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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에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29: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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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창 29:31-35
새문안교회 2003. 5.25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야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맡기기보다 자기의 꾀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야곱은 야심이 많았던데 반해 그다지 착하고 정직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형 에서가 배고파 할 때를 노려 팥죽 한 그릇으로 그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넘겨받는가 하면 형 몰래 형으로 변장하고 아버지를 속여 아버지로부터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채기도 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욕심 많고 간교한 아우에게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다 빼앗기고 격분하여 아우를 죽이겠다고 하는 형을 피해 야곱은 멀리 외삼촌 라반에게로 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삼촌 라반 또한 욕심과 속임수에서 야곱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무려 20년에 걸친 외삼촌과 조카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 대결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안쓰러운 대결의 전반부에서는 탐욕스럽고 악랄한 외삼촌에게 조카가 어처구니없이 당하고 말았고, 후반부에서는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기에는 너무나 교활하고 악착같은 조카의 대반격에 외삼촌이 손을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라반은 어느날 갑자기 그의 집을 찾아온 생질 야곱을 아주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환영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계산이 깔린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야곱의 출현은 무엇보다도 크나큰 노동력의 증가였습니다. 그리고 노동력의 증가는 곧 재산증식의 수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조금 앞서는 창29:14-15에서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한 것을 보아 우리는 야곱이 도착해서부터 첫 한 달 동안 라반은 야곱을 공짜로 부려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달이 지나서야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때 이미 라반의 둘째딸 라헬을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녀를 아내로 얻기 위하여 그녀의 아버지 라반을 7년 동안 거저 섬기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라반은 이러한 야곱의 제안에 대만족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라반은 귀한 노동력인 야곱을 그의 집에 두고두고 머물게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야곱이 자기 딸과 혼인하겠다고 하니 그를 더 확실히 집에 붙잡아둘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스스로 7년을 무보수로 일하겠다니 그것이야말로 굴러들어온 떡이고 1석2조의 성과를 앉아서 거두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라반은 1석2조로 만족하지 않고 야곱을 1석3조의 횡재의 기회로 삼을 계략을 이미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집보내기 어려운 큰 딸 레아를 야곱에게 떠안기는 것이었습니다. 창29:17에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한걸 보면 레아는 예쁘지도 않았고 게다가 눈이 아주 나빴던 것입니다. 그래서 7년이 지나고 둘째 딸 라헬을 야곱에게 주어야 할 날이 되자 라반은 밤에 라헬 대신 큰 딸 레아를 야곱의 신방에 들여보내는 기막히는 사기극을 자행했습니다(창29:23). 야곱은 그 다음날 아침에야 그가 첫날밤을 보낸 여인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인 것을 알고는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창29:25) 항변했지만 라반으로부터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라”(창29:26)는 태연한 대답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는 야곱을 통해 1석3조의 이익을 얻기 위해 그 말을 미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차피 레아를 아내로 맞았으니 혼인행사기간인 1주일을 다 채운 후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거저가 아니라 또 7년을 일한다는 조건에서였습니다(창29:27). 그토록 약삭빠른 야곱이었지만 꼼짝 못하고 14년 세월을 외삼촌 집에 묶여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 14년 동안 야곱은 레아와 라헬 그리고 두 아내의 여종들을 통해 열한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드디어 자신의 몸으로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은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4년간 외삼촌을 위해 일하며 아들만도 열하나를 거느리는 가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재산이라고는 한 푼도 만들지 못한 채 그대로 세월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외삼촌을 위해서는 충분히 할 만큼 했고 계속 외삼촌과 함께 있다가는 자기 자신의 집안을 세울 기회를 영영 못 얻으리라 여겼기에 야곱은 떠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처자들을 데리고 자기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라반에게 말했습니다(창30:25-26). 그러나 야곱의 수고로 재산을 크게 늘린 라반은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야곱에게 원하는 대로 품삯을 줄 터이니 그냥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를 뿌리치지 못한 야곱은 결국 또 6년을 외삼촌 집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외삼촌 라반은 결코 야곱에게 정당하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야곱이 나중에 라반에게 털어놓은 다음의 항변을 통해서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31:38-42). 창31:31에 의하면 라반은 야곱을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은 후 야곱이 굳이 떠나겠다면 자기 딸들은 함께 보내지 않고 야곱만 빈털터리로 내보낼 꿍꿍이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눈치 빠른 야곱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삼촌에게 끝까지 당하고만 있을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외삼촌을 떠나기로 마음먹고도 또 6년을 머물기로 한 것은 마음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어차피 떠날 것이지만 빈털터리로 떠날 수는 없고 한 몫 단단히 챙겨가지고 나갈 궁리를 한 것입니다. 야곱은 겉으로는 아무런 재산의 욕심이 없고 그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일해 외삼촌의 재산을 최대한 늘려드리겠다는 듯이 보이게 하면서, 사실은 외삼촌에게 엄청난 재산상 손실을 입히고 그만큼 자기의 재산이 늘어나게 할 술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야곱의 술책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계속 자기 집에 묶어두려고 야곱이 바라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묻자 야곱은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30:31) 하며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즉 외삼촌의 양 떼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들을 가려내서 그것들을 자기의 품삯으로 갖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희고 좋은 대부분의 양은 외삼촌 것이고 소수의 얼룩지고 비실비실하는 양들만을 자기 것으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30:32). 그리고 언제든지 외삼촌이 와서 조사해보고 야곱의 양 중에 흰 것이 있으면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고 가져가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30:33). 라반은 일반적인 품삯에 훨씬 못 미치는 대가를 받겠다는 야곱의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외삼촌이 만족해하며 안심하게 한 후 야곱은 외삼촌의 양들 중 튼튼한 양들은 모두 얼룩진 새끼들을 낳게 하여 외삼촌 소유의 양들은 급격히 줄어들게 하고 자기 몫의 양들은 크게 번식하여 자기를 큰 부자가 되게 하는 수를 썼습니다. 창30:35-42에서 전하는 대로의 야곱이 외삼촌의 양들에게 행한 교배방법이 과연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야곱의 행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사실로 인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대인의 눈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그 현상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음을 야곱이 그의 아내들에게 행한 설명 가운데서 알 수 있습니다. 창31:6-12을 봅니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20년간의 세월과 고생과 노동력 착취와 설움으로 맺힌 한을 풀기 위한 야곱의 대반격은 완벽하게 성공하고 그는 20년간 스스로의 힘과 수고로 키워놓은 외삼촌의 재산의 대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고향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야곱의 최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정직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이나 라반이나 모두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악랄하기까지 한 사람들로 드러날 뿐임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탐욕적 인간들의 속이고 속으며 물고 물리는 싸움 속에서 하나님은 누구의 편이시며 또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 속에는 라반의 두 딸이며 야곱의 두 아내가 된 레아와 라헬 사이의 일도 끼어듭니다. 이 두 여인은 결국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족장들의 어머니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그렇게 정직하고 착하기만 한 여인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야곱이 사랑해서 혼인하기를 원했던 라헬 대신 레아가 신혼 첫날밤에 들어간 사실만 해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고 그녀를 아내로 맞기 위해 7년이라는 세월을 외삼촌을 위해 일했으며 그 약속기한이 다 차서 이제 혼인하게 된 것은 온 집안과 마을이 다 아는 일이었을 것인데 느닷없이 레아가 신방에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이겠습니까? 적어도 레아와 그의 아버지 라반 사이에 은밀한 계획이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고, 필경 라헬도 아버지의 그 계획을 알고 동의했을 것입니다. 결국 야곱만 모르고 있었지 라반의 온 가족들 사이에서는 이 기회가 아니면 시집보내기 힘든 언니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혼인시키자는 합의가 다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라헬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멍청히 신랑을 빼앗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라반만 교활한 것이 아니라 레아도 라헬도 외톨박이 야곱을 속이는 일에 동참할 만큼 정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매였던 이 두 여인은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로 야곱의 아내가 된 후에는 한 남편의 사랑과 그와의 잠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관계에 서게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레아는 야곱에게 아들들을 열심히 낳아줌으로써 그의 사랑을 차지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 아들을 낳을 때마다 그 이름을 짓는 그녀에게서 우리는 측은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레아는 첫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르우벤”이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그녀의 첫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짓고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기대했다는 것입니다(32). 둘째 아들을 낳고는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지었습니다. “시므온”은 “들으심”이란 뜻입니다. 그녀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33). 둘째 아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남편의 사랑을 받아보려는 애처러운 여인의 모습을 봅니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레위”는 “연합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내가 그에게 아들을 셋씩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겠지 하고 바랬다는 것입니다.

언니 레아가 연달아 네 아들을 낳는데 반해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라헬은 언니를 시기했고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30:1)고 생떼를 쓰다가 야곱으로부터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는 짜증스런 핀잔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자기의 시녀 빌하로 하여금 야곱의 아들을 낳게 함으로써 언니를 따돌리고 야곱의 사랑을 계속 자기에게 붙들어두려 했습니다(30:3-8). 이에 질세라 레아 또한 자기의 시녀 실바로 하여금 자기 대신 야곱의 아들들을 낳게 했습니다(30:9-13).

한번은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가서 그 당시 정력제로도 쓰이고 임신촉진제로 여겨지기도 하던 식물인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린 적이 있습니다(30:14). 그 사실을 안 라헬은 레아에게 그 합환채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의 사랑에 긂주린 레아가 그 합환채를 내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말하기를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하고 독하게 쏘아붙였습니다. 사실은 자기가 동생의 남편을 먼저 가로챈 것인데 어느새 그 반대로 여기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자 라헬은 그 합환채를 자기에게 주면 그 대신에 남편을 언니와 동침하도록 하룻밤 양보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레아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그 밤을 야곱과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두 자매는 한 남편을 사이에 두고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레아와 라헬의 그다지 착하지 않은 마음씨는 그들이 야곱과 함께 아버지 집을 떠날 때에도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31:15) 하며 입을 모아 아버지를 성토하고는 그들의 남편에게 아버지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남편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라고 재촉하기도 했습니다(31:16). 또 라헬은 집을 나올 때 자기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해 나오기도 했습니다(31:19). 드라빔이란 그의 아버지가 믿던 가정수호신을 형상화한 조각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훔친 것은 아버지의 복을 훔친 것이나 마찬가지로 간주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직하지 않고 착하지 않은 여인들의 일들 속에서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하시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직하지 않고 의롭지 않은 행위나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의를 이루시며 그가 원하시는 선을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곱과 라반은 둘 다 욕심 많고 교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악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하나님께서는 의와 선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탐욕을 들어서 야곱의 탐욕을 벌하셨고, 야곱의 악랄함으로 라반의 악랄함을 갚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재산이 늘어나게 하시는 데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결코 야곱의 교활한 속임수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창31:12)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악랄함을 갚으시기 위하여 야곱의 그 술책을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레아와 라헬의 시기와 다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을 공평하게 베푸셨습니다.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던 레아에게는 아들을 낳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셨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에게는 야곱의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야곱과 라반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숱한 거짓되고 악한 일들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홀로 역사의 주인이시며 그 모든 일들을 그의 선하신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데에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라반은 그의 부도덕한 계략을 통해 야곱이 원하지 않았던 레아를 그의 아내로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레아를 통하여 레위와 유다를 낳게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존립을 지탱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력을 책임지게 하셨으며 유다지파에게는 다윗왕조를 이루어 정치적 주도권을 맡게 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지파와 다윗의 가계를 통하여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인류의 왕이시고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살다보면 이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온통 다 거짓말쟁이들과 욕심꾸러기들과 불의한 자들뿐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에는 거짓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찬 인간들이 서로 잘했다고 싸우는 것을 보며 환멸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여야가 싸우는 것이 그렇고 미국과 이락이 싸우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악한 자를 들어 악한 자를 치시며 의와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혼돈과 불안정, 인간들의 모략과 술수와 아귀다툼 속에서도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그의 선한 뜻을 이루시며 의를 세우시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악에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고백해야 할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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