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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물매 돌 / 삼상 17: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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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교 자 :손상률
† 설교제목 :다윗의 물매 돌
† 성경본문 :사무엘상 17:38~49

지역과 인종에 따라 토속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고대 중동지방에서는 돌을 던질 때 물매에 넣어서 던지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로 적과 싸우는 전투용으로, 또는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을 때나 그냥 호신용으로도 물매돌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매는 가죽 조각이나 천을 엮어서 적당한 길이와 넓이로 만들어 가지고 한쪽 끝은 팔목에 걸고 다른 한쪽은 손으로 잡고 있다가 물매에 끼운 돌이 날아갈 즈음 순간적으로 놓아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숙련된 물매꾼에 의해서 던져지는 돌은 날아가는 거리와 힘과 정확도가 우수하여 매우 효율적으로 이용되곤 하였습니다. 거기 쓰여지는 돌의 크기는 지름이 5㎝-8㎝ 정도 되는 것으로 전문 물매꾼은 평소 이런 것을 많이 주워 가지고 자루에 넣어 다니며 필요할 때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다윗은 목동으로서 양떼를 몰고 다닐 때와 간혹 양을 해치러 오는 사나운 맹수들을 공격할 때 물매를 자주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과 대치하여 있을 때 아비의 심부름으로 다윗이 거기에 갔습니다. 마침 블레셋의 군대장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싸움을 돋우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체구에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어깨에는 단창을 메었고, 손에는 베틀 채 같은 창을 잡았으며, 그 앞에 방패를 든 사람들이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다윗은 사울 왕의 허락을 받고 맨몸으로 골리앗에게 나아가며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물매로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맞히게 되자 단번에 골리앗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한 블레셋의 백전노장 골리앗은 이름 없는 목동 다윗의 물매 돌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사건을 통하여 주는 하나님의 계시를 분별하기 원합니다.


Ⅰ. 주권자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합니다.

주권자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과 그 하시는 일은 인간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에서 전개됩니다. 이점에 대해 사도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고 감탄하였습니다(롬 11:3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목장에서 양을 먹이던 목동 다윗을 이곳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나라의 대장군 골리앗과 마주서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노련한 장군의 창과 칼과 단창에 비하여 시냇가에 널려져 있는 돌맹이로 맞서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신 그의 섭리적 작품입니다.

(1) 버려진 돌맹이

본문 40절에 보면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냇가에 널려져 있는 돌맹이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며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려진 것들입니다. 다윗은 거기 많은 돌들 가운데 자기 손에 맞을 만한 것을 골라서 쓰기 좋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자기의 자녀로, 또는 그가 필요로 하는 일에 쓰임을 받도록 선택하였습니다. 그 조건은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요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2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마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

시편 118:22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하신 예언입니다(벧전 2:7).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였고(사53:3), 사람 보기에는 아무런 쓸모 없는 존재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를 들어 쓰셔서 위대한 구원사역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여기 다윗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싸움에 나갈만한 장정들을 다 불러 모았고 그들에게 무장을 시켜 전장에 투입하였습니다. 이새의 집에도 장성한 세 아들이 사울을 따라 전투에 나갔고 말째 아들 다윗은 목장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삼상 17:13). 다윗은 아비의 심부름으로 현장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며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골리앗을 보고 자기가 맞서겠다고 나서자 그의 맏형 엘리압이 다윗을 건방지다고 하며 크게 나무랐습니다(삼상 17:28). 다윗 역시 그곳에서 골리앗과 싸우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렇게 엮어 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1-12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드로의 양을 먹이던 모세를 호렙산 불꽃 앞에 불러 세우시고 그를 애굽에 내려가도록 작용하였습니다. 그 당시 모세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아닌 이드로의 목자로서 미디안 광야에 내버려져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다고 발뺌을 하는 모세에게 마른 막대기 하나를 들려주시며 애굽에 내려가게 하였습니다. 그 때 모세의 손에 들려진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 하는 기적의 지팡이로 행사하였습니다.

(3) 생명적 능력을 행사합니다.

골리앗의 손에 들린 창과 칼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다윗의 손에 잡힌 돌맹이는 적을 제압하고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골리앗의 손에 들린 무기는 힘이 있는 것 같으나 사실상 죽은 것이고, 다윗의 손에 잡힌 돌맹이는 죽은 것 같으나 그 속에 생명력이 작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것을 가지고 그의 생명운동에 기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큰 군대로 만드셨고(겔 37:9-10), 회막 안에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하였습니다(민 17:8).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죽을 것이 하나님으 손에 붙잡혀 죽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하며 결국 사망이 이김에게 완전히 삼켜 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고전 15:54).


Ⅱ. 신비로운 믿음의 실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저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7:20). 이처럼 믿음은 신비로운 능력을 행사합니다. 여기 첫발로 날린 다윗의 물매 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를 때려 단번에 쓰러뜨린 것은 다윗이 고백한 그 믿음이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본문 말씀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한 그의 신앙이 이렇게 확인된 것입니다.

(1) 하나님 제일주의의 믿음

예레미야 17:5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7:7-8에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자기의 완력을 의지하는 자와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의 싸움입니다. 본문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한 이 말씀에서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골리앗은 자기 몸에 지니고 있는 무기와 그 무기를 능숙하게 잘 다룰 줄 아는 자기의 기술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앞서 사울 왕과 면접할 때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삼상 17:37).

(2)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믿음

골리앗의 손에 있는 창과 칼과 단창은 모두 다 인간의 가공품들입니다. 상대방을 제압하고 많이 죽일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제작된 기구입니다. 창세기 4:22에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인 계통의 두발가인이 최초로 전쟁 무기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싸움은 계속되었고 그 때마다 새롭게 개발되는 무기들은 가공할만한 성능으로 모든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다윗의 손에 들린 물매 돌은 시내 바닥에 널려 있는 자연석의 자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형 그대로일 뿐 인간에 의하여 고안된 가공품이 아닙니다. 어느 때나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본래의 모습을 변형시켜 자기들의 성향에 맞게 가공하며 그것으로 자기들의 이름을 들어내고자 애를 씁니다. 마치 노아의 후손들이 “우리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하고 하나님께 도전했던 바벨탑 운동처럼 결국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창 11:4).

옛날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본 거대한 신상 곧 정금 머리와 은으로 된 팔과 가슴,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 그리고 철로 된 종아리와 흙이 섞인 열 발가락은 모두 바벨론과 메데 파샤, 헬라, 로마에 이르는 고대 왕국들로써 인간이 만들어 놓은 찬란한 문명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조그만한 돌맹이 하나에 그것들은 모두 산산조각 나서 타작마당의 겨와 같이 날아가 버렸습니다(단 2:31-35). 다윗의 손에 들린 물매 돌 한방에 거대한 골리앗의 무력은 힘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3) 불가능이 없는 믿음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막 9:23).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죽은 딸아이로 인하여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며 잠자는 아이를 깨우듯이 살려 내셨습니다(눅 8:50-54). 예수님의 하시는 일 곧 병든 자를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신비로운 능력을 보면서도 믿음으로 이를 수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무궁무진한 능력이 행사되더라도 믿음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 보듯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수용하는 사람에게는 기적 같은 사실을 실감할 뿐 아니라 그 능력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나타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대권을 가지시고 그가 의도하는 대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모든 문제가 다 포함됩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지금 그 앞에서 전개되는 운명적인 대결이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결정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본문 46-47절에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1) 세상과 교회

여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면서 이스라엘을 공포에 떨게 하는 골리앗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의 세력이요 혈육을 권력으로 삼는 세상 나라의 상징입니다. 한편 다윗은 성도의 표본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이 두 세력의 싸움은 필연적이며 체질세계가 존속하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그침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교할 때 세상의 권세는 막강하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매우 미약하게 나타납니다. 마치 빌라도의 권세와 그 앞에서 소리지르는 유대군중에 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는 예수님처럼 비교가 안될 만큼 열세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과 인류를 지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운동의 특징입니다. 이사야 54:1에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성령사역의 신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 하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본 골리앗이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고 하였는데(43절), 여기 대하여 다윗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였습니다(45절). 또 47절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돌을 들고 나간 사람은 다윗이지만 그것으로 싸우고 이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교회는 그 구성원이 사람이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운동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자기의 의도를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운동입니다. 스가랴 4:6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승리하는 교회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와 마귀의 권세로부터 그침 없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고 하였는데(아 2:2), 이는 세상에 있는 그의 교회가 가시울타리와 같은 사탄의 세력에 둘러 싸여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리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행 14:22). 그렇지만 어떤 환난이나 죽음의 세력이 덮쳐와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승리하고 맙니다. 그것은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최대 무기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57).
손에 물매 돌을 가지고도 창과 칼과 단창으로 무장한 골리앗을 능히 이기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그 어떤 경우에도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신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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