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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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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 : 2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고 물을 때 그들에게 요한의 대답은 숨기지 아니하고 분명하고 간결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요 1:23).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했습니다(요 1:26∼27).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표현은 확실하고 분명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분명히 알리기 위한 광야에서 외치는 하나님의 나팔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이 고백적인 선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Ⅰ.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예표 되었 던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1) 유월절 어린 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에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유월절(passover)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되었다 애굽에서 해방된 기념일입니다. 정월 10일에 고센 땅에 사는 이스라엘은 가족마다 흠 없는 양 한 마리를 택하여 제물로 예비하고 가족의 인수에 따라 어린 양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 양을 정월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날이 밝기까지 문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는 애굽 천지에 바로 왕의 장자부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우상을 쳤습니다. 그러나 문설주 인방에 양의 피가 묻은 이스라엘 집은 하나님의 진노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문설주 인방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양의 피로 인하여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 유월절에 희생된 양은 바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드리는 양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수기 28장 4절에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해질 때 드릴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들은 1년 된 어린 양을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려서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했습니다. 이 어린 양은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속죄 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3) 아사셀 양으로 나타났습니다.
레위기 16장 10절에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고 했습니다.
7월 10일은 이스라엘의 속죄일입니다. 이 날에는 두 종류의 제물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지고 하나는 광야에 버려져 죽도록 합니다.

첫 번째 제물은 잡힌 후에 대제사장의 손에 의하여 그 피가 지성소에 뿌려집니다. 이때 드려진 제물의 피를 보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표징으로 "쉐키나"가 임하여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응답을 받고 지성소에서 나오게 됩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시면 제사장은 그 자리에서 죽어 나오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아사셀 양인데 이 말은 '버려진 양'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제사장이 제물에 안수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그 짐승에게 덮어씌우게 됩니다.
이때 아사셀 양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게 됩니다. 이 제물은 선택된 한 사람에 의하여 예루살렘 중앙 통을 통과하면서 수난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거리를 지날 때 군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사셀 양을 향해 저주를 퍼붓기 시작합니다. 어떤 자는 털을 뽑고 어떤 자는 침을 뱉으며 어떤 자는 돌팔매질을 하기도 합니다.

아사셀은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고 맙니다. 마침내 이 양은 끌려오다시피 하여 요단강 건너편 광야에 버려집니다. 날이 저물 때 피투성이가 된 아사셀 양은 맹수들에 의해 찢겨 죽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잔인한 광경과는 정반대로 예루살렘에서는 속죄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라고 했습니다.

Ⅱ. 예수는 속죄주로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본문 1장 29절에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곧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분이라고 의역될 수 있습니다. '보라'라는 감탄사에 이어 하나님의 어린 양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이 동격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 세상이 단절된 것을 회복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사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기 {지고 가는}(take away)이란 말은 ① '들어올린다' 혹은 '들다'라는 뜻입니다. ② '진다' 혹은 '짊어지다'는 뜻입니다. ③ '옮겨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감안할 때 {지고 가는}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죄의 결과인 사망에 깔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그 무거운 죄와 사망을 대신 들어올리시고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어 먼 곳으로 옮겨 치워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에서 확증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신 어린 양에 대하여 사도행전 8장 26절에서 40절에 나타난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와의 대화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어나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일어나 가서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빌립은 병거로 가까이 가서 글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습니다. 내시는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닫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빌립에게 병거에 올라앉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사도행전 8장 32절에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는 이사야 53장 7절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4절에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라고 했습니다.
빌립은 예수를 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내려서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빌립이 내시에게 가르쳐 준 예수는 속죄주로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은 복음의 핵심인 동시에 우리 전도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Ⅲ. 예수는 최후 승리의 영광을 쟁취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 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머리에 어린 양의 인을 받은 성도들과 함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병행해서 요한계시록 14장 9-10절에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인을 받지 아니하고 짐승의 표인 666을 받은 자들입니다. 666이 마귀의 표라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번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공병대와 의료반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그 숫자가 66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673명으로 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666은 마귀의 숫자이기 때문이라고 정부가 발표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주관하시는 이 세상 마지막 심판과 우리의 진정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하는 말은

①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예표 되었던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입니다.
② 예수는 속죄주로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입니다.
③ 예수는 최후 승리의 영광을 쟁취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보라"(이데)는 감탄사로서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께서 마침내 자기 사명을 위하여 밝은 빛처럼 오셨을 때 감격하여 하는 감탄사입니다.
따라서 "보라"는 말은
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구약의 어린 양의 실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사명을 가지고 골고다 십자가에서 피 흘린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마지막 날에 악한 자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최후승리의 영광을 쟁취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좇아가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즐거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즐거움이 근원적인 즐거움이요 우리 가운데 기쁨도, 행복도 그러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합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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