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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참여자가 되라! / 빌 1:3-11, 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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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참여자가 되라 (빌1:3-11, 27-30)


로마 식민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소망은 로마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시민이 가지는 특권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지만 `로마의 시민`이기 때문에 죄수이지만 로마까지 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지역의 우두머리, 총독에 의해 죄값을 치르게 하지만 로마시민은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시민은 법과 군대가 보호해 줍니다.
그래서 로마시민이 되고 싶어합니다. 단순히 대우받는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로마가 수백년동안 유럽을 통치하는 그 힘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인은 지성면에서는 그리스도인만 못했고, 체력면에서는 게르만족보다 못했고,
기술면에서는 에투루이안보다 못했고, 경제면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했다.
그러나 로마시민은 법과 제도를 지키는 일과 원칙에 충실했다. 이것이 로마제국 번영의 열쇠이다."


우리나라도 번영하는 나라가 되려면 `법과 제도와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오늘의 혼란, 사고의 원인은 모두가 법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늘시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바울은 하늘의 시민이 지켜야 할 법과 원칙에 기준해서 살때 비로소 소망이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27절의"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씀은 바로 하늘의 시민답게 법을 지키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즉`생활하라` 는 헬라말 `폴리튜에스데`로서 시민답게 살아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늘시민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소망이었고, 가르침이었습니다. 고난의 때에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자칫하면 자포자기하기 하늘의 시민답게 하늘의 법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소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최고의 번영과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참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라는 말씀은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의 교인들을 칭찬하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은혜받은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1990년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소오 엘리저`라는 중국 선교사가 있습니다.
여자분입니다.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존경을 받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앞에서 가진 태도때문입니다. 그녀는 항상 하나님의 일군이 되고저 하는 열정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녀가 선교사로 일하다가 폐병에 걸려 본국으로 소환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폐병 걸린 저를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중국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추수된 곡식을 탈곡하다가 그만 탈곡기에 오른 손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아니고 주의 일을 위해서인데,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팔이 없는 나를 어떻게 쓰시렵니까? 이제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게 해 달라고 주님의 일군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요?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기쁘게 받으셔서 양로원을 세우게 하시고 과거와는 비교될 수 없는 큰 일을 맡기셨습니다. 과거에는 농장일을 돕는 것이 선교의 전부였는데, 수천명의 버려진 노인들을 모셔다 보살피고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오 엘리저`선교사를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려 놓았던 것입니다.
소오 엘리저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받은 자로 사는 것은 바로 이렇게 소명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전주대학교 이남식 총장이 소개되었습니다. 대학에서 농학도였으나 그 후 과학기술자가 되어 `감성 공학 기술 발전`에 큰 공로를 세운 분으로 40대에 총장이 된 분입니다.
전주대학교는 기독교대학교인데, 어떻게 믿음 안에서 살까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는 분입니다. 실력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교회에서도 섬김을 받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의 일은 금요일에는 구역장으로, 주일에는 `주차요원`으로 일합니다. 대학총장님이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고 당연히 여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까?

하늘의 시민은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에 주의 일하는 것이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런 받은 은혜를 나누어 줄수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뻐했다.` 그 이유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 후로 바울의 선교사업을 위해 헌금을 보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가면 데살로니가로 고린도에 가면 고린도까지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감옥에 바울이 갇히니까, 왜 감옥에 갇혔냐고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를 하며 주의 종을 위해 헌금을 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시중들게 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 ,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런 어려운 때에 사도 바울을 도와주는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은혜받은 자로, 은혜를 나누어 주면 이렇듯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게 됩니다.


3-5 말씀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부부끼리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집안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내가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며느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 집사님, 장로님, 권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기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자기이름)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자기이름)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기이름을 넣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꼭 그런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옆의 사람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하십시오.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되고 기쁨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은혜받은 자가 은혜를 주는 자가 될 때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집에 가서 편지를 쓰시거나 전화를 하십시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에게 전화하십시오. 며느리에게 전화하십시오. 은혜받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하늘의 시민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은혜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은혜 받은 것을 나누어 줄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주님이 나의 죄를 물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의 아픔을 보시고 고쳐 주시는 것이 은혜고,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이 따집니다. 사랑받을 만해야 사랑하는 거야 하고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런지 몰라도 하나님의 시민은 이쁜 구석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아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늘 시민은 은혜받은 받은 자로 은혜를 주면서 사는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한 이들을 보면서, 교회를 보면서, 가정을 보면서 이 민족을 바라보면서 특히 나도 살기 어려운 때에 "주여,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여, 그 책임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이고, 은혜에 참여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시민이고 하늘의 시민입니다.

마태복음25장에도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심판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된 자를 영적하고, 벗은 자에게 옷입히고, 병든 자를 돌보고, 옥에 갇힌 자에게 와서 보았느냐?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사람이 영생에 들어갈 자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유를 묻지 말고 도와줍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이든 다 은사로 여기는 사람, 일하는 데 쓰라고 주신 줄로 믿고 사용하는 사람이 달란트 비유의 충성된 일군입니다.
한 달란트 충성하니까, 두 달란트 되고, 두 달란트 갖고 충성하니까, 네 달란트 됩니다. 한 달란트 갖고 일 안 한 사람 것까지 뺏으니까, 다섯달란트가 됩니다.
일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더 큰일 맡기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시면 더 큰 은혜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은혜를 가진 사람만이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한 자로 사는 사람은 2가지 증거를 갖게 됩니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입니다.
6-7 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착한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빌립보 교회는 가난하고, 믿음생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즘 예수님 믿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목숨 내놓고 예수님 믿던 때가 아닙니까? -무슨 돈이 있습니까? 무슨 자유가 있습니까? 자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교헌금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이웃을 사랑하고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의 헌신을 보고,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게 하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라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 열심히 일했는데도, 모함받아 감옥에 갔고, 억울하게 감옥에 갔는데도 불구하고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사니까,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귀하게 여겨져서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가 되는 것이 복입니다. 은혜의 참여자가 받는 복입니다.

2).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11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도바울은 은혜에 참여한 자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라는 복을 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은 "고맙다. 내가 너 때문에 산다." 는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 때문에 살겠습니까? 그러나, 자식 잘 두면 부모가 얼마나 기쁩니까? 부하 잘 두면 상관이 얼마나 기쁩니까? 교인 잘 두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계24장에서 24장로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데,바로 여러분들이 그런 하나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3.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8-9절 말씀 보겠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내가 기도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사랑을 보다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하는 사랑! 은혜를 잘 나누어 사랑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3가지라고 했습니다.

1)기도함으로 지식있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코드가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와 개는 코드가 안 맞기 때문에 싸웁니다. 개는 좋아하면 꼬리를 세우고 흔듭니다. 고양이는 좋으면 꼬리를 내립니다. 개는 남을 경계하면 꼬리를 내립니다. 고양이는 남을 경계할 때 꼬리를 올립니다. 서로 맞지 않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사랑해도 코드가 맞지 않으면 늘 갈등이 됩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만, 저희 어머니는 며느리를 굉장히 사랑합니다. 그래서, 청소했다 하면 며느리의 방까지 다 치우고, 내가 보기에 이것이 괜찮다 하면 그것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며느리는 들어와서 보면 감사한 것보담도 내가 놓은 것을 누가 만졌다 이게 아무리 사랑하는 어머니가 만져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한 번 되고 두 번 되면 간섭이 되지 않습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해 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것입니다. 코드를 맞추어야 일하고도 칭찬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반대로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섬겨야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에도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2)기도를 함으로 총명이 있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총명 위에``라고 했는데, 총명이라는 말은 분별력입니다.
우리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데에 총명을 가지고 사랑을 해야지 분별없이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가 출산율이 가장 적기로 지지난 주에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1.7명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장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우리자녀들이 이나라와 나이많은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때가 되면 엄청난 짐을 져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혼하면 자식들 좀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많이 나아야 합니다.

전도도 못하지 않습니까? 내 속으로 낳은 자식들도 다 전도가 안되는데, 많이 낳아서 어려서부터 잘 키워서 예수님 믿는 사람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하기는 하는데, 지식있는 사랑, 총명한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은혜의 참여자에게 주시는 복은 4가지입니다.

10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복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는데, 좋은 것만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멋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했듯이 사람에게는 갈 길이 있고, 가서는 안될길이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은 복입니다.

2) 진실하여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는 복입니다..
진실한데 허물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잘 하는데,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됩니다. 진실하되,허물이 없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날까지 계속 은혜중에 살게 되는 복입니다..

4) 의의열매를 많이 맺는 복입니다.
11절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 자로 살아 가는 것이 하늘의 시민이 살아가는 첫 번째 법칙입니다.

고난 중에 우리의 살 길은 하늘의 시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은혜의 참여자, 은혜를 나누어 주는 일군으로 사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이 있다, 없다를 무엇을 갖고 이야기합니까?
은혜에 참여자로 살고 있느냐? 아니냐? 에 있습니다.
바라기는 은혜의 참여자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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