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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으려면/출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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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으려면

본문: 출3:1-12

미국에는 경매 시장을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들 중에는 헌 옷이나, 오래된 신발, 흙으로 빗은 그릇에 불과한데 무려 몇 백억 원을 호가하는 물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링컨 대통령이 신던 신발, 육체파 여배우 마르린 몬로가 입었던 속옷, 우리나라의 고려자기 등은 그 값이 어마 어마합니다.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할 이러한 것들이 비싼 가치를 지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역사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누가 이것들을 사용하였느냐에 따라 같은 물건도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볼품 없는 당나귀도 예수님이 등에 타니까 예루살렘 입성시 예수님과 함께 환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당시에 가난하고 무식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와 세리, 목동 등이었으나 주님이 불러 쓰시자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흔히 정치지망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허약하고 볼품 없고 쓸모 없는 자라도 예수님 뒤에 줄을 서면 성공하고 승리합니다.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첫째, 항상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돈, 명예, 권세, 여자, 건강, 스포츠, 영화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자기가 관심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무관심하게 지나쳤으나 뉴턴은 이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습니다. 세속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진 자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의롭게 하나님 앞에 설까? 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행도 하고 노력하며 찾은 결과 주님의 의로 구원받는 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깨달아 위대한 종교개혁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에 관심을 가졌고, 에서는 사냥과 먹는 것(팥죽)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본문 3장 2절에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광경을 보고 어찌하여 타지 않는가를 알기 위해 가까이 하므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자라야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돌리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는 자세를 갖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모세가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이같이 대답했고(창22:1, 11), 엘리선지는 사무엘을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도록 가르칩니다.(삼상3:9-10) 또 이사야 선지자도 주의 부르심을 받고 이같이 대답하 고 나섭니다.(사6:8) 따라서 이 말은 부름을 순종하고자 하는 표현이 분명합니다. 순종하는 자를 주님은 귀히 쓰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하였습니다. 따라 해보십시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들어 써주소서.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사랑의 종으로, 어둠을 밝히는 귀한 종으로 써주옵소서."
여러분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며 겸손히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노예(종)의 자리에서야 귀히 쓰임 받습니다. 본문 5절에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인줄 깨달아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발을 벗는 다는 것은 노예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노예들은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마땅히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신을 벗는 것은 순종하는 표시입니다.(눅15:22)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종의 자리에서야 귀히 쓰임 받습니다. 반대로 누가복음 15장 22절에 보면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발에 신을 신기웁니다. 이는 종이 아니라 아들임을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서 당시에 신을 벗는 것은 한국문화로는 무릎 꿇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자를 들어 귀한 그릇으로 쓰십니다.(잠13:13, 골3:22) 본문 6절에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목욕탕에 있다가 불이 나서 알몸으로 급히 뛰어나오면 어디를 가리우겠습니까?
사모아 사람들은 배꼽을 가리운다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발을 가리우고
서양 사람들은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우고
어떤 나라는 가슴을 가리우고
한국 사람들은 얼굴을 가리웁니다.
죄수들이 잡혀갈 때 얼굴을 가리우지요 한국사람들이 얼굴 가리우는 것은 체면을 존중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 말씀 이외에도 출애굽기 34장 33절에 보면 "모세는 자기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얼굴(이름)을 숨깁니다. 세상에 자기 얼굴(이름) 나타내려 애쓰는 자는 대개 삯군 목자입니다. 자기를 나타내지 말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려고 힘쓰는 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요사이는 탄저병(제2의 테러) 때문에 세계가 공포에 쌓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떠한 것들(죽음, 권세, 질병 등)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두렵고 떨립니다. 사람들은 권세자(높은 지위의 사람)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잠 29장 25절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에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영과 육을 아울러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십시오.
다섯째, 사명감이 있는 자를 귀히 쓰십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거나 천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 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직분을 충성스럽게 수행해야 합니다. 교회 신자들 중에는 구경꾼도 있고, 방해꾼도 있고, 참 신자도 있습니다. 자기 직분을 소홀히 여기고 일하지 않는 자는 방해꾼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해야 할 자리를 차지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여섯째,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본문의 떨기나무는 쓸모 없는 나무입니다. 종려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으시고 낮고 천한 떨기나무에 나타나셨습니다. 또 모세는 본문에서도 여러 차례 자기의 부족함을 들어 사양합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겸손하여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쓰임 받으려면 성공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비참해지는 것을 기뻐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위하여 나도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매여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지극히 낮아지는 것을 빨리 배워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세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는 생활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세리는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겸손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지극히 낮은 자세로 나아갈 때, 가장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나아갈 때,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 사랑 없음을 통회하면서 나아갈 때, 그때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왕자의 신분으로 궁궐에서 40세가 되기까지 공부하여 애굽의 모든 학술을 통달하였고 힘도 세고 모든 자격을 다 갖춘 인물로 내 힘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는 애굽사람을 쳐죽여 살인죄를 범하고 졸장부처럼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치는 목자의 생활을 할 때에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로구나 하고 자기 부족을 깨닫고 교만을 내버리고 80세가 되어 인간적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는 늙은 나이 때 겸손해진 모세를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예수님도 겸손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나귀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겸손한 자에게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과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고전1:27)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를 기뻐하십니다.(마18:4)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해야 합니다. 미국 대 태러 대참사도 미국인들이 완전한 방공망을 자랑하고 교만하다가 제일 높은 110층 빌딩이 무너졌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일곱째,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자신의 임재와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가질 때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은 어떤 환난 중에서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양치던 모세와 참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끝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딤후2:21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1)
더러운 그릇에 좋은 음식을 담지 않고 깨끗한 그릇에 좋은 음식을 담습니다. 주님도 깨끗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도 회개하여 깨끗한 그릇이 되어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http://je333.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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