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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생명의 삶을 사십니까? / 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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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의 삶을 사십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절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에 한 가난한 승객이 탑승했습니다. 배삯도 겨우 마련한 그는 미처 식대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되면 주린 배를 쥐고, 식당으로 몰려가는 다른 승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굶다가 그는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실컷 먹은 후, 그는 처연한 심정으로 선원을 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밥값을 지불할 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원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지불하신 배 삯에는 이미 식대가 다 계산되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을 가리켜 "새 생명의 삶"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새 생명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이 서울발 부산행 밤열차를 탔습니다. 모처럼의 밤 기차 여행이어서 좋은 자리인 무궁화호 특실 표를 샀습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원까지 갔을 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가오더니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황하여 그에게 표를 보이며 자신의 자리임을 확인시켰습니다. 그 사람 역시 표를 보였는데 두 사람의 번호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두 사람이 멍하니 있을 때에 차장이 와서 표를 확인해보더니 수원에서 승차한 사람의 자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그는 그 사람보고 "여기는 특실이니 보통칸으로 가시지요" 했습니다. 그 때 차장이 말하기를 "아저씨, 여기가 보통칸이니 아저씨가 특실로 가시지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특실 표를 가지고 보통칸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얼른 특실로 갔습니다. 특실에 가보니 자신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넓고,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 침대도 되는 너무도 좋은 자리였습니다. 그런 그의 자리가 서울에서 수원까지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큰 교훈을 얻습니다. 내가 가진 자격과 조건을 내 스스로가 찾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확인하지 못해서 내가 누려야 될 복을 누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비굴하게 살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잊지 맙시다.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고, 가슴을 펴고 힘있게 살아갑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출생이라고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영적 출생, 즉 중생(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중생(거듭남)은 교회에 속해 있다거나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해서, 혹은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거듭남)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 살려주심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남 곧 중생이란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새 생명에의 순간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그것은 영적 부활이며, 새생명의 출발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 3:3). 또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 3:5).

어떻게 새 생명을 얻었습니까?

요한복음 1장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듭나고, 새생명을 얻은 것은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했습니다.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것입니다. 썩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은 결과 일어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인종과 성(性)을 초월하여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여(14절)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을 이루면(갈 2:19,20)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영적인 교제를 갖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창조 행위가 일어나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을 따라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첫째, 신분의 변화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17절에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마귀의 자녀로 마귀의 종노릇하고, 죄의 종노릇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지금은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로마서 8장 14-15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분은 마귀의 자녀가 아닙니다. 마귀의 종도 아닙니다. 죄의 종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신앙 대상 변화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41절에 "그 때에 저희가... 우상 앞에 제사하며...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1장 23절에서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처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되었습니다(살전 1:9).
여호수아처럼 "...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수24:15).


세 번째는 영적 상황 변화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서 화목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위치의 변화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영원한 사망의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김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과의 변화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밖에 있을 때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저주의 자식"이었습니다(벧후 2:14)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요한계시록 22장 3절에 보면 "다시는 저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6장 14절에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자는 저주에서 축복으로 그 삶의 결과가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의 신분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 변화에 대하여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나의 느낌과 관계없이 놀라운 변화는 새 생명의 탄생과 함께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났습니다.
머지않아 그 모든 변화를 현실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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