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대제사장의 자격 / 히 5:1~4

  • 잡초 잡초
  • 536
  • 0

첨부 1


대제사장의 자격
히브리서 5장 1절~4절

우리는 다움. 혹은 답다 라는 단어를 사용 할 때가 있습니다. 학생다움, 군인다움, 장로답다. 권사답다. 집사답다. 목사답다. 이런 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말해 주는 단어들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입학한 그 해 3월에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서점에 책을 보러 들어갔습니다. 모든 게 낫 설은 상태였습니다. 넓은 캠퍼스를 가진 대학에서 생활하다가 신학교에 오니 모든 게 좁고 작은 것들이었습니다. 서점도 아주 조그만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책을 고른다 고 손을 뻗었는데 그만 쌓아 놓은 책 더미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순간 서점 주인 집사님이 허겁지겁 달려오면서 아니 전도사님! 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처음엔 저에게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도사가 바로 저였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오면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은 편의상 모두 전도사라고 부르는 줄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신학생이라는 정체성은 있었지만 전도사라는 정체성은 저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교회에 사역자로 부름을 받아 나가서 사역을 하기 시작하면서 저에게는 전도사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말씀 해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왕의 자녀 혹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 같은 분들은 우리를 살아 있는 돌 거룩한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나라의 소유된 백성, 그리고 요한 사도는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거룩한 신부라고도 말씀해 주십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에는 아직도 이러한 정체성에 대해서 서먹서먹하고 체질화되지 않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처럼 처음엔 전도사라는 단어가 어색했지만 점점 전도사라는 정체성과 목사라는 정체성이 분명해 졌듯이 여러분들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갖게 될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행동을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꼭 밝혀야 하는가?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말은 참으로 아름답고 이상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찾아본다 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에 사원으로서 정체성을 갖지 않은 채 회사를 위하여 영업 활동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란 신분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 결코 동반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계신 분들을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긍심과 정체성을 갖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4절을 읽어 주십시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출애굽28장과 29장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사장이란 단어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말은 라틴어로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우리가 건너 갈 수 없는 곳을 다리를 놓아 건너 갈 수 있는 것처럼 제사장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건너 갈 수 있도록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을 특별 취급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대 제사장이 입는 옷은 너무나 화려한 옷이었습니다.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짠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이 흰색이나 무명색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는 다는 것은 당연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쳐다보는 옷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오늘 예배드린 여러분 가운데 아주 화려한 옷을 입었다든지 보통 사람이 입는 옷이 아닌 특이한 옷을 입고 예배에 나왔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눈에 띄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은 사람의 말을 들으십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옷을 입은 사람의 말을 들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이 입는 옷을 입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신부라고 말씀했습니다. 신부는 어디 가든 눈에 띄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서 제사장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과 여러분의 식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 누구이십니까? 눈에 띄는 사람이 여러분의 가정에 제사장입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유별나게 찬송하는 사람이요 유별나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별나게 기도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 예는 비단 우리 시대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을 보십시오. 자식이 없는 한나가 교회에 와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이 성경에는 입술만 움직인 채 입 밖으로 음성이 나오지 않으니까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술에 취한 채 기도 하는 줄 오해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오해를 많이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들으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해석합니다. 저 사람 무슨 문제가 있나 보구나 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어떤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줄 알면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다리는 놓는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제사장들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옷을 입고 계십니까? 오늘 하나님이 제정하신 이 옷을 입고 예배에 참여하셨습니까? 이 옷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옷입니다. 로마의 군병들이 갖고 싶었던 옷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빼앗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들의 힘으로 예수님의 옷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이 옷을 소유했습니다. 주님은 거룩한 신부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은혜의 옷을 입고 주님의 보좌에 나오시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다리를 놓는 제사장이 가져야 할 자격은 무엇입니까?---1절
그렇습니다. 제사장의 자격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동물을 제사장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썩어질 새들이나 금수들을 모시고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1절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부를 때 신학교에 있는 사람을 불러 주셨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특정한 자격 있는 사람을 부른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가운데서 사람을 부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저는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이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사람이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계란을 보십시오. 같은 계란이라고 다 같은 계란 일 수 없습니다. 무정란과 유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과 유정란은 눈으로는 식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암탉이 그 달걀을 품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암탉이 그 달걀을 품었을 때 유정란이라면 그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무정란은 곯아서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에 잠을 깨어서 일어났는데 제 코에 악취가 났습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 봐도 썩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품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것이 아니라 교회 사역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선교 교육관 건축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제 삶을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새벽에 저를 깨우셔서 나의 썩어 가는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무엇이 가득 차 있습니까? 말씀의 예리한 검으로 발라
내십시오. 암은 초기에 잘라 내어야 합니다. 암을 키우면 돌이 킬 수 없습니다. 나의 자존심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을 잘라 내십시오. 권력과 이 세상 것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을 예리한 칼날로 도려내십시오. 새 살이 돋아 지도록 하십시오. 생명을 소유하십시오. 주님이 나를 품으실 때 생명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제사장으로 부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생명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 사람들 과 하나님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제사장의 부르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2-3절

그렇습니다. 교사는 백묵을 들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고 피 냄새를 맡으면서 환자를 수술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만일 교사가 백묵 냄새 맡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교사는 교사로서의 부르심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의사가 피 냄새 맡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의사로서의 부르심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의사는 피 냄새 맡는 것에 대해서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의사가 환자를 보고 수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피 냄새가 싫어서 다른 약으로 대치하면 그 사람은 의사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직무 유기를 범죄 행위입니다.

이처럼 제사장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사처럼 피와 관계 된 일입니다. 의사가 늘 피를 보며 사는 이유는 환자의 환부 때문이라면 제사장이 늘 피를 보며 사는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 만일 제사장이 피 냄새 맡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것으로 대치한다면 그 사람은 심각한 범죄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피 냄새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대치하고 싶어합니다. 죄 문제를 피로 해결 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즐거운 프로그램으로 위로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나라와 교회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여 성도들을 모시고 기도원에 가면 기도 시간은 아주 짧고 서로 즐기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 번은 심각한 병에 걸린 분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병실에 들어가 이 분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 이 사람은 안수집사입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에게 위로의 말로 위로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믿고 병을 위하여 위로하는 말씀을 일단 접어두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의사가 피 냄새를 맡으며 수고하셨듯이 당신의 죄를 위하여 주님이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이제 이 분을 당신이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대 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과 당신 사이를 다리를 놓아주십니다 라고 전했습니다. 이 분을 믿고 신뢰하십니까? 라고 묻자 이 분이 눈물을 죽 흘리면서 고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교회 다닌 연륜도 많고 돈도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 보니 그냥 집사가 되고 안수 집사도 되었습니다. 저는 이 병이 낫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혹시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세례 받고 안수 집사가 된 것에 대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저는 그것이 더 무섭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방금 전해 주신 그 피를 제가 믿으면 저는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이 분이 믿겠다고 고백하고 결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죄와 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 또한 그리스도인이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는 죄와 피입니다. 늘 우리는 이 죄와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은 동네 꼬마들이 싸우는 그런 싸움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피 튀기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터에 우리는 코를 막고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피 냄새 맡는 것을 기뻐하면서 나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나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피 냄새를 맡으며 여러분의 자녀들과 이웃과 열방의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