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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 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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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본문 : 마태복음 5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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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복된 말씀이라 합니다. 여덟 가지 복을 설교 하셨다 해서 팔복이라 합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하신 설교라 하여 산상설교라 합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어 엄숙히 말씀 하신 것을 말합니다. 앉아 가르치신 것은 숙고한 진리를 뜻합니다. 구텐베르크 이래로 성경은 수십 억 부가 발행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교회에서도 교회절기에 따라 성경을 읽습니다.

본 산상 설교는 정말 위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신학자도 아닙니다. 서기관도 아닙니다. 제사장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나사렛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평민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한 글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정치적 야망이 없으셨습니다. 세상적인 욕망이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자기를 위해 한 간의 방도 만들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는 목수이십니다. 남의 집도 지었습니다. 남의 가구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떠돌이였습니다. 일정한 거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는 늘 만족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를 미워하신 적이 없습니다. 늘 기쁨이 넘친 분이십니다.

그가 감람산이란 산에 가셨습니다. 그는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종교적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정의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이론이 아닙니다. 실천입니다. 평화의 말이 아닙니다. 평화이 내용입니다. 행동입니다. 가르침 보다 더 중요한 삶입니다. 산상설교는 낙원 같은 종말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땅의 생활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산상 설교는 우리 인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피안을 겨냥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핵심적인 말씀은 “지금”과 “새롭게”입니다. 그의 가르치심은 위로의 이데올로기(Vertrostungsideologie)가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축복입니다. 보다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제시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첫째로 고통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둘째로 그의 사도나 사역자로 인정받은  그의 열두 제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셋째로 일반 백성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 이 말씀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영어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했는지 알아봅시다.  And when He saw the multitudes. He went up on the mountain ; and after Hear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opening His mouth He began to teach them. saying.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이라 했습니다.

마태의 계획은 자세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바로 직장을 버립니다. 그 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청합니다. 이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다 버렸습니다. 정말 그는 가난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도 예수님으로부터 나를 따르라는 간단한 한 마디 말씀뿐이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가난을 좋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심령이 가난 하라(poor in spirit)라 하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교리의 대요”라 했습니다. “왕국의 대 헌장”이라 했습니다. “왕의 선언”이라 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앉아서 가르치셨습니다. 옛날 랍비들은 앉아서 가르쳤습니다. 교황도 의자에 앉아서 말합니다. 랍비가 서서 이야기 하는 일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가르칠 때는 반드시 앉아서 했답니다. 예수님도 앉아서 하신 것을 보면 그의 설교는 그 교훈의 요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또한 이 말씀이 공식적인 말씀임을 잘 말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I.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 심령이란 프뉴마라 합니다. 이는 영혼이란 말입니다. 가난이란 가난한 상태에서 계속 견디어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럼 가난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자기의 할 수 없는 처지와 하나님 밖에 도와 줄 자가 없음을 아는 자들(사61:1),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과 반대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오만한 자들의 박해를 받는 자들(시편34:6, 18, 51:17), 셋째로 죄를 인하여 상심하며 회개하는 자들입니다(사66:2). -박윤선 박사 공관복음주석.

우리는 늘 자기 교만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처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 과연 살아 갈 수 있습니까. 물론 없습니다. 제일 불쌍한 이런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죄를 늘 짓고도 뉘우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굳어 있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그저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늘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삽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은 사는 것이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종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제법 갖추도 삽니다. 남  다르게 살아 갈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굴에 기쁨이 보이지 않아요. 제가 잘 몰 본 것도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천국이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마음에 이 세상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이 보입니다.

II,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십니다

산상설교는 귀한 말씀임을 잘 압니다. 설교의 윤리는 “이것도 저것도” (Einerseits-Anderseit)가 아닙니다. 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ntweder-Oder) 입니다. 산상 설교는 실천해야 합니다. 막연히 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의 윤리는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는 로마의 격언의 전통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원한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천국은 하나의 이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잘 아시지만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매우 단호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번 추석에 고향이라고 가까운 반야월에 갔습니다. 여러 가지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제 사촌동생이 이런 말을 합디다. 그도 장로입니다. 그는 우리는 그렇게 못살아도 목사님은 바로 전해야 합니다. 그 말 백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천국이 없는 지상낙원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있습니다. 듣기다 싫어도 회개를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란 말씀도 하신 것입니다. 너무 단호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최고 목표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통일이 아닙니다. 천국입니다. 저는 이를 전하기 위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 천국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서도 즐겁게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악의를 품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세상적인 것을 늘 청소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 말씀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마음이 변해야 변혁이 됩니다.“회개하고 믿고 세상을 변혁하자“ Kehrt um und glaubt-verandert die Welt)  이것은 1982년 독일 가톨릭교회 대 집회의 표어였습니다. 인간은 지금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사스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이북의 핵무기 때문에 6자 회담에다 여러 가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핵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45억 인류를 멸망시킬 구 있는 핵무기가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재앙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것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을 가로막는 죄입니다. 이는 핵무기 이상입니다. 모든 인류를 죽입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산상 설교는 율법이 아닙니다. 계명의 모둠도 아닙니다. 삶의 약속입니다. 사랑의 실험입니다. 인류를 살리는 약입니다. 천국의 길잡이입니다. 이 말씀대로만 삽시다. 이 말씀대로만 생활 합시다. 천국은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지저분한 것들이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 속에도 필요 없는 것들이 있으면 배설합니다. 땀으로도 내뱉어야 합니다. 가래로도 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안 되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의사가 해결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적 병원입니다. 천국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대단한 복입니다. 우리 이런 세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가난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가난해야 합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불신자와 어떤 사이비 종파에서는 이런 설교를 하면 이상하다 합니다. 너무 하나님의 나라만 생각한다고 싫어합니다. 이 세상의 천국을 원합니다. 저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세상은 천국의 아주 작은 모델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얼마 후에는 분명히 후회할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정말 정말 잘 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설교를 하고 전도를 해도 듣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후회합니다. 그런 설교를 듣고 그대로 믿은 사람은 정말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산상 설교를 약자의 복음이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라. 애통하라. 위로하라. 주리고 목말라라. 자비를 베풀라. 마음을 깨끗이 하라. 화평하라. 핍박을 받으라.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어느 하나 자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의 빛입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합니다. 여기 복이 있나니 하는 말씀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요즈음은 우울증이란 병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이 오래 가면 큰 병이 됩니다. 사실 주 안에서 살면 이런 병은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마음에 걸려 있습니까. 빨리 이런 것을 버립시다. 우리는 어떤 습관이 버려야 합니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삽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에게 이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합시다. 늘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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