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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준비 / 마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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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그리스도인의 준비
성경말씀 : 마태복음 25:1-13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4장에서 25장에 걸쳐서 언급하신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강론 가운데 나옵니다. 주님께서 이 강론을 하시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길을 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성전은 헤롯 대왕이 무려 46년에 걸쳐서 지은 것으로서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고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묻기를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주의 재림과 세상 끝날에 되어질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도 그 때 하신 말씀 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비유 역시 재림과 종말에 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열 처녀의 비유’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준비”라는 제목으로 설교함으로 성도님들과 더불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믿음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비유에 보면, 열 처녀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는데, 그 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나갔으나 기름을 가지지 아니했고,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과 여분의 기름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신랑이 빨리 오지 않습니다. 비유를 살펴보면, 등을 밝힌 채 적어도 서너 시간은 족히 기다린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신랑 신부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의 꽃을 피웠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처녀들은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열 처녀가 다 졸며 자는데, 밤중에 소리가 나기를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했습니다.

정신이 차리고 저마다 등을 준비하는데,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들은 대답하기를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도착했고, 예비하였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애원했지만, 신랑은 대답하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열 처녀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에 속해 있는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이 신부집으로 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혼인잔치는 최종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등과 기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신자들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등만 가진 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상태를 말하고, 등과 기름을 다 준비한 것은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였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기름을 사러 갔다 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그 때는 기름을 준비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사가지고 왔지만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으니까요. 신랑이 더디 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딘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지가 벌써 이천년이 되어 갑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재림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 처녀의 비유가 말해 주듯이,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에 비해서 지연되는 것이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정작 성도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믿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대로, 비유에 나오는 열 처녀는 교회에 속해 있는 신자들을 말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주의 재림에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에게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자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 하나는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신자들입니다. 진실한 신자는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에 부실한 신자는 신앙의 형식은 갖추고 있는데 그 내용이 없습니다. 결국 믿음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 개인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우리 각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삼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는 엄연히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죄인의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은 로마 제국을 쫓아내고 유대 나라를 세울 정치적인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야망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돌변하여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반하고 만 것입니다.

진실한 신자들도 때로 영적으로 졸며 잘 때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에 분주해서 신앙생활에 열심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안 됩니다. 졸며 자더라도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영의 탄식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사병들이 밤에 보초를 서는데, 교대 시간이 될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경계해야 하지만, 밤중인데다 하루 종일 훈련과 사역을 한 몸인지라 피곤해서 졸며 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푹 놓고 자는 것이 아닙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잠간씩 조는 것이므로 무슨 부스럭 소리라도 나면 금방 정신을 차리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따금씩 우리는 영적으로 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깨우치면 즉시 깨닫고 바른 믿음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졸면 그만큼 신앙생활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며 잤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장한 장정들이 횃불을 밝히고 들이닥쳤을 때 놀라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준비도 없이 잠자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많은 기독교인들이 졸며 자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서 아주 멀리 떠내려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지금이 졸며 잘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같이 경고합니다.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도적이 밤중에 침입할지라도 주인이 깨어있으면 절대로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에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이하에 보니 “4)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믿음을 준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강림하시든지 당황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상급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복음서를 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얼마나 자주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비롯한 오백 여 성도들이 지켜보는 데서 승천하시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예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고 하였고,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 5:7-9)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기를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이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주님의 재림을 증언하는 성경 구절은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에 자주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기록한 것이므로 절대로 오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재림을 믿는 성도들이 할 일은 분명해 졌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설 때 받을 상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끝나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9장 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 11절로 15절에는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영생에 들어가지만, 그러나 이 땅에서 각자가 행한 것을 따라서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3장 10절로 15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장차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충성한 성도들에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할지라도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역사책에 기록을 남길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더라도 그것이 주님과 상관없는 것이라면 영원한 상급을 받지 못합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그는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를 누렸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자기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한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1:2, 2:14)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수고한 것은 절대로 헛되는 법이 없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다 기억하시고 상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대한 계시를 다 보여주신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며 주를 위해 수고한 성도들에게 후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장차 주님 앞에서 받을 칭찬과 상급과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모든 일에 절제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개인의 종말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주적인 종말을 의미한다면,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죽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적인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 가운데서 어느 것이 먼저 임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두 종류의 종말이 다 확실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 이전보다 가까운 것을 알뿐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종말은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평균수명에다 우리 자신의 나이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도하기를 “10)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라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 일본인들인데 평균수명이 남자가 77세이고, 여자가 84입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71세이고, 여자가 78세입니다. 물론, 특별히 건강한 분들은 90이 넘도록 장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세를 넘기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따라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개인의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달리 없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9장 7절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가급적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 암 환자를 심방할 때가 있습니다. 환자가 주님을 믿는 사람이면 홀가분 마음이 들지만, 불신자일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 할 수 있을까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병원에 가서 환자를 만나보면 거의 대부분의 환자가 자기의 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잠시 입원해 있다가 퇴원할 줄로 압니다. 이럴 때 저는 마음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말해 줄 수도 없습니다. 환자의 가족들이 싫어하니까요.

환자가 전도를 받고 주님을 영접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여간 안타깝지 않습니다. 그 환자는 자기의 병명도 모른 채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 죽어갑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말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됩니다. 암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알려주지 않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일자와 우리 각 사람이 죽는 날입니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건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병약하다고 빨리 죽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불러 가시면 곧바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어엿이 그 앞에 설 자신이 있으십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 4:12)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에게 죽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같습니다. 죽음은 출생과 함께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았고 죽음을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죽는 것을 가리켜 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낙원에 들어가고, 몸은 흙에 묻혀 잠듭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시고 강림하실 때 천국에 있던 성도들을 함께 데리고 오실 터인데, 이 때 무덤 속에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여 영혼과 결합하게 됩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도 바울의 고백에 잘 나타나 있는데,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고 했습니다. 또 그는 말씀하기를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장)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어찌하든지 육신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젊음이 있을 때, 아직 기력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데까지 즐기겠다는 생각을 하고 삽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15)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고 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장사하여 갑절의 이문을 남겨 주인의 칭찬과 상급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것을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도로 내놓았다가 책망과 함께 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좀 적게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세월을 세상일에 낭비하지 말고 받은바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많은 이문을 남겨 주님의 칭찬을 듣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준비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상급과 개인적인 종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항상 천국의 상급을 준비하고 하나님 만날 날을 예비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신랑이 신부집을 찾아왔던 밤중이 가까운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악의 밤에 술에 취하고 향락에 취하고 잠에 취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졸거나 자면 안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름이 부족하거든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나중에 신랑이 왔을 때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아무쪼록 항상 깨어 있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슬기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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