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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이혼 / 사 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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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43:3-7
제목 / 위대한 이혼


아프리카의 한 청년이 <지독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청년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양> 한 마리를 지참금으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청년은 며칠 전에 <양> 한 마리를 신부가 될 여자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지참금>으로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
청년은 다음 날에도 <염소>와 <나귀>를 한 마리씩 보냈습니다.
<신랑의 선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그 다음 날에도 <소> 한 마리를 보냈습니다.
며칠 후에는 <외양간에 있는 소>를 몽땅 다 보내버렸습니다.
그 부족이 생긴 이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친구>가 물었지 않습니까 ?
  결혼할 아가씨가 대단한 집 딸인가 보지 ?
  아니면 이렇게 네 정신을 완전히 빼버릴 만큼 대단한 미인인가 보지 ?

친구의 이 질문에 한 동안 대답이 없던 청년이 말합니다.
  나는 단지 그녀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 !

성도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기 이 청년의 사랑 !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

하지만 성도 여러분 !
여기 이 청년의 사랑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부로 삼기 위해서 <나라>를 통째로 넘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보시지요 !  <3절> 말씀입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

<이집트>라고 하는 그 땅 !
그 땅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서 그 땅을 넘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스>, 즉 지금의 <이디오피아>도 넘기셨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바>, 즉 지금의 <예멘>도 넘기셨습니다.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랑하는 신부를 얻기 위해서 <나라>를 송두리째 넘겨버리시는 하나님의 여기 이런 처신을 말입니다.

예전에 영국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왕관>을 던져버린 <황태자>가 있었습니다.
만일 그 때 그 황태자가 한 여자를 얻기 위해서 <자기 조국>을 송두리째 넘겨버렸다면 사람들이 어찌했겠습니까 ?
온 나라가 일어나서 <저 인간, 미쳤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그 이상>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세계>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인정하십니까 ?
<자식>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처럼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 !
그 <외아들>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넘겨버리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신부>로 맞이하시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여기 이런 행동을 놓고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크신 분>이 <가장 큰 사랑>으로
  <가장 큰 죄인>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다 !

성도 여러분 !  그렇습니다.
우리는 원래 <수시로 간음하는 여인>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신부로 삼으시고 <사랑의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일방적으로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품>을 뛰쳐나갔습니다.
<타락한 신부>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대상을 찾아서 여기 저기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간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그 때 그 <음탕한 신부>를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도다 !

<이스라엘>은 한 때 <정숙한 신부>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연인>을 찾아서 몸을 파는 <창녀>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습니까 ?
이렇게 <간음한 여인>이라면 군중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
그것이 아니라면 그 여인은 <이혼증서>를 받아들고 쫓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더왕의 딜레마>를 아십니까 ?
<아더왕>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녀를 지독히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원탁의 기사>와 <불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단두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황실경비대원들>이 외칩니다.
  왕이여, 부정한 이 왕비를 처형하소서 !
  왕이여, 더러운 이 왕비를 죽이소서 !

<아더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랑하는 왕비>를 처형할 수도, 살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더왕의 딜레마> !
그것은 <하나님의 딜레마>이기도 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자니 신부를 향한 <사랑>이 깨져버립니다.

<마귀>는 그 순간에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신부의 죄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그 분으로 하여금 <십자가> 위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로 하여금 십자가 위에서 <온 몸의 피>를 다 쏟아 붓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러내린 <피> !
바로 그 <피>로 <더러운 신부>를 씻기셨습니다.
바로 그 <피>로 <시온의 딸들>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제는 <더러운 신부>가 <깨끗한 신부>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구제불능의 여인>을 다시 <신부>로 맞이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여기 이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이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여기 이것을 두고 <은혜>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하신 말씀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세례요한>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
그 분이 우리에게 <신랑>이시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우리에게 당신이 <신랑>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신랑>이 되신다고 하는 여기 이 말씀은 성경 도처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바로 <그 신랑>이 우리의 부정함을 청산하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 오르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부정함>은 이제 <말소>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에게 <새로운 혼인서약>이 필요합니다.

어제도 우리가 <결혼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그런 자리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
<하나님>께서 <신랑되시는 예수님>께 먼저 물으셨습니다.
  예수, 그대여 !
  그대는 <죄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토록 <신실한 남편>으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 것을 서약하는가 ?

예수님께서는 여기 이 질문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명한 목소리>로, 그리고 너무나도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예>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질문하십니다.
  죄인, 그대여 !
  그대는 <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하여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토록 <신실한 아내>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 것을 서약하는가 ?

성도 여러분 !
오늘 이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저는 이제까지 많은 <주례>를 서보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장에서 여기 이 질문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하지 않는 <신부>를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미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여자>가 결혼하면 그 신분이 <남편>을 좇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리 <명문가의 딸>이라고 해도 <건달>과 결혼하면 <건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천한 가정의 딸>이라 해도 <왕>과 결혼하면 <왕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주저하시는 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까 ?
이제는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하십시오 !
<예>, <예>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혼하면 <더러운 죄인>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혼하면 더 이상 <더러운 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아주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성령님>께서 <중매>하시고, <하나님>께서 <주례>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진정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에 우리 모두가 <진실된 마음>으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
여기 이 <은혜>라고 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혼서약>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신랑과 신부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 주는 모습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결혼한 신분으로서 오늘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
<신랑되시는 주님>께서 <신부가 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의 결별> !
바로 그것입니다.
<죄>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살던 <지난날의 삶> !
바로 <그런 삶과의 이혼>이 지금 우리에게는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기 이전의 <인생관> !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기 이전의 <가치관> !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기 이전의 <세계관> !
그 모든 것들과 과감하게 <이혼>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것은 제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여기 이 이혼을 놓고 <위대한 이혼>이라고 말했습니다.

<위대한 이혼> !
그렇습니다.
그것은 정말 <위대한 이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이혼>이라고 해도 고통스럽기는 <여느 이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혼>이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그렇지 않습니까 ?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여 우리가 오늘 <지난날의 삶>과 이혼한다고 하는 것 !
그것 역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거센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유혹들> !
그것들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때로는 우리가 그 싸움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을 자꾸만 피하고 싶을 때도 우리 안에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주님을 향한 사랑>이 점점 식어져 가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도 우리 믿음의 공동체 안에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설사 지금 내 모습이 그런 모습이라 할지라도 여러분께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약함>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히 <큰 사랑> !
바로 그 <큰 사랑>이 <우리 주님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기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
<우리의 배신>보다 <더 큰 사랑> !
바로 그 사랑이 <우리 주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닙니다.
<과거와의 결별>에 있어서 우리가 실패하는 것 !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실패>, <그런 무너짐>은 성군 <다윗의 삶> 속에도 있었습니다.
<모세의 삶> 속에도 그런 모습은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삶> !
저들의 삶 속에도 그런 실패의 모습은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
<실패>를 앞에 놓고 너무나도 안타까워하는 모습 !
<한 순간의 무너짐> 앞에서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 !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신랑 되시는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모습 !
그리고 다시 한 번 <위대한 이혼>에 도전하리라 다짐하는 모습 !
그런 모습이 지금 우리 안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어떻습니까 ?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이런 모습이 있는지요 ?

<위대한 이혼> !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
포기하지 마십시오 !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신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그것인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우리는 지금 주님과 <밀월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지금 주님과 <밀월여행> 중인데,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그런데 우리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위대한 이혼> !
그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면 주님과의 <밀월여행>은 즐겁습니다.
주님과의 <밀월여행>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주님과의 속삭임> !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눈맞춤> !
그것 역시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그 속삭임>이 너무나도 작게 들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의 시선>이 희미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고전 13:12> 말씀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
보실래요 ?  신약성경 279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는 이런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은 이처럼 <미래>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날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래도 우리는 <위대한 이혼>을 결행해야 합니다.

<실패>했다고요 ?
다시 시작하십시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그런 실패를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 큽니다.

넘어져도 !
깨어져도 !
부서져도 !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이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이 가득하면 할수록 <그 날의 기쁨>은 더욱 클 것입니다.
그렇게 <훨씬 더 큰 기쁨>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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