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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히 기도합시다 / 약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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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야고보서5:16~18 
  제목 :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을 함께 섬기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기도는 하늘 아버지와 대화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대화는 아닙니다. 어떤 기도는 대화 이상입니다. 기도 가운데는 대화라기보다는 탄원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런 기도- 의인의 간구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면 이 선언에 대해서 수긍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다 이 진리를 바로 깨닫고 적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간구”라고 하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적으로 ‘자주’ ‘지속적인’ ‘끊임없는’ 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간구는 자주 드리는 기도입니다. 간구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소원의 아룀입니다.

동시에 태도에 있어서는 ‘열렬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간구’는 ‘간절한 아룀’이요 ‘열렬한 아룀’입니다. ‘간구는 시간적인 지속성과, 태도에 있어서 열렬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진지한 기도요 열정적인 간구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기도를 자주 할 뿐 아니라 기도에 그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붙습니다. 주님의 겟세마네기도, 이러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성도라면 누구나 드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성도라고 해서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이런 간구에 탁월한 모범을 보인 사람 엘리야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나라 이스라엘 역사의 한 암흑기에 등장합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상황을, 영적인 분위기를 급격히 바꾸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자신을 쏟아 부은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엘리야가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왕궁에 하루는 불쑥 나타납니다. 본래 왕의 자리나 대통령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아무나 앉아서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자리가 국민에게 소망을 주는 자리, 나라에 축복을 주는 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앉아야 그 백성과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부름 받아 더럽고 방탕한 삶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있는 아합의 궁에 그가 등장합니다. 아합은 욕심이 끝없어서 왕이 되고도 만족이 없습니다. 온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한 백성의 포도원까지 탐을 내어서 포도를 뽑아내고 그 밭에 나물을 심고 싶어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을 잡으면 만족 하는데 이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 땅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합 왕의 곁에는 악의 대명사로 통하던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지요? 이씨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First lady들 가운데 그 첫 번째가 이세벨이라고... 이세벨, 이멜다, 이순자. . 뭐 이런식으로 나간다고 그러데요. 이세벨, 그녀는 사악하고 간교하고 교만하고 모든 사교라고 하면 쌍수로 환영하는 여인입니다.

참 신앙과 순결의 대적자입니다. 남편의 성품 중 가장 악한 면을 부추기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시집온 여자입니다. 안으로는 모든 음흉한 흉계를 직접 꾸미고 밖으로는 하청을 주어 잔인한 권력을 휘둘렀던 여인입니다.

남편이 왕이 면서 그 포도원 하나를 손에 못 넣는 것을 보고는 답답해 했습니다.남편을 뒤로 재끼고는 자신이 앞장서서 하루아침에 그 포도원을 남편 앞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가짜 명령과 조서를 써 가지고 의로운 피를 흘리게 하고 그것을 남편 명의로 돌리게 할 줄 아는 수완 좋은 여자였습니다.

악한 정권 밑에서 독버섯처럼 무성해진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 지역마다 득실거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알숭배요. 거기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아세라 숭배입니다. 무속 인이 수십만을 헤아리는 오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일찍부터 섬기는 신 바알은 히브리말로 ‘내 주인, 내 남편’이란 뜻입니다. 대표적인 가나안 족속의 신으로 풍요의 신입니다. 말하자면 ‘잘살아 보세’가 이들이 부르는 대표적 찬양입니다. 그 때 가나안 족속이나 지금 세상 사람들은 “잘살아 보세”가 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목표는 다릅니다. 혼돈하지 마시고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든 여호와 이름을 불렀습니다. 다만 여호와 알기를 바알처럼 여긴 것이 문제였죠. 여호와라고 부르면서도 “복 주십시오, 잘 살게 해 주십시오”그것이 그들의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여호와 이름은 항상 불렀으나 실상은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잘살게 해주는 이가 ‘내 남편, 내 주인’이라는 세속 주의가 팽배해졌습니다.

이 바알 숭배는 항상 여신 아세라 숭배와 동행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세라 신은 어떤 신입니까? 이 아세라는 번식과 다산, 사랑과 애정, 쾌락의 신이었습니다. 동시에 전쟁의 여신으로도 통했습니다. 바알 숭배의 찬가가 ‘잘살아 보세’라고 하면 아세라 숭배의 찬미는 ‘즐겨 보세’였습니다. 말하자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가 그들의 중요한 찬양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국민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풍요롭게 살아보자’ 거기다 ‘쾌락을 추구 하면서 살자’ 그게 전부였습니다. 돈 많이 벌어 enjoy하는 것이 도시 사람들이나 시골사람들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물신숭배라는 국민대통합을 이룬 지금 우리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런 퇴폐한 국민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디셉 사람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위해서 무슨 단체를 설립한다든지 엄청난 기금을 마련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한 사람을 택해서 당신의 거룩한 대업을 성취해 가십니다.

새 구상이나 엄청난 예산의 뒷받침이 아니라 기도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갈대로 가버린 시대에 자식문제 때문에 통곡하던 한 여인 한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시대 역사를 바로 잡았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갈멜산에서 호령하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결단토록 촉구합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그 둘 사이에 서서 머뭇거리느냐 ‘여호와가 참 신이면 여호와를 따르고, 바알이 참 신이면 그를 좇을 것이니라’고 다그쳤던 사람입니다. 며칠 뒤에는 광야에서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합니다. 엘리야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되었습니다. 내가 뭐 조상들 보다 잘난게 있습니까? 이제 그냥 내 생명 제발 데려가 주십시오. 한때는 열심이 특심해서 온 민족을 호령하다가 다음 순간 낙심되면 죽겠다고 앙탈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정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생이었지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히브리식 표현으로 “기도로 기도한”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조하고 싶으면 동사를 두 번 반복했습니다. 엘리야, 그는 ‘기도로 기도한’ 사람, 열심히 기도한 사람입니다. 모든 정열을 기도에 쏟아 부은 사람입니다. 여기에 엘리야의 능력의 비결이 있습니다.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하나님, 이 백성이 잘 살게 되니까 이처럼 우상을 섬기고 쾌락을 추구하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풍요가 결코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할 것이 풍요와 쾌락이 아닌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잘 살아보세 즐겨보세” 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생명을 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거룩하신 분 여호와를 섬기는 대신 번영의 신, 쾌락의 신을 섬긴 대가로 무서운 가뭄을 선포합니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말에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그분 앞에 기도로 서서 섬긴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이스라엘 땅에는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아니했습니다.

3년 6개월 뒤 우리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다시 엘리야를 만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끓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무슨 의미입니까? 아주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유대인의 기도의 자세입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벌써 비 내리지 않은지가 3년 6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갈멜산에 올라가서 기도에 자신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비를 다시 주십시오.” 이 집중적인 기도, 정열적인 기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습니다.”

엘리야나 아합이나 똑같은 정열의 사람이었습니다. 얻고 싶은 것을 손에 넣고자 자신을 쏟아 부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차이는 그 정열을 어디에 쏟는가에 달랐습니다. 아합은 왕으로서 권력을 다 차지 해 놓고도 이제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하나님이 금한 것 까지 자기 손에 넣고 싶어 했습니다. 거기에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나쁜 일이라고 하면 골라 가면서 열정적으로 하던 임금입니다. 어디 그런 사람이 아합왕 하나 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자기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고 물질을 쓰고 정열을 쏟으면서 살아갑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시간과 여러분의 정열과 여러분의 재산과 여러분의 모든 것을 드려서 성취하려고 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꼭 해야 하겠다고 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것은 하려고 시도합니다. 아합은 이세벨의 충동대로 요란한 우상 숭배, 말 못할 죄악을 짓는데 생을 쏟았습니다. 성경은 그의 삶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니라.”

공동 번역 들어보십시오. “아합처럼 아내 이세벨의 농란에 빠져서 목숨을 내 던져 가며 여호와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자기 아내의 농간에 빠져가지고 목숨을 내던져 가면서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일찍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시대를 동일한 열정으로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디셉 사람 엘리야는 역사하는 힘이 엄청난 간구를 드린 의인의 표상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간절히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반면 아합왕은 아내 이세벨의 악한 충동에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성령의 거룩한 충동에 따라 살았습니다. 하여간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게 마련입니다. 열정적으로 쏟아 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서서히 고갈 시켜 갈 수도 있습니다.어쨌든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삶의 에너지는 언젠가 바닥 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생의 에너지를 쓰시겠습니까? 기도하고 싶은 욕망은 성령이 주시는 충동입니다. 여러분! 다른 모든 충동은 그것이 성령께서 주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피코트가 사고 싶습니까?아들을 꼭 좋은 대학에 보내야 되겠습니까? 지금 나와 있는 매물을 사야 꼭 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짜 이게 하나님이 나한테 하라고 하시는 건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성령께서 주시는 것 틀림 없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욕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래 가지고는 되겠나? 내가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면 안되지. 내가 신앙생활 한 지 10년 되었는데 주일날 한번 빼꼼히 얼굴 내밀고 돌아가서는 내가 주일 밤도 모르고, 수요일 밤도 모르고 이렇게 살아서 되겠나? 특별 기도의 기간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은 새벽, 아침, 저녁 할것없이 나와서 기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 어떤 처지인데 정말 이래서 되겠나?’ 하는 느낌이 혹시 여러분 지난 두주간 동안에 든적이 있습니까? 그런 분은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을 향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기도의 충동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러운 충동대로 살지 마십시오.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상호 원망과 비난을 중단하십시오. 시기와 다툼, 저주와 판단으로 온갖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으로 여러분의 입술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찬양과 간구로서 여러분의 입술을 장식 하십시오. 상호간 허물은 서로 고백하십시오. 해가 저물기 전에 지난 잘못들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공동체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더 이상 세상 것을 추구해서 다투고 싸우는 속에 휘말려 들지 마십시오.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그런 부질없는 짓에 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땅의 티끌을 핥으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남아 있는 정열을 이제 거룩한 것을 위해 쏟으십시오. 자신을 주께 맡기고 성령에 따라 기도에 자신을 쏟으십시오.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문제를 가진 분들은 없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기도로 몰아가는 방편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고뇌의 기도를 드리시던 주님을 본받는 고난 주간되시길 바랍니다.

지난 두 주간동안 혹시 기도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했다 손 치더라도 이 한 주간 고난주간 맞이해서 여러분 함께 나오십시오. 700명이 함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1000명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혹시 입시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지난해 원하던 학교에 자식이 들어간 것보다 그의 앞날이 더 복될 것입니다. 직장 문제로 인해 기로에 서 있습니까? 질병에서 치유되기를 원하십니까? 어린 아이가 아픈 것을 보고 안타까와 하십니까?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로 고민하십니까? 시댁과의 관계입니까? 아니면 돌아오지 않는 남편으로 인한 고민입니까?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답답해하십니까? 학자금으로 인해서, 사업자금으로 인해서 답답해하십니까? 청산해야 할 빚으로 인해서 괴로워하십니까?

악한 습관에서 벗어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뜻대로 풀리지 아니할 그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이 정열을 다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간구해 보십시오.

만족스럽지 못한 일들이 있습니까? 그 문제를 기도의 기회로 활용하십시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나아가십시오. 모든 기회를 기도하는 기회로 만드십시오. “끊임없이 드리는 열정적인 간구는 반드시 일을 이뤄 냅니다.”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개인적인 소원을 여러분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새해 들면서 나는 성경 한 번 읽어야지 결심했을 것인데 순조롭게 나가면 지금 벌써 역사서를 읽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모세 오경도 벗어나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분 없습니까? 아직도 창세기를 다 끝을 못 내가지고 요셉이 빠진 것처럼 거기 지금 머물러 있는 사람 없습니까? 왜 소원하는데 안 되지요? 기도하십시오.

올해는 꼭 한사람을 전도하고 싶습니까? 아직도 태신자 다섯 사람 정하는 일을 하지 못하신 직분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체면 때문에 일으켜 세우지는 않지마는 제 심정 같아서는 진짜 한번 일으켜 세웠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직분자 여러분, 목사님 참 답답하지요. 안 그래도 부담되는데 그걸 주일 마다 꼭 입에 떠 올리냐 싶지요? 여러분 눈감고 하나님 앞에 한번 부르짖어 보세요 ‘하나님 올해 나를 통해서 구원의 복된 소식 들려주시기를 원하는 사람 누구입니까?’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떠올려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찾아내면 그 사람들이 정말 복 받는 태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적어내라고 하니까 적어내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내가 올해도 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축복의 통로가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게도 누가 나를 통해서 이 소식 들어야 될 것인지 하나님이 보여 주십시오.’ 대상은 정해졌는데 성큼 다가설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이고 올 들어는 또 한달마다 저렇게 현수막을 또 붙이고 그렇죠? 접촉은, 만남은 사랑입니다. 이러더니 4월달 되니 또 뭐라고 붙여놓았나요?

‘섬김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래서 마음에 부담은 왕창왕창 드는데 뭐가 잘 되지는 않아 보입니까?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기도라니까요. 한 번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보십시오. 섬김은 사랑의 표현인데 내가 어떻게 섬기는 것이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겠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면서 나가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면서 자기 일에 동참하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놀라운 길을 여실 것입니다.

부모님을, 배우자를 올해는 내가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으면 하는 소원 가지고만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정열을 쏟아 붓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한 새생명이 영적으로 태어나길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간절히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아이 하나가 태어날 때에 산고를 어머니가 하듯이 영적인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해산하는 고통을 우리를 통해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그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보살피게 될 것입니다. 한번 데리고 왔다가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고통하면서 낳은 자식은 애정이 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어버이가 자식을 낳았다고 하지마는 어머니들 마음이 다르지 않습디까?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드실리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어머니는 낳으면서 고통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겪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이 주 앞으로 인도하게 되면 한번만한 왔다가 그냥 바람맞히지 않습니다. 필사적인 기도, 그것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드리는 열정적인 간구는 반드시 일을 이뤄 냅니다.”

구역에도 간구해야할 제목이 없습니까? 새로 구역이 편성되었는데 전화 한번 하는것도 쉽잖은 구역원은 없습니까? 자기가 원치 않는 구역에 편성시켰다고 만나자 마자 불평을 늘어놓던 구역원은 없습니까?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식구들은 없습니까? 먼 거리 때문에 교회 출석을 망설이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교회적인 간구의 제목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울산 교회가 성숙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교회적으로 간구할 제목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년보다 조금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작년에는 삼주간 동안 한번도 기도의 자리에 안나왔는데 이번에 세 번 나오면 세 번만큼 성장한것입닏. 그렇죠? 한꺼번에 왕창 안해도 상관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작년 특별기도할 때 몇 번 나와봤지? 그 숫자보다 이번에 조금 더 높여도 그게 진보하는 것입니다. 나이와 함께 하나님의 영으로 더 충만해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드리는 열정적인 간구는 반드시 일을 이뤄 냅니다.” #

“울산교회 신자들 만나보니까 참 좋은 사람들이야” 그러면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양적인 성장의 벽이 허물어질 것입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몇 년째 2,000명 출석 교인에 머물러 있습니다. 요새 와서는 2,000명 수준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주일학교 출석하는 숫자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울산교회가 우리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울산 교회를 우리 교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작년처럼 올해도 살면 우리 울산교회는 변할까요 변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답을 해 보세요. 작년하고 꼭 같이하면 우리 울산교회 변할까요 안 변할까요? 정말 사람들은 너무 쉬운 질문에는 반응을 안보이더라고요. 우리 수준을 어떻게 알고 그렇게 쉬운걸 묻나 싶어가지고. 다행이 감사한 것은 올 세이레 특별 새벽기도 여러분이 많이, 그리고 꾸준히 참석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나은 헌신을 하시면 교회는 바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는 것은 시간당 몇 개씩,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릅니다. 지난 7년 동안 그 자리에 정체된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시면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도 간구해야할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온통 자신을 기도에 쏟아 붓는 7천명을 남기실 것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 여러분의 이름이 있기를 바랍니다. 온통 기도에 자신을 쏟아 부을 때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 하십니다.

어려움 닥치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지요? 해결될 만한 길이 있으면 다 찾아보지 않습니까? 만나서 도움 될만한 사람은 다 만나보지 않습니까? 여기저기 찾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쏟아 붓지 않았다고 하면 이 한 주간은 기도에 전념하는 한 주간으로 삼아 보십시오. 특별히 두 주간 동안 기도하신 분들 이제 남은 한주간 열심히 합시다. 그리고 지난 두 주간 동안 편안히 지내신 분들은 충전된 에너지를 가지고 바짝 한번 시작해 봅시다. 한주간이면 누가해도 못하겠습니까? 새벽 다섯 시도 좋고, 아침 여섯시도 좋고, 밤 열시도 좋고, 하다가 안 되면 낮에 여러분이 정해서 나오십시오. 아무 때라도 상관없습니다. 혼자 기도해도 하나님은 기도 들으십니다. 다만 같이 기도를 하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일 뿐이지요.“끊임없이 드리는 열정적인 간구는 반드시 일을 이뤄냅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고 있습니다. 누가 자기를 향하여 앙망하는지를 찾고 계십니다. 누가 가장 일찍 교회당에 나와서 가장 늦게 나가는가를 살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길이보다는 기도의 무게를 재신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에 생의 무게를 실어서 간절히 끊임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보십시오.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시면 내 인생길에 주의 영광의 빛이 비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하시면 내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아주 사생결단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 하나님이 우리 울산교회에 많이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 어떻게 기도하는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각자의 기질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정을 다해서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 기도는 역사 하는 힘이 많습니다. 의인의 간구가 응답되는 것을 목도하는 복된 여러분의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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