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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으로 기뻐하라 / 눅 1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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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이것으로 기뻐하라
성경말씀 : 누가복음 10:17-24

한번은 예수님께서 칠십 인의 제자를 택하시고 둘씩 짝을 지어서 여러 마을에 파송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으므로 이들은 가는 곳마다 이적을 행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전파했습니다. 그들이 병자에게 손을 얹으니 병이 낫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귀신들이 소리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길로 이들을 쳐다보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얼마나 신바람 나고 기뻤겠습니까!

그 얼마 후에 돌아온 칠십 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셔서 가는 곳곳마다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고 천국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저는 본문에 근거하여 몇 가지 우리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교훈을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 째로,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대적할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사탄과 그에게 속한 악령들을 말합니다. 사단은 본디 천상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던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 비기려는 교만을 품었다가 마귀가 되어 천상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서 14장 12절로 15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천상에서 내쫓긴 사단은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되었고, 그를 따르던 한 무리의 천사들 역시 타락하여 귀신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단은 귀신들의 우두머리요 왕입니다. 사단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어머니인 하와를 범죄케 만든 뱀은 곧 사단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 20장 1절로 2절에는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간교한 사단은 악한 목적을 달성키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 사단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을 가리켜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 하신 대로, 사단의 목적은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뜨려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4장 4절에는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신”은 사단을 가리킨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고 하심으로 사단을 일컬어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요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절대로 그 악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다른 천사들이나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지음 받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단은 하나님의 적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범위 안에서 활동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와 동시에, 성경에는 이미 사탄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은 곧 마귀, 사단을 의미하는 것이고,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의 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실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과연, 때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요한일서 3장 8절에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머리가 상했다 함은 사단이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무장 해제 당하고 성도들을 해할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 12:29)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동안 강한 자로 군림해 온 마귀를 결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귀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함부로 손 댈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이 사실을 말해 줍니다.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씀입니까?

또한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마귀를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 18)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 속에는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몸을 성전 삼아 거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귀신이 범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성도들은 복음을 전함으로 귀신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불신앙의 세력이 거세게 저항하는 것은 그만큼 귀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즉 항상 주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주신 권세를 가지고 마귀와 싸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도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성도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고행을 하고 수양을 쌓고 도를 닦고 자선을 해도 자기의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기의 얼굴에 검정이 묻은 것을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율법에 자신을 비추어보지 않으면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알 길이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추악한 실상을 알게 해 줍니다. 그뿐 아니라, 율법은 우리의 무능함을 알게 합니다.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율법을 알고 나면 인간의 노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알게 되어 절망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절망감을 맛본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롬 10:10). 마음으로 믿는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것이요, 입으로 시인한다 함은 자기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믿은 것을 입술로 고백할 때 우리의 믿음은 구원 받는 믿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를 등지고 외딴 곳에 가서 수도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해서는 이 세상의 행복을 기꺼이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냐 현세의 행복이냐를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 때에는 주님을 택하고 현세의 행복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삶은 잠시잠간이지만 내세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면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보세요. 부자는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열고 즐기며 살았고,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곁에 앉아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연명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부자도 죽고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부자는 죽고 나자 음부 불꽃 가운데 떨어졌고, 나사로는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부자가 큰소리로 부르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죽어 음부에 들어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편, 나사로는 살아생전에 천대 받고 온 몸에 헌데를 앓는 비참한 신세였지만, 죽자 그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낙원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대로, 누구나 한 번 죽기 마련이고, 죽고 나면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 음부에 간 영혼들은 부활하여 대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에 던짐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0장 11절로 15절에는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을 누리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지상의 행복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라고 하면 “믿고는 싶지만 너무 바빠서 믿지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라도 사고가 나서 다리라도 부러뜨리면 만사를 제쳐 놓고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봅니다. 영혼의 구원을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는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기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칠십 인 제자들은 자기들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 쫓은 것에 대하여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병을 고친 것이나 귀신을 쫓아낸 것과 구원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진실로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교회 마당만 밟고 다니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야 하지만, 아무리 귀신을 많이 내 쫓고 많은 병자를 고쳤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로가 되어 구원받지는 못합니다. 가룟 유다도 칠십 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능력을 행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자신도 결국은 목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예수님을 빙자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해 준다고 선전하는가 하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자들을 미혹합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같이 거짓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예수 이름을 빙자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고, 겸손히 교회에 덕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데 힘씁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미혹하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귀신들이 여러분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 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우리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죄와 허물로 그 영이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하셨고,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디도서 3장 3절로 7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7)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자기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의 의지로 얼마든지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나 바리새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수백만 유대인 가운데 바리새인은 겨우 6천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바리새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유대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신앙적인 교만 때문에 그들은 생명의 주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생명의 주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칠십 인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후에,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이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의 주님을 믿게 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다윗을 비롯한 신앙심 깊은 임금들이 메시야 보기를 원했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결례를 행하려고 성전에 올라갔을 때, 시므온이라는 한 경건한 노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아기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메시야를 대면해 보고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 보니 구약의 성도들에 대하여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에 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믿는 것이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 이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때로 삶이 피곤하고 어려울지라도, 예수 믿는 일로 핍박을 받더라도,  성도님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생각하시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성도님들의 심령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솟아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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