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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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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제 목사 (서초중앙교회)
설교제목 :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날 것에 대한 첫 번째 예고이며, 그것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때로부터'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From that time'이며, 한글 성경중 개역을 제외한 모든 번역은 '그때로부터'라고 표현합니다. 한편 21절의 마지막에는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되어 있으며,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비로소 밝히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13-20절 사이의 사건이 있은 그 때,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 그때, 다시 말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 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고백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제자들을 경계하사 아직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아무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3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시며 가르치신 후 이제 '너희는 나를 누구라 믿느냐?'고 물으시고 확인한 후에 비로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고난과 죽음은 촌수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지난 주 20일(목) 이라크와 전쟁을 선포하고 폭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통하여 현지의 모습을 보기는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들은 그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지는 못합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아이들은 게임 하듯이 그 장면을 보고 넘깁니다. 차라리 대구 지하철 참사의 소식을 전해 듣고, 또 사진을 보았을 때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그러나 대구의 현장에 가본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정은 더욱 더 심각합니다. 며칠전 감리교 감독회장님과의 식사모임이 있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소식을 듣고 개교회에서 그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성금을 모금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참여했는 데, 이 모여진 성금을 전달하느라 지난 주 감독회장님을 동반하여 감리교 목사님들이 대구의 한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그들의 죽음을 추모했으며, 걷혀진 성금을 전달하였습니다. 갔다온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고 당사자들의 유가족들은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고난과 아픔이라도 거리와 촌수에 따라 느끼는 강도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것도 예수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베드로이기에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렇게 감정이 개입되거나 정(情)이 개입되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감정의 표현이나, 감정의 해소나 감정의 차원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것이 나의 손익이나 내게 직접적인 어떤 영향이 있게 될 때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예수의 죽음이 베드로나 제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들에게도 당장 화가 미칠 것이 분명한 마당에 베드로가 예수의 예루살렘 길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력을 다해서 예수를 말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책망하였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 이렇게 극구 칭찬을 받은 베드로가 당황스러울 정도의 강한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만큼 예수님에게 심각한 문제요, 한치도 양보하거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향하여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그를 믿은 믿음이 있어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1차 시험은 통과할 만큼 믿음을 갖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의 감정에 관계되거나 손익에 관계되는 일이 생겼을 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나의 감정이 개입되고 직접적 이해관계가 발생하였을 때는 결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강하게 어필(Appeal)합니다. 때로는 베드로처럼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고 우쭐하거나 내가 제일인것 같아 주님의 일에 나섰다가 책망 받기 꼭 알맞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며 마치 나를 보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책망 받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23절 하반 절에 보면 '네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십니다. 베드로의 잘못은 이렇듯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만 앞세웠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었던 반면, 사람의 일이란 자기 목숨을 보존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하려 했던 것이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의 목숨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하는 역할이요, 하나님의 뜻에 걸림돌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이라 말하면 지나치게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일이고, 세상에서 하는 일은 모두 사람의 일이라고 치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일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뜻과 인간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이 세상의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어떤 종류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어떤 태도로 일하는 가?'-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일하면서 사람의 일로 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하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새삼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24절 하반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십니다. 베드로는 신앙고백은 있었지만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곧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은 있지만 손해와 아픔과 실패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간청하고 강하게 호소해 봅니다. 우리가 그렇게만 요구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면,  아마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책망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 부인하다의 '아파르네오마이'라는 단어는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 할 때도 사용된 말입니다.(26:34-35,75) 누구를 부인한다는 말은 누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공언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한다는 뜻은 따라서 자기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이미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성경 번역에서는 '자기를 버리고'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버리는 것은 자기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분명히 있어야 십자가를 지기도 하고, 주를 따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의 생각, 고집, 나의 체면, 자존심, 나의 시간과 재능, 재물 이런 거 하나 내세우지 않고 빈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만을 위하여 좇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말씀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예수님의 뒤를 좇아가야 합니다.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외면하고 기피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 질 생각은 안하고, 십자가 지고 묵묵히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말리고 방해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를 좇으라'는 그 한마디 말씀을 듣고 주님을 따를 떄 해결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좇는 다는 것은 마치 어린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 소경이 인도자를 따라가듯 믿고 조건 없이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을 좇으면 그가 지옥 불에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질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나 돈을 좇아가면 그것들이 무너지고 없어질 때 함께 무너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좇으면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세례받고 신자가 되려면 몇 년이나 걸려야 하며, 성경은 어느 정도나 공부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에게 '램프의 심지가 얼마 동안 타야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그야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테일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좇는 그 순간부터 나는 사탄의 유혹과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주를 좇읍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따지지 말고 주를 따릅시다. 그리하면 동시에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들로부터 극복되며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것이 잃는 것 같고, 지는 것같고, 손해보는 것 같아도 오히려 이것이 얻는 길이요, 이기는 것이요, 유익한 것임을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주저주저하고 믿지 못하여 머뭇거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첨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27절) 고난과 죽음 후에 제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과 하늘에 오르셨다가 다시 이 땅에 오실 재림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그 때에 너희 개인 개인 행한 대로 갚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으면 과정의 어려움은 참고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류하다 책망받은 베드로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만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게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분명하게 약속하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십니다.

  믿읍시다.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오늘의 목숨을 잃는 것 같은 아픔도, 큰 손해도 좌절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의 믿음은 있습니다.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도 받을 만 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요소들이 내속에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태도입니다. 예수를 알고, 믿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고난과 죽음은 받아들 수 없는 이기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책망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넘어지게 하는 요소들을 해결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을 따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주님을 좇으면, 자신을 부인하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면 그냥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극복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넘어지게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 책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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