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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란 무엇인가(1) “하와와 아담: 불순종과 책임전가” / 창 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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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1) “하와와 아담: 불순종과 책임전가” 
창3:6-13

오늘부터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본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란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기독교 신앙의 핵심 24가지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인도한 일이 있고 책을 쓴 일이 있습니다. 이 책입니다. 이번에 다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란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중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다루고 있는 핵심중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죄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인간이 범한 죄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물론 창조의 이야기도 서술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위대하심을 서술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범한 죄의 이야기를 주로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성경은 죄를 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죄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란 이름 자체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 보세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마1:21). 성경을 펼치면 제일 먼저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다음부터는 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야기가 창 1장과 2장에 나오고 3장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4장에는 가인이 죄를 지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6장에는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담의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담이란 말의 뜻은 사람입니다. 아담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첫째 죄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다음 에덴 동산의 모든 아름답고 좋은 동물, 식물, 광물을 다 선물로 주시면서 한 가지를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니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6).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시고 단 한 가지만 금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그 금지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창3:6). 여자가 먼저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주어 남자도 따 먹게 했습니다.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사람은 만들어질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불순종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불순종 속에는 불신앙과 교만과 반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순종과 불신앙과 교만과 반역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신적인 요소도 있지만 자연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흙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고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 마귀의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뱀의 간교한 유혹의 소리를 여자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사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뱀의 소리는 여자의 미각과 시각과 욕망과 잘 어울렸습니다.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고 했다고 했습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하나님께서 칠일이라는 시간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시면서 엿새는 우리의 일을 위해서 마음껏 사용하지만 하루는 우리를 위해서 따 먹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출20:9-10).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명령을 불순종하고 주일 하루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주일 오후와 저녁에 집에서 쉬든지 운동을 하든지 사업을 하는 것이 몸과 집과 사업에 유익하게 보이기 때문에, 주일을 잡아 먹는 것이 먹음직하게 보이기 때문에, 주일 하루를 거룩하게 지키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들이 몸과 시간과 정성을 다 바쳐 예배 드리는 것을 항상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실과나 시간이나 물질을 따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불순종입니다. 부모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 죄이고 주의 종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입니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엡6:1)고 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13:17)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하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15:22,23)고 했습니다. 죄는 불순종입니다.


둘째 죄는 책임전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죄를 지은 아담을 찾아와서 아담의 불순종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3:11). 하나님은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죄인들이 지은 그 죄를 지적하십니다. 가인이 분노의 죄를 지었을 때 가인을 찾아오셔서 그의 분노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을 어찜이뇨”(창4:6).

그런데 아담은 자기가 지은 불순종의 죄를 인정하거나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의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했습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불순종의 죄는 책임전가의 죄를 낳았습니다. 책임전가는 거짓과 위선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비겁하고 비굴하고 이기적인 변명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2인칭과 1인칭으로 부르며 사랑했는데 이제는 하와를 보고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라고 3인칭으로 부르며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변덕적이고 위선적이고 비겁하고 비굴했습니다. 아담은 또한 은근히 자기가 지은 죄의 책임을 하나님에게도 전가했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사람은 이렇게 비겁하고 비굴하고 위선적이고 간교한 존재입니다. 하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어 내가 먹었나이다”(창3:13). 여자도 비겁하고 간교합니다. 죄는 책임전가 입니다. 대통령은 자기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전가하고 국민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대통령에게 전가하는 것이 곧 비겁하고 비굴한 이중적인 죄입니다. 주일을 제대로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것이 남편 때문이고 아내 때문이고 건강 때문이고 집 때문이고 사업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비겁하고 비굴한 이중적인 죄입니다. 모두가 내 탓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죄에서 벗어나는 길인데 사람들은 그 길을 걷지 못하고 자기가 지은 죄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므로 더 큰 죄에 빠지게 됩니다. 죄는 책임전가 입니다.


셋째 죄의 결과는 고통과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정영 죽으리라”고 말씀하시며 죽음을 선언했습니다(창2:17). 사도 바울도 나중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죽음을 선언했습니다(롬6:23). 아담과 하와는 이제 불순종과 책임전가의 죄를 지은 결과 고통과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을 지니게 되었고 땅은 저주를 받게 되었으며 아담은 종신토록 고통스럽게 수고하며 일하다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쫓겨나는 불행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고통과 죽음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선언하신 것처럼,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엄하게 분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출31:12-15). 어떤 무식한 사람들은 이 말씀이 구약에만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청교도들과 프린스턴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촬스 하지는 이 말씀이 구약시대는 물론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영속적인 의미가 있다고 바로 주장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자는 영적으로 죽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그 책임을 전가하는 죄의 결과는 고통과 죽음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2장의 명령이든지 출애굽기 20장의 명령이든지 요한복음 3장 16절의 명령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죄는 불순종이고 죄는 책임 전가인데 죄의 결과는 고통과 죽음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죄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 소망의 빛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신 다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어떤 선행이나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 받는 길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의 빛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과 21절에서 그 소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유혹한 뱀을 저주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 마귀의 머리를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가 깨트러 부수므로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일3:8, 히2:14, 히9:26 말씀등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4). "이제 그가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이 죄에서 권함을 받을 수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세력과 죄의 세력과 죽음의 세력을 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는 길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물론 구약의 성도들도 죄와 사탄과 죽음의 세력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는 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다윗도 욥도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십자가의 은혜가 십자가 사건 이후는 물론 그 이전까지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죄인들이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는 길입니다. 그 다음에는 불순종과 책임전가의 죄를 계속해서 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 한 말씀을 읽습니다. 창3: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과 의의 옷이 벗겨진 아담과 하와에게 양의 가죽으로 만든 새 옷을 입혀주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릴 보배로운 피로 만든 흰 옷을 입혀 주실 것을 미리 가리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며 예수님의 피로 만든 흰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인간에 대한 처음 이야기는 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태어날 때부터 불순종과 불신앙과 반역의 이야기입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는 그 책임을 다른 사람들이나 하나님에게 전가까지 합니다. 비굴한 위선의 죄까지 집니다. 결국 우리들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들이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소망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므로 사탄 마귀를 멸하시고 죄와 사망의 세력을 멸하시므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만든 의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시게 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첫번 이야기입니다. 오늘 아침 피조물로 태어나서 불순종과 위선의 죄를 거듭해서 짓다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마련하신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돌립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서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피 흘려 만들어 주신 보혈의 흰옷은 입습니다. 그리고 불순종과 책임전가의 죄를 거듭해서 짓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보혈의 흰옷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불순종과 위선의 죄를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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