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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으로 난 사람 -(3)생활 문화 / 갈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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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 갈5:16-26
  제목 : 성령으로 난 사람 -  생활문화


성령으로 난 사람은 하늘로부터 새롭게 탄생한 사람으로 아주 특별한 생
활 소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개성이 없이 무엇에나 비슷
하게 닮아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생활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그러
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특별한 삶의 방식이 있었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적극성을 띠고 있습니다.



1.성경 중심적 생활을 합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원죄(原罪)를 지은 후 여러가지로 징계를 받아 잃어버
린 것 중에 진리를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버리고 상대적인 인간 스스로
의 이성주의자가 되어 삶의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원죄 이후 인간은 여러 종교나 다양한 문화의 가치가 생겼습니다.그런데
참다운 삶의 법칙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육체적인 일과 원수 맺는 것 그리고 방탕한 것들입니다(갈5:19-21절).종
교라고 하는 곳에도 그와 같은 주관을 가지고  별 희한한 방탕한 종교도
있습니다.


그 모든 어지러운 사고방식들이 원죄로 인하여 들어온 하나님의 진노입
니다. 또한 도덕성이 파괴되면서 기준이 없어지고 방황하는 느낌대로 살
면서 더더욱 가치관의 혼란스러움에 인간의  영혼은 유린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20세기부터 이미 인간의 지식은 포화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연
구가 더 필요로 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고민되는 것은 무엇을 몰라서
가 아니라 무엇이 바른 것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딤후 3: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세상이 만든 지식은 지식인 바울의 정의를  따라 가면 바르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
라'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
릇 하려 하느냐'

이 말씀들은 일반 지식의 무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
로 살아가는 삶의 법칙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성주의(理性主義)의 모
든 목표는 하나님의 뜻과 이상을 따라 갈 수도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반
대편에 서서 도전하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따라 세계의 시작과 인생의 시
작과 그 과정과 사후의 세계까지 믿고 깨닫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의 본
성적인 사고방식을 깨어야 합니다. 지식은 다만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
야 하는 자료일 뿐입니다.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뱀의 생각, 사단의 생각에 끌려 첫 아담도 실패를 했습니다.  세상이 주
는 지식은 가끔 그렇게도 무서운 결과를 가져와서 사람을 멸망하게 합니
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나, 석가의 해탈론, 뉴에이지
의 무아지경 세계 등은 우리들을  멸망하게 하는 지식이었던 것을 잘 알
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가 지식만능시대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우리가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사모하면서  성경이 우리들의 삶의 교과서라는 사
실을 깨닫고 알리는 교사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성령의 인도를 적극적으로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유언하시기를 일반 교주같이 교훈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성령
을 주셔서 우리와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
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
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
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윈시적 기독교란 성령의 인도를 잘 받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
가 창설되고 복음의 확산이 시작 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강조
되는 부분이 성령님에 관한 것입니다.

행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
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오늘의 교인에게 막상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황당할 신자가 많을 것입니
다.  그것은 속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용기나 관념이나 짐작이나 그러한
느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기독교인은 불가분의 관계임에도  이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
다는 신령한 삶의 원동력에 대해서 둔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
의 백성이 된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를 말하게 될 때 성령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 지시와 그 계시적 관계를 혹은 이단의 소유물인 줄 착각하
지만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2천년 전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
신 성령님은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과 생활 속에 진리로 역사하시고 계십
니다.

먼저 주 예수를 믿게 하시고(고전12:3),  거듭나게 하시고(요3:5), 전하
게 하시며(요 15:26) 성도와 일생을 동행하시며 지도하십니다.  다만 영
감이 어둘 때 우리가 성령의 조명을  얻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뿐입
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 동거하시고자 합니다.
선한 일에도(복음 전파)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좋은 일에도 순
서가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16절은 명령어로서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내
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
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말은 영어로 Walk in the Spirit로  원문  페리파
테오( peripatevw )를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성령과 동행, 살다,  종사
하다, 주위를 돌다 등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 동행 동거한다는 것
입니다.

성령으로 성도의 존재가 될 뿐아니라 그  성도의 삶의 중심에서  실재로
활동하게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는 맘이나  행위로 근심하게 하면
성도가 승리해야 할 일에 착오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
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고한 대로 성령의 인도를 거부
하거나 태만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3. 교회중심적 생활을 합니다

교회당은 구약의 광야 성막과 같습니다.  신약에 와서 성전이  성도들의
영이라는 차원으로 이해시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삶이 구약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12지파가 둘러
싸여 살 듯이 성도는 교회당과 교회의 문화에 집중하여 살 때 바른 성도
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멀리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
다. 교회를 자주 왕래하고 교회의 일에 봉사하는 것이 싫어지면 그 때부
터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와
같은 성령의 열매는 교회 생활에 충실 할 때 이루어집니다. 왜냐면 교회
에는 예배와 말씀과 성령의 운동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영적인  일들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사람들이 교회를 자주 왕래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 그 날이란 말세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모
이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차츰 신자의 수가 줄어들지만
이미 유럽과 서구의 교회는 몰락 상태입니다.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말씀
을 귀담아 듣고 일생을 주와 같이 살려면 교회를 가까이 하고 예배 처소
와 가까이 집을 얻어 살고 그래야 합니다.

오늘 신자들이 목사의 심방을 끄려 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선
입감이 잘못되었습니다.  무슨 대접을 바라고 심방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목사에 대한 생각도 비뚤어
져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했을 때 참으로 우울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원칙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살아가는 참다운
법칙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의 시대가 지나버리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까
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
습니다. 거룩의 본래 의미가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 성도,
거룩한 전 성전, 거룩한 책 성경,  우리는 모든 이 거룩의 구별 속에 살
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명하신 주의 교훈은 윤리와 도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중심 곧 성경과 성령 그리고 교회 중심의 생
활 문화에 대한 교훈들이 얼마나 성경에 많이 강조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도의 생활 문화는 어느 시대에나 그 중심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약간
의 형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이미 거듭나서 성령을 모시고 있으나 생활
문화에 적극적인 성령의 인도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따라
승리하지 못하는 불신 풍조가 이미 우리 생활에 만연하고 있는지 모릅니
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갈 3:1-3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
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
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
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우리에게 도전되는 말씀이기를 바라면서 성령으로 난 사람의  생활 문화
에 대한 특별하고도 구별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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