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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낙향(落鄕)(눅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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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인 낙향(落鄕)
< 본 문 > 눅24:13~35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했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전에 절망이란 말은 없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그였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세인트 헬라나 섬에 유배되어 쓸쓸히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있고, 또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부활절을 지냈습니다만,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절은 1년에 단 한번 지키는 절기지만 실제로는 매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 경배하는 날입니다. 아니, 매 주일만 아니라 매일, 매 순간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부활절을 왜 따로 지키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자주 망각하니까 재확인시켜주시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은 역사책에 나오는 위인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 받았다가, 잠시 후 덮어버리고 잊어버렸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꺼내 읽고 기억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신앙은 부활하셔서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입니다. 비유하자면 우리 신앙은 멀리 떠나버린 애인의 사진을 꺼내보고 편지를 교환하는 게 아닙니다. 애인과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겁니다. 그런데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책의 위인을 기억하는 것처럼, 혹은 펜팔하는 것처럼 신앙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앙이 꾸준하지 못하고, 충동적 혹은 간헐적이 되고 맙니다. 잘 가다가 뚝 끊겨서 슬럼프에 빠지곤 합니다. 결국 기쁨과 능력을 상실한 채 형식적인 빈 껍데기 신앙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참 신앙이 아닙니다. 참 신앙은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함으로 늘 기뻐하고 담대하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참 신앙의 비결을 체득하지 못하면 신앙이 자주 다운(down)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번 각자 자신의 신앙을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한 인간인지라 신앙의 기복(up & down)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나치리 만치 신앙의 기복이 심하다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신앙이 요동질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런 상태로 방치하면 신앙은 점점 다운(down)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신앙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건만 그들은 슬픔에 잠겨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낙향(落鄕)한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이, 영적 상태가 다운(down)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엠마오로의 낙향은 단순한 육신의 낙향이 아니라 ‘영적인 낙향’인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주 좋지 않은 경우입니다. 우리 신앙은 주님과 동행하기에 날로 상승하는 생동감 있는 신앙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 신앙이요 성숙한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이 갖처질 때 비로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왕 신앙 생활 하는 것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 이런 신앙으로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1] 엠마오 도상 두 제자의 영적인 낙향

* 13절.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정도(12km) 되는 곳에 엠마오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 두 사람(그 중 한 명은 글로바)이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 14절.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갑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의 소문에 관한 이야기일 겁니다.
* 15절~16절.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와 계신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이 가리워졌다는 말은 불신앙으로 인해 전혀 부활하신 주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아마 변화되어 있었을 겁니다. 부활체니까 ... 그래도 영안이 밝으면 알 수 있습니다. 뒤에 가서 깨닫게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깨뜨려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셨던 것입니다.
* 17절. 예수님이 그들에게 접근해서 질문을 하는데도 몰라보고 슬픈 빛을 띠고 있습니다. 낙심, 무기력, 절망, ... 신앙이 완전히 다운된 모습입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가는 모습은 육신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 패배자가 되어 낙향하는 모습입니다.


[2] 영적인 낙향의 원인과 참 신앙

두 사람은 아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다분히 ‘지식적인 신앙’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겁니다. 이미 부활하셔서 자기들 눈앞에 와 계신 예수님도 몰라볼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성경 내용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살아 계신 주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나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게 “ ~라고 하더라” 그런 식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3인칭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1대 1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1대 1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나 자신의 체험과 확신이 중요한 겁니다. 말하자면 ‘1인칭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참 신앙은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성경을 보면 능력있는 성도들의 모습이 한결같이 ‘1인칭 신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 다윗 -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의식했습니다. 소년 시절 군대 간 형을 면회하러 갔다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마주칩니다.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서지 않자 다윗은 부아가 나서 자기가 나섭니다. 사울왕과 주위 사람들이 무시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자기의 결심을 밝힙니다. 그때 그의 간증이 삼상17:34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17:34~36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시편18편을 보면 다윗의 체험적인 신앙 고백이 나옵니다. 시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예> 바울 - 그 역시 살아계신 주님을 직접 만났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러 가던 사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행9: ) 그 체험이얼마나 강렬했는지 그 감동이 평생을 갔습니다. 그가 후일 유대인 무리 앞에서 간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행22: ) 또 그가 로마로 호송될 때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납니다. 파선의 위기 가운데 모든 승객이 사색이 됩니다. 그때 승객들 앞에 당당히 서서 밝히는 말을 보면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27:22~25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아직도 지식적인 신앙, 3인칭의 신앙에 무물고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해야 됩니다. 야곱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생전 처음 고향을 떠나 먼길을 갑니다. 광야에서 지쳐서 돌베개 하고 자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그 전까지는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꿈 속에 천사를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제 비로소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된 겁니다.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아무리 신앙 연조가 오래 되었다 해도 이런 신앙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체험적 신앙,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이 없으면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불만불평하게 됩니다. 그리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분명히 주님을 부활 승천하셔서 그냥 떠나버리신 게 아닙니다. 부활하신 몸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부터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14:16~20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학교 교실에서 불신 영어 교사가 부활절을 빈정거리느라 수업시간에 칠판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He is nowhere.”(그는 아무 데도 없다.) 그리고는 한 학생을 일으켜 세우더니 읽고 해석해 보라고 했습니다. 마침 지적받은 학생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교사의 나쁜 의도를 알아차린 학생은 순간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읽고 해석했습니다. “He is now here.”(그분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이 학생의 말대로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영적인 낙향을 극복하는 방법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영적으로 다운(down)될 때가 있습니다. 이른 바 영적인 낙향이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조속히 극복해야 됩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본문에서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7절. 예수님이 엠마오 도사으이 두 사람에게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찬을 들면서 교제하셨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31절. 그래서 에수님을 알아보게 된 겁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고 이후로는 성령을 통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라져가십니다. 그때 두 사람이 서로 하는 이야기를 보십시오. 32절. “ ...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듣고 묵상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렘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그리고 영안이 환하게 열립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동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험한 세상 살면서 때때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과 고난 때문에 낙심이 되고, 영적으로 다운될 때 주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살아계신 주님께서 새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40:30~31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본문 보면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한 그들이 어떻게 변화됩니끼? 생동감 있는 신앙, 기쁨과 능력이 충만한 신앙으로 변화됩니다. 33절 보면 아직 한 밤중인데 즉시 에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담대하게 증거합니다. 그들에게 이제는 슬픔, 근심, 두려움도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혹시 영적으로 다운이 될 때면 살아게신 주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나심할 수 있지만 속히 극복해야 됩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해서 살던 시글락이 아말렉 족속에게 침략을 당합니다. 그때 다윗은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을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삼상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우리의 사람 속에 때때로 먹구름이 하늘에 잔뜩 낀 것 강티 괴로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먹구름 위에는 여전히 금빛 광채를 발하는 태양이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문제와 고난 너머 살아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럴 때 그 주님을 꼭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능력 받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전에는 정말 절망이란 말이 없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영적인 낙향이 있을 때 이 말씀 기억하시고 살아게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새 힘 얻고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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