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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기념] 갈보리의 영광 2 / 행 9:26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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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갈보리의 영광 2 (교회 설립 14주년에 즈음하여)
본문 : 사도행전 9 : 26 - 31
설교 : 강구원 목사 

작금의 한국 교회는 이전투구(泥田鬪狗)란 말 그대로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정년은 70세로 교회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정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년 후에 자신의 아들을 다음 목회자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회자(膾炙)되고 있는 이른바 교회 세습(世襲)이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든지 합당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습이라는 말은 한 집단의 재산(財産)이나 작위(爵位) 업무(業務)등을 자자손손 물려받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구태여 말하려고 하면 승계(承繼) 그 보다도 좋은 말은 후임(後任)이라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재산은 목사 개인의 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사의 신상은 공적으로 노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지 교회가 목사의 신상을 보장해 주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교회는 헌법에 따라 의결 기관과 결정 기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칠 줄 모르는 시시비비 문제는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후임자를 교회 구성원 전원이 찬성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후임자가 꼭 아들이라야 된다는 조건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후임자가 그 교회의 전통성을 보존 계승할 수 있고 적법한 절차를 적법하게 통과하고 교회를 지도해 나갈 영적인 면과 목회자로서의 탁월한 도덕성을 겸비했다면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후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갈보리교회는 아직도 이 단계에 와 있지는 않습니다. 갈보리교회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자행할 수 없습니다.
갈보리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갈보리의 영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본문을 중심하고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에게도 한 때는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고부터는 그가 죽는 날까지 주님의 음성 앞에서 사슬에 매인 복음의 사신으로 살았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사도 바울의 개종과 함께 그의 회개로 인하여 교회 부흥의 절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갈보리의 영광은

Ⅰ. 목회자에 대한 절대 신뢰에 있 습니다.

본문 9장 27절에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바나바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본래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이 바나바(위로의 아들)로 개명해 주었습니다. 지금 사울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사울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고 기독신자들은 그의 회개를 믿지 아니했습니다.

이때의 사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독에 몸서리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는 사람들로부터 예전과는 다르게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울에게 바나바가 찾아왔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신앙 인격을 신뢰했습니다. 그는 사울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원사도들에게 갔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예루살렘에서 소개했습니다. 그는 사울의 인격을 바로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고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울같은 일꾼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소개하는 내용은 첫째로 사울은 기적적으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확실히 회개했다는 것과 둘째로 사울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한 사실과(행 9:20) 셋째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과(행 9:22) 넷째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했던 것을 증거 하였습니다(행 9:23-25). 바나바가 사울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그후부터 제자들과 함께 거하면서 예루살렘을 출입하게 되었습니다.(행 9:28). 바나바의 증거로 인하여 사울은 원사도들로부터 예수의 행적과 교훈에 대하여 들었고(갈 1:18) 그 후로는 사도들과 대립하거나 다투지 아니하고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에 대한 신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더욱이 오해 같은 것이나 전파자에 대한 선입관은 금물입니다. 드물기는 하지마는 어떤 이들은 지도자가 넘어지고 잘못되는 것을 기대하고 취미로 삼는 사람도 없지 아니합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사람은 정의롭고 지도자의 진실을 옹호하고 변호하면서 의리를 지키는 자를 오히려 아부하는 사람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오늘날 우리는 의리와 아부를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신앙인이라기 보다는 이기적이고 편협된 사고방식이 그를 지배하고 있어서 믿음에 관하여는 전무한 상태의 사람입니다.
갈보리의 영광은

Ⅱ. 목회자가 소신있게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데 있습니다.

본문 9장 28-30절에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 앞에 변호해 주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사울은 기독교인들의 경계 대상도 아니고 기독교인들에게 배척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담대히 말하고}(파르레시아조마미, )는 거리낌없이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의도는 사울의 설교보다는 사울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자의 설교 내용에 앞서서 전도자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모든 자들과 대화와 교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도자는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전도자가 이 세상 역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사건들을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성경에서 그 답을 제시함에 있어서 능숙한 기능을 가지고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이것은 전도자 자신이 해야 될 일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협조가 적극적이라야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갈보리의 영광은

Ⅲ. 갈보리교회가 받은 교회적 사 명을 다하는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교회에 대한 외부적인 박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칼리쿨라(Caligula)가 자신의 동상을 성전에 세우려고 할 때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반발이 일어났고 A.D 41년 1월 24일 그가 피살됨으로 정치적 박해가 잠시동안 잠잠해진 때였습니다. 이 때를 교회부흥의 호기로 삼은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이 없는 시대에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육체적 자유를 만끽하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한 시대를 사는 값'을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경건해야 합니다.
본문 9장 31절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외부적인 핍박이 없게 되니 평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 평안할 때 교회는 이 기회를 잘 선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외부적으로 핍박이 없게 될 때 즉, 교회의 평안 상태를 선용하지 못하면 교회는 부패하고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맙니다.

{든든히 서가고 (오이코디오모우메네, )} 란 말은 건설되어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내적인 경건을 의미합니다. 경건생활로 인하여 각기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고 선한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교회가 영적인 경건을 잊어버리면 교회는 세속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교회가 경건을 잊어버리면 영력이 떨어지고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세상과 같아지거나 비슷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달라져야 합니다. 세속화된 교회는 교회적 부흥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경건은 매우 중요하며 교회 부흥의 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주를 경외해야 합니다.
본문 9장 31절에 {…주를 경외함과…}라고 했습니다.
{주를 경외한다}는 말은 성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두려움으로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노예적인 공포나 맹수 앞에서의 초조함이 아닙니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자발적인 감사에서 오는 복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믿는 내세중심의 신앙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잡으려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1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외한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그 사랑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감격에서 오는 무릎 꿇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드립니다. 여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고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흥되는 교회는

3)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본문 9장 31절에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위로}(파라클레스시, )라는 말은 '격려한다', '긍휼히 여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보혜사 성령 즉, 파라클레토스( )의 사역을 전제하고 사용한 단어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영적인 요소가 극대화 되도록 하는 교회입니다. 인본주의나 차디찬 이성주의나 과학적 경험주의나 논리 정연한 합리주의가 교회 안에 자리잡으면 그 교회는 참으로 답답한 교회가 됩니다.

4) 수(數)적 상승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9장 31절에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외적인 성장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교인의 숫자가 늘어간다는 의미지만 그에 따라 교회적 기능에 필요한 전반적인 수적 상승을 함의합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있다면 반드시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기에 따라 모든 것이 많아지고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수가 증가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절대적인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교회부흥이 교인숫자의 증가라고 하는데 대하여 엽기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특히 재정문제에 가서는 노골적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교인수가 갈수록 늘어나야 합니다. 부흥되는 교회는 모든 것이 양적으로 숫자가 증가되어야 하고 내용적으로 성화적 삶으로 말미암아 이전보다 더욱 경건해져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1. 갈보리교회의 전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갈보리교회는 선지와 사도의 터를 중시하고 이어지는 거룩한 전통을 계승합니다.

(2) 1946년 9월 20일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의 신사참배 강요로 항거하다가 투옥된 고 주남선 목사, 고 한상동 목사 등 옥중 동지들의 특별기도회의 결실로 부산에서 고려신학교가 개교되었습니다. 그후 고려신학교는 1946년 9월 14일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로 가결되었습니다.

(3) 1970년 12월 30일 문교부 장관령으로 전 고려신학교의 폐쇄령과 동시에 고신대학으로 인가를 받음으로 고려신학교는 폐교되었고 교단 명칭도 고려에서 고신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사실상 고려교단과 고려신학교라는 이름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4) 1973년 고신대학 교수들이 낸 신학적으로 본 법의 적용문제라는 논문이 신자간의 불신법정 고소가 가하다고 함으로 성경 고린도전서 6장 1-11절을 상황 윤리적으로 해석한 명백한 사실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어 1974년 제 24회 고신 총회는 신자간의 불신법정 고소가 가하다고 가결하므로 빚어진 신학적인 변질(교리)과 생활의 불순(교회행정)을 항의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고려파 역사 가운데 패배한 역사입니다. 패배한 역사는 반드시 복원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패배한 고려파 역사의 복고작업이 바로 반고소 운동으로 승화되었습니다.

(5) 1970년 12월 30일 고신대학 인가와 함께 부산에서 폐교된 옛 고려신학교를 1976년 3월 9일 서울에서 복교함과 동시에 반고소 고려측 총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 고려파의 신앙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교단 명칭을 반고소 고려측에서 고려로 개칭하였습니다.

(6) 옛 고려파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세워진 고려신학교와 고려교단에 의하여 창립된 교회가 오늘의 갈보리교회입니다. 갈보리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계시임을 믿으며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세계와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구속사이며 그 구속사는 곧 계시역사임을 믿습니다. 그 계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곧 역사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갈보리교회는 참된 역사란 구속사가 현실화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갈보리교회는 이러한 정신사의 흐름을 견지(堅持)하면서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사상으로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삶의 원리로 삼고 개혁주의 신앙노선과 절대 호흡하는 교회입니다.

2. 갈보리교회가 지나온 과정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갈보리교회가 교회건물과 함께 그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셈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가 자기 건물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신림 4동 498-55번지 시대입니다.

(1) 갈보리 교회의 시작입니다.
저는 갈보리교회(서울시 관악구 신림 4동 498-55번지에 소재한 건물 2, 3층 50평, 전세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60만원)에 1989년 5월 1일부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교인으로는 목사 가족 4명을 포함, 목사 가족이 전도한 S.F.C. 5명, 대학생 3명, 청년 2명, 장년 2명 총 16명이었습니다.

(2) 갈보리 선교원을 개원했습니다.
1989년 6월 3일에 주일학교를 조직하고 6월 20일에는 S.F.C.를 조직하였습니다. 특별히 기독교 유아교육에 관심을 가진 저는 1990년 3월 5일부터 갈보리 선교원을 개원(신림 4동 498-55 2층)하여 지금까지 신림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유아들을 기독교정신으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3) 새 교육관을 확보했습니다.
개척 2년 만에 교인수의 빠른 증가로 1991년 8월 25일부터 2부 예배를 실시 그 해 12월 22일에는 구역을 확장하여 재편성하였습니다. 그리고 1992년 6월 7일부터는 3부 예배를 실시(Ⅰ부 7:30, Ⅱ부 9:00, Ⅲ부 11:00)하였고 1992년 10월 11일에 교육관(신림 4동 498-54 지층)을 전세로 입주 입당 감사 예배(강사: 석원태 목사)를 드렸습니다.

2) 신림 4동 500-3번지 시대입니다.

(1) 교회당을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1994년 8월 1일 본당을 확장하여 신림 4동 500-3번지에 위치한 현대빌딩 2층(60평)을 임대, 교회 예배당을 이전하고 신림 4동 498-55번지에 있는 2, 3층 건물은 식당과 교육관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2) 교육관을 확장이전 했습니다.
계속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교회는 계속 부흥하여 공간부족으로 기도하던 중 1994년 10월 30일 이미 본당으로 사용하고 있던 현대빌딩 3층(60평)으로 교육관을 확장 이전하였습니다.

(3) 당회조직 및 장로 장립식이 있었습니다.
1997년 12월 13일 교회 설립 8년만에 갈보리교회 초대 장로로 박종필, 한창수 제씨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4) 목사 위임식이 있었습니다.
1998년 1월 24일에 저는 목사 위임식과 함께 갈보리교회 위임목사가 되었습니다.

(5) 집사 장립식이 있었습니다.
1998년 6월 13일에 집사 장립식(장립자: 양신수, 김광준, 장영진, 김우영, 장중석, 이정효, 박종철)을 가졌습니다.

(6) 인터넷 전도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1세기를 지향하는 비전을 가지고 1999년 11월 28일에 교회 홈페이지를 개설(www.calvary.or.kr)하므로 전국과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갈보리교회 메세지를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갈보리 선교원을 확장 이전했습니다.
1999년 12월 30일에 갈보리 선교원을 신림 4동 500-2호(지상 50평 1층 건물과 지하 30평 건물)로 이전 확장했습니다.
저는 과분하게도 성역 20주년을 맞이하여 2000년 10월 21일에 관악구 봉천동 395-73번지에 위치한 우성 캐릭터 그린빌 오피스텔을 교회로부터 기증 받았습니다.

(8) 저의 개혁주의 설교집이 출간되었습니다.
평소 교회 강단에서 선포한 저의 설교원고를 모아 설교집 3권(왕의 은총/ 이 시대에 사는 길/ 뼈를 메고 가는 사람들)을 출판(2001년 3월 10일, 펴낸곳: 경향문화사, 총판: 생명의 말씀사)하게 되어 2001년 3월 22일 노보텔 앰버서더 호텔 신라홀(금천구 독산동 소재)에서 설교집 출판 감사예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부터 전국 기독교 서점으로 배포되었습니다.

3) 신림 4동 504-2번지 새 성전 시대입니다.
갈보리교회는 그 동안 몇 년에 걸쳐 새 부지 확보와 부동산 매입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신림 4동 504-2번지에 위치한 명지빌딩을 매입하게 되었습니다(갈보리교회 11254-01834). 2001년 12월 24일에는 성탄전야 축하예배와 함께 교회당 매입 감사예배를 드렸으며, 2002년 4월부터 건물시공에 들어가 동년 8월 30일까지 마치고 동년 9월 7일 관악구청으로부터 준공검사와 함께 교회당으로 용도 변경 허락을 받았습니다.
(서울시관악구청고유번호 1162010200-1-05040002-00010)

3. 갈보리교회 활동입니다.

1) 예배활동입니다.
갈보리교회는 주일 낮 1부 7시 30분, 2부 오전 9시, 3부 오전 11시 예배를 드리며, 주일 저녁예배는 오후 7시, 수요예배는 오후 7시(30분)에 합니다. 새벽기도회는 매일 오전 5시이며 금요기도회는 금요일 오후 9시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2) 교육부서입니다.

(1) 주일학교
영아부(3세 반), 유아부(4-5세 반), 유치부(6-7세 반), 유년부(1-2학년), 초등부(3-4학년), 소년부(5-6학년)로 조직되어 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각 부마다 담당교역자와 부장, 부감, 교사들이 책임있는 교회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2) 중·고등부·대학부(S.F.C.)
갈보리교회 S.F.C.(Student For Christ)는 중(M.S.F.C.), 고(H.S.F.C.), 대(U.S.F.C.)로 조직되어 있으며 S.F.C.강령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3) 청년회(C.E.)
C.E.는 영어로 Christian Endeavor의 첫 글자를 줄여서 부른 것입니다. 갈보리 청년회(C.E.)는 주님의 몸된 교회 운동을 위하여 마음과 뜻과 힘을 다 바치는데 그 정신을 두고 있으며 C.E.강령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 성가대입니다.
제 1성가대를 갈보리 성가대로, 중·고 S.F.C. 성가대를 마하나임 성가대로, 여전도회 성가대를 마리아 성가대로, 제1청년회 성가대, 제2청년회 성가대, 제3청년회 성가대를 비롯하여, 남·여전도회를 중심으로 한 샤론 성가대, 유치부 호산나 성가대, 유·초등부 샬롬 성가대로 조직되어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5) 구역편성입니다.
서울을 4등분하여 동서울지역, 서서울지역, 남서울지역, 북서울지역으로 하고 있으며 지역장은 본 교회 장로들이 맡고 있습니다. 각 기관별로 40개 구역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6) 기타 기관입니다.
갈보리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받은 교회로 선교회를 조직, 유치부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전 교인이 선교회 회원이 되어 매월 선교 회비와 교단에 파송 된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신학교 후원회를 전교인을 대상으로 조직하여 고려신학교를 매월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특수선교, 경찰선교, 노인복지선교, 병원선교, 어린이 선교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앞서간 신앙 조부들이 물려준 거룩한 신앙 전통을 계승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대 시대마다 부끄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른바 실패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복고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역사발전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원천 고려파 내지는 통괄 고려파 가운데 실패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상황 윤리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고린도전서 6장 1-11절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신구약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 있는 패악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실패했던 교단 역사를 복고하는 반고소(反告訴)운동의 중심에 서서 반고소(反告訴) 정신을 신학화, 윤리학화, 목회학화, 교육학화, 전도학화, 선교학화 하는데 진력해 나아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명하는 정신에 따라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견지(堅持)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아벨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선지와 사도들의 터를 중시하고 이어지는 칼빈, 메첸, 주기철, 손양원, 주남선, 한상동, 석원태 목사로 이어지는 거룩한 신앙의 물줄기를 따라 도도(滔滔)히 흐르기를 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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