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복합시다 / 막 10:13-16

  • 잡초 잡초
  • 262
  • 0

첨부 1


축복합시다 


(막 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막 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막 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가족 계획을 강조하는 캠페인 구호였습니다.  그래도 인구증가가 심각하여 하나만 낳기 운동이 한창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나라도 어린이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신세대 부모들이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하나밖에 낳지 않아 우리 나라도 서구나 일본보다도 인구증가율이 낮아져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노인인구는 크게 증가하고 젊은이는 크게 줄어 사회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연령층의 불균형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없어진다면 그 사회가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산아제한이 아니라 오히려 출산수당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벌써 농촌같은데는 어린이가 하나도 없는 곳이 많습니다.  취학 아동이 없어서 마을에 초등학교가 폐교된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지역에 있는 어떤 농촌교회 목사님은 부임해와서 장례식만 하였다고 하며  출산 심방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도시라고해도 다 어린이가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의 교회도 교회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줄어들고 있다고 초비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에 어린이가 이만큼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만약 여러분 가정에 어린이가 있다면 큰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가정에 어린이가 없어도 교회의 어린이를 보면서 나도 축복받았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새신자가 영적으로 어린이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갓난 아이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안에서 아이를 대함과 같이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새신자가 많이 있으니 감사하고 오늘 말씀에 나오는 어린 아이처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어느날 예수님께 사람들이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꾸짖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여럿 모이면 떠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겨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도 많이 모여 정신이 없는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니 통제하기 어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제자들을 보시자 분히 여기시며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린 아이들을 안고는 안수기도를 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안수를 받고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신났을까요?  예수님의 손은  치료하는 손입니다. 권능의 손입니다. 긍휼과 자비의 손입니다. 기적의 손이요, 은혜의 손입니다. 주님의 손에 안수를 받고 축복을 받은 사람은 모두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고, 슬픔도 변하고 기쁨이 되고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에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자연도 사람에게 복을 주는 것 아닙니다. 축복이란 말은 영어로 blessing인데 사전을 찾아보니까 이 축복이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용어라고 동아백과 사전에 말하고 있어요. 다른 종교에는 축복이 없어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독특하게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축복을 누가 주십니까? 우리에게 손을 올려서 축복할 이는 전능하사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축복은 위로부터 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모든 좋은 것들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이, 우리가 바라는 모든 축복이 있습니다.  복은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좋은 것들은 빛들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축복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어요.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없어요.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부름 받아도 하나님을 잘 경외함으로 그 안에서 천하의 축복을 다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실수가 많아도 하나님을 떠나는 실수보다 더 큰 실수는 없습니다. 어리석음이 많아도 하나님 떠나는 어리석음, 교회를 떠나는 어리석음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습니다. 아무리 다른 면으로 미련하고 죄가 많아도 하나님 떠나는 죄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이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어요. 다른 것은 다 길도 있고 소망이 있어요. 회복이 있어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거지나 기생이나 술집여자나 바람둥이나 어떤 무식한 사람도 소망이 있어요. 회복이 있어요. 성경을 보세요. 기생 라합도, 이방 여인 룻도, 다 예수 안에는 길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그렇게 부요하고 잘 나가던 솔로몬 왕국도 무너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는 거예요.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놀라운 일은 없는 거예요. 그를 경외하면 그 안에 온갖 회복이 있고, 치료가 있고, 기적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분을 항상 예수에게로 인도해 주고 어린아이들에게도 자나깨나 예수 잘 믿도록 '너는 하나님 잘 경외해라'고 해야 합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록펠러에게 10가지 유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언이 기가 막히게 축복된 말씀이었습니다. 록펠러는 가난하여 9살부터 남의 집 점원으로 일을 했는데 어머니가 물려준 신앙을 물려받은 거예요. 어머니가 자녀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못하고 이 신앙을 물려주었는데 록펠러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시다. 너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가 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목사라고 하면 배가 아파하는 분이 있어요. 목사라고 하면 삐딱한 눈으로 보구요 넥타이 맨 것도 시기하구요 주의 종이라고 하면 무조건 물고 늘어지는 불독 같은 분이 있어요. 교회에 와서 항상 목사를 걸고 씨름하려고 하는 분이 있어요. 항상 목사 말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영적으로 시험 드는 분이 있어요. 신앙 생활은 그러면 안돼요. 열 가지, 백 가지 가운데 주의 종과 걸려 가지고 유익 될 일이 하나도 없어요.

3. 주일 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려라.
내 교회가 있어야 돼요. 내 자리가 있어야 돼요. 교회에 와도 아무 곳이나 말고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 좋아요. 얼마나 축복이에요. 윤보선 대통령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자리에 앉았어요. 항상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내 집이 있듯이 내 교회가 있는 거예요. 떠돌아 다니는 것, 집이 없다는 것,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교회도 내 교회 없이 돌아다녀 봐요. 한 달만 다녀봐요. 믿음이 약해집니다. 영적으로 고아가 되는 거예요. 유리, 방황, 걸식하는 거예요. 꼭 설교 들어서만 은혜 받는 것이 아니에요. 내 교회는 문만 열고 들어와도 평안이 와요. 은혜가 되는 거예요.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주머니가 십일조 주머니예요. 평생동안. 세계 최고의 재벌이라도, 십일조 잘 하기로 유명한 분이 록펠러예요.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친구를 만들고 원수를 만들면 안돼요.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품어 주시고, 용서하는 주의 삶을 본받아야 해요.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그냥 되는대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거예요.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아침기도 얼마나 좋아요? 아침에 문을 열 듯이 기도하면 길이 열리는 거예요. 활짝 길이 열리는 거예요. 아침기도, 새벽기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앞서 가시고 그 길을 축복하실 때 얼마나 잘 되겠어요?

7.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성하며 기도하라.
하루를 지나면 잘못한 것이 있지요. 저는 늘 있습니다. 저는 잘못하는 것이 늘 많습니다. '오, 아버지!' 잠들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밤에 복을 내려 주시는 거예요. 낮에는 인도하시고 밤에는 평강을 주시고 잘 자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밤사이에 준비해 주셔서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해 주시는 거예요. 얼마나 좋아요?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보통 일어나면 신문을 보지요. 사실 신문 읽지 않으면 얼마나 궁금한지 모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궁금합니다. 그러나 별의 별 어려운 것들, 부정한 것들, 답답한 것들 보니까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해외에 나가서 한 열흘동안 신문을 안 보면 한 이틀은 궁금하다가 한 일주일 지나면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신문 없는 곳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그러나 천국의 뉴스는 나에게 유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매일 내게 은혜가 되고 소망이 되지만 세상은 아무리 읽어도 날마다 날마다 그런 것만 연속이고 별 은혜가 없어요. 축복된 것이 신문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9. 남을 도울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남을 돕는 것이 좋아요. 평생 남을 기쁘게 하고 유익되게 하고 무엇을 하든지 말 한 마디라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고 용기 주고 아끼고 이것은 다 좋은 일들이에요. 선한 일을 하는 거예요.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어른들도 본받아야 돼요. 이렇게 살아야 돼요. 뒤에는 예배 안내하고 봉사하려는 사람, 아이가 떠들어 방해되면 안고 나가려는 사람만 앉아야 합니다. 은혜 받고 예배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항상 앞으로 와서 앉아야 합니다.

  록펠러가 어려서부터 어머니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것을 평생 지키며 살았더니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재산 많이 물려 주지 못할까봐 조바심 하지 마세요. 록펠러 어머니처럼 자녀를 마음껏 축복하고 축복의 비결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어린아이를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안았다는 말씀은 사랑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안수하고 축복하셨다는 말씀은 기도하고 축복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우리 인간은 고기가 물을 만나듯이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나아가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신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만한 교육은 없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겸손을 가르치면서도 어머니는 '우리 수성이는 지도력이 뛰어나서…'라는 말을 항상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자녀들은 반은 타고난 성품대로, 반은 부모님들의 덕담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성이 뿐만 아닙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장점을 크게 부각시켜 지나가는 말처럼, 주슬처럼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도록 심어주시곤 하셨습니다. 수억이는 어릴 적부터 끈기 하나는 아무도 못따라갔어. 수인이는 목소리가 우렁차 나중에 한몫 할거야. 수윤이는 머리가 비상해서… 수정이는 꼼꼼하고 계산이 빨라서…. 그 덕분인지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 덕담대로 풀린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끊임없는 덕담은 자식들의 울타리를 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자신감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 속담이 있습니다.  한마디 덕담도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말 그대로 결실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려진 축복은 또한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 자녀교육의 첫 번째 원리는 '자녀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축복을 받는 순간 내가 중요한 존재이며 축복받을만한 가치를 가졌다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높은 가치부여는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나야말로 중요한 존재이다. 정말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이것처럼 값진 자기 인식이 어디 있는가?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암시를 받게 됩니다.

이래서 축복은 가장 큰 격려인 것입니다. 또한 축복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깨우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위는 자녀들의 삶에 경건의 의미를 심게 됩니다.  부모가 축복기도해주는 모습을 보고 어린 자녀가 부모보다 큰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아주 크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절대적으로 여기던 부모가 작아져요.  그래서 사춘기가 되면 반항하지 않습니까?  조금 더 자라면 부모의 존재가 절대적이기는 커녕 아주 미미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릴때부터 부모가 절대자 하나님을 잘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는 비록 절대적 부모의 존재는 사라졌어도 절대자 하나님 축복의 근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 가치의 혼란을 비교적 잘 수습할 수 있고 방황이 빨리 종식되는거예요.

  구약 성경에 보면 축복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댁이라는 제사장이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역시 온 힘을 쏟아 축복을 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그리고 열두 아들에게 축복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축복들이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해 주는 덕담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주는 것으로 대단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 축복대로 다 되지 않았습니까?  에서는 뒤늦게 이삭에게 달려가 축복을 간청했지만 야곱에게 했던 것과 같은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하나님의 복된 약속과는 영영 멀어지지 않았습니까?  에서가 처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시시하게 여기고 팥죽 한그릇과 바꾸는 망령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축복과 상관없는 사람이 된 것이에요.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은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에 축복의 말을 아끼지 말고 많이 부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번에 심방을 하면서 축복의 말씀을 아낌없이 가정마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힘이 들어도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기쁨으로 그 축복을 기록해 가면서 마음에 굳게 새기는 분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축복해도 받을만한 그릇이 못되면 축복은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도 축복의 시간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복을 받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어 축복이 되고 말씀을 통해 고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축복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쏟아져 축복이 되고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어 축복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 예배에 성공하여 오늘도 큰 축복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항상 복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하고 우리의 모든 불행과 슬픔과 가난과 저주를 물리쳐 주시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형통하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지방회 목회자 부부수양회로 거제도에 갔습니다. 자는데 새벽에 잠간 두어 시간 낚시를 하자고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끌려 낚시를 하러 갔는데  교회생활이 낚시와 비슷한 점이 많더라구요. 낚시꾼은 앉아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먹어가면서 하루고 이틀이고 그냥 앉아 있어요. 꾼은 바다만 보고 있으면 그리고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 있으면 그렇게 편하고 좋답니다. 교회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드리러 나오면 그렇게 편하고 그냥 행복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주님 앞에 나오면 떠날 줄 모르고 좋아하는 낚시꾼처럼 예수 믿어야 돼요. 낚시하는 분들은요 매일매일 가구요. 못 잡아도 또 가고요. 어떤 때는 배를 타고 원정가고요. 또 며칠씩 갔다고 돌아와요. 오늘 우리는 주님을 이렇게 좋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 오면 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교회만 오면 물 보듯이 편안하게 앉아 있아야 해요.  저는 낚시가 잘 안 되더라구요. 잘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두어시간 했는데 조그만 것 세 마리를 잡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더 형편없었습니다.  "그물을 놓으면 많이 잡을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한 시간에 한 마리씩 어떻게 잡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낚시꾼은 많이 잡는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니래요. 낚시에 고기가 딱 걸렸을 때에 그 당기는 기분때문에 빠져든답니다.  그건 사람을 잡는다고 그래요. 고기하고 어떤 때는 한시간을 싸운대요. 도망가려는 고기와 당기고 풀고 하면서 한 마리를 잡는 그 기분은 말로 못한대요. 손맛을 볼려고 낚시를 하는데 그 손맛때문에 수 백만원을 들여 장비를 갖추는 사람도 있답니다.
  정말 우리의 신앙이 그래요. 예배 시간에 주님의 말씀이 딱 걸리면 잡아당기는 거예요. '저 말씀은 내 말씀이다.' '저 말씀은 내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이다.' 하면 잡아 당겨야 해요.  그렇게 하면 모든 예배 시간이 낚시하는 사람이 큰 월척을 잡듯이 한없는 흥분과 감격과 축복의 시간이 됩니다.  어느 말씀이든지, 어느 찬송이든지 예배 시간마다  내 마음에 탁 와서 걸리면 옳다 되었구나! 하고 "오! 주여 믿습니다."하고 잡아당기는 거예요.  낚시꾼이 손맛을 보듯 성령의 맛을 보며 그 감동을 즐길 줄 아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지만 예수 믿어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인류 역사에 큰 축복을 받은 분이 되었습니다. 삭개오 같은 죄인도 예수 믿어가지고 의인되고 그 가정이 천국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의 복을 받았어요.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나와서 주의 말씀 듣고 믿음의 생활하면 내 영혼에, 내 가정에 월척을 낚는 이 축복이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예배 시간 시간마다 참석해서 은혜를 받고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며 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든지 외모를 볼 필요 없구요 어떤 세상적인 불행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면 다 해결되기 때문에 낙심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한나처럼 오직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성전 가까이 믿음의 생활 잘 하도록 가르쳐만 주면 그 외에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아이에게 축복이 주어지게 되는 거예요. 또 우리는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은 주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어 줄 수 있고 축복해 줄 수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듯이 우리는 모든 분들을 축복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하기를 좋아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비난 문화와 저주 문화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전체적인 우리 삶에 사회적인 분위기는 비난하고 망신주는 거예요. 그저 닥치는대로 비난하고 저주하고 망신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살아 왔습니다.  대통령 하신 분들도 비난하고  재벌도 비난하고  선생님들도 비난하고 검찰 법관 모조리 비난하고 공격하는 겁니다.  근래는 교회도 무조건 비난하고 목사도 비난하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 전반에 걸쳐 비난과 저주 그리고 망신주는 것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골이 송연한 저주가 담긴 욕설이 아무에게나 자연스럽게 오고갑니다. 심지어 자기 자녀들을 향해서도 축복을 하기는 커녕 저주섞인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놓습니다.  망할 놈, 썩을 놈, 벼락 맞을 놈,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그런데 이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저주가 담긴 욕설들이 가득한 세상이 아닙니까?  그것도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쏟아부어주어야 할 어린아이들을 향해서도 여과되지 않고 무서운 화살같이 날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 되겠어요?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우리들이 예수의 사랑으로 안아주고 안수해 주고 God bless you! 하고 축복해 주는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서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잘 합니다. 아름답습니다. 훌륭합니다. 잘 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모든 분들에게 박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칭찬하며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깨닫게 되어 있어요.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 이제는 안아야 되고, 이제는 사랑해야 되고 이제는 모두 너, 나 할것없이 축복을 빌어주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들춰내고 비난하고 저주하며 욕하는 이런 문화가 아침햇살에 깨끗이 녹아 없어지는 안개처럼 걷어지고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주시는 축복만이 우리 교회에, 이 사회에 가득하게 하여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축복된 일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