. 팽창주의, 민족주의, 세계주의의 이념은 화해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세계화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이 세상에서 교회는 더 이상 교리적 신학적 문제나 교회 지도자들의 교권 유지를 위해서 갈라져 있을 수만은 없다.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되어있고 지역갈등과 학연과 성차별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분열되어 있는 모습은 하나님에게 죄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일 수밖에 없다. 교회일치 운동은 단순히 분열된 교회의 일치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교회는 지금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미국은 세계인이 미국을 보는 시각에 새로운 변화를 갖지 않고는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 저들의 명분에 설득력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 미국의 과거사를 보면, 미국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세계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하나의 인물에 기준 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워싱턴이나 링컨이나 혹은 에디슨 같은 분들이 역사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마한(Alfred T. Mahan 1840~1914)’이라고 하는 해군대령이다. 미국은 19세기 전반까지 서부개척을 끝내고 태평양에 이르렀다. 1869년에는 동서 횡단 철도도 완성되었다. 국내엔 더 이상 프론티어가 없었다. 미국인의 에너지는 안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해군 대령 ‘마한’은 이제부터 미국의 프론티어는 바다라고 강조하고 해군의 건설과 해외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제를 내건 ‘마한’은 미국의 이상과 세계의 현실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 주었다. 그러므로 미국은 1893년 하와이 제도를 병합했다. 1896년 대통령에 당선이 된 매킨리는 전통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팽창정책에 나섰다. 2년 후엔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쿠바와 필리핀을 탈취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의 아메리카제국의 서막이 되었다. 그것은 ‘마한’의 정책에 따른 해군력 증강과 팽창정책의 소산이었다.

지금 세계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지구촌의 이웃이 되어 가는 소명 앞에 서있다. 개인이나 국가만이 사는 공동체가 아니고 이제 세계는 “지구촌의 한 공동체”를 일구어 간다는 시점에 서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으로 확산되는 과정 속에 이 문제의 심각성은 기독교와 이슬람 더 나아가 서방 세계와 아랍세계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논리를 보면서 세계기독교지도자들은 ‘거시적 에큐메니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거시적 에큐메니즘(Macro Ecumenism)’이란 이제까지 이루어져 왔던 기독교의 일치 운동을 넘어서 인류 사회의 공동의 과제와 선을 위해 모든 종교들이 하나로 협력해야 한다는 일종의 종교를 초월한 일치 운동인 것이다. 서서히 교회 에큐메니칼(Ecumenicalism)정신은 거시적 에큐메니즘(Macro Ecumenism)으로 종교의 범위를 넓혀가야 할 시대적 위기 앞에 놓이게 됨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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