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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젊은이 (벧전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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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젊은이 (벧전5:1-11)

일반적으로 `젊은이`라고 할 때,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처럼 "젊은이는 젊고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영어의 youth 나 중국말의 청년(靑年)도 같은 의미로서 인간의 신체발달을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이와는 달리 오늘 본문에서 표현된 `젊은이`는 헬라어 `네아니아스`로서 `새로운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역할로서 표현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택한 자`라고 하는데 같은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딤후2:22에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쫒으라"고 했습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쫓으라는 것입니다. 육체대로 청년의 정욕대로 산다는 것은 `젊고 혈기왕성한 시기`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본능대로 살고, 감정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를 쫓으라는 것은 사명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는데, 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요셉을 아시지 않습니까? 요셉은 우리 신앙의 좋은 모델입니다. 형들에게 미움받아 노에상인에게 팔려서 남의 집 하인이 되고, 모함받아 감옥의 죄수가 되고, 여기 까지 보면 얼마나 기구한 인생인지 모릅니다.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애굽의 국무 총리가 됩니다. 어떻게 됩니까? 하고 싶은대로, 정욕대로 살지 않고, 부르신 사명대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욕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당연히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욕대로 원수를 갚지 않고,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창45:4-5에 보게 되면 요셉이 형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그러나 당신들이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도 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사명감으로 살은 사람입니다. 원수맺는 일도 없고, 다투는 일도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산 사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젊은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 사명으로 승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도 이 말씀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여기 장로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는 함께 장로된 자라고 하는 것은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이 교회 지도자들의 선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장로된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를 향해서도 같은 마음을 가질 것을 이야기합니다.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와 같이`는 그 앞에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사명도, 베드로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의 지도자 된 장로들도,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 앞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될 젊은 사람들도 사명은 똑같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장로들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과 여러 장로님들과 이 장로님의 가르침을 받는 젊은이들이 다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례미야 31:3에 "그 날에 노인과 청년이 같이 즐거워하며", 행2:17에 "성령받으면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노인은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성경은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 일에 있어서. 우리 젊은이들은 우리 장로님들이 받은 사명을 내가 받아야 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신앙의 선배들이 받은 사명을 내가 받고, 쭉 올라가면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받은 그 사명도 내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1절 말씀에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우리의 사명은 두가지입니다.

1.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죽음은 날 대신해서 죽으신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벧전2장에 사도 베드로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십시오. 증인이라고 하는 것은 나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받은 후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사도라고. 사도는 나가서 전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는 것이 첫 번째 우리의 사명입니다.

2.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영광의 관을 쓸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않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이 영광의 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에 있어서도 자기의 영원한 영광을 드러나게 하신 이가 고난당한 우리를 견고케 하신다고 말씀하면서, 우리의 해야 할 일은 이 두가지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며 우리 젊은이들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델이 되라.
2-4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이어서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장로님들이 하는 일을 젊은이들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양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이라는 것은 모델이 되라는 것입니다.

패션모델을 보셨습니까? 패션모델들은 지금 여름이 다가오는데, 지금쯤 겨울 옷을 입고 준비할 것입니다. 미리 가는 사람들입니다. 또 이들은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패션 쇼에 나오는 것은 앞으로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는 성공할 것도 있고, 실패할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델들이 있기 때문에 옷이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구도 그것에 따라 찾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된다, 교회의 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앞서가는 것입니다. 잘 될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모델이 되는가? 앞으로 나타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모델이 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장로님들의 역할이 컸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제가 목사지만, 목사 일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장로의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좋은 장로님 때문에 좋은 목사님들이 많이 나옵니다.
전라북도 금산에 가면 ㄱ자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때는 ㅅ자 교회라 볼 때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 꼭지점 위에 목사님이 강대상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는 양쪽으로 서로 안 보입니다. 이쪽엔 여자자리, 남자자리를 나누어 예배드렸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 이라고 말입니다. 조금 완화가 되서는 이런 예배당에 목사님이 서시고, 가운데 커텐을 쳐 놓고 여자 반, 남자 반 앉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도 그런 습관이 있어서, 왼쪽에는 거의가 남자였습니다. 오른쪽에는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앉았습니다. 누가 먼저 자리를 침범했느냐 하면, 여자들이 먼저 남자들 자리를 침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나 자유롭게 앉는데, 이 ㄱ자 교회를 세우신 분이 조덕삼 장로님입니다.
이 장로님은 여러분이 잘 아는 국회의원 조세영 씨의 할아버지입니다. 금산의 부자입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선교사가 와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이 조덕삼 씨만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그 집의 하인도 예수님을 같이 믿었습니다. 같이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교회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했는지, 그 교회에 가면 그 때 당회록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당회록을 읽어보면, " **씨는 주일성수하지 않음으로 며칠간 치리하노라", 주일성수하지 않아도 며칠간 치리했습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그런데 그 교회의 초대장로를 뽑게 되었습니다. 누가 장로가 되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 먼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냐? 그러나, 이 주인 조덕삼씨는 장로가 된 하인을 얼마나 극진히 섬기는지, 자신이 교회를 세웠고 돈 많이 들였고 자신이 많이 배웠는데, 하인이 먼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잘 섬기는지 그 후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 교역자가 필요한데, 이 하인이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하자, 그 교회의 당회장으로 세웠습니다. 한국 교회 상 총회장을 세 번 지낸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이 이 하인에서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신 이자익 목사님이십니다.

금산 교회에 가면 ㄱ자 교회가 그렇게 중하지만, 그 ㄱ자 예배당을 짓고, 거기서 신앙생활을 했던 조장로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도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정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 감당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델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박종순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가운데, 어느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장로님 내외분을 그렇게 칭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인즉, 그 교회가 무슨 특별헌금이나 건축헌금을 한 후에 나머지는 이 장로님이 다 감당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분이냐 하는 것입니다.
박목사님이 이야기를 듣고 참 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 부탁은 장로님 더 잘되라고 하는 부탁이니까, 명심해서 들으시라고 이야기했답니다. "이제는 쓰레기 치우는 장로가 되지 마십시오. 남들 다 해 놓은 후에 하는 것, 쓰레기 치우는 장로가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모델 장로가 되십시오."
처음에는 이 이야기에 많이 섭섭해 했지만, 집회 후에 장로님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땅을 내놓고, 교회가 그렇게 숙원하던 교육관 시설을 질 수 있는 헌금이 모아져서 그 일로 인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델이 되고 본이 된다는 것은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런 평가, 저런 평가도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교회는 이렇게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터에서 너희는 앞에 가라, 나는 뒤에서 가겠다는 지휘관을 누가 다르겠습니까? 앞장서서 모델이 되고, 앞장서서 양무리의 본이 되는,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
우리의 젊은이들은 늘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우리 교회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 시대의 모델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고, 주님 재림의 때에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되야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모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둘째, 겸손한 사람이 되라.
겸손이라고 하는 말은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5-6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겸손한 사람은 은혜 주시고, 교만한 사람은 대적하신다고 했는데, 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교만해 지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교만해 집니다. 내가 하면 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대적하시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봉사하고 충성하면서도 늘 마음이 불안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충성하고 헌신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대적을 받아서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겸손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왜 그렇습니까?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얼마나 겸손한 사람입니까? 그 겸손은 어떤 겸손입니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7절-9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그러면 주께서 돌보신다",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이런 염려를 맡기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고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 라는 분이 쓴 책 가운데,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믿음생활 하느냐?
하나님이 확실하게 내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음 생활 하는가?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도마가 주님을 의심했지만, 그대로 남아서 사도 도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사람들이 흩어져 갔을 때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온대 어디로 가리이까?" 열두제자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한다는 것은 확실해서, 눈에 보여서 믿음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염려가 있고, 근심이 있고, 확실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 안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또 이런 예를 듭니다. 우물이 얕은 것은 1m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 바가지로 물을 뜰 수 있습니다. 물이 안 나오면 더 깊이 파면 두레박을 사용하고, 더 발전해서 펌프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펌프질을 할 때 물이 쓸 만큼 안 나오면 조금 더 깊이 파는 것입니다. 이만큼 하다가 안 되면 조금 더 깊이 파고, 조금 더 깊이 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확실성만 찾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그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도 해 보고, 믿음의 깊이를 더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당연히 주의 전에 와서 철야도 하고, 할 일이 있는데 두려움이 있다면 보따리를 싸들고 산기도를 가던지, 작정기도를 한다던지 해야 믿음의 결론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의 우물을 파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편한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목회하기 힘듭니다. 너무나 편한 것을 찾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찾습니다. 자기의 신앙의 깊이를 찾지 않고 눈에 보이는 좋은 것만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들이 계속 되면 어떻게 하나? 한국교회를 염려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가까운 데 있는 교회는 교인이 한 3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교회도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양재동에 지성소가 있는데, 거기도 웬만큼 찼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미국에 갔으니 미국에도 교회를 세워야 하겠다 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최근에 750명 모인 교회가 150명 남고 다 그리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미국에서도 교포교회를 많이 문닫게 만들더니, 한국에서 21세기 선교전략해서 생각한 것이, 사도행전이 28장까지 있는데, 사도행전29라 해서 한국교회에 지성전30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지성전에는 본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을 실황중계해서 스크린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좀 나쁘게 표현하면 명풍브랜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천에 교회를 세웠는데, 성내역에 가면 셔틀버스가 있고, 그 버스를 타면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5개월만에 800명이 모였습니다.

요즘 셔틀버스는 백화점도 없어졌습니다. 이 사회가 경쟁사회인데, 있는 백화점이 셔틀버스를 돌려서 작은 가게들이 죽으면 서로 못 사는 것이다 해서 규제해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큰 백화점들은 작은 가게를 생각해서 셔틀버스를 안 돌리는데, 교회는 돌립니다. 작은 교회는 죽으라는 논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원 영통지구에 1000평의 어마어마한 부지를 빌려서 훈련받은 사역자들이 가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빌딩 옆에 우리 교단의 교회가 셋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런 교회가 한국에 지성전을 30개를 짓겠다고 합니다.

우리 남산 건너 새로 시작된 교회는 93%가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장로님들이 수십명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풍선처럼 이쪽을 누르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이기만 하겠습니까? 과연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고, 영광의 재림으로 참여할 자들이란 말입니까? 정말 우리의 신앙이란 것이 나 편한대로, 시설 좋은대로 찾아 다니는 것이 내 신앙이란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증인이 되서 복음증거하고 주님이 오실 날을 대비해서 충성하라고 하는 데, 우리는 무엇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좀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주의 돌보심과 때가 되면 이루실 것을 기대하면서 믿음의 우물을 깊이 파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맡기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니까, 안 되는 것도 되더라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근신하라, 깨어라` 하면서 마귀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데모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힘만 합치면 정의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끼리 끼리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누가 내 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마귀지, 장로님이 아닙니다. 장로님들, 젊은이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참소하는 자입니다. 남을 헐뜯고 파괴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적은 파괴하고 남을 참소하는 것이 우리의 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겨야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악한 영들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난 마귀를 본 일이 없습니다.",제가 그랬습니다.
"왜 못 보십니까? 마귀와 같이 가니까 못 보지요." 뒤돌아 서 보십시오. 분명히 마귀가 보입니다. 참 안된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남을 참소한다던지 파괴하는 일들은 다 마귀 장난 놀음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는 마귀들의 역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월드 피스 킹 컵이라는 명칭의 축구대회가 요즘엔 피스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월드 피스 킹, 세계의 평화의 왕이 문선명이라는 것입니다. 문선명의 이름을 걸고 축구대회가 열려지고 있습니다. 1조7천억이라고 하는 엄청난 부채와 공적자금을 지고 있는 통일기업이 말입니다. 200억을 들여 축구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선명의 통일교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그것을 응원하고 참여하고, 그것은 마귀의 놀음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이단중의 괴수인 박옥수는 잠실 체육관에서 성경세미나를 한다고 사람들을 동원합니다. 이런 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이에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사도 베드로가 고난의 때에 마귀들을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남을 비판하고 참소하는 마귀를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헐뜯는 것은 마귀의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더 깊은 믿음의 우물을 파는 우리들이 마땅히 되야 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깊은 신앙의 관계를 가져 나가는 우리들이 마땅히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0-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미국에 흑인 노예 출신이고, 가난했고, 미국 국회 상원에 가서 연설을 했습니다. 처음 계획은 10분이었는데, 앵콜을 거듭 해서 한시간 반을 강연하신 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입니다. 할머니가 그의 이름을 지어 줄 때에 "너는 비록 흑인이고, 노예지만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능가하는 커버가 되라." 그에게 그렇게 이름을 가르쳐 주고 신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농사를 지면서 자연히 그가 많이 접한 것이 그 당시 땅콩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음 속에 땅콩속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땅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콩 한알 속에서 300가지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화장품을 만들고, 고기를 만들고 땅콩 하나에서 말입니다.

10분을 강의하러 갔다가 한시간 반을 강의하는데, 이 분이 그 때 했던 강의의 내용이 `땅콩 한 알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창조계획과 섭리`, 땅콩 한알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오늘 나를 향하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젊은이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본이 되는 사람,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승리하는 젊은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많은 분이나 젊은 분이나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고,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손 아래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 속에 놀라운 복으로 함께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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