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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점 하나 차이 / 막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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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 하나 차이 / 막12:31   


성경에서 ■믿음■이란 말이 들어 있는 절은 225절,
소망■은 97절 그리고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절수가 519절이 나옵니다.
사랑을 뜻하는 또 다른 말들 -인자, 인애와 같은 말들을 더하면 사랑에 대한 절수는 700절 가까이 육박합니다.
그만큼 사랑에 대해서 성경은 그 무엇보다도 거듭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쓰여지는 말 중에 가장 흔한 말이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목말라 하며 결핍되어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부족하니까 사랑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첫째 되는 계명에 이어서 둘째 되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옛날이야기에 대장장이 프로미시우스가 인간을 만들면서, 각자의 목에 두 개의 보따리를 매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으로 가득한 보따리를 앞쪽에 걸고, 다른 보따리는 자기 자신의 결점으로 가득한 보따리를 등 뒤에 달아놓았다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지만, 자기 자신의 결점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죠.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성향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이러한 인간의 부정적인 성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그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셨습니다.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네 이웃이 바로 자신의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웃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남을 대접하는 것이 곧 자기를 대접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웃이라 함은 거리 또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른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서로 간에 영향을 끼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께서는 그 개념을 더욱 넓히셔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는 모두가 이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눅10장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말씀하심과 같이 민족적인 장벽을 넘어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모두가 다 이웃이라는 말입니다.

더욱이 온 세상을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하는 우리들에는 있어서는 땅끝까지 우리의 이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웃사랑이 곧 자기 사랑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한 유행가 가사에서 ■남■에서 점 하나 빼면 ■님■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글자놀이를 할 때 쓰는 자석글자판에서 점 하나 차이로 글자가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에서 점 하나 옮기면 ■너■가 되고, ■남■이라는 글자를 잘못 갖다 붙이면 ■놈■이 됩니다.

나, 너, 남, 님, 놈 이러한 간단한 글자들이 점 하나 차이로 그 뜻은 너무나도 크게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실제로 우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나와 너 사이”는 점 하나 차이요,
“님과 놈의 차이”도 점 하나 차이요, “남과 님의 차이”도 점 하나의 차이입니다.

누구나 점 하나만 옮겨서 생각하면 나에게서 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입장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하면 남에서 님으로, 놈에서 님으로 갈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평판 좋고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비난거리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성향에 있어서 모두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겸손하고 나서기를 꺼려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다고 비난하고,
반대로 박력있고 당당한 사람에게는 겸손하지 못하고 독선적이라고 비난합니다.
쾌활하고 잘 웃는 사람에게는 가볍고 진지함이 못하다고 욕하고,
잘 웃지 않고 진중하면 괜히 무게 잡는다고 욕합니다.

상냥하고 사근사근하면 내숭떨고 여우같다고 욕하고 상냥하지 못하면 뻣뻣하고 여자답지 못하다고 욕합니다.

너그럽고 많이 베푸는 사람에겐 잘난 척한다고 비난하고, 잘 베풀지 않는 삶은 또 구두쇠이고 편협하다고 욕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위선적이고 혼자 거룩한 척한다고 하고, 신앙심이 없는 것 같으면 똑바로 믿으라고 합니다.


이러한 점 하나 차이의 양면적인 인간의 삶에서 우리는 사랑의 점 하나를 찍어야 합니다.

영어에서도 보면 산다는 말 'live'에서 점 하나를 바꾸면, 사랑한다는 말 ■love'가 됩니다.
곧 산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하신 삶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명을 가진 자의 행복이 있습니다.

미국의 교육가 윌리엄 라이언 펠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술은 함께 사는 기술이다.■

또한 솔제니친은 ■강제수용소에서 남의 죽그릇이나 핥는 사람은 남보다 먼저 죽는다.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앓으며 의무실에 눕는 자는 남보다 먼저 죽는다■고 했습니다.

자기부터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먼저 죽고, 남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도리어 산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live가 love가 되지 않으면, 결코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랑을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인 된 우리를 얼마든지 비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난이라는 두 글자를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이 뭡니까?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들을 사랑하라■
■네가 사랑받기 원하는 만큼 그들을 사랑하라■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그 정신을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에 대해서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 말씀은 모든 인간관계에 다 적용되는 원리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첫째 되는 형상으로 “사랑의 형상”을 넣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서로 함께 살도록 지어주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야 할 법 중에 첫째와 둘째라는 분명한 진리를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두 가지를 놓치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고 하여도 물거품과 같은 인생이요,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이요, 도리어 거미와 같은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점 하나 차이가 나와 너, 님과 놈입니다.
우리 주님은 놈을 님으로 바꾸시기 위해서 사랑의 피로 그 글자를 바꾸셨습니다.
사랑과 미움의 차이는 멀지 않습니다.
단지 점 하나 차이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을 님으로 바꾸어야 할 사람들이 떠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놈을 님으로 바꾸어야 할 사람이 생각나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친구로 삼아주심과 같이.. 우리는 남이 결코 남이 아니요 결국 내가 그 안에 머물고 있다는 한 몸으로서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다리가 쑤시고 아프면 손으로 주물러 주지 않습니까?
한 몸에 어느 곳이 아프면 함께 고통합니다.

우리는 한 몸을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복음안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보다 크고 값진 삶의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live가 love가 되는 삶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 삽시다.
주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전인격으로 다하여 사랑하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첫째와 둘째 두 계명을 다시금 고백하며 일어나 나갑시다. 29~31절을 함께 마음에 새기면서 읽겠습니다.

막 12:29-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

아멘...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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