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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리석은 부자 / 눅 1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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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어리석은 부자 (눅 12:15-21) 


(서론) 병사의 흉복부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복이 처음으로 발명된 때는 미국 남북전쟁 때였습니다. 한 남부군이 미시시피 전투당시 그 방탄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적군 앞에 나섰다가 적의 총알이 그 병사의 머리를 겨누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가슴만 가리면 몸 전체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가 바로 이러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는 밭의 소출을 풍성히 거두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일 수 있습니다. 지식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학위일 수 있고, 연예인들에게는 대중인기일 수 있습니다. 병자에게는 건강일수 있습니다.
본문의 부자에게는 농사의 풍성한 소출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인간 모두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부자를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자는 어떤 자였습니까?


(一) 그는 재물이 자기에게 행복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인에게 재물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동산,주식,적금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읍니다. 그것은 행복과 불행이 그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부자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재물을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는 그 해 밭의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자신이 평생동안 쓸 것은 물론 후대에 물려줄 유산까지 넉넉하였으니 더 이상 걱정할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넉넉한 재물만 있으면 육신의 쾌락은 물론이요, 영혼의 평안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자기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속삭였습니다. (19절)
그러나 그는 진정 마음의 평안을 누렸는가? 더 이상 걱정 없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많은 재물은 오히려 그 자신에게 번민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어떻게 관리할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17절에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의 행복을 만끽하는 자의 감탄이 아닙니다. 너무 즐겁고 좋아서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탄성도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이 감당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재물 때문에 이궁리 저궁리 하다가 나오는 탄식이요, 신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결코 재물로써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을 지닌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15절) 말씀하셨습니다.


(二) 그는 하나님과 이웃을 잊고 자신의 안일만 생각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협력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잘 살고 평안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독불장군처럼 살아갑니다.
쾌락과 재물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강도, 강간, 인신매매, 유괴, 살인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이러한 파렴치한 행동은 자신밖에 모르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무서운 죄악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면 이웃에 대한 관심은커녕 "합당치 못한 일들"(롬 1:19-32)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풍성한 물질을 전적으로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거나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의 육신적인 삶을 위해서 곡간을 헐어 다시 더 크게 지었습니다.
Paul 사도는 이런 육신만을 위해 사는 자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빌 3:19)
이런자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롬 1:21)


(三) 그는 영혼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부자는 자신이 주인이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모든 재산과 영혼까지도 자신의 것이 라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밭의 소출을 풍성히 거두고 자신의 영혼에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했습니다.
만약 풍성한 물질이 영혼의 만족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왜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었겠는가? (히 11:26)
만일 인간이 자신의 영혼에게 명령하여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면 어찌하여 다윗은 불안해하는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하였겠는가? (시 42:5)
이것은 이땅에 속한 재물이 결코 인간의 영혼에게 만족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렘 38:16) 절대로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다. 여기 부자도 많은 재물을 쌓아둠으로 자신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엄청난 재물을 모은 이 부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경고가 떨어졌습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20절)
부와 권세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들도, 가난에 허덕이며 겨우 목숨을 연명한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는 다 빈손입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주인이 하나님이신줄 알지 못하고 마치 자기가 자신의 영혼의 주인인 것처럼 제멋대로 사는 자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괴롭게도 하시고 (욥 27:2), 즐겁게도 하시며 (시 86:4), 멸하기도 하시며 (마 10:28), 소생시키기도 하시는 (시 23:3)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니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며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했습니다. (사 55:1-3)

이 자리 나오신 존경하는 여러분! 공감하십니까?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행복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시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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