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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자 / 히 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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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임정석 목사  [[email protected]]
제목 : 예수를 바라보자
본문 : 히브리서 12:1~13

체코슬로바키아의 깊은 어느 산골에 어머니와 딸이 함께 경영하고 있는
한 여관(旅館)이 있었습니다. 

이 여관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어렸을 때 집을 나간
사랑하는 아들을 기다리는 것을 오직 낙(樂)으로 삼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 모녀(母女)는 이상한 범죄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돈이 없어 그런 범죄에 빠져들었다고 보지만... 문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어...
이 여관에 투숙하는 손님 중 부자 손님이 투숙하게 되면
그에게 수면제나 독약을 먹여 죽여버린 후 가진 돈을 뺏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가난하게 살아온 것이 한(恨)이 되어서 그런지...
이 모녀(母女)는 그렇게 하여 오직 돈을 모으기에..
무슨 수를 쓰던지.. 무슨 짓을 하던지 오직 돈을 모으기에 혈안(血眼)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은 약 20여년 흘렀습니다.

한편, 이 여인의 아들은 고향을 떠나 먼 외국에 나가 살았는데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고 결혼까지 하여 아내와 자식을 이끌고는
25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이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우선 투숙하게 된 여관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운영하는 바로 그 여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여관집 주인과 투숙객으로서 만나긴 만났지만
세월이 너무나 많이 흘러서인지...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온 첫날 밤 이 아들은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만 어머니와 여동생이 운영하는 그 여관에 묵고
아내와 자식은 다른 여관에 묵게 했는데.. 바로 그날 밤!! 이 아들은!!
그토록 보고 싶어했고 만나고 싶어했던 어머니와 여동생에 의하여 살해되고 맙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아들이고 오빠인줄도 모르고 오직 돈 버는 일에만 눈이 어두워
이 사람이 부자인줄로만 알고는 늘 하던 수법대로
물에 독약을 타 죽인 후 시체는 강물에 던지고 돈은 다 뺏고 말았는데
그 이튿날 아들의 부인이 찾아와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대는 바람에
죽은 사람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자기 아들이고 오빠인줄 알고는 통곡하다가
어머니는 목매 자살하고 여동생은 우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희곡(戱曲)
「오해(誤解)」(Le Malentendu, 1944년)라는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알베르 까뮈는 2차 세계대전 때 소설 「이방인(異邦人)」(L'Etranger)과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Le Mythe de Sisyphe)로 유명해진 실존주의 작가로서
그는 이 희곡(戱曲)「오해(誤解)」를 통해 현실세계의 삶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것인데...
바로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돈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아는 사람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심지어 이 희곡에서 고발하는 것처럼 아들도 오빠도 죽이는!!
바로 이러한 현장(現場)이 어디냐?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오직 자기만 알고.. 오직 돈만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치유하기 위하여!!
서로 물고 물으며.. 찢고 죽이는 비참한 삶의 현실에서... 구원하고 치유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오셔서는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복음대로 사시다가
그 복음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 양 옆에는 두 십자가가 있습니다(누가복음 23:32-33).
그 두 십자가는 행악자들의 십자가인데
이 두 십자가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바로 인간 세상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죽을 죄를 지어 십자가에 달렸기에
뉘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큰소리 치는 사람... 다시 말하면!

회개하면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죄인과..........
회개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있는 죄인.... 이 두 무리가 섞여 사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회개하고 있는 한 행악자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첫째는 회개하든지.. 않든지 간에!!... 모든 죄인.. 모든 행악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죄가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뉘우치며 회개하고 있는 행악자는
회개하지 않고 있는 행악자에 비하여... 참으로 휼륭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한 행악자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뉘우치고 회개(悔改)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한편의 행악자!!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기의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너 스스로를 구원해 봐라!!(누가복음 23:37)
그리고 우리도 살려봐라!!...하며 조롱하고 큰소리쳤던 사람이었는데..(누가복음 23:39).
그러한 그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세 개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렇게!!
회개한 행악자도 죽고.. 회개하지 않은 행악자도 죽었지만!!...
회개한 행악자에게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해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얼마나 귀하고 복된 말씀입니까?

저는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의 근거가 있고...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영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그의 책
「자기 경영 노트」(The Effective Executive)라는 책에서 지식근로자들에게 5가지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잘 관리하는 방법, 주어진 일의 목표를 잘 설정하는 방법,
자신의 강점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법, 일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방법,
일의 목표를 달성하는 의사 결정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5가지 방법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잘 안되면 나머지가 다 뒤죽박죽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다.
우선순위라고 하는 측면에서 볼 때에..
죄인이 맨 먼저 해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만 하겠습니까?

당연히!! 죄에 대한 것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죄인에게 있어서도 여러 가지 당면 문제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죄인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죄 문제 해결과.. 그리고..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과 2절 앞부분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버리고...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바라보기는 바라보되... 무거운 것을 지고 바라보는 것이나
얽매이기 쉬운 죄를 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 무거운 짐이나 죄가 있으면...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곧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거나!!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그 전에는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무엇인가하면... 본문 2절에 있는 것처럼....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게 되고!!....
십자가 앞에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게 되며!!...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눈의 축복!! 우리 눈의 봄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했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중요한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거나!!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들이 깨달아 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 단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다음에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의인인데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참으셨는가... 십자가 위에서 뛰어 내려오지 아니하시고?...
십자가 지는 과정에서 당한 많은 부끄러움은.. 왜 개의치 아니하셨는가?

이러한 생각 뿐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주제들은...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십자가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도 곧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실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방법을 택하셨는가?... 하는.. 그런 생각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더욱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는데..........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
십자가 위에서 뛰어 내려오지 아니하시고... 계속 참고 계신 이유!!...
십자가 지시는 과정에서 당한 많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은 이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십자가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도.. 곧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그러한 방법을 택하셨는가?... 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깨달음으로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생(生)의 많은 어려움을 인하여 쉽게 피곤하게 되고... 쉽게 낙심하게 되기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승리하도록!!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광야 길이... 힘든 길임에는 틀림 없지만!!
우리만!! 나만!! 그렇게... 힘든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도 그렇게 힘든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이고!!
우리의 많은 신앙 선배들도 그렇게 힘든 길을 걸어가서!!...
끝내는 승리했다는 것!!!!.... 바로 이러한 것을... 생각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이어서 말씀하는 것이 "징계" 라는 개념입니다.

본문 5절부터 11절까지 "징계"라는 단어가 8번 나타나는데
번역은 징계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그 본래적 의미는 훈련의 의미가 들어있는 징계로서
NIV성경은 이 징계라는 단어를 무엇이라고 번역하고 있는가 하면 "discipline"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십시다.

5절에서는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6절에서는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7절에서는 아비로서 자기 자식 징계하지 않는 아비가 어디 있는가?
8절에서는 만일 징계가 없다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다
9절에서는 우리의 육체의 아버지가 징계하여도 공경하는데
        만일 영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면 그 징계를 달게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10절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신다.
11절에서는 징계라고 하는 것은 징계 받는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기는 하나
        징계 이후는 평강의 열매를 맺게되는 것이 바로 징계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난 이 징계라는 단어를 전부다 훈련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다시 읽어보면

5절에서는 훈련을 경히 여기지 말라
6절에서는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훈련하신다
7절에서는 아비로서 자기 자식 훈련하지 않는 아비가 어디 있는가?
8절에서는 만일 훈련이 없다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다
9절에서는 우리의 육체의 아버지가 훈련하여도 공경하는데
        만일 영의 아버지가 우리를 훈련한다면 그 훈련을 달게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10절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훈련하신다.
11절에서는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훈련받는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기는 하나
        훈련 이후는 평강의 열매를 맺게되는 것이 바로 훈련이다...
바로 이렇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이 부분을 강조하여 말씀드리는가 하면!!
물론 훈련이 나에게 좋은 것이고..
또 훈련을 통하여 마지막엔 평강의 열매도 맺게 되며...
종국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되겠지만...
훈련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훈련받다 지쳐서
절기도(다리를) 하고.. 쓰러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을 잘 설명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강조하며 말씀드린 것인데... 그것은... 
본문 12절에 있는 말씀처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말씀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훈련받을 때는... 기도의 무릎을 강하게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훈련도 잘 받게되고!!..
훈련받다 혹시 다리를 절게 되어도 금방 기도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1-2절을 좀 더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는 지금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믿음의 길에 들어서려는 것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이미 가진 사람이 어떻게 광야 같은 인생 길을 승리의 길로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삶의 과정을 논하고 있는데..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사실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거나...
믿음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마치고... 또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명예로 마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과정에는.. 때로 혹독한 훈련, 때로 징계로서의 훈련,
혹은 훈련으로서의 징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신약성경 사도행전 5장에 등장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들이 어떤 부부였습니까?

은혜 받은 부부요.. 헌신된 부부요.. 믿음의 부부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말로(末路)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 강한 훈련의 부족.. 징계의 부족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절처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고 계속 나아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들 부부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마쳤는데
우리는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훈련을 가볍게(경히)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훈련을 즐겨 받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본문 말씀처럼
강하게 훈련받으면서 예수를 바라보며 나아가며!!........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를 바라보며 나아갈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익은 무엇이며... 축복은 무엇인 것입니까?

그것은!!!
그렇게 예수를 바라보면 내 믿음이 든든하게 되고!!...
든든하게 된 그 믿음이 자라나 온전하게 되어!!...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게 되는.. 그러한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특히 2절에서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씀을 영어성경 NIV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의 눈을... 예수님에게만!!.....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한눈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 말씀대로...
우리의 눈을 예수님에게 고정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믿음의 주시며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한 믿음의 삶, 축복된 삶이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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